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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오늘만큼은, 합법적으로 수업을 빠질 수 있었다.
정당한 명분이 주어진 상태.
멘토로서, 시간을 넉넉히 줄 테니 멘티에게 가온의 인프라를 비롯해 학교 생활 전반을 안내하라는 의도였다. 봉사 점수는 덤.
그러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윤채하는, 애초에 규격 외의 학생이었다. 칼로스에서도 이미 대부분의 학문적, 마법적 지식을 섭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마법적 수준이 칼로스에 비해 뛰어나지 않은 가온에서, 그녀가 흥미를 느낄만한 것이 있을까?
…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가온 안에서, 가고 싶었던 곳 있어?”
그녀는 내 옆에서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딱히… 잘 모르겠어.”
대답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
이럼, 내가 정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 좋아할 곳이 하나 떠오르긴 한다. 어차피 그녀도 명확한 의사가 없는 것 같으니, 내 뜻대로 가면 된다.
“그럼, 나가자.”
나는 그녀를 포탈 터미널로 끌고 갔다.
학교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터미널을 거쳐야 했다.
그곳에는 터미널 관리 직원이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명찰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류의 장, 멘토 활동 중입니다. 현장 체험 학습 나가려고요.”
직원은 명찰과 얼굴을 대조하며 살펴봤다. 행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금방 이용이 승인됐다.
“10시 이후로는 학원으로 들어오는 공동 포탈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돌아오셔야 해요~”
“네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심산이었다. 내가 얘랑 10시까지 뭘 하겠는가.
윤채하는 곁에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어딘지 모르게 신기하다는 눈빛.
“가자. 네가 원하는 대로.”
아마 맞을 것이다.
포탈을 통과하고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의도.
거리는 언제나처럼 분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 이질적인 건물로 향했다.
“… 여기가 어디야?”
윤채하는 내게 물었다. 눈앞에 서 있는 건, 거대한 펜트하우스. 일전에 편린을 테스트하러 왔었던 그곳. 뱅퀴셔의 기지였다. 나는 곧장 철문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차마 뻗기 전,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들어와.”
“….”
윤채하는 계속해서 주변을 스캔했다. 순수한 호기심.
이곳으로 온 이유는 간단했다. 가온에는 그녀 입장에서 재미 볼게 없다. 그러나 여기는 아니다.
나는 정원을 지나 그녀를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왔어요~”
나는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도 없나.’
인기척이 없다. 오히려 잘됐다. 나는 윤채하에게 천천히 말을 꺼냈다.
“가온이나, 칼로스나 거기서 거기라서, 사실 안에서 뭐 할 게 없거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는, 좀 다를 거야.”
나는 건물 1층 중, 가장 깊은 방.
서재의 문 앞에 섰다. 뱅퀴셔의 마법사 유칼 페르만. 그와 영감이 오랜 시간 동안 모아둔 자료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 마탑 최고의 서적과도 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은 서재를 개방해, 우리에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허락했다. 보는 사람은 영감밖에 없었지만.
나는 문을 열며 말했다.
“자유롭게 돌아다— 아.”
거기에는 한 남성이 조용히 1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회색 머리칼과 바닥에 질질 끌리는 로브.
한 손에는 책.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우리를 인식하지도 않은 것처럼, 조용히 책을 넘기고 있었다.
“계셨어요?”
원래 자주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라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
그는 인기척에도 미동이 없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얘, 책 좀 읽어도 될까요? 제가 멘토가 됐는데 가온에는 볼 게 없—”
“….”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를 끌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윤채하 앞에 섰다. 그녀는 놀란 눈치였다. 유칼은 유명한 마법사였으니까. 마탑 출신이 아니었지만, 그는 마탑의 어떤 마법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그때, 유칼의 하늘색 눈동자가 얕게 빛났다. 그러자 그에 반응하듯 윤채하의 주황색 눈동자 또한 강하게 빛났다.
그리고, 짧은 침묵.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유칼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돌아섰다. 아무 말도 없었다.
책을 펼치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윤채하를 돌아봤다. 여전히 놀란 표정.
“들어가도 된대.”
“…진짜?”
“어.”
그는 책을 읽느라 바빴지만, 허락한 건 맞았다. 워낙 말이 없다 보니.
우리는 서재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공기 속에 오래된 서점 특유의 냄새가 떠돌았다. 이미,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 칼로스의 비전 학파 회고록?”
칼로스 아카데미의 창립자가 쓴 책도 있는 듯했다. 그거 아마 귀한 거일 텐데.
“강령술?? 엔트로피와 마력의 비가역성???”
그녀는 이미 본인의 세상에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의 냉정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침착하지만 급하게 책장을 넘기는 손끝, 초집중 상태. 나는 문득, 실소를 삼켰다.
‘잘 데려왔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보고 있어. 어디 좀 다녀올게.”
