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y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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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2주가 지났다.
뱅퀴셔는 작전에 임하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기실 한편에서 박광철이 신음을 내뱉었다.
“어우 씨, 야, 그만! 그만!”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끼는 거 아니냐?”
“이 정도는 해야죠.”
“아니, 피도 안 통하겠어.”
“잘됐네요.”
박광철은 투덜대면서도 결국 내버려 두었다. 나는 묵묵히 그의 보호구를 단단히 조여주었다.
반면, 성아라는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내뱉었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은데~”
뱅퀴셔 멤버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여유로웠다. 이번 작전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난이도로 따지면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국내 작전이기도 했고.
나도, 제발 그 예상이 깨지지 않길 바라고는 있다.
그때, 차분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영감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덤덤했지만, 어딘가 신경 쓰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팔라딘, 맹주, 그리고 청풍대까지 참여한다는군.”
그는 협회와 마지막 통신을 마친 후,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엥? 맹주랑 팔라딘이?”
“청풍대(靑風袋)….”
성아라가 반문하고, 검을 닦던 이도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흠칫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나조차도 어제 저녁, 천여울에게 들은 내용이었으니까.
‘사도가 정말로 나타난다면… 팔라딘으로도 부족하겠지, 그래서 맹주랑 청풍대까지 함께하기로 했어.’
어쨌든 좋은 소식이었다.
“설마 글로리는 아니죠?”
성아라가 묻자, 영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2팀, 맹호라고 하더군.”
그 말에 박광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와… 무슨.”
“뭔가… 이상하긴 하군.”
묵묵히 쌍검을 손질하던 이도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때, 장비를 담당하는 협회의 파견 인원, 김진수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준비는 완료됐습니다. 터미널 앞에 차량이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포탈 사용은 불가능하다.
적이 눈치챌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평양까지만 포탈을 이용하고, 이후부터는 육로로 이동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에 쥔 무기와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개인 전투 장비, 포션, 기타 필수품까지.
“괜찮아.”
옆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시온이었다.
“별일 없을 거야.”
“고마워.”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그녀가 조용히 위로를 건넸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확실히 위안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스 도착과 동시에 브리핑 후, 작전 시작이다.”
영감이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각자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하나둘씩 걸음을 옮겼다.
“출발하지.”
거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산 중턱에 있는 베이스 포인트.
차량에서 내린 우리는 조용히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 익숙하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죽음이 반복되었던 장소. 그 기억이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버렸다.
눈을 감았다.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며 진정했다.
“해인.”
순간적으로 어깨를 부드럽게 움켜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창을 쥐려 했으나, 멈췄다.
이번에도, 시온이었다.
“괜찮아?”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답했다.
“괜찮아.”
그때, 영감의 목소리가 울렸다.
“작전 브리핑 시작한다.”
나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은 작전 중이다.
영감의 설명은 단순했다.
몇 달 전 발견된 마인 군락을 토벌하는 것.
맹주와 팔라딘, 청풍대는 각각 다른 베이스 포인트에서 합류할 예정.
즉 이번 작전은 전방위적으로 군락을 포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영감은 우리를 향해 덧붙였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협회의 통신을 대기해라.”
지원 대기.
나와 시온을 데려온 이유였다.
“출발하지.”
뱅퀴셔 대원들이 하나둘 무장을 마치고, 마침내 작전이 개시되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
당연하게도 가만히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언제 따라붙는 게 제일 좋을지, 타이밍을 가늠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때,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가자.”
“응.”
우리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몰래.
폐허가 된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기엔 인기척조차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현실이 되는 듯한 기분.
왼편에서는 천여울과 유하나를 중심으로 한 팔라딘과 청풍대가, 오른쪽에서는 강아린을 위시한 맹주가 군락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거의 군락에 다다랐을 때.
“지금.”
우리는 빠르게 본대에 합류했다.
“야! 너희 뭐야….”
성아라가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나, 정작 다른 대원들은 무심했다.
“그럴 줄 알았어.”
박광철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네가 안 올 리가 없지.”
우리는 말없이 웃었다.
‘대충 눈치채고 있었구나.’
어쩐지, 모든 작전 브리핑을 계속 함께 듣게 하더라.
마을에 들어서자, 반대편에서는 맹주가, 왼편에서는 팔라딘과 청풍대가 진입했다.
각각 다른 경로로 이동했던 세력들이 마침내 중앙 광장에서 조우했다.
