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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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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박서희는 순간 당황하는 듯했지만, 곧 표정을 다잡았다.

눈빛이 흔들린 건 찰나였다.

금세 평소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표정을 되찾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사도 제거라는 거대한 업적을 세우신 만큼, 저희가 맞춰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박서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다시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이 부분은 협회 내부의 심의를 거쳐 추가적인 보상안을 다시 결정해 정해인 영웅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즉석에서 바로 더 내어주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일 것이다.

보상을 너무 쉽게 내어주면, 원래 줄 수 있었는데도 안 줬던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뭐, 상관없다.

어차피 협회는 돈이 많고,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 너머에는, 지금도 수많은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겠지.

‘뭘 주지? 뭘 줘야 이쪽이 납득하고, 불만 없이 받아갈까?

뭐 이런 느낌으로.

“그럼 이제….”

박서희는 방금까지의 서류를 정리하며, 한층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는 배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영감에게로 향했다.

나는 등을 의자에 기대며 숨을 가볍게 들이마셨다.

협회의 책임, 그리고 그것을 받아내는 과정.

지금부터는 영감의 차례였다.


영감과 나는 협회의 복도를 걷고 있다.

협상은 끝났다. 결과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협회 또한 자신들의 잘못과 이번 전투가 지닌 가치를 완벽히 이해한 듯했다.

맹주의 2팀, 맹호에서 복구한 녹화 자료를 시청했으니, 이제 그들도 모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협회는 기분 좋게 창고를 개방했다.

원작에서도 열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진 협회의 금고를, 이렇게 빠르게 개방하게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협회는 다른 세계의 협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협회를 정부 기관으로 관리하는 반면, 대한민국의 협회는 철저히 사립이다.

초대 창립자의 의지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을 뿐.

그러나, 이어받은 건 의지뿐만이 아니다.

초대 창립자가 남긴 거대한 유산 또한 함께다.

협회의 금고는, 일전에 방문한 가온 창립자의 금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얘네는 그냥 돈이 많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중.

"살다 보니 아주 별일을 다 보는군."

영감이 앞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협회가 불가람의 공방 개방을 약속하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별로라며 다른 걸 더 요구하는 녀석을 보게 될 줄이야."

나 또한 걸음을 멈추고, 영감을 바라봤다.

살짝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족한 건 부족한 거죠.”

내 손에는 붉은빛 열쇠가 박힌 투명한 큐브가 들려 있었다.

‘추가적인 보상은 심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도, 협회는 공방의 열쇠를 회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본 계획대로 정해인 영웅님이 개방하시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서희는 보상과 별개로, 공방의 개방을 약속했다.

잠재성이 뛰어난 영웅의 앞길을 지원하는 것 또한 협회의 의무.

그들이 내건 명분은 그랬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협회는 내가 반드시 그곳을 열기를 바란다.

나는 손안의 투명한 큐브를 굴리며 가볍게 피식 웃었다.

그때, 영감이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최근에 아르카디아에서 협회에 공방의 열쇠를 달라고 요구했다던데… 완전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겠군."

그는 비웃듯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교단에서는 요한을 밀어주기 위해 물밑에서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면.

공방은 한 번 열리면 일정 시간 동안 굳게 닫힌다는 것.

그리고 다시 열리기까지 기간은….

최소 10년.

딱히 미안하지는 않다.

애초에 협회가 허락했을 리도 없고, 설령 요한이 공방에 들어간다고 해도, 불가람의 불호령과 함께 쫓겨날 게 뻔하니까.

복도의 끝.

정장을 차려입은 요원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철제 서류 가방이 열려 있다.

“여기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나는 손을 뻗어 열쇠를 가방 안에 내려놓았다.

붉은빛이 반짝이며, 투명한 큐브 안에서 잠시 흔들리다 조용히 가라앉았다.

굳이 내가 직접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개방의 때가 오면, 다시 받아 가면 될 일이다.

나는 요원들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섰다.


하시온은 할아버지와 해인이를 접견실로 올려보낸 후, 1층의 카페로 내려왔다.

한쪽 자리에 앉은 그녀는 몇 시간 전부터 계속 진동하던 워치를 힐끔 내려다봤다.

알람이 연속해서 울리더니, 화면을 여는 순간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폭탄처럼 쏟아졌다.

어디서부터인지 감을 잡기 위해 천천히 스크롤을 올렸다.

대화의 시작은 오전이었다.

Rin: 다 있어? 나 할 말 있는데.

Rin: 다른 년들은?

1000_y: 유가년은 폐관수련.

1000_y: 하씨년은 안 봐도 뻔해, 해인이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겠지.

시온의 손끝이 순간적으로 떨렸다.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 알고 있던 모양.

변명하자면, 그가 의식을 잃은 지도 어느새 2주.

너무 그리워 어쩔 수 없었다.

