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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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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거지 그리츠(Gritz) (14) - 신, 무녀, 남자

두두두두두두두!

격렬한 땅울림이 울려 퍼졌다.

발목에도 미치지 못할 작은 잡초부터 햇빛마저 가려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거목까지.

수호신의 신성력을 받은 식물들은, 마치 동물 같은 자유로움을 얻어 행동을 개시했다.

목적은 단 하나.

어리석게도 신의 자리를 탐한 죄인과 그 조력자를 단죄하는 것.

그들의 나뭇잎은 칼날이었고, 줄기는 채찍이었으며, 뿌리는 창이었다.

벌이나 모기 따위의 벌레들이 흉흉한 기세로 그 뒤를 따랐고, 지면 아래에서 은밀히 접근하는 생물 또한 여럿이었다.

나무를 어렵지 않게 베어내는 검사라고 한들, 숲 그 자체를 베어낼 수는 없다.

마을 하나를 홀로 불태울 마법사라고 한들, 저 벌레의 무리를 단숨에 일소할 수는 없다.

자연의, 신의 분노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뿐.

고로.

“─신성력이란 곧 기원의 힘. 바라는 것을 그대로 이루는 특성 탓에 얼핏 마력보다 손쉽고 만능인 힘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지.”

그 분노 앞에서 두려워 떨거나 얼어붙기는커녕, 태연하게 입을 나불거리는 남자는 어딜 어떻게 봐도 인간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이였다.

평범함에서 벗어났기에 광인.

인간을 초월하였기에 초인.

어느 한쪽, 어쩌면 양쪽 모두에 속할 남자는 압도적인 숲의 군세를 앞두고서 가볍게 손목을 까닥였다.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나무 지팡이 하나.

기름을 먹여 윤기가 흐르는 것도, 좋은 원목을 사용해 독특한 색을 내는 것도 아닌, 그저 적당히 긴 나뭇가지를 사용했을 뿐인 허름한 도구.

허나 남자가 그것을 휘둘러 자아낸 결과는, 허름함 따위의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살랑.

지팡이의 움직임에 따라, 아주 작은 바람이 생겨났다.

화살 같은 기세의 나뭇잎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고 미약한 힘.

그러나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빠르고 강한 것을 제압하기 위해서, 꼭 그보다 더 크고 강대한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미약한 것이 약한 것을 움직였다.

약한 것이 평범한 것을 움직였다.

평범한 것이 강대한 것을 움직였다.

땀방울 하나 식히지 못할 것 같은 미풍은, 어느새 거대한 폭풍이 되어 나뭇잎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부드러움(柔)의 이치가, 강을 제압했다.

남자는 기세를 전부 잃어버린 채 나풀나풀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의 신이란 다신(多神). 유일이 아니기에 각각 담당하는 분야가 있고, 그렇기에 신을 향한 기원 역시 방향성을 지닌다. 전쟁의 신에게 다산을 기원하는 이는 드물지 않겠나? 처음 계기야 어찌 되었든, 이 수호신은 농경신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다룰 수 있는 힘도 그쪽 계열이 많지.”

다음으로 덤벼든 줄기의 채찍이었다.

닿는 순간 살을 찢어발기고, 그대로 몸을 휘감아 단숨에 뒤틀어버릴 흉기들.

그에 대응하듯이, 남자의 지팡이가 새로운 묘리를 품었다.

환(幻).

거기에 있는 듯 하나 없으며, 없는 듯 하나 존재하는.

다채롭고도 현묘한 움직임으로 누군가를 속이고, 기만하고, 매료시키는 이치.

지팡이가 그리는 복잡하고도 자유로운 궤적에 줄기들은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워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들끼리 꼬이고 엉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꼴이 되었다.

“물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무색무취한 신성력은 뭐든 할 수 있는 대신 그 효력과 효율이 뒤떨어지고, 염원에 물든 신성력은 특기 분야 한정으로는 무서운 성능을 뽐내지. 앞으로 신성력을 다룰 거라면 잘 알아둬야 할 걸세.”

수호신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남자의 말이 향하는 대상은 수호신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분노하듯이, 혹은 그조차도 빈틈이라고 여긴 것처럼, 수호신의 새로운 공격이 이어졌다.

