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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음악가 하멜(Hamel) (14) - 그 연주는 누구를 위하여
얼굴을 간지럽히는 털 뭉치의 감촉에, 하멜은 눈을 떴다.
-찍? 찍찍!
“…음, 처음 뵙겠습니다?”
-찍!?
하멜의 말소리에 놀란 것일까.
그의 얼굴을 간지럽히던 생쥐가 놀랄 만큼 신속한 움직임으로 도주했다.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나무 상자 틈새로 몸을 숨기는 생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멜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스으읍.”
오랜 시간 눅눅하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던 탓인지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쿡쿡 쑤셔왔다.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것인지 두통이 심한 기분도…
“…아니, 감기 문제가 아니군.”
뒷머리를 조심스레 만지던 하멜은, 손끝에 검붉게 말라붙어버린 핏가루 같은 게 만져지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보통 픽션에서 사람을 기절시킬 때는 약을 쓴다든가 목을 쳐서 기절시키는 장면 같은 게 많이 나오는데, 하멜을 이곳에 가둔 작자들은 그냥 가차 없이 뒤통수를 후려쳐 버린 듯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 거라는 무식한 믿음인지, 아니면 죽으면 죽는 대로 상관없다는 냉정함인지는 몰라도 어느 쪽이든 하멜에게 썩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다만 적들이 하멜을 깔보고 무시해서 좋은 점도 있었다.
낡은 창고 같은 곳에 감금되기는 했지만 따로 구속 같은 건 받지 않았고, 악기를 비롯한 짐 역시 무사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탈출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심을 굳힌 하멜은 우선 문 쪽에 기댄 뒤, 조용히 귀를 곤두세웠다.
눈을 감고 오로지 청각에 집중하자, 바깥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이 그에게 주변 상황을 알려주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두 명. 심박 소리나 호흡음, 다리를 떠는 행동으로 볼 때 꽤 초조해하고 있군.’
초조함의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를 걱정하는 걸지도 모르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시시한 일을 맡겨졌다고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하멜은 창고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문 근처에 늘어놓은 뒤,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야, 화장실 다녀온다. 잘 지키고 있어.
-예! 형님. 다녀오십시오.
체감상 대략 30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두 문지기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웠다.
하멜은 그가 충분히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하고는 피리를 들어 올렸다.
#@§*&※♪¥£! ! ! ! !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음악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반대로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음악 역시 할 줄 안다는 것.
쇳조각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이, 포크나 나이프로 접시를 긁는 것 같이, 잠자리에서 코를 골거나 이를 가는 것 같이.
하멜이 자아내는 기괴한 불협화음이, 문 바깥에 있는 남자의 귀에 곧바로 때려 박혔다.
쿵!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조용히 하라며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하멜은 멈추지 않았다.
가볍게 짜증을 내게 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잠긴 문을 함부로 열면 안 된다든가, 떠나간 동료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든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뒷일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장 이 소리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화병이 나서 죽어버릴 정도로, 끝없이 분노와 충동을 부추기고 증폭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쾅!!
“야, 그 병신 같은 소리 안 멈춰!!”
얼굴이 빨개진 채로 씩씩거리는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고는 안쪽에서 연주를 이어가는 하멜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그는 발밑에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바닥에 설치해 둔 잡동사니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었다.
“어억!”
퍽!
무방비한 그의 머리를 향해, 하멜은 가방에 남겨두었던 빵을 힘껏 휘둘렀다.
여관 점주가 호의적으로 챙겨주었던 나름 부드럽고 먹을만한 빵과는 달리, 잘못 먹었다간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딱딱하고 무거운 빵이 남자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남자는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풀썩 쓰러졌고, 하멜은 재빨리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 뒤로는 오로지 사람을 피해 도주를 반복할 뿐이었다.
만약 그가 갇혀 있는 건물에 사람이 빼곡했더라면 아무리 하멜의 청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다행히 바깥쪽의 경계는 그렇게까지 삼엄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인력 대부분이 다른 일에 투입되어 이곳은 뒷순위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도시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하멜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성, 비명,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
도시를 암중에서 지배하는 조직에게, 그 조직의 보스인 마녀가 쫓기고 있었다.
하극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정답은 ‘이대로 몸을 숨기고 도망친다’였다.
다행히 적들에게 있어서 하멜의 우선순위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아마 저들에게는 본래 준비해 두었던 계획이 있었고, 하멜은 그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예비 같은 존재였겠지.
적들의 주력이 마녀 헤카테를 찾느라고 정신이 팔려있다면, 하멜은 이 혼잡과 짙은 안개를 틈타 도망칠 수 있을 터였다.
앞으로 이 도시에서 발붙이고 있기는 힘들겠지만, 어차피 하멜은 떠돌이 악사다.
짐은 전부 몸에 지니고 있고, 악기만 있다면 연주는 다른 곳에서라도 할 수 있다.
“헤카테! 당장 나와라! 지금 당장 분수대 쪽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악사가 처참한 꼴을 보게 될 거다!!”
