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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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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늦은 밤의 카페.

시간은 밤이었지만, 카페 내부는 조용하게 붐볐다.

본가로 돌아간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직 교내에 남아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기말고사의 전체 범위는 비공개.

그래서인지, 몇몇 학생들은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론서를 펼쳐보고 있었다.

특히, 이월된 중간고사 성적과 합산하다 보니, 한방 역전을 노리겠다는 학생들도 많았고.

그러나, 그 조용한 카페의 분위기 속 중앙 테이블.

단숨에 시선을 끌 만한 두 여학생이 마주 앉아 있다.

흑발과 눈에 띄는 금발.

대비되는 두 머리칼이, 조명 아래서 묘하게 서로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한 명은 윤채하.

최근 교류전의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아카데미 내에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인물.

그 맞은편에 앉은 건 하시온.

성적도 우수하고, 영웅으로서의 실력도 출중하다.

무엇보다 평소의 평판이 좋기로 유명한 학생이었다.

누구에게나 부드럽고, 치근덕거리는 남자가 아닌 이상 항상 웃으며 친절하다고 유명한 학생.

하지만 오늘은, 시온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학생들 사이에 은근한 수군거림이 번져나간다.

  • … 둘이 사이 안 좋아?

  • 시온 표정 저런 거 처음 봐….

카페 안,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유독 그 테이블만 공기가 묘하게 서늘했다.

윤채하는 커피를 사발을 들 듯 들이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벌써 3잔째였다.

속이 타는 건 얼음장같이 차가운 커피로도 해결이 안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온이 무심한 톤으로 물었다.

“한 잔 더 줘?”

윤채하는 그 말투가 더 얄밉게 느껴졌다.

“… 됐어.”

사실, 시온은 이 자리에 앉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정해인의 기숙사 문 앞에서 윤채하를 마주쳤을 때만 해도, 그냥 못 본 척하고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말도 안 되는 바람.

​그건 어디까지나, 시온 혼자만의 희망일 뿐이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그대로 붙잡혀 이곳까지 끌려왔다.

윤채하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그리고 이마를 쓸어올리며, 눈 앞의 시온에게 물었다.

“설명 좀 해줄 수 있어?”

그녀의 시선이 정면의 시온을 꿰뚫었다.

정작 시온은 땋은 머리칼을 매만지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더 얄미웠다.

“왜, 거기서… 아니, 해인이 방에서 나온 건지?”

윤채하는 뒷말을 삼켰다.

진짜 묻고 싶은 건 그것도 맞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왜 얼굴은 그렇게 빨갰으며.

왜 안에서는 이상하게 후끈한 열기가 흘러나왔고.

왜 목덜미에, 그렇게 땀이 맺혀 있었는지.

‘대체 무슨 짓을….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은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윤채하는 참았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겨우 입술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아~ 그거?"

시온은 어깨를 으쓱하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해인이랑 관계가 좀 깊어.”

그리고 덧붙인다.

“어릴 때부터 같이 컸고, 같이 살았어. 열 살 때부터인가? 그래서 해인이에 대한 모든 건 내가 다 알고 있어. 그리고 해인이도, 나에 대해서는 뭐든지 알고 있고. 몇년 전까지는 방도 같이 썼고.”

물론 시온이 혼자서 자기는 무섭다며 매달려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온은 커피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뭐 잠깐 방에 들어간 것 정도야….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복장이 뒤집히는 소리였다.

은근히 선을 긋는 말투. 윤채하는 이를 악물었다.

친분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유대감을 과시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윤채하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윤채하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시온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문 열었을 때, 왜 그렇게 화들짝 놀란 건데?"

문을 활짝 연 그녀는 분명 놀란 눈치였다.

정해인의 방에 그렇게 드나드는 사이면, 놀랄 일이 없었다.

윤채하의 지적에 시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침묵이 윤채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둘이 사귀는 거야?”

윤채하가 조용히물었다.

“아니 아직ㅡ.”

“뭐야.”

윤채하는 시온의 말을 뚝 끊고 말했다.

“10년이라며?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만한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도 아직 안 사귄다는 건….”

윤채하는 시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조소가 걸려 있었다.

“정해인은 너한테 털끝만큼도 관심 없는 거 아니야?”

윤채하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하시온 또한, 자신과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걸.

언제부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오랜 시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다만 호재인 점은, 그 감정은 아직, 정해인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전해지지 않았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윤채하를 조금 안도하게 했다.

“아~ 가족 같은 사이. 그런 거구나?”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주먹을 톡 치며, 일부러 놀란 척을 한다.

“헉, 그럼 해인이가 동생인가?”

