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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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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짐을 가볍게 정리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엄청나게 넓은 방 안에 혼자 있기가 좀 그랬기도 했지만,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2학기부터는, 랭킹 10위 이내.

펜트하우스 입주자에게만 개방되는 특별한 훈련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방학에 완공됐다고 한다.

그 성능을 좀 느껴보고 싶었다.

듣기로는 세계 최고급이라는데, 과연 어떨지···.

가온은 이처럼 랭킹 아래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동기를 부여하고. 위에 있는 학생에게는 내려가면 누리던 걸 못 누릴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준다.

잔인하다고 보면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가온의 랭킹은 곧 영웅의 자질이랑 직결되니까.

나는 계단을 내려와 펜트하우스의 정문으로 향했다.

“어?”

그때,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 해인아?”

천여울이었다.

‘… 설마?

아니겠지.

그녀의 옆에는, 그녀의 몸만 한 거대한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방금 막 도착한 나처럼 그녀 역시 짐을 풀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범인은 천여울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지….

“들어가봐, 방 넓고 좋더라.”

나는 그녀의 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내 시선을 따라 펜트하우스를 힐끗 보더니, 나를 보며 요염하게 웃었다.

“내 방? 아니면 우리 방?”

“…….”

“그래서 어디 가려고?”

그녀의 질문을 애써 무시하자, 웃으며 다시 물어왔다.

“훈련장 한 번 가보려고.”

“으잉? 같이 가자~ 나도 가보고 싶었어.”

천여울이 칭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캐리어를 손으로 가리켰다.

“짐 풀고 나와 기다릴게.”

“응? 밖에 더운데. 안으로 들어오지?”

천여울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그럼 먼저 가 있을래? 훈련하려면 시원한 거 마시면서 해야지. 내가 커피 사 갈게.”

천여울 답지 않은 좋은 제안이었다.

"좋네. 먼저 가 있을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캐리어를 끄는 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 나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단지 중앙에 위치한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워치에 센서를 대자,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나를 지하의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 띵.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지하여서 다소 꿉꿉하고 숨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상쾌하고 서늘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무슨 거대한 미래 연구소에 온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나는 홀린 듯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선 거대한 유리로 만들어진 트레이닝 룸들.

각 룸의 문 옆에는 작은 디지털 장치가 붙어있다.

나는 비어있는 룸 아무 데나 다가가 장치를 조작해봤다.

[환경 조절]

보아하니 내부의 환경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듯 했다.

예를 들어 불가람의 내부를 상정하고 타이핑을 하면….

[가상 환경 생성 중….]

유리로 비치는 내부의 환경이 순식간에 시뻘건 용암이 들끓는 지옥으로 변했다.

“와우.”

최신은 최신이다.

[투명도 조절: 불투명]

룸을 밖에서 볼 수 없게끔 만들 수도 있었다.

나는 감탄하며 좀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내부가 불투명했던 어떤 방이, 갑자기 노이즈가 끼는 소리와 함께 투명하게 바뀌었다.

나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

그리고 그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부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봤다.

방 안은 더 이상 차가운 훈련실이 아니었다.

공간 전체가 탁 트인 들판으로 변해있고.

바닥에는 붉은 동백꽃 잎이 레드카펫처럼 깔려있었다.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춤 추듯이 휘날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하나가 있었다.

‘… 검강.

검을 휘두를 때마다 꽃잎들이 검기를 따라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흩날린다.

화접검?

맞다. 맞는데….

내가 아는 화접검은 아니었다.

유무진의 검술인 청운검의 묘리가 세세하게 녹아있다.

화접검이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검이라면, 청운검은 시원시원한 묘리가 담긴 쾌검이다.

그러나 유하나가 펼치는 검술은 그 둘의 묘리가 모두 녹아있었다.

빠르지만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치명적이다.

