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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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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맹주의 프라이빗 리무진이 정문 앞에 조용히 멈춰섰다.

나는 이미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차 문을 먼저 열었다.

“타시죠.”

나는 강아린을 먼저 태웠다.

복장이 복장이라 그런지, 왜인지 몰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고마워요.”

강아린은 씨익 웃으며 내 손을 가볍게 짚고 올라탔다.

움직임에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다.

차 문을 닫고 나도 뒷좌석에 탔다.

앞좌석에는 흰색 수염의 기사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조용한 목소리.

리무진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목적지는, 서울 스카이 타워 최상층.

영웅협회가 대관한 장소였다.

차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진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부유석 고속도로.

공중을 따라 줄지어 떠 있는 간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살던 서울이 맞긴 맞다.

하지만 이 세계의 서울은 훨씬 더 반짝이고, 훨씬 더 화려했다.

“…….”

나는 감상에 잠겼다.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야경은 더욱 높고 넓어졌다.

잠시 후.

리무진은 최상층 테라스의 전용 로드 웨이에 부드럽게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화려한 조명, 그리고 조용한 대화음이 퍼져 나왔다.

파티장은 최상층 플로어 전체를 대관한 초호화 장소였다.

이미 대부분의 인원은 도착해 있었고,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가 리무진에서 내리자.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주목의 대상은 당연히, 강아린.

검은색 드레스가 조명 아래 은은히 빛난다.

누가 봐도 이 자리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내 옆에 섰다.

“…….”

“……?”

잠시 침묵.

“흐흠.”

강아린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내 팔 쪽에 손을 뻗었다.

거의 복화술에 가까운 입 모양.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팔. 내놔.”

“커플로 오해하면 어쩌게.”

나야 오해해도 상관없었으나, 후계자인 강아린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돼.”

단호하게 답한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천천히 팔을 내줬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끝이 내 팔을 가볍게 감싼다.

“좋아.”

강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레 웃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밤공기는 은근히 서늘했지만, 그녀의 체온이 팔을 타고 느껴져서인지 이상하게 따뜻했다.

“가실까요?”

강아린이 말했다.

팔짱을 낀 그녀가, 먼저 한 발 나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걸었다.

파티장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그 사이사이엔 정장을 입은 협회 인사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길드 관계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계 기업과 단체 대표들까지.

웃으며 대화하지만.

모두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아린 님!”

“오늘, 너무 예쁘세요.”

지나가던 몇몇 인사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강아린은 그들 모두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형식적이지만 빈틈없는 미소로 응수했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파티장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저쪽에 보이는 사람, 협회장이야. 대한민국 영웅 사회의 중심.”

“저기는 무궁 길드장. 꽤 보수적인 인물이라 조심해야 해.”

그녀는 하나하나 조용히,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협회장님,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그리고 직접 다가가서 인사시키기까지.

사실, 날 파티에 데려오려고 했을 때, 불순한 의도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외로, ‘팀 리더의 능력 배양’이라는 목표에 충실히 임했다.

주요 인사들의 얼굴을 익히는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하긴 했었다.

​얼굴과 직책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하며 안면을 트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그녀는 내게 주요 인사들을 차례로 소개하며 성실히 나를 파티의 중심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파티장 곳곳을 수십 분간 돌았다.

나에게는 그저, 좋은 기회였다.

그러다 곧, 파티의 주최자인 협회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대한민국의 기둥 여러분들….”

재미는 없었다.

딱히 유익하지도 않았고.

옆자리에 강아린은 똘망한 눈빛으로 협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 또한 정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그 말에 강아린은 살짝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예상외로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렸다.

“… 뭘.”

“그냥, 난 딱히 해준 게 없는데. 너는 나한테 이것저것 해주네.”

유독 그랬다.

주요 등장인물 중, 내가 강아린에게 해준 건 거의 없었다.

​뭘 챙겨주려 하면, 강아린은 혼자서도 잘했고, 또 너무 똑 부러졌으니까.

그러나 변명하지는 않겠다.

분명 하고자 했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 해준 게 없다고?”

강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크게 뜬 붉은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그런 말은 하지 마.”

애써 눌러 담은 목소리.

“넌, 내가 점찍은 사람이고.”

강아린이 중얼거렸다.

“나는 내 사람한테는… 다 퍼주는 편이거든.”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맞는 말이었다.

그게 그녀의 성격이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며 말했다.

“이젠 내가 알려줄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강아린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나한테 잘해.”

장난스럽게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팔짱을 낀 그녀가, 살짝,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기대왔다.


남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파티장의 외부. 옥상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여러 인사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예의 바르고 우아한 미소를 수십 번쯤 지어 준 참이었다.

협회장의 연설이 끝나고 찾아온 짧은 틈.

유세린은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의자 다리를 툭툭 쳤다.

“히.”

