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30363/28.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59화 괴도 도팽(Dauphin) (3) - 쇼맨십

“난 저 같잖은 협박에 넘어갈 생각 따윈 추호도 없네.”

괴도 도팽의 예고장을 받은 남자.

앙리 몽보르크는 서슴없이 단언했다.

“애초에 그 매매 계약은 정당한 것이었어! 무지렁이들이 글을 몰라서 실수를 저지른 건 그놈들 잘못이지, 그게 왜 내 잘못이 된단 말인가? 참나, 어이가 없어서.”

몽보르크 상회의 직원들이 계약서를 대신 읽어준다고 말하면서 그 내용을 속여서 가르쳐 준 건 앙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건 아랫것들이 ‘멋대로’ 저지른 일일 뿐이고, 설령 멋대로가 아니었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그걸 증명할 방법 따윈 없거늘.

경비대 상층부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몽보르크 상회가 비르카 왕국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상회고, 사르노스 백작가와도 거래를 트고 있다는 사실이지, 일개 농민들의 억울함과 고통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뭣보다 이들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예고장’이라는 문명에 상당히 열받아 있는 상태였다.

“도둑놈 주제에 누굴 노리는지 대놓고 떠든 후에 쳐들어오겠다고? 우리를 병신으로 보는 건가!”

경비와 도둑의 싸움에서 경비 쪽이 불리한 이유가 무엇인가.

경비 쪽은 언제 어느 곳을 노릴지 모르는 도둑을 대비하며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에 반해, 도둑은 본인이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곳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헌데 지금 이 도팽이라는 도적놈은 그 메리트를 스스로 내던져 버렸다.

연이은 성공 행진에 자신감이 배를 뚫고 나와버렸거나, 경비대를 우습게 보고 있다고밖에 여길 수 없는 행동이었다.

“개미 한 마리 놓치지 마라!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일단 잡아!!”

“다들 눈깔에 힘 빡 주고 있어라!! 조는 새끼가 보이면 그 새끼는 도적 이전에 내 손에 죽는다!!”

중대장은 소대장들에게 잔뜩 엄포를 놓았고, 소대장들은 부하들을 힘껏 윽박질렀으며, 내리 갈굼을 받은 병사들은 독이 바짝 올랐다.

경비병들이 내뿜는 투기와 열기로 인해, 몽보르크 상회의 건물 주변으로 기이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경계 태세에, 주변에서 그 모습을 보던 시민들은 수군거렸다.

“저건 아무리 그래도 못 뚫겠는데?”

“애초에 왜 굳이 자기가 저기 쳐들어간다는 걸 알린 거야? 도둑이면 조용히 왔다 가야지.”

“정말 오기는 오는 거 맞아? 사실 예고장은 그냥 낚시고, 경비가 잔뜩 몰려 있는 틈을 타서 다른 곳을 노리려는 거 아니야?”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해가 지고, 밤하늘 위에서 달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예고장에 적힌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툭, 하고.

주변 일대가 어둠에 잠겼다.

“어?”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돈이 많은 걸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몽보르크 상회 건물 곳곳에는 비싼 마력등(魔力燈)이 설치되어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횃불과 달리 시야가 안정적인 데다가 관리도 편해서 병사들은 하나같이 마력등의 조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빛이 일제히 꺼져버린 것이다.

마력 장치에 고장이라도 났나 싶어 그들이 멍해져 있던 그때, 저택 안쪽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악!”

그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곳이 몽보르크 상회주가 머무는 방 쪽이라는 걸 알아채고, 몇몇 소대장들의 얼굴이 파랗게 되었다.

그들은 다급히 외쳤다.

“횃불! 횃불을 켜! 순찰용으로 가져온 것들 있잖아! 서둘러!!”

경비병들은 허겁지겁 비명이 울려 퍼진 곳으로 달려갔고, 이내 난장판이 된 방과 그 방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기 다리를 움켜쥐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있는 앙리 몽보르크를 발견했다.

“상회주님! 괜찮으십니까!? 대체 무슨 일이!”

