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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윤채하가 악신의 잔재를 홀라당 먹어 치웠다.

따라서 확인이 필요했다.

마기의 간섭이 있다면, 시스템에서 반드시 티가 나니까.

영웅은 상호 합의 하에 서로의 시스템을 열어볼 수 있다.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 이게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서.”

나는 상태 확인을 명목으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윤채하에게 시스템 공개를 요청했다.

보통 이런 요청은, 영웅에게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대부분 거절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처음부터 선뜻 허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아, 어… 잠깐만.”

윤채하는 순간 고개를 돌리더니, 귓불까지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권능: 아 프리오리 (A priori)]

①꿰뚫는 눈

ㅡ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다.

② 선험적 지식

ㅡ본질은 이미 정해져 있다.

③ 허기의 탐구자

ㅡ 있는 대로 먹어 치우고, 분석하고, 흡수합니다.

====

1번과 2번은 이미 알고 있다.

윤채하 고유의 특성이고 이미 어렸을 적부터 개방한 것이니까.

하지만 3번은….

‘뭐지 이건?

원작에서 윤채하가 주인공과의 접선에 실패하면, 그녀는 벽에 부딪혀 3번째 하위 권능에 평생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접선에 성공한다면, 그녀는 주인공에게서 깨달음을 얻어 세 번째를 해방한다.

문제는 개방하게 될 하위 권능의 이름은 [인페르노(inferno)].

그녀의 속성과 잘 어울리는 작열하는 불꽃이다.

그러나 눈앞에 떠오른 이름은….

허기의 탐구자?

뭐야 이거.

그때였다.

“무슨, 문제 있어?”

허공의 시스템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의 앞으로, 윤채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빛은 말똥말똥했고, 숨결은 아슬하게 닿을 거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일체지각과 진인(眞人)까지 총동원한 결과, 그녀 안에는 외부 간섭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정확히는 있었는데, 완전히 막혔다.

느껴지는 건 단 하나.

그녀 안에 자리 잡은, 거대한 기운.

‘너무 잘 받아들였어.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흡수할 줄은 몰랐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그 기운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였다.

잔재의 기운은 크고, 또 강하다.

그러니 더더욱, 완벽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곧 폭주하거나 뒤엉켜버릴 것이다.

나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

원래는 내 지식을 나눠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그녀와 함께 단계적으로 해석하고, 흡수해 나가려 했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옆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하지만 지금 상황은….

‘내가 도움이 안될 수도 있겠는데.

처음부터 나와 같이 천천히 흡수한 것이면 모를까.

이미 단번에 윤채하 안에 자리 잡아버린 이 기운을 내 방식으로 컨트롤하겠다는 건 오만이다.

애매하게 개입하면, 흐름을 망친다.

오히려 손을 떼는 편이 더 낫다.

그녀는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윤채하의 방식대로. 윤채하의 속도로.

집중적인 케어나 방향제시는 하지 않는다.

영약과 장비, 물질적인 지원 정도.

마법적 사고에서는 그녀의 권능이 나보다 위에 있다.

굳이 나의 방식으로 틀 안에 그녀의 마법적 창의력을 가둬둘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별문제가 없다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채하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졌다.

‘방치.

그리고 관찰.

지켜보되, 지금처럼 가까이서 하나하나 수정하지 않는다.

“어. 그래.”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영광의 최상층.

고급스러운 조명이 천천히 내려앉는 공간.

은은한 향이 감돌고,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강아린의 집무실.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곳에 불려 온 수많은 직원은 강아린의 싸늘한 눈빛 앞에서, 남몰래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다만.

“흐흥~ ♪ 음~ ♫”

천여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유리 벽 앞을 빙그르르 돌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발끝을 톡, 튀어 올리며 가볍게 한 바퀴.

강아린은 소음의 근원지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서류 위로 시선을 다시 내렸다.

“꺼져.”

차가운 한 마디.

그러나 여울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명목상으로는 협회의 보상 산정, 영광과의 협의 건으로 아르카디아 교단 대표로 참석한 것이지만….

‘때깔 봐라.

강아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달라진 얼굴빛, 맑게 넘치는 성스러운 기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물론 숨기지도 않았고.

해인이에게 뭔가 또 얻어 처먹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잔뜩 긁을 심산이겠지.

결국 천여울은, 슬쩍 강아린의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했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직접, 손수, 왕관을 씌워주는데, 솔직히 나도 좀 놀랐거든? 이런 건 처음이라.”

“…….”

“근데, 또 막상 받으니까 기분은 좋더라고? 약간 내 거라고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유 당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하마터면 그냥 그 자리에서 확….”

천여울은 말하다 말고, 두 손을 꽉 쥐었다가 힘없이 풀었다.

“대체 제한은 언제 풀리는 거야… 답답해애….”

또 시작이다.

강아린은 속이 천천히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꾹 참고, 조용히 서류를 넘겼다.

