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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1 KiB
Raw Blame History

“나… 다… 커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표정을 짓는 윤채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눈동자는 여운에 젖어 반짝거리고 있다.

“큭큭.”

가지 말라는 뜻 같았다.

어차피 이 상태로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만큼은 윤채하의 응석을 전부 받아줄 생각이었다.

“그래?”

“네….”

나는 이불을 조심히 들추고 그 안으로 들어가, 윤채하를 끌어안아 쓰다듬었다.

“으응….”

내 품에 안긴 작은 몸이 기다렸다는 듯 더욱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얇은 잠옷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등줄기,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체온.

그 열기가 내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 쓰담, 쓰담.

“하으….”

  • 토닥토닥.

규칙적이고 부드러운 내 손길에, 그녀는 긴장이 쫙하고 풀리는 듯 나른한 목소리를 흘렸다.

손바닥을 펼쳐,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 등, 그리고 다시 목덜미까지.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거리며 떨린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라벤더 샴푸 냄새와 이불에서 나는 라벤더의 복합적인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두 향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침구의 향이 차분하다면, 윤채하의 샴푸 향은 달콤하다 해야 할까.

윤채하는 내 가슴팍에 코를 박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가쁘게 몰아쉬던 숨결이, 점차 고르고 편안하게 바뀌어갔다.

나는 머리를 좀 더 쓰다듬어줬다.

“흐으… 후….”

점차 숨이 편해지더니, 마침내 그녀의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윤채하의 머리에 입술을 살짝 댄 뒤, 그대로 뒤에 눕혔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넘겨주었다.

모든 긴장이 풀린 듯, 편안하게 잠이 든 표정이다.

  • 새근, 새근.

나는 곤히 잠든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

“다 안 큰 거 맞구만.”

그렇게 작게 속삭이며, 이불을 어깨 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녀가 깨지 않도록 소리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문을 열고 나갔다.


길고, 또 아주 지독했던 방학이 끝났다.

오랜만에 가온으로 향하는 날이다.

나는, 늘 입던 교복을 꺼내 입었다.

정확히 말해 교복은 아니고 자주 입는 와이셔츠였다.

익숙한 감촉이 몸을 감싸는 순간, 지난 한 달 반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불가람의 공방에서 잿가루와 쇳물을 뒤집어쓰며 깨달았던 연대의 가치.

그 대장장이의 손길이 닿아 다시 태어난 카타스트로피와, 마(魔)를 집어삼키며 새로운 힘에 눈을 뜬 윤채하.

바티칸에서 천여울이 얻은 편린. 그리고 악신이… 편린을 인지했다는 좋지 않은 정보.

그리고….

뭇 여성들과의 관계 발전까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한둘이 아니다.

  • 쓱쓱.

‘나는 쓰레기인가?

죄책감과 별개로, 몸 안의 어딘가에서부터 차오르는 만족감이 있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번 액셀을 밟으니 멈추지를 못하겠다.

무슨, 여성으로 볼 일이 없다느니 선을 지켜야 한다느니.

그때의 자신감 넘쳤던 정해인은 죽었고.

지금은 그냥 욕망에 충실할 뿐, 미친놈이 따로 없다.

솔직히 말해, 지난 방학 동안 내가 가장 성실하게 임한 과제는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천여울, 하시온, 윤채하까지.

남은 건 강아린과 유하나라지만… 둘 다 일정 문제 때문에 만나지 못했을 뿐.

오히려 심하면 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짐을 잔뜩 싸고, 나는 새로운 학기를 위해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원래 살던 기숙사 건물 앞에서 멈추어 섰다.

거대한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다.

나 또한,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멈춰 선 것은 아니었다.

“어디려나.”

그곳에 내 새로운 기숙사 위치가 적혀 있었기 때문.

[정해인]

[아스트라(Astra) 1학년동 201호.]

2학기가 되며, 내 기숙사는 바뀌었다.

가온에서는 랭킹이 높은 학생들에게는 더 좋은 숙소를 배정한다.

그냥 단순히 더 좋은 숙소가 아니다.

