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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른 팀들은 대부분 빠르게 구성을 마쳤다.
따라서 우리 팀은 통성명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자리를 잡기로 했다.
내가 먼저 맨 뒷줄 자리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윤채하가 따라오려던 찰나….
“…?”
유하나가 미묘하게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부드럽지만 빠른 가속. 윤채하의 걸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로질러, 먼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농담이 아니고, 방금 그 움직임에는 묘리(妙理)가 담겨있었다. 묘리(妙理)가.
그 짧은 찰나에, 유하나는 또 한 번 자신의 성장을 증명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내 옆에는 유하나가, 그 옆으로는 윤채하와 유하나의 멘티 조유리가 나란히 앉았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유하나가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기울였다. 땀에 젖은 수련복 아래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미안해.”
그녀가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땀 냄새 나지? 나오자마자 바로 온 거라….”
말끝을 흐리며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는 유하나.
“아니, 하나도. 괜찮아.”
나도 조용히 답했다.
사실 곤란하다.
향이 나긴 하는데, 코끝에 스친 건 땀의 체취가 아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향.
습한 공기 사이를 뚫고 퍼지는 그 향이, 내 호흡을 미묘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가 나를 자극하고 있다. 안 그래도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데.
지금도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뛴다.
“그래? 다행이다….”
유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매가 살짝 휘어진다.
눈웃음이 섞인 표정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가까이 느껴졌다.
게다가, 조금 느슨해진 수련복의 앞섶.
그녀가 몸을 기울이자, 단정했던 매무새가 미세하게 풀려 목선 아래로 이어지는 라인이 자꾸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앞의 교관을 바라봤다.
“팀 구성이 끝난 것 같군요.”
우리는 자리로 돌아오기 전, 구성한 조원의 명단을 제출했다.
스크린에 15개의 팀과 4명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곧, 각 팀에 배정될 가온 아카데미 소속의 학생 네 명이 무작위로 정해져 고지될 예정입니다.”
스크린에는 아직 텅 빈 표가 떠 있었지만, 곧 무언가 채워질 기세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칼로스와 가온의 팀 구성 방식은 완벽히 동일하게 적용됐습니다. 형평성은 철저하게 고려했으니까요.”
그의 말에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인 조의 수준은 그냥저냥 무난하다.
강력하다고 할 만한 팀도, 도드라지는 팀도 없다.
단, 한 조를 제외하면.
주서준과 요한.
그 둘은 칼로스 랭킹 11위, 가일과 한 조가 됐다.
게다가 가일의 멘토는 가온에서도 순위권인 학생.
남성 넷으로 이루어진 팀.
칼로스 랭킹 1위와, 가온 랭킹 2위.
표면상으로는, 가장 강한 조가 탄생한 셈이었다.
나도 문득 옆을 돌아봤다.
유하나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상태로 내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고, 윤채하는 조유리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나은데?’
포텐으로도, 현시점의 무력으로도 안 밀린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교관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해산하시고, 내일부터 팀 단위로 본격적인 스케줄이 진행됩니다. 내일도 정시에 집합해주세요.”
강당 안이 곧 삼삼오오 일어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우리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굳이 서둘 필요는 없었다.
다 빠지고 나가는 게 편하니까.
그때, 한 기척이 다가왔다.
여유로운 걸음, 주서준이었다.
그는 윤채하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조는, 잘 짰어?”
“어.”
윤채하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툭 던지듯 대답했다.
주서준은 더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와 유하나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안녕하세요. 멘토분이시구나, 늘 나가셔서 뵌 적이 없었네요.”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주서준의 성격은 좋은 편이다. 모난 곳 없고. 말도 예의 있게 하는 편.
“그리고… 이쪽 분은 혹시….”
그의 시선이 유하나에게 옮겨졌다.
유하나는 아무 말 없이 수련복의 앞섶을 단단히 여미더니, 그대로 돌아서며 고개를 숙였다.
“… 유하나입니다.”
무표정으로 담백하게.
주서준은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이고는, 이내 윤채하 쪽으로 돌아섰다.
“개인전 준비는 잘하고 있어?”
“그냥저냥.”
“긴장해야 할 텐데? 이번엔 나 진짜 다르거든.”
“응.”
짧은 대화.
주서준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나 갈게~”
나는 그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네.’
빈말이 아니었다.
