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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음악가 하멜(Hamel) - 미스트헤븐의 마녀
대륙 중북부에 위치한 카르디안 공화국의 국토는, 지도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마치 호리병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호리병의 위쪽은 섬.
호리병의 아래쪽은 대륙.
그리고 호리병의 허리는 푸른 해협.
카르디안이 이런 기이한 형상의 국토를 지니게 된 것에는 조금 우습고도 슬픈 사연이 있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카르디안의 북부와 남부는 엄연히 별개의 국가였다.
문제는, 그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끔찍하게도 무능했단 점이었다.
높은 세금. 권력층의 부패. 처절한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먼저 북부가 폭발했다.
수많은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혁명을 부르짖었고, 북부 왕실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47km의 해협은 혁명의 열기를 차단하기에는 너무나 좁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였던 북부의 백성들이 나라를 엎어버리는 걸 본 남부의 백성들 또한 이제는 참지 않았다.
왕족들의 목이 단두대에 내걸렸고, 두 나라의 혁명가들은 우리들은 이제 하나라며 새로운 국가를 선포했다.
사악한 권력자들이 사라졌으니 이제 행복이 찾아올 거라며 그들은 희망을 품었고, 손에 넣은 승리를 만끽했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거기까지였다.
왕실을 갈아엎을 당시만 해도 서로 으쌰으쌰 우애를 다지던 혁명가들은, 새로운 나라의 통치 방향을 두고서 다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혁명의 불길을 다른 나라에도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외쳤으며, 누군가는 왕족뿐만 아니라 귀족들까지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요구했고, 누군가는 지나친 폭력은 더 큰 반발을 부를 뿐이라며 만류했다.
북부 출신들은 자기들이 먼저 시작한 혁명이 남부로 이어졌으니 자기들 쪽에서 주도권을 잡는 게 맞다고 여겼고, 남부 출신들은 영토도 넓고 인구수도 많은 자기들 쪽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니, 지방이라고 해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나라 곳곳에서 온갖 범죄가 판을 치기 시작했고, 힘과 폭력이 지배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혼란은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 ‘통령’이 공화국의 주도권을 잡으며 서서히 안정화되고 있었지만, 공화국 내에는 아직도 옛 혼란기의 잔재가 짙게 남은 도시들이 남아 있었다.
미스트헤븐은 그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였다.
북부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인 이곳은 그 번영만큼이나 많은 어둠을 품고 있었고, 그 찬란함만큼이나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정부의 입김은 미약했고, 공권력은 나약했으며, 치안을 유지해야 할 경찰들은 암흑가의 조직들을 두려워하며 맹인과 귀머거리를 자처했다.
고로, 항구 구역의 어느 창고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대놓고 울려 퍼진다고 한들, 수상함을 느낀 경찰이 찾아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주민들은 이 소리를 환청으로 취급하기로 했고, 몇몇 눈치가 둔한 이들이 경찰에 신고 따위를 한다고 해도, 경찰은 그 신고를 무시했을 테니까.
창고 내의 풍경은 살벌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남자 여럿이 상대를 위협하듯 쭉 늘어서 있었고, 남자들 사이에는 밧줄에 묶인 두 청년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으로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를!!”
두 청년의 필사적인 애원에도, 그 애원을 듣는 당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눈을 깜짝했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이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앞에 있는 인물은 가면으로 그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응.”
가면 안쪽에서 새어 나온 소리는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마치 철 조각으로 철판을 끼릭끼릭 긁는 것 같은, 불쾌하고 기괴한 목소리.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썼는데도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굴곡이 여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는 했으나, 적어도 목소리를 통해 연상되는 외모는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못, 잘못이라.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여인의 질문에, 청년들은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보, 보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한 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요즘 장사가 시원치 않아서 그랬던 겁니다!!”
“그, 그렇습니다! 내고 싶어도 낼 돈이 없었을 뿐입니다! 절대로 여러분을 거역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아주 잘 알겠어.”
납득했다는 듯이, 여인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그 모습에 청년들이 희망을 품은 직후.
콰직!
“아아아아악!!”
여인이 뽑아 든 나이프가 청년의 허벅지에 가차 없이 쑤셔 박혔다.
나이프에 찔린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고, 또 한 명의 청년은 절박한 얼굴로 소리쳤다.
“사, 사정은 말씀드렸잖습니까! 제발 자비를…!”
“말했잖아. 잘 알겠다고. 너희가 나를, 그리고 우리 조직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여인은 또 한 자루의 나이프를 꺼내, 그것을 손 위에서 묘기라도 부리듯 놀리면서 말했다.
“지금 겨우 보호비 같은 것 때문에 내가 직접 나선 줄 아니? 너희의 죄는 그런 게 아니란다. …조직에서 금지한 약을 멋대로 팔아치운 거지.”
움찔, 하고.
미처 다 숨기지 못한 동요가 몸동작을 통해 드러났다.
“무, 무언가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청년 본인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재차 변명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여인은 그의 말을 끝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또 한 자루의 나이프가, 아직 상처 입지 않은 쪽의 청년을 가차없이 찔렀다.
흘러내리는 피와 절규를 배경 삼아, 여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정육업자들이 돼지를 도축하는 걸 본 적 있니? 그들은 단순히 힘이나 칼의 예리함만으로 고기를 써는 게 아니야. 근육과 근육 사이. 뼈와 근육 사이. 뼈와 뼈 사이. 여러 ‘틈새’를 재주 좋게 파고드는 거지. 사람 몸에도 그게 가능할까? 어떻게 생각하니?”