가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맥주 두 캔을 꺼냈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와인보다는, 입에 익은 싸구려 맥주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손가락 끝은 맥주캔에 맺힌 물방울을 괜히 따라 쓰다듬는다.

“힘들다아~”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이 짓도.

질려가는 마당이다.

유세린.

로터스의 부길드장이자, 사실상의 실무 총괄자.

원래라면, 지금쯤 사옥에 남아 학생들의 데이터를 측정하고 정리하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부길드장이었고. 스카우트 담당이었으며.

보통 이런 행사나 파티는, 길드장의 몫이었으니까.

그러나.

‘얼굴마담이 가야지?

길드장의 말은 달랐다.

그는 순식간에 그녀를 스카우트 업무에서 배제해버렸다.

‘잘 다녀오라고.

그러나 그녀는 새로 주어진 임무는 완벽히 수행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파티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유세린.

그녀가 즐거워하는 것은 보통.

파티 너머.

이런 칙칙한 세계 너머.

조금 더 맑고 선명한 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로터스로 방문한 학생들의 데이터와 분석은, 더 이상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는다.

그녀의 보고서 대신, 누군가의 소개장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능력은 뒷전.

인맥. 돈줄. 연줄.

그렇게.

조금씩, 로터스라는 꽃이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맹주를 제쳐? 최고가 되고 싶은 학생만 오라고?

웃기지도 않았다.

“안 올만도 하지….”

유세린은 맥주캔에 조용히 머리를 기댔다.

'안 갑니다.'

역시나, 정해인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비서는 다시 요청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오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2위라는 위치가, 허상으로 느껴진다.

유세린은 맥주캔을 입에 가져갔다.

텁텁하고, 싸구려 같은 맛이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가짜는 아니었다.

  • 쾅!

“아오 진짜! 열받아아아!!”

결국 그녀는 폭발했다.

앞에 있는 의자를 걷어차며,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였기에, 더 드문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때.

  • 끼익!

“푸흡!”

옥상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바람에, 유세린은 입에 머금은 맥주를 그대로 뿜었다.

“와, 진짜 답답해서 죽을 뻔했네.”

유세린은 급하게 하이힐을 신고, 모습을 정돈했다.

이 와중에도 겉모습을 정돈하는 자신의 모습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그녀가 찾고 있던 남성이 서 있었다.

반쯤 풀어진 넥타이.

정장의 윗단추를 하나 풀고 숨을 고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정해인.

“엥?”

놀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정해인 역시, 멈칫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 이런 데 누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는 멋쩍은 듯 짧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눈앞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이 스친다.

유세린의 모습이 정해인의 시야에 들어온다.

신다 만 하이힐.

무릎 위까지 흘러내린 드레스 자락.

손에 쥔 싸구려 맥주캔.

쓰러진 의자까지.

딱 봐도 사연이 있어 보였다.

잠시 숨 돌리려 올라왔는데,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잠, 잠시만요…!”

유세린은 반사적으로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고, 나머지 한 쪽의 하이힐을 급하게 신었다.

드레스 자락을 추스르다 말고, 숨을 한 번 삼킨다.

‘하필 이럴 때….

아름다운 외모, 정돈된 복장, 계산된 언행.

그게 그녀의 기본값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엉망이다.

저 학생은 절대, 이런 상황에서 만나면 안 됐다.

우아하고, 정돈된 분위기.

반드시 그런 대우를 해야 하는 인재였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유세린은 파티장에서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강아린은 철저히, 유세린의 근처로 정해인을 데려가지 않았으니까.

이건 강아린의 직감이었다.

둘이 만나게 하면 절대 안될 것 같다는 여자의 직감이랄까.

그러나 강아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만났다.

유세린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아니, 파티에서 못 볼 거였으면, 적어도 소리 지르기 전이라도 왔으면.

옥상에 있는 미모의 부길드장 컨셉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라도 연출할 수 있었는데….

완전, 망해버렸다.

그녀는 속으로 욕을 되뇌며, 어색하게 무너진 의자를 손으로 짚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해인이 성큼 그녀 쪽으로 다가섰다.

  • 치익.

탁자 위, 아직 손대지 않은 맥주캔이 열렸다.

고운 손이 아닌, 크고 단단한 남자의 손에서.

정해인.

그가 한 손엔 캔을 들고, 다른 손으론 쓰러진 의자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오늘 거절했던 인터뷰.”

말투는 평온했지만, 머뭇거림은 없다.

그는 의자를 유세린 쪽으로 살짝 돌려주곤, 털썩, 편안하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 할까요?”

그 한마디에, 유세린은 숨이 살짝 막혀왔다.

그녀는 늘 틀을 지키며 살았고, 그 틀이 깨진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정작 정해인은.

그 모든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딱 세 질문만, 빠르게.”

외형도, 분위기도, 격식조차.

그는 별로 중요히 여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