그러나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다 하다 동시에 책 2~3개를 펼쳐놓고 읽는 기예를 펼친다.
나는 책장 사이를 나오면서 유칼에게 말했다.
“유칼 형, 영감님 계세요?”
그는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추지도 않은 채, 짧게 답했다.
“방금까진.”
방금까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없다는 뜻.
나는 조용히 서재에서 나와, 본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한 개의 방 앞에서 발을 멈췄다. 영감의 집무실이었다.
잠시 문 앞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방.
묵직한 책장과 정리된 서류들.
그리고 책상 위, 한 장의 문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서를 집어 들었다.
[작전 계획서]
표지를 넘겼다.
그리고 내용을 훑어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슬슬, 때가 되긴 했다.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기도 했으니까.
“….”
나는 조용히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이것은 단순한 임무가 아니다.
내가 가장 경계하고, 막아내야 할 사건.
뱅퀴셔의 전멸.
계획서에는 협회의 요청으로 진행되는 마인 소탕 작전이 적혀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함경도의 한 지역. 그곳에서 마인 세력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 습격해 군락을 제거할 것.
나는 참가 멤버를 확인했다.
파견 나간 인원들을 제외하고ㅡ 전원이 참여한다.
날짜와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3주 뒤.
눈을 감고, 조용히 참가 명단에 내 이름을 추가했다. 실제로 쓰지는 않았고, 마음속으로만.
‘막는다.’
무조건 막는다. 작품 속 원래의 흐름대로라면, 이번 임무는 뱅퀴셔의 전멸로 끝난다. 나는 그 결말을 방관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필립, 있어?”
-부우?
흰색 수리부엉이가 조용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문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협회로 가는 거 맞지?”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서는 머지않아 협회로 넘어갈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나는 그대로 서류를 내려놓고, 영감의 의자에 몸을 기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천천히 허리춤을 내려다보았다. 텅 비어 있는 공간. 창이 망가진 이후, 정하기는 했어도 아직 새로운 무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허전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상태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 여러 선택지가 떠오른다.
듀란달.
성검이긴 한데, 이건 프랑스 박물관에 있고.
롱기누스.
좋긴 한데, 이미 누가 쓰고 있고.
궁니르. 얘는 좀… 너무 까다롭고.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날 만족할 만한 선택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최근 결정한 무기 타입과 딱 맞는 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카타스트로피.’
“그게 있었네.”
조건이 살짝 까다롭기는 한데, 쓸 수만 있으면 좋다.
이제 내 무기를 찾으러 갈 때였다.
나는 영감의 컴퓨터를 켜 메모장에 빠르게 정리를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을 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아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계획을 내 메일로 전송한 뒤, 컴퓨터를 종료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재 문을 조용히 열자—
“아 씨 진짜. 뭔 비전 학파.”
‘…?’
안에서는 언쟁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네 시야가 좁은 거다.”
유칼의 단호한 목소리.
그 앞에는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윤채하가 있었다. 그녀는 책을 펼쳐둔 채, 한 손에는 깃펜을 들고 격앙된 얼굴로 반박했다.
“그러니까ㅡ 허상이라는 거죠, 최초의 엔트로피? 그거 증명할 수 있어요?”
“이미 증명되었지.”
유칼은 차분하게 반박했다.
“비전 마법은 마법의 순수한 형태다. 원소 마법이든, 주술이든, 다 비전 마법에서 파생된 파편적 흐름일 뿐. 네가 추구하는 형상(形象)이나 제어(制御)도, 결국 여기서 파생된 것에 불과해.”
“아니, 아….”
서재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한숨을 팍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흠칫 놀랐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재밌었나 보네.”
윤채하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쩌죠, 유칼. 이제 슬슬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
“난 상관없지. 이 열혈 마법사가 문제일 뿐.”
“하….”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단히 격앙되어 있었다. 그러나 격앙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유칼 또한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
“볼 만큼 봤어?”
“… 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 옆으로 다 읽은 것처럼 표시된 책들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유칼이 손짓하자, 그 책들이 공중으로 일제히 떠올랐다. 그리고 책장으로 하나씩 날아들었다.
“잠… 깐!”
윤채하는 벌떡 튀어 올라, 책하나를 집었다.
[칼로스의 비전 학파 회고록]
아까 봤던 그 책이었다.
“이거, 좀 빌릴게요.”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나.”
“….”
“맘대로 해라.”
오호, 책까지 빌려준다고.
“….”
그러면서 그녀는 슬금슬금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다다르자, 순간 멈춰 서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단정하고 짧은 인사.
그러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나름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나가자, 유칼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 어디 지망이지?”
“글쎄요, 마탑으로 갈 것 같긴 한데….”
“그런가.”
-텁.
“아쉽군.”
그는 읽던 책을 닫았다.
그의 표정에는, 그답지 않게 어딘가 아쉬운 표정이 깃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