그때 문득, 안개 속에서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는 조직원들이, 저마다 하멜을 죽여버릴 거라든가, 장대에 매달아 처형한다든가 온갖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하.”
하멜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놓치고 나서 뒷북을 친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이건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야 했다.
하멜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이상 헤카테를, 아니, 그의 제자 히스티아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일 수 없게 될 테니, 그전에 하멜의 이름을 팔아 그녀를 유도할 셈인 거다.
망설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멜은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푸른빛이 깃들었다.
“헤카테! 당장 나와라! 지금 당장 분수대 쪽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악사가 처참한 꼴을 보게 될 거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협박에, 헤카테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얼어붙었다.
머리를 가득 메우는 것은 오로지 자책의 감정이었다.
‘나 때문이야.’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하멜을 곁에 두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가 몇 번이고 하멜을 특별취급하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가 적들에게 표적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일찌감치 정체를 밝혔더라면.
그에게 원망과 혐오를 사는 걸 각오해서라도, 그를 곁에 두고 보호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평범한 여자로서 함께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기심이, 이도 저도 아니고 계속 어중간했던 그녀의 어리석음이, 마침내 그를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히스티아는 쉽사리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아니, 아깝기는 하지만 하멜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소중한 악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바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더러운 세계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설령 히스티아가 이대로 순순히 협박에 응한다고 해도, 저들이 하멜을 살려줄 가능성은 너무나도 낮다는 것을.
“…아니, 아니야.”
히스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깔끔하게 죽는다면, 확실히 하멜 역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허나 반대로 그녀가 추하게라도 살아남는다면.
그들에게 무릎을 꿇어 자비를 구하고, 하멜을 살려 달라고 요청한다면, 그들 역시 하멜의 가치를 재고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하멜에게 헤카테를 제어할 목줄로서의 가치가 생겨날 테니까.
차라리 죽는 게 편한 길이었다.
그녀가 최소한으로 억제하려 했던 온갖 더러움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몸을 담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각오를 굳힌 히스티아가, 거리를 뛰어다니는 조직원들 앞에 나서려고 한 그 순간.
- ─────────!!
장엄한 선율이 도시 전체를 무대로 울려 퍼졌다.
히스티아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그리운 바이올린 소리.
“뭐야 이 소리는?”
“어디서 울려 퍼지는 거지?”
도시의 시민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개중 일부는 조용히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공포와 혼란, 광기에 가득 찼던 도시의 분위기가, 일개 악사의 연주로 인해 뒤바뀌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이 압도적인 연주에 취해 넋을 잃었지만, 반역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되레 한시라도 빨리 이 연주를 멈추게 하려는 듯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히스티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겨우 바이올린 하나로 도시 전체에 음악을 들리게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적들의 주의가 온통 하멜에게 쏠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듯이, 멀쩡하게 들려오던 바이올린 소리가 갑작스레 멈추었다.
“안 돼…!”
히스티아는 비명 같은 탄식을 내질렀다.
당장이라도 하멜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극심한 출혈과 마력 소모로 한계에 이른 몸은 그녀가 원하는 만큼 재빨리 움직여주지를 못했다.
히스티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숨기는 것조차 잊은 채 근처에 있는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벽을 타는 사이, 멈추었던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바이올린이 아닌, 피리 소리였다.
어떻게든 지붕에 오른 그녀는, 부족한 마력을 짜내어 시력을 강화했다.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 안개 속을, 수많은 인파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길을 따라 질주하는 검은 양복들의 모습은, 마치 한 무리의 생쥐 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생쥐 떼가 향하는 방향에는, 한 명의 악사가 피리를 불며 나아가고 있었다.
하멜의 모습을 확인한 히스티아는 숨을 삼켰다.
그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려웠다.
어디에선가 거칠게 몸싸움이라도 한 듯이 옷차림은 너저분했고, 바이올린 역시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걷는 발자취마다 남겨진 핏자국이, 그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연주에 실려 퍼져 나가는 마력은, 마치 그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대가처럼 느껴졌다.
“──.”
“──.”
문득, 히스티아는 하멜과 시선이 마주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히스티아의 머릿속,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이야기했다.
음악에는 연주자의 감정이 담긴다고.
경지에 오른 연주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언어나 마찬가지라고.
본인은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들려오는 이 선율은 달랐다.
「저는 괜찮습니다.」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자기 위안이라고 부정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너무나도 뚜렷했다.
하멜의 발걸음은 어느새 도시를 넘어, 해안가의 절벽으로 도달해 있었다.
수많은 조직원들이 하멜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신의 삶이 올바르다고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어떤 죄인이라도, 당신이 저의 소중한 관객이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멜이 낭떠러지 앞에 멈춰서 피리를 부는 모습을, 히스티아는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눈에서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절대로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당신의 배려가 있었기에 저는 따스한 지붕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선의가 있었기에 저는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대신 사람들과 빵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던 나날이 있었기에, 저는 제가 목표로 하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멜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수많은 생쥐 떼가 그를 따라 몸을 내던졌다.
「당신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지만,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 그리고.」
「함께 연주하자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합니다.」
하멜의 연주가 끝났다.
음악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