앙리 몽보르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 놈이 나를 억지로 끌고 가려다가, 주변에서 사람이 몰려드는 걸 알고는 저곳으로 도망쳤네!! 빨리, 빨리 놈을 잡아야 해! 억…!”

범인과의 몸싸움 도중에 다친 것인지 앙리는 다시금 다리를 붙잡고 신음 소리를 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다소 이상한 점이 없잖아 있었지만, 도팽 포획이라는 공훈에 눈이 돌아간 소대장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안심하십시오, 상회주님! 저희 1소대가 놈을 반드시 붙잡아 오겠습니다!!”

“2소대도 간다! 다들 달려라!!”

경비병 중 대다수가 도팽이 도망갔으리라 예상되는 방향으로 달려 나간 뒤, 한발 늦게 찾아온 상회 직원들이 상회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들것을 가져오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의사에게─”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네.”

상회주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창고, 지금 당장 창고로 가게! 빨리 내 보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내가 있는 이곳까지 단숨에 찾아왔어! 배신자, 배신자가 있는 거라고! 그놈들이 내 창고를 건드리기 전에 빨리 보물을 지켜야 한단 말이다!”

상회의 직원들과 남겨진 병사들은 당황했지만, 상회주의 연이은 닦달에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다리가 이 모양이니 아무나 좀 업고, 손비는 놈들은 병사들을 안내하게! 불 좀 꺼졌다고 길 못 찾는 머저리 같은 놈은 없겠지!?”

“예! 상회주님!”

“빨리! 빨리 움직여! 수레도 챙기고!”

다리가 아픈지 계속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어떻게든 보물을 지키겠다며 주변을 다그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질려했지만, 감히 불평이나 이의를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창고에 도착하자, 앙리 몽보르크는 재차 명령을 이어 나갔다.

“좋아, 아직 내용물은 무사하군! 자, 이제 이걸 옮기게! 저택 뒷마당 쪽으로 나가야 해!”

“뒤, 뒷마당 말입니까? 이왕 옮길 거라면 차라리 보는 눈이 많은 정면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 멍청한 놈!! 그 도적이 그쪽으로 도망쳤단 말이다! 그리고 어떤 놈이 배신자일지 모르는데 동네방네 보물이 여기 있다고 소문낼 일 있나! 아니, 아니지! 혹시 네놈이 배신자인가!? 그래서 날 엿 먹이려는 거지? 응!?”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상회주의 서슬 퍼런 위협에 직원들과 병사들은 끽소리도 못 한 채 커다란 수레에 창고의 보물들을 옮겼고, 앙리 몽보르크의 지시대로 그걸 사람 눈을 피하기 좋은 뒷마당 쪽으로 옮겼다.

주변에 그 모습을 발견한 다른 경비병들이 검문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회주의 거친 욕설과 네가 범인 아니냐며 윽박지르는 모양새에 다들 꼬리를 내렸다.

마침내 뒷마당에 도착한 뒤, 사람들은 하나같이 녹초가 된 기색이었다.

그야 상회주의 날 선 다그침에 계속 쫓기다시피 하며 짐을 수레에 싣고 그걸 밀며 돌아다녔으니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좋아, 여기라면 괜찮겠군. 다들 수고했네.”

상회주의 온화한 목소리에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직원들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그들이 아는 앙리 몽보르크라는 인간은 절대 저런 따스한 칭찬을 건네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방금까지의 돈에 미친 악착같은 모습이 자연스러웠지.

한번 의문이 물꼬를 틀자, 여태까진 워낙 다급하게 쫓기는 터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의문들이 연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배신자인지 알 수 없다며 마구 의심을 드러내던 앙리가, 여기에 있는 이들은 왜 별다른 선별 작업도 없이 보물 옮기기에 동참시켰는가?

경비병과는 별개로, 본래 앙리 몽보르크의 옆을 지키고 있어야 할 개인 호위들은 대체 어디로 갔길래 이 상황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별다른 무력조차 갖추지 못한 앙리 몽보르크가, 어떻게 경비병들이 들이닥칠 때까지 ‘고작’ 발목 부상 정도만으로 버틸 수 있었는가?

