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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3 KiB
Raw Blame History

깊은 새벽. 뻥 뚫린 훈련장의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구름의 틈새로 달빛이 새어 나오며, 어둠을 간신히 몰아낸다.

그 아래,

훈련장의 바닥에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슥

-휙

콰직!

창끝이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였다가, 이내 흐름을 다듬는다.

“….”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창을 거두었다. 그리고 바닥에 거세게 내려찍었다.

내 주변에는 수많은 무기가 흩어져 있었다.

교류의 장 전, 내 스스로를 관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편린을 얻고, 하르페를 써보며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내 전투 방식은 바뀔 필요가 있었다.

편린(片鱗).

애초에 나와는 관련이 없던 요소였다.

나는 빙의 후 마나를 한 점으로 강하게 응축시켜 급소를 돌파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악마나 고위 마인이라 할지라도, 마나를 때려 박아 극한까지 압축해, 급소를 정확히 찌르면 대항할 수 있다.

훗날 내가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다면 그때는 또 새로운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로선, 이 방식이 고위 마인이나 악마와 칼이라도 맞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자, 생존을 위한 기예였다.

그러나, 편린이 내 마나의 본질을 바꿔버렸다.

우우웅ㅡ

손에서 끌어올린 마나가 진동한다. 짙은 잿빛 마나에 녹옥빛이 감돌며, 파르르 떨렸다.

이제 내 마나는 멸마(滅魔)의 속성을 지닌다.

더 이상 한 점을 뚫어 치명상을 입히는 방식은 최선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 속성은 초고열(超高熱)과 같다.

닿는 순간부터, 녹아내리듯 작열이 시작된다.

그러니 급소를 노리는 것보다, 넓은 면적으로 상흔을 남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나를 응축해 한 점으로 찍는 방식은 이제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이 되었다.

쨍그랑!

또 하나의 무구를 바닥에 던졌다.

수많은 무기를 테스트했다.

그리고, 각각의 무기를 검토하며 새로운 방식에 가장 적합한 무기를 찾아갔다.

첫 번째, 검(劍).

날이 넓고, 베는 데 특화된 무기.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일전에 말했듯이 이 세계에서 검은 어렵다. 리치도 짧고.

물론 검을 익히는 것은 전인(全人)이라는 특성 덕분에 가능하겠지만, 시간이 좀 필요하다.

두 번째, 창(槍).

찌르는 것이 중심이 되는 무기. 베는 것도 가능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창은 구조적으로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었다.

즉, 새로운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세 번째, 극(戟).

창의 일종이며, 창과 검의 날 형태가 조합된 무기.

베는 것도 가능하고, 찌르는 것도 가능하다.

즉, 창의 운용법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검보다 리치가 길고. 적응 시간도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기존의 창술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전투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

나는 월아(月牙)가 달린 창을, 손에 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이 무기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라 종용한다.

전인(全人)이라는 특성은 이런 선택에서도 가장 좋은 선택지로 나를 이끈다.

나는 그대로 강하게 휘둘렀다.

파바박!

주변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넓게 펼쳐서 날린 검기가 허수아비를 찢고 들어갔다.

“… 나쁘지는 않은데.”

손끝으로 극의 날을 가만히 쓸었다.

안 그래도 일전의 사건으로 인해 마기에 좀먹혀 창이 부식됐었다.

새로운 무기를 구해야 하긴 했었다.

“이걸로 하자.”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나는 창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팡!

강하게 휘둘렀다.


교류의 장이 열렸다.

얼마 전, 큰 사건이 일어났지만 학원 측은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이번 행사를 진행 시켰다.

매년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행사.

올해는 가온이 호스트가 되는 차례였다.

거대한 광장.

‘많네.

좌측에는 칼로스의 1학년 학생들이 도열했고, 우측에는 가온의 1학년 학생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 넓은 인원을 감당할 만큼, 가온의 광장은 넓었다.

높은 단상 위에는 각 학원의 이사장과 교장이 자리했다.

학원 대표들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광장에 모인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잠시 멎었다.

“이제, 교류의 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차분하면서도 권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적당한 박수를 보내며 교류의 시작을 맞이했다.

그때부터였다.

어색한 웃음을 띄며, 눈치보는 것을 끝낸 학생들이 서서히 상대 진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 간다!”

“야, 나중에 보자!”

교류의 시작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학생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누군가는 환하게 웃고, 누군가는 어쩐지 울적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순간.

칼로스의 학생들 사이가 홍해를 가르듯 갈라졌다.

그 틈으로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반사하는 듯한 금빛 머리칼.