나는 유리 벽에 기댄 채,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땀방울들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집중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를 보니, 그녀가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마침내, 유하나의 마지막 초식이 펼쳐졌다.

그녀가 검을 들어 올리자,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수천, 수만 개의 꽃잎이 일제히 그녀의 검 끝으로 모여들었다.

  • …….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녀가 휘두른 검기는 내가 기대고 서 있던 강화 유리벽이 움찔거릴 정도의 강력한 파동이었으니까.

모든 꽃잎이 사라진 후, 그녀는 고요히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유하나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나 역시 방학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기에 반가웠다.

‘오랜만이야.

나는 웃으며,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유하나가 다급하게 유리벽으로 달려왔다.

  • 턱.

하얀 손바닥이 유리벽에 부딪혔다.

  • 턱. 턱. 턱.

그녀는 출구를 찾기 위해, 유리벽을 더듬으며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못 절박한 모습이다.

나는 그 모습에 웃으며, 내가 있는 쪽의 문을 열었다.

“하나야 이쪽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 휙!

유리벽 안쪽에서 뻗어 나온 유하나의 손이 나를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균형을 잃고, 그녀의 몸 위로 그대로 쓰러졌다.

코끝으로, 이제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짙고 달콤한 동백꽃 향이 깊게 스며들었다.

내 몸 아래에 깔린 그녀의 몸은, 훈련의 여파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나야.”

나는 당황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유하나는 내 목을 끌어안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긍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보고 싶었던 건 마찬가지니까.

유무진을 상대로 계승에 성공하고, 검후로서 다시 태어난 그녀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또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모든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 띵.

훈련장의 복도를 가로지르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맑은소리가 울렸다.

나와 유하나의 시선이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유리벽 너머를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와 본인이 마실 딸기 라떼를 든 여성.

천여울이었다.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유리방 안에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내가 그녀의 위에 올라탄 채 뒤엉켜 있는 이 민망한 자세를 그대로 보게 된 셈.

천여울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화사한 미소가, 그대로 얼어붙더니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그 순간 내 품에 안겨 있던 유하나가 씨익, 하고 웃었다.

그녀는 천여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누운 상태로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우아하게 뻗었다.

그리고 열려있던 문을 발끝으로 가볍게 툭, 쳤다.

“!”

천여울이 깜짝 놀라 이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 철컥.

하지만 열려있던 유리문이, 그녀의 코앞에서 소리 없이 닫혔다.

  • 삑.

그리고 다음 순간, 유하나가 손목의 워치를 가볍게 터치하자 투명했던 유리벽이 순식간에 짙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경악과 분노로 일그러진 천여울의 얼굴이, 그 잿빛 장막 너머로 사라졌다.

이제 이 공간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었다.

유하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네?”

정확히 보드게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 속에서 천여울과 나는 부부였고, 영주인 유하나는 외부인이었으니까.

“방학동안 쟤도 행복했겠지?”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내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 스윽.

“그리고, 이제… 아마 더 행복해질 거야.”

나는 유하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희열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도 그랬거든.”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깔린 채로 상체를 일으켜, 내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아, 그냥 보여주는 게 나으려나?”

“잠깐만!”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내 저항을 예상했다는 듯, 부드럽게 상체를 눕혀 회피하며 워치를 조작했다.

  • 삑.

다시 잿빛이었던 유리벽이, 한 치의 흐림도 없이 투명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여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유하나는 그런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내 볼에, 턱 끝에, 그리고 목덜미에, 보란 듯이 입을 맞췄다.

  • 쪽.

  • 쪽.

그녀의 뜨겁고 부드러운 입술이 닿으면서 나는 내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역시 유하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 더 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가장 먼저 내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유하나였으니까.

“음, 그냥… 안 보여줘야겠다.”

몇 번의 입맞춤 끝에, 유하나는 아주 만족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다시 워치를 터치했다.

  • 삑.

그리고 유리벽은.

다시 한번 짙은 잿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