랭킹 10위 내의 학생들에게는, 사실상의 펜트하우스를 제공한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정진하라는 배려.

“와… 무슨.”

평소 오르던 기숙사보다 언덕을 조금 더 오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눈 부신 햇살을 반사하는 새하얀 외벽에 프라이빗한 정원과 테라스까지.

1학년, 2학년, 3학년까지의 펜트하우스 촌이 전부 여기에 모여있었다.

나는 1학년 단지가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건물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크다.

크고, 좋았다.

다 좋은데….

문제는 남자 펜트하우스와 여자 펜트하우스의 구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방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

막말로 방 하나만 건너면 바로 옆집이다.

물론 철저한 마력 잠금장치가 있어 허락 없이는 오갈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허락만 있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 방은 201호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1층 복도에 나란히 붙어있는 이름표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101호 - 강아린]

[102호 - 윤채하]

[103호 - 천여울]

[104호 - 하시온]

[105호 - 유하나]

정말 다행인 점은, 남녀가 최소한의 층 구별은 되어있다는 점일까.

그녀들의 방문을 거치지 않고서도 2층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원작에서 내가 설계했던 이 구조의 이유는 단순했다.

플레이어와 등장인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위권을 향하기에, 스토리 흐름 및 편의를 위해 한 공간에 몰아넣은 것이다.

연애를 권장하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가온의 취지랑은 또 잘 맞으니까.

그래, 연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될지는 뻔해 보였다.

10위 안이라고 모두 숙소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7위와 9위인 학생은 숙소를 거절했다. 집이 근처였던 모양이다.

결국 10등 내의 남학생은 정해인, 주서준, 요한.

여학생은 강아린, 천여울, 유하나, 윤채하, 하시온.

이 여덟명이 펜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전원이었다.

나는 1층의 지옥도를 뒤로하고, 복도 밖에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의 복도는 1층보다 훨씬 더 한산했다. 방은 똑같이 5개가 있었지만, 문패가 붙어 있는 곳은 세 곳뿐이었다.

[203호 - 요한]

[202호 - 주서준]

그리고, 내 방.

[201호 - 정해인]

나는 201호를 열었다.

워치를 문 앞에 가져다 대자, 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내부가 펼쳐진다.

눈이 부실 정도로 넓은 거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온의 전경, 그리고 최고급 가구들과 최신형 전자제품까지.

최근에 지어서 그런지, 솔직히 뱅퀴셔의 숙소보다 좋아 보였다.

나는 짐을 들고, 가장 안쪽에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눈앞에는 펼쳐진 상황은 감히 내가 예상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침대 위에, 누가 누워 있었다.

창문의 커튼이 반쯤 쳐진 탓에 방 안은 어둑했지만, 실루엣은 선명했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은 채, 조용히 새근거리는 작은 몸.

누가 봐도 여성의 실루엣이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방을 잘못 들어왔나?

혹시 나, 범죄자가 된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어? 아, 진짜 미안해. 진짜.”

나는 속사포로 사과를 내뱉고는 그대로 뒤돌아 뛰쳐나갔다.

  • 쾅!

문이 거칠게 닫혔다.

나는 복도에 선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문 앞에 붙은 호수를 확인했다.

[201호 - 정해인]

“뭐야?!”

내 방 맞는데?

나는 워치를 센서에 찍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워치로 인식해서 들어왔으니, 내 방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너무 당황해서 그런 것조차 기억이 안 났던 모양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 끼익….

“…….”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침대는 텅 비어 있다.

나는 홀린 듯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분명 사람이 누워 있었던 것처럼 이불 가운데가 살짝 파여있다.

손을 대보니 온기도 남아있었다.

그때, 창문 쪽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커튼이 살짝 펄럭였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여기로, 도망친 모양이다.

2층 높이지만, 이 펜트하우스에 사는 학생이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닫았다.

  • 찰칵.

그리고 잠금장치를 걸어, 단단히 잠갔다.

누군지 찾고자 하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냥 모르는게 나아 보였다.

오히려 내가 범인을 찾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