태양 아래, 은은하게 반짝이는 결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인파를 가로질렀다.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호감형 미남. 주위의 친구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긴다.

‘윤채하. 그리고 주서준.

그 둘이 가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단상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양옆에는 천여울과 유하나가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각 학원의 교장과 이사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온과 칼로스의 이사장, 그리고 교장은 우리 셋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아주 서로 한마디씩 긁기에 바쁘다.

가온 쪽에서는 윤채하와 주서준이 가온을 선택한 걸 강조하며 칼로스의 속을 긁고.

반명 칼로스 쪽에서는 마인 습격 건을 들먹이며 가온의 속을 긁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피곤하네.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모라스를 단독으로 처리한 학생은 단 둘, 천여울과 유하나.

그리고 나는 메두사를 처치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들에게 포상을 수여하기 위한 자리였다.

나는 천여울과 유하나 사이에 앉았다.

굳이 교류의 장에서 포상 수여를 하는 걸 보면ㅡ

‘가온에는 이런 학생도 있다.

자랑하는 느낌이 아닐까.

물론 제발 자랑하기 전에, 단도리부터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암.

옆에서 천여울이 조용히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하품했다.

행사 초반에는 계속 말을 걸더니, 이제는 졸린 모양이었다.

유하나 또한 몸이 찌뿌둥한지, 자꾸 자세를 바꿨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에 곱게 포장된 사탕을 꺼냈다.

그리고 포장을 까며 입을 열었다.

“먹을래?”

순간, 둘의 시선이 내 손으로 집중됐다.

작은 갈색 사탕.

그녀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사실 사탕은 아니고, 휴교 기간 던전을 돌며 얻은 영약 중 하나였다.

거창한 건 아니다.

몸의 순환을 돕는 정도.

여성에게는 미용 효과랑 뭐 여러 가지 좋은 성분이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남자니까.

난 이미 하나 까서 먹었다.

그리고 강아린은… 좋은 걸 많이 챙겨 먹고 있을 테니 이런 잡스러운 영약은 줄 필요 없다.

“나, 나. 먹을래.”

-스윽

유하나는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사탕을 받아 갔다.

“이로 깨트려서 먹….”

-쪽, 쪽

그녀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치 보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천천히 녹여 먹기 시작했다.

그거 녹이면 많이 쓸텐데.

역시나, 그녀는 씁쓸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도 쪽쪽 빠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여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 또한 관심 있어 보이는 표정. 하지만 손을 내밀어 받지는 않았다.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입김이 어렴풋이 새어 나온다.

그녀의 눈길이 슬쩍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입가를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넣어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볼 뿐.

“….”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천여울은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혀를 아주 천천히 내밀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치 마중이라도 나오듯….

-텁

나는 약을 넣고 입을 닫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내려갔다.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는 듯한 움직임. 입술 끝이 미묘하게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쪽

사탕을 가볍게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입술이 아주 살짝, 부드럽게 닫히고 열렸다.

나는 못 봐주겠어서 고개를 돌렸다.

좀 친해졌다고 아주 난리다. 이게 그녀의 원래 성격이다.

원작에서도 초반, 남성 혐오를 극복하고 친밀도가 올라가면 이런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때, 단상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가 말했다.

“자, 그럼 이어서 표창 수여를 진행하겠습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상장을 가져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봤다.

우리는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훈화가 이어지고.

-탁.

교장이 상장을 건넸다.

나는 받아들고 가볍게 목례했다.

천여울과 유하나도 차례로 상을 받았다. 부상은 나중에 따로 지급한다더라.

그때, 안내자의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단상 아래로 돌아가 주세요.

드디어 끝났다.

나는 받은 상장을 접어 대충 주머니에 넣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천여울과 유하나도 나란히 따라 내려왔다.

그 순간, 가온 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몇개의 당부 사항과, 학생들 간의 화합. 뭐 그런 훈화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이걸로, 교류의 장을 마치겠습니다."

학생들이 환호했다.

“곧 있을 교류전까지,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겠습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단상 위의 인물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학생들도 차례차례 질서 정연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렸다.

금빛 머리칼. 햇빛을 머금은 듯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머리칼이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렸다.

윤채하.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 아래로 이글거리는 듯한 주황빛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났다.

짧은 순간, 시선이 얽혔다.

그러다ㅡ

스윽.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동작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거리낌 하나 없는 태연한 움직임.

하지만, 그 짧은 교차의 순간에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됐다.

윤채하는, 내가 만든 흐름 속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흐름이 향하는 곳 역시, 내가 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