윤채하의 말에 시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순간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노골적이고 뻔뻔한 견제를 받는 건.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

그러나, 다시금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 시각, 순진한 해인이를 독점하고, 희롱하며 가장 즐기고 있는 건 천여울일텐데.

뭣 하러 이러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시온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넷 중 최약체다.

들쑤시는 꼴을 보아하니 분명,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머지않아 다른 여성들에게 잘못 걸려 호되게 당할 것 같다.

그런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그렇다해서 눈앞의 이 도발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가?”

시온은 장난스럽게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하얀 블라우스의 소매가 흘러내리며, 시온의 손목이 드러났다.

거기엔 두 개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하나는 검은색 흑요석 팔찌고, 다른 하나는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색 보석 팔찌였다.

저번 모의전 때 해인이가 너무 세게 제압해서 미안했다며 상냥하게 준 선물이었다.

궁수에게 도움이 되는, 근력 성장 옵션이 달려있다더라.

시온은 팔찌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해인이가, 준 거야. 둘, 다.”

사실 하나는 해인이 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윤채하에겐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까.

시온의 목소리는 나른했고, 표정은 덤덤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덧붙였다.

“그런데, 가족 같은 사이라 그런지, 그건 알아. 해인이가 싫어하는 여자 스타일.”

그녀는 윤채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덧붙였다.

“해인이는, 기 센 여자는 안 좋아해. 말은 그렇게 해도, 못 받아줘. 자기주장 강하고, 땍땍거리는 스타일 있잖아. 자기도 모르게 피곤해하더라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린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런 애. 응, 살짝 너 같은… 애들? 그런 애들보다는 순종적이고 착한 쪽을 더 좋아하거든….”

진짜인가?

그럴 리가.

해인이는 너무나도 상냥하기에, 절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한 미소로, 누구든 곁에 들여놓는 사람이었다.

가끔 좀 가리면 좋긴 하겠는데.

“아, 혹시 해인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

시온의 말이 이어질수록 윤채하의 손이 달달 떨렸다.

그녀도 모르게 발산하는 열기가, 잔 내부의 얼음을 모조리 녹이기 시작했다.

윤채하는 숨기기 위해 커피잔을 살짝 더 움켜쥐었다.

시온은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족이라 했었나? 맞아. 응.”

눈을 마주한 채, 천천히 입을 연다.

“근데. 와이프도… 가족인 건 알지?”

시온이 던진 마지막 말에.

윤채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성지.

천여울은 훈련을 하는 척만 하고 있다.

진짜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정해인을 향해 있었다.

기뻤다.

그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이 마주친 이후, 그의 시선은 자꾸만 이쪽으로 머물렀고.

그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 자체로 행복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욕망을 숨기고, 감정을 억누르려는 태도.

‘입길 잘했어.

그만을 위해 준비한 복장이었다.

신성력 흡수를 명분으로 한 얇고 효율적인, 그러나 분명한 의도를 담은 야릇한 디자인.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 다가서지 않았다.

그는 지금 훈련 중이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쓰는 중이다.

천여울에게 있어 그걸 방해하는 건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다.

필요 이상으로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순진한 그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이, 지금의 최선일 뿐.

이번 성지 개방은 교단 내부 전원이 반대한 사안이었다.

용사 파야 그렇다 쳐도, 성녀 쪽도 달가워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곳은 오직 성스러운 자들만의 공간. 함부로 열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이 장소는, 교단이 목숨처럼 여기는 성역이었다.

신성한 땅. 역사와 기적이 살아 숨 쉰다는 교단의 최심부.

‘개뿔.

신성한 땅?

역사와 기적이 흐른다고?

그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땅은 그저, 신성력이 짙게 깔린 한 평의 효율 좋은 훈련장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반드시 정해인을 이곳에 데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주장했다. ‘정식’ 성녀의 권한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예비’ 용사 따위는 논의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결국,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눈앞의 정해인은 어느새 훈련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신성력을 빨아들이며,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

그게 정해인의 매력이었다.

어떤 욕망도, 욕구도 절대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신이란, 인간에게 화와 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해인은, 천여울에게 있어 진짜 신이었다.

‘나만의 신.

무한한 은혜를 내리는 신.

세상을 등져도 아깝지 않을 존재.

이제는, 그녀가 그의 신이 되어주고 싶었다.

“성지… 맞구나.”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가 호흡하고, 눈을 감고, 가끔씩 그녀를 바라보기 때문에.

신이 있는 장소가 성지가 아니라면, 무엇이 성지란 말인가.

천여울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일종의 의식이자, 예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