주서준은 분명,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조차 모르는 속도로.
윤채하는 가온으로 넘어온 이후, 말 그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는 중이다.
흥미가 끌리는 대로, 오늘은 이거, 내일은 저거.
그 방식이 그녀답긴 하지만, 반대로 그녀의 주 분야인 마법에는 다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주서준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을 것이다.
어쩌면 이 구도가, 윤채하에게도 나쁘지 않은 트리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채하는 언제나, 자극이 있어야 발전하는 성향이었으니까.
“우리도 나가자.”
우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복도 유리창 너머로는 달빛이 은은히 스민다.
“오늘 수고했어. 앞으로 잘 부탁해.”
조유리가 인사를 남기며 앞장서서 떠났다.
“내일 봐. 오늘 생선은… 맛있었어.”
윤채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잠시 자리에 남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무사히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퍼져오려는 순간이다. 이제 빨리 집에 가서 기운을 누르기만 하면….
그때,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던 유하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있잖아. 해인아.”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1대1로 수련 좀 봐줄 수 있어?”
그녀의 말투에는 은근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나, 폐관 수련하면서… 얻은 게 조금 있어. 딱히 자랑하려는 건 아닌데, 그냥… 너한테는 꼭 보여주고 싶어서.”
그 말과 함께,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쑥스러운 듯, 하지만 진심은 담긴 눈빛.
누군가에게 성장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같아 보였다.
“다른 이유는 없고… 네가 나한테 검술도 가르쳐줬으니까.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단 걸, 보여주고 싶어.”
몸 상태가 상태인지라 거절할까도 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알았어.”
결국 나는 수락했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정말?”
기쁨이 담긴 목소리.
유하나는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깨달은 게 많아서, 오늘 아마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많이 늦게까지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 윤채하가 조유리와 함께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 해인이 너랑 둘이서 늦게까지….”
유하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럼 그냥 셋이서 같이 하는 건 어때?”
“셋…?”
유하나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겸사겸사 윤채하 쟤도 같이하면 좋을 것 같아서. 몇 주 동안 멘토링도 못 해줬고, 원래 오늘 해주려고 했거든. 미안하기도 하고.”
유하나는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야… 좋지….”
나는 워치를 꺼내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belief_]: 다시 돌아와 봐
[summer]: 나? 왜?
[belief_]: 멘토링 하자.
메시지를 보내자,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춘 윤채하가 고개를 휙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난 까먹은 줄 알았어.”
그 말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안 까먹었지.”
거짓말이다.
사실 잊어버렸었는데, 유하나 덕분에 떠올랐다.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지금 상태로 유하나랑 둘이서 같은 방에 있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는데 윤채하를 끼면 좀 낫다.
윤채하가 유하나쪽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사도 할 줄 아는구나.
많이 컸다.
셋은 말없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밤공기는 한결 차분해졌고, 훈련장까지 이어진 복도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B동 훈련장.
막상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 넓은 공간은 여전히 훈련 중인 학생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곧장 훈련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워치를 대고 개인 훈련장의 룸을 열었다.
-삐빅.
문이 열리자, 신식 훈련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내부가 드러났다.
“괜찮네.”
문이 닫히고, 센서가 작동하면서 조명이 서서히 켜졌다.
역시 B동이 시설은 제일 좋다.
나는 안으로 들어서며 둘을 돌아봤다.
“뭐부터 할까?”
유하나의 검술을 봐줄 수도 있고, 윤채하의 마나 조율을 도와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검술부터 봐 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유하나가 먼저 끼어들었다.
“대련.”
고개를 돌리자, 유하나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련부터 하자.”
그리고 고개를 슬쩍 돌려 윤채하를 바라본다.
“괜찮으세요? 저는 윤채하 씨랑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러자 윤채하 또한 유하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동자가 붉게 타오른다.
“네, 괜찮아요.”
윤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의 반응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그녀 또한 유하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 듯했다.
“어… 그래. 그렇게 해.”
나는 애매하게 대답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럽게 중심을 비켜주자, 두 사람은 훈련장 양 끝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각각의 위치에서 마주 선 두 사람.
유하나는 손목을 가볍게 풀고, 윤채하는 눈을 감는다.
말없이 정적이 흐른다.
‘뭐지 이거.’
갑자기 성사된 대련.
나는 졸지에 관전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