허나 그들이 그 의문에 대해 깊게 고찰하는 것보다 먼저, 갑작스럽게 뒷목을 덮친 충격이 그들에게서 의식을 빼앗았다.

무릇, 사람을 속이는 데 필요한 건 완벽하고도 철저한 계획 같은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 그리고 상대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기회를 주지 않는 기세.

사람들이 단체로 쓰러진 뒷마당.

어느새인가 두 다리로 멀쩡하게 땅을 딛고 선 앙리 몽보르크.

아니, 괴도 도팽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다음 날 아침.

레브루크의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을 보고는 멍하니 제 눈가를 팔로 비볐다.

허나 눈가가 쓰라릴 정도로 비비고 또 비벼봐도, 보이는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읍! 읍읍! 으으으읍!!”

레브루크 중앙에 있는 커다란 광장.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밧줄 아래, 몽보르크 상회의 상회주 앙리 몽보르크와 그 측근들이 마치 도롱이벌레 같은 모습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매달려 있는 여러 개의 간판에는 이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딱히 친애하지는 않는 악덕 상인과 그 수족들이여.

자네들이 모처럼의 충고를 무시한 것에 대해, 나는 실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정도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법.

이번 경험을 교훈 삼아 뒤늦게라도 농민들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고 사죄한다면, 더는 그 죄를 묻지 않도록 하겠네.

아, 물론 이번에 받아 간 약간의 이자는 별개일세. 그건 수업료로 받아 가도록 하지.

그래 봐야 겨우 창고 하나가 털렸을 뿐이니, 아직 남은 재산은 넉넉할 것 아닌가? 이번에도 경고를 무시한다면 그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일세.

부디 자네들이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을 때 치르기를 기원하겠네.

그리고 친애하는 레브루크의 시민들이여, 이번에 몽보르크에서 얻어낸 재산은 한 끼 식사라는 형태로 그대들에게 나누기로 했으니, 부디 다들 맛있게 먹고 즐겨주면 좋겠네. 먹는 김에 몽보르크를 향해 감사의 말도 좀 건네주면 더 좋겠군.

본래 사람이 칭찬과 감사를 받으면 인성에 도움이 되는 법이라네.

아, 혹시 먹고 난 뒤에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과한 염려라고 하고 싶군.

어차피 자네들이 먹지 않으면 전부 버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텐데, 설마 남 줄 바에야 버리고 말겠다는 심보로 똘똘 뭉친 졸렬한 인간이 있기야 하겠나?

만약 정말로 있다면 미안하네, 미리 사죄하지.

-괴도 도팽-」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레부르크 거리 곳곳에는 아침에 딱 먹기 좋은 온도로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커다란 솥과 그 안에 가득 담긴 스튜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고기, 감자 당근 양파 등의 채소,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약초가 들어 있는 그 스튜는 어마어마하게 매혹적인 향기를 물씬 풍기며 사람들을 유혹했고, 그 솥 옆에는 대량의 나무 그릇과 나무 숟가락,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듯이 스튜를 맛있게 먹으라는 내용의 그림이 첨부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던 빈민가의 시민들은 별다른 고민조차 없이 나무 그릇으로 스튜를 퍼먹었고, 일반 거리의 시민들은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누군가가 스튜를 먹고 감탄하는 표정을 짓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앞다투어 스튜에 달려들었다.

심지어 상류층 거리의 시민들마저 그 지나치게 강렬한 향기에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 코를 벌름거릴 정도였다.

본의 아니게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시행하게 된 몽보르크 상회는 이를 악물었지만, 스튜를 먹은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리지는 못했다.

이미 깎일 대로 깎인 체면이라지만, 굳이 거기에 졸렬하다는 칭호까지 추가로 얻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몽보르크 상회와 경비대는 어떻게든 이번 사건의 세세한 과정을 덮으려고 했지만, 이미 퍼진 소문이란 쉽게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앙리 몽보르크는 결국 탄식과 함께 농민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고, 경비대는 단숨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허나, 이는 괴도 도팽이 레브루크에서 벌인 여러 사건 중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