Rin: 음 그렇구나.. 다른게 아니고 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ㅎㅎ

Rin: 어찌나 세게 껴안는지.. 역시 남자가 힘이 세긴한가봐

1000_y: 무슨 소리?

스크롤을 내리던 시온의 손끝이 순간 멈췄다.

그리고, 화면을 보자마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씨….”

한 장의 사진.

그곳에는 정해인이 병실 침대위에 앉아, 강아린을 껴안고 있었다.

사진의 구도를 보아하니, 강아린은 정해인에게 안긴 상태에서 등 뒤로 워치를 뻗어 몰래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시온이 화난 부분은 단순히 포옹이 아니었다.

자세와, 거리감.

너무 밀착된 상태다.

시온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친 거 아니야?

사진 속 강아린은 정해인의 허벅지를 양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있었다.

심지어 상기된 얼굴로 정해인의 어깨에 턱을 살짝 기대고 있다. 뻗은 한쪽 팔이 그의 등을 마구잡이로 더듬는다.

Rin: 해인이 일어났어. :)

Rin: 놉. 해인이 검사해야 해. 끝나면 와.

Rin: 잘 놀고 있을게 ㅎ

그 이후의 메시지들은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욕설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쯧.”

시온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갔다.

손가락을 움직여, 짧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시온]: 해인이 협상 들어갔어

그녀들이 인지하는 범위 내, 그의 일거수일투족 공유.

늘 하는 일이다. 물론 그의 사생활은 존중하지만.

따라서 딱 거기까지.

더 말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워치를 닫으며,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혀끝으로 퍼지는 씁쓸한 맛이….

사진.

… 입안을 가득 메우며 향과 함께 조화로운 느낌을….

사진.

“아 짜증나네 진짜.”

그 사진.

그 구도.

그 거리감.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누가 먼저 안았지? 당연히 강아린이겠지. 해인이가 먼저 그랬을 리가….

신경이 거슬린다.

결국 시온은 다시 워치를 열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삐리릭.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체감상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실상은 거의 3주 만이었다.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익숙한 공기가 느껴졌다.

묵직한 피로감이 몰려오는 순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어우 푹신해.”

매트리스가 부드럽게 몸을 감싼다.

몸에 잔뜩 스며들어 있던 긴장감이 녹아내리는 기분.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공기를 들이킨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거대한 고비를, 하나 넘기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천천히 숨을 들이켤 때마다 은근하게 퍼지는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향.

손을 이마 위로 올리며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편안한 침대에 더 깊숙이 파묻히려다 멈추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현재 내 몸의 내부는 전쟁 중이다.

갑작스럽게 받아들인 여러 영약이 서로 충돌하며, 각자의 효과를 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 각 단체가 내게 먹인 영약의 목록을 받아왔다.

[아르카디아ㅡ 월령수(月靈水)]

달빛의 정수를 농축한 신비한 영약. 달의 음기(陰氣)가 신체의 양기(陽氣)를 자극해 세포 재생과 성장 속도를 폭발적으로 증진시킨다.

[유 가(家)ㅡ 아환단(亞還丹)]

선대 명의(名醫)의 비법으로 제조된 고급 단약. 정(精)과 혈(血)을 조화롭게 순환시켜 체내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강한 양기를 축적하게 한다.

그리고 맹주의….

‘뭐?

“만년화리??”

나는 황당한 마음으로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맹주가 내게 먹인 영약은 만년화리(萬年火鯉) 를 건조시켜 빻아 만든 내단이었다.

“어디서 이런 걸….”

온천이나 용암 속에서 천 년 이상 살아남은 잉어. 먹는 순간 전신의 혈이 폭발하며 몸속 깊숙이 쌓인 에너지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극강의 보양제이자, 극약.

그냥 순수한 양기(陽氣) 덩어리다.

시뻘건 색이 특징인데, 이걸 나한테 먹일 줄이야.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설정 노트를 펼쳤다.

각 영약의 효능과 사용법을 확인하려던 순간, 문득 하나의 위화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잠깐만.

나는 다시금 세 영약이 적힌 목록을 내려다봤다.

보통 영약을 투여할 때는 신체의 성장 방향성을 고려해 조율하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이번 경우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한다. 살려놓고 보자는 게 우선이었겠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합을···.”

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문제는 공교롭게도, 이 세 영약이 효과가 우수한 것을 넘어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양기(陽氣)의 폭발적인 상승을 유도하는···.

극양기(陽氣)의 영약.

다시 말해, 남자한테 좋다는 뜻이다.

그것도, 너무.

물론, 양기는 본질적으로 활력과 회복과 직결된다.

그러니 내 회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

어쩐지 몸이 계속 뜨겁더라.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나는 한순간,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다.

넘치는 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에 벌어질 수도 있을 참사.

“… 아 씨발.”

나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삼켰다.

미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