땅속에서 전조 하나 없이 솟구치는 나무뿌리의 창.

감지도 회피도 까다로운 그 공격을 앞두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팡이의 머리로 지면을 때렸다.

소리는 없었다.

땅울림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격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낭비되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산을 때려 그 너머의 소를 치는 것처럼, 황태자의 공격에 담긴 무거움(重)은 그 어떤 낭비도 없이 땅 아래의 뿌리를 분쇄했다.

기회를 노리며 꿈틀거리던 온갖 벌레들이 함께 짓뭉개진 것은 덤이었다.

“…….”

그 혼잡스러운 전투 속에서, 그레이스는 기도하는 자세로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부서지고 베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고 싶어진다.

아차 하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전장 한복판에서, 눈을 감은 채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행위는 실로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식은땀이 뻘뻘 흐르고, 무의식중에 몸이 덜덜 떨리고 만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레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제물이 되는 것만을 기다리던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준 그리츠를 향한 신뢰였고, 맡겨진 역할만큼은 제대로 해내겠다는 오기이자 승부욕이기도 했다.

‘…느껴져.

기존의 오감과는 다른, 영감이라고 불러야 할 새로운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벨라리아의 주민들에게서 시작되고, 수호신이라는 중개자를 거쳐, 그레이스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는 무형의 흐름.

손으로 만질 수도, 움켜쥘 수도 없는 그것을 빼앗는다는 게 어떤 건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레이스는 그리츠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신성력이란 그 자체가 염원이자, 동시에 염원에 응하는 힘. 그렇다면, 바라면 돼.

더 많은 힘을 빨아들인다.

더욱 빠르게, 더욱 탐욕스럽게.

이미지하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

수호신이라는 땅에서, 신성력이라는 물과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나는 거대한 나무.

-무엄하고도, 불경하다.

그런 그레이스의 시도를 감지했는지, 빨아들이는 신성력에 뒤섞여 수호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가 바란 신이다. 너희가 염원한 가호다. 아득한 세월 동안 나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났으면서, 감히 이를 원수로 갚고자 하느냐.

그레이스는 반론했다.

‘뭐가 신이야. 뭐가 가호야. 당신은 그저 괴물일 뿐이잖아. 이 땅은 당신이 없어도 풍요로워. 당신은 그저 흉작을 만드는 저주로 사람들을 속였을 뿐이야.

-그것을 어찌 단언하느냐.

-가주가 떠들어댄 것이 정녕 사실이라 여기느냐? 설령 가주 본인이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들, 그 가주 본인조차 속고 있었을 가능성은 떠올리지 않느냐?

-부모가 아이에게 제 치부를 사실대로 털어놓겠느냐? 자기들은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고, 나쁜 것은 모두 신이라고 변명하는 이가 가주 중에 단 하나도 없었으리라 믿는 것이냐?

그레이스는 잠시 헛숨을 삼켰다.

그녀의 망설임을 따르듯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흘러오던 신성력의 기세가 약해졌다.

-아이야, 벨라리아에서 태어난 회색 머리의 아이야. 내가 사라지면 이 땅에 깃든 가호 역시 사라진다.

-수많은 이들이 굶주릴 것이고, 그들은 뼈다귀와 같은 몰골이 되어 너를 저주할 것이다.

-그 업보를 어찌 감당하겠느냐. 그 원한을 어찌 받아들이려 하느냐.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당신의 역할을 대신하면 돼. 그러면 아무도 희생되지 않아.

-그 지식이 진짜라고 어찌 확신하느냐. 그 또한 그저 누군가에게 들었을 뿐인 말이 아니더냐.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증이 어디에 있느냐.

-너는 그의 무엇을 아느냐. 그의 정체를 아느냐? 그의 얼굴이라도 본 적이 있느냐? 그가 어떤 존재인지, 어째서 그토록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 어디에서 찾아왔는지를 아느냐?

-네가 위기에 빠져 절망한 순간, 때마침 적당한 조력자가 나타나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여긴 적이 없느냐?

수호신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시했고, 계속해서 그레이스를 흔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수호신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확실히 그리츠의 존재는 여러모로 수수께끼가 많았다.

그의 말에 휘둘려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면서도, 정작 그레이스는 그리츠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누구일까.