그러다 그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튼 십자가에 반지에 티아라까지 벌써 나한테만 몇 개를….”

천여울이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자랑하는 순간.

“그럼 슬슬 방치당하겠는데?”

피식.

강아린이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천여울의 웃음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리고는 정색한 얼굴로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되물었다.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해인이 성격 몰라?”

강아린은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천여울과 정확히 눈을 맞췄다.

“유하나 봐. 동백검 받고 신나서 검술 뽐내다가, 클 만큼 큰 줄 알고 지금 방치당하고 있잖아. 아주 죽으려고 하던데, 당분간은 그럴걸?”

“… 걔는 걔고.”

천여울은 입술을 깨물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반박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아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식으로 성녀 임명도 받으셨겠다, 신성력도 채웠겠다. 어머? 성녀님 이제 버려지실 차례만 남으신 건 아니신지….”

“닥쳐.”

탁.

여울이 작게 책상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어느 순간 대화의 주도권이 강아린에게 넘어갔다.

그녀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책상 위에 양손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아직 아무것도 안 했지.”

“뭐?”

천여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지금껏 정해인에게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

그를 배려한 행동이기도 했고, 스스로 지켜온 선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돼지 년들은 아니었다.

이제 그녀도 양보란 없다.

강아린은 기쁜 듯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해인이한테 이쁨받을 차롄가?”

그리고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웃었다.


교류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머리가 개운하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검은 표지의 노트.

나는 그걸 무심히 펼쳤다. 간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한번 볼까.”

앞으로는 당분간은 신경 쓸 것이 줄어든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슬슬, 다음 인물의 성장을 챙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은 기분.

유하나는 검술을 착실하게 연마하고 있고.

천여울은 성녀로 거듭났으며.

윤채하는 잔재를 흡수했다.

모두가 한 단계씩 도약했고, 그걸 발판 삼아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노트가 마지막으로 가리키는 이름 하나.

강아린.

조용히 이름을 되뇌며, 나는 펜을 든 채 노트 한 귀퉁이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얘가 좀 어렵네.”

사실, 강아린에게도 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위해 준비한 계획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이미 다했다.

영약을 주려 하면, 이미 본인이 알아서 마셨고.

장비를 주자니, 그건 더더욱 어려웠다.

영광의 귀중한 자제다. 못 입고 다닐 리가 없었다.

결국, 내가 그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편린.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희귀한 자원.

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은 어렵다.

몇 분을 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현시점에서 내가 강아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며, 무엇보다 너무 똑똑하다.

결국 이건,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가온은 슬슬 교류전을 맞이하기 위해 부지를 정비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론 축제였고, 실제로 참가자가 아닌 이들에겐 그저 즐거운 구경거리일 뿐이니까.

나는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내 전용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는 천여울이 앉아 있었다.

“좋은 아침.”

“너도.”

그녀는 내 인사를 받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수업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교류전에 앞서 준비운동 겸 간단한 훈련을 할 것 같은데.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교관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옆자리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해인아….”

“어?”

조금 망설이는 듯한 말투.

옆을 보니, 천여울이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이번에 진짜 성녀가 됐거든….”

“그랬지.”

그녀는 이제 아르카디아의 정식 성녀다.

아직 언론에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그래서, 성녀에게만 허락되는 성법을 배웠는데에….”

“어 잘됐네.”

이건 좋은 소식이다.

아마 성녀 전용 성법은 많이 어렵긴 하겠지만, 반드시 익혀야 한다.

천여울은 말을 잇기 전, 살짝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근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 혹시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곧장 대답했다.

“당연하지. 지금 그거 펼쳐봐. 교관 오기 전에 잠깐 보면 되겠네.”

“응!”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 손이 바쁘게 가방 속을 뒤졌고, 곧 고급 재질의 두루마리를 꺼내 들려던 찰나.

‘…잠깐만.

나는 그 순간, 멈칫했다.

‘이걸 내가 알려주는 게 맞나?

알려줄 수는 있다.

얕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충분하다.

분명 방향성 정도는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 성법부터는 그저 성법을 펼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단순한 기술로 치부할 수가 없다.

완벽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완벽히 이해해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녹여내야 했다.

거기서부터 차이가 시작된다.

만약 내가 손을 대 빠르게 이해시켜버린다면, 그녀는 그 깊이를 체득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익히게 될 수도 있다.

본 위력을, 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안 돼.'

그건 절대 안 된다. 나중이면 모르겠으나.

그녀가 성녀로서 내딛는 첫걸음만큼은, 반드시 스스로 해야만 한다.

“잠깐만.”

나는 손을 뻗어, 그녀가 꺼내려던 두루마리에 조심스레 손끝을 올렸다.

천여울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두루마리를 살짝 눌러내며 말했다.

“그건 너 알아서 해야겠다.”

알려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어…?”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쉽게도 그건 후자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