그러나, 마인의 흔적은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없다.
폐허가 된 건물, 마른 흙먼지만이 바람에 흩날릴 뿐.
맹주의 한 길드원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강아린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자, 그는 흠칫 놀라며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쾅!!
중앙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박광철과 유칼이 즉각적으로 역장(力場)을 펼쳤다.
폭발을 가두어, 강제로 틀어막은 채, 그 기운을 허공으로 던졌다.
-콰아아앙!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섬광과 굉음.
허공에서 터진 불꽃이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
박광철이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털었다.
순간적인 정적. 그러나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방금의 공격은 무언가 다르다.
“흐으음… 블라그, 이거 한방이면 다 죽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귀를 간지럽히는 매혹적인 목소리.
마을 전역에 퍼지는 콧소리 섞인 조롱.
그리고.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긁었다.
팔라딘 중 한 명의 입술이 경련하며 굳어졌다.
그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낮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사…사도다."
붉은 피의 거미, 메어리.
단신으로 중국 상해를 뒤흔들었던 존재.
그러나, 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다섯….”
거대한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다섯 개의 실루엣.
사도가 나타날 것은 이미 염두에 뒀었다. 그러나, 셋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 사람이 좀 많군요?”
눈과 코, 입이 존재하지 않는 백색의 남성.
그의 입에서 파장이 일렁이며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팀이라 들었는데, 되게 많네? 바르커스, 우리 없는 동안 괜찮겠어?”
“입 닥쳐.”
메어리가 하얀 눈의 사도, 바르커스를 도발하자, 그 또한 거칠게 응수했다.
“살살하고 있어~ 금방 끝내고 나올 테니까.”
낄낄대며 비웃는 메어리.
그녀의 눈빛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인원들은 정적에 휩싸였다.
사도.
이야기 속에서나 떠돌던 이름. 실제로 마주한 이는 소수.
그러나, 지금.
그들이 눈앞에 있다.
좌중을 압도하는 장악력. 단순히 강하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감.
이곳에 있는 모두가 깨달았다.
소문은 때로, 진실보다 한참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투 준비.”
영감이 단호하게 신호를 내렸다.
전 인원들이 일제히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본능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둘, 뒤에 붙어있어.”
박광철이 우리를 가로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거슬리는 파장을 내뿜던 블라그.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집행하기 전에, 위대하신 그분의 뜻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불필요한 교전은 피곤해서요."
-흠흠.
그는 주먹을,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가져다 대며 헛기침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바꿨다.
“인간들을 제거하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을 위해 너희에게 권능을 하사할 테니.”
그 순간.
눈앞에서 비웃음을 짓고 있던 사도, 메어리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슥.
그녀가 사라졌다.
“성녀님!!”
직후, 팔라딘 진영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시선을 돌렸다.
‘천여울?’
천여울의 주위로 붉은 사슬이 허공에서 피어나듯 나타났다.
꿈틀, 꿈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감싸기 시작했다.
“막아!!!”
팔라딘 중 한 명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이 닿기 전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챙!
적색의 사슬이 한순간 팽팽히 당겨지며, 그녀의 형체가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슥.
-슥.
블라그의 옆에서 있던 두 사도의 형상 또한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가씨!”
“부대표님!!”
유하나의 몸이 고요한 바람 속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강아린은 검은 그림자에 삼켜지듯,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사도.
그들의 목표는 뱅퀴셔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따가 뵙겠습니다.”
눈앞에서 조소를 흘리며 설명하던 사도, 블라그마저.
-슥.
사라졌다.
이번에는 누구지?
나? 영감? 아니면.
그때.
소리가 사라졌다.
나를 둘러싼 모든 소리가.
바람도, 숨소리도, 심장 박동조차도.
나는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시온!”
투명한 파문이 그녀의 발아래서 퍼져나갔다.
흔들리는 물결처럼, 공기가 일렁였다.
그녀의 형체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영감도, 내 옆에서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에서 분리되듯, 투명한 공간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텅 빈 공간을 붙잡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시온!!!!”
영감이 앞으로 성큼 나섰다.
두 손을 뻗었지만, 시온의 흔적은 이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쿠구구구궁.
대지가 울렸다.
슬퍼하거나,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내가 남게 된 것이, 너희에겐 절망일 것이다."
백색의 눈동자를 가진 마지막으로 남은 사도.
바르커스가.
분노를 머금은 채.
힘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