어째서 그토록 수많은 능력을 지니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대체 왜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을까. 갑자기 말투가 바뀐 것은 어째서일까. 그의 속내는 대체 무엇일까.

모른다. 알 수 없다. 수상하다.

‘─그래도, 괜찮아.

그런데도, 그레이스는 그렇게 단언했다.

‘당신 말대로 나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어. 어쩌면 속고 있는 걸지도 몰라. 어쩌면 이용당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언젠가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그를 찾아냈을 때 흥미를 느꼈어. 그가 새로운 길을 제시했을 때 희망을 느꼈어. 그와 웃고 떠들면서 마음이 편해졌어. 그가 위로와 격려를 건넸을 때 정말로 기뻤어.

그리츠의 정체가 무엇이라 한들, 그리츠의 속셈이 무엇이라 한들, 어쩌면 모든 것이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한들.

그를 통해, 그와 함께하며 느낀 감정만큼은 틀림없는 진짜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내 대답은 바뀌지 않아.

그레이스의 결의를 증명하듯이, 신성력의 흐름이 더욱 가파르고 빨라졌다.

작은 묘목에 불과했던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나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꽃이 피어났다.

-아아, 이 얼마나 우둔하고도 파렴치한 생명이란 말인가!!

연결된 신성력을 통해 수호신이 그레이스의 속내와 정보를 알아냈듯이, 그레이스 역시 수호신의 속내를 감지했다.

수호신은 더 이상 그레이스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앞뒤를 안 가리고 그녀를 죽여버리기 위해 힘을 쏟아부었다.

심상 속에서 신성력을 흡수하는 데 전념하는 그레이스는, 현실에서는 지극히도 무방비하고도 무력하다.

나뭇잎으로 목을 베든, 해충으로 물어 독을 퍼붓든, 뭐라도 공격을 닿게 할 수만 있으면 그걸로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흠, 최근에 자주 써봐서 그런가. 검만큼은 아니지만 지팡이도 나쁘지 않군. 역시 익숙함이란 중요한 법이야.”

하지만, 그 너무나도 간단한 행위가, 이 남자의 앞에서만큼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연의 폭력이, 하려고 하면 벨라리아의 모든 인간을 몰살시킬 수 있는 재해가, 고작 인간 하나의 비호를 뚫어내지 못한다.

어느새인가, 주변을 가득 메우던 금색의 휘광은 눈에 띌 만큼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대체하듯 은회색의 빛무리가 숲을 채우고 있었다.

그 비율은 대략 50대 50정도.

기량 차이 탓에 그레이스가 당장 수호신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가진 힘의 크기만이라면 동률까지 따라잡은 것이다.

으드드드드득!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숲이 들썩였다.

나무와 나무가 얽혀 뼈를 이루었다.

줄기와 줄기가 얽혀 살을 채웠다.

이파리와 이파리가 얽혀 피부를 덮었다.

심장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수호신 그 자신.

-■■■■■■■■■!!

키만 백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 거인이 포효했다.

사람이 벌레로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규모의 괴물이, 그 주먹을 그레이스와 남자를 향해 힘껏 내려찍었다.

“흠… 과연. 격으로는 초월에 미치지 못해도, 힘의 크기라면 볼만하군. 반쪽짜리 신으로도 이거라면, 만신전의 전성기는, 그거야 무서웠겠지.”

남자가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그동안은 특별한 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지팡이를 휘두르던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세를 갖추었다.

“최근 살짝 자만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경험이 되었네. 역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군. 기꺼운 일이야.”

강(剛).

흘려넘기는 것도, 견디는 것도, 약점을 찌르는 것도 아닌.

그저 정면에서 때려눕히는 것.

그것이 남자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지팡이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오러가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그레이스의 발밑에서 생겨난 마법진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주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했다.

거인의 주먹과 남자의 지팡이가 맞닿았다.

연이은 땅울림과 소란으로 잠에서 깨어난 벨라리아의 주민들은, 인생 내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굉음에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떨었다.

충돌의 순간을 온전히 목격한 이는 없었다.

오른팔부터 시작해 상체 중 반절 이상이 날아가 버린 거인의 잔해.

그리고 더 이상 금빛이라고는 없이, 오롯이 은회색으로만 가득 찬 빛이, 그 결과를 말해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