두 청년의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들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여인은 옆에서 대기 중이던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들은 두 청년의 머리를 붙잡은 뒤, 그들의 귀에 젖은 솜뭉치 비슷한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청년들의 청각이 완전히 가로막히기 전, 여인은 짧은 한마디만을 건넸다.
“쓸만한 걸 알려주는 쪽은 관객. 그렇지 못한 쪽은 돼지. 명심하렴.”
질퍽, 하고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차단되는 소리.
그리고 다시금 나이프에 시선을 향하는 여인의 모습.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청년들은 동시에 자기들이 아는 내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대 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만큼, 서로 눈치를 살피느니 말을 맞추느니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상대 쪽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 쪽이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박박 긁어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장에서 뒤처리를 담당하게 된 조직원 중 하나는 저도 몰래 몸을 떨었다.
‘끔찍하군.’
청년들의 상태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한쪽은 허벅지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잘근잘근 저며진 뒤 과다 출혈로 죽어버렸고, 다른 한쪽은 살긴 살았으되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 스트레스와 공포로 반쯤 미쳐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기야 무리도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만 보던 그조차 오금이 저려 숨소리조차 조심할 정도였는데, 당사자들이 느낀 공포와 고통은 어느 정도였겠는가.
조직원은 새삼스레, 이 도시의 뒷골목을 떠도는 어떤 소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미스트헤븐의 그늘에는 마녀가 산다.」
헤카테(Hecate).
이 섬의 오랜 전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사악하고도 강력한 마녀의 이름.
또, 현재 미스트헤븐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보스의 별명이기도 했다.
사실 보스가 여인이라는 것, 그리고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같은 조직원들에게조차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에 은근히 반발심과 의문을 느끼고 있던 그였지만, 오늘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나니 그런 마음은 싹 사라졌다.
방금 그걸 보고도 반항심 따위를 품으면 그게 진정 미친놈이다.
그는 마녀에게 산 채로 도축당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여인은 비를 좋아했다.
피부에 닿는 물의 감촉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특유의 소리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좋아했던 건 그 깨끗함이었다.
불결한 것, 추잡한 것, 오염된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씻겨 내리는 그 모습을 보고, 여인은 일부러라도 빗속으로 나아가 가만히 비를 맞았다.
그리고 비가 멈춘 뒤에 기뻐했다.
비는 더러운 것을 씻겨 내린다.
그렇다면 비를 맞고도 남겨진 자신은 더럽지 않은 깨끗한 것이라고, 그렇게 안심했다.
이윽고 성장한 여인이 샤워를 즐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비가 내릴지 내리지 않을지는 하늘이 정하는 것.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비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다소 규모는 작을지언정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샤워를 대체품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쏴아아아아.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 샤워를 하는 여인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물의 온도나 기세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던 의문을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어졌을 뿐.
확실히, 흘러내리는 물은 육체의 더러움을 씻겨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닌 것은, 영혼 그 자체에 묻은 더러움은 없애줄 수 없다.
그릇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청결하다고 한들,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더럽고 불결하다면 거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
끼익.
흘러내리는 물을 멈추고 샤워를 끝낸 여인은, 가벼운 가운만을 걸친 채 의자에 몸을 맡겼다.
실력이 뛰어난 장인이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낸 소파가, 마치 구름 같은 착석감으로 여인의 몸을 맞이했다.
소파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벽에 걸린 그림. 집안 곳곳을 장식하는 가구. 혼자 살기에는 다소 과할 정도로 넓은 집을 밝히는 조명.
하다못해 어제 먹다 남긴 채 테이블 위에 방치된 와인마저도 무엇 하나 최상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안개의 도시를 뒤에서 지배하는 마녀 ‘헤카테’를 향한 공포와 충성의 헌사이자, 하다못해 화려한 치장으로라도 제 영혼의 더러움을 감춰보려 했던 여인의 발버둥이 남긴 흔적이었다.
바닥이 없는 늪에 빠진 것 같은 무기력함과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 속에서, 여인은 유리 테이블 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녀의 가면을 바라보았다.
체념에 가까운 기분으로 여인이 가면에 손을 뻗으려 한 그 순간이었다.
- ──────
너무나도 희미한.
여인의 예리한 감각이 아니라면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선율이 그녀의 손을 멈추게 했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여인은 집의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고, 창문 그 자체도 몇 겹이나 되는 덧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음 방지의 역할도 있지만, 그보다는 외부의 시선이나 침입을 제한하기 위한 구조였다.
암흑가의 보스가 사는 집에 헛짓거리를 하려는 머저리는 없겠지만, 그녀의 정체가 헤카테라는 걸 아는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묘령의 돈 많은 여인이 경호원이나 가족 하나 없이 독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설령 그곳이 5층 건물의 최상층이라고 해도 창문으로 침입을 시도할 인간쯤은 이 도시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덜컥.
제법 오랜 시간 건든 적이 없었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불어온 바람이 여인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안대로 뒤덮이지 않은 외안을 번뜩이며, 여인은 한층 더 뚜렷하게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맸다.
- ──────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분수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보기도 힘든 거리였지만, 여인의 눈은 그곳에서 피리를 부는 사내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젊다 못해 조금 어린 인상마저 드는 얼굴. 허름하지만 튼튼해 보이는 여행복. 깃털이 달린 모자.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여인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 것은, 사내의 연주를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웃고 있었다.
근심, 걱정, 불안, 질투, 탐욕.
온갖 감정으로 제 얼굴을 물들인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이들이, 사내의 연주를 듣는 지금만큼은 순수한 경이와 감탄, 흥겨움을 뽐내며 그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가 더러운 것을 쓸어내듯이, 사내의 연주가 관객들의 마음속 더러움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여인은 넋을 잃은 채, 그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