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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하시온에게, 천여울의 사진을 받고.

윤채하는 결국, 하시온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해버렸다.

사진을 보낸 주체이자…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스승.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새로운 스승, 하시온을 아주 똑 닮아가고 있었다.

뭐, 패배감을 되새기는, 그런 방향성으로도 그녀는 천재였다.

처음 며칠간,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워치 화면에 띄워진 두 장의 사진.

요염하게 웃는 천여울과, 침대 위에서 긴장한 정해인.

그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분석하고, 또 분석했지만….

그 두 사진을 통해 윤채하가 도달한 둘의 관계에 대한 결론은 너무 뻔했다.

그럼에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모르겠다. 그냥 불가람의 공방 이후, 정해인에 대한 감정은 이미 넘칠 듯 폭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여성과 관계를 맺든, 얼마나 깊든, 이제는 상관하지 않게 되었달까.

그냥 … 그 자체가 더 중요해졌다.

‘언제 와….

윤채하는 매일 아침,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눈을 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첫 일 주일은 버틸 만했다.

그냥, 바쁘겠거니 했다.

원래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고, 가끔 그녀에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는 했으니까.

그래서 조금 아쉽긴 해도, 기다렸다.

그러나, 그다음 주.

그리고 그 다다음 주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녀의 그 초연하던 마음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채하야… 그, 혹시 그 남학생이랑은 요즘 안 만나?”

속이 펄펄 끓고 있을 때, 윤채하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채하는 완벽하게 표정을 감추고,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바쁜가 봐. 엄청.”

하지만 그날 밤, 혼자 남은 방에서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질문 하나가 애써 외면하던 가능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

윤채하는 생각했다.

‘설마, 나 버려진 건가?

그녀는 미친 듯이 협회의 기자회견 영상을 돌려봤다.

  • 친구, 아니에요.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순간적인 마음이 앞서서 그냥 질러 버렸었다.

그게 어떤 기사와 결과를 불러왔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 설마, 그걸로 입장이 곤란해져서?

내가 싫어진 건가?

그렇게 그녀는, 점점 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이이잉 ….”

그렇게 엉엉 울며 침대에 누워있기를 반복하던 그때.

그에게서, 한 달 만의 첫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어디야?”

  • 집….

조용히 덧붙이는 윤채하의 목소리.

  • 지금 아무도 없어….

누가 먼저 오라 가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켜 윤채하의 집으로 향했다.

그게 맞았다.

어차피 뱅퀴셔 숙소에서 윤채하 집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짧았다.

  • 띵동.

나는 그녀의 집, 고급스러운 현관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 철컥….

내가 초인종을 누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기계음과 함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러나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원격으로 문이 열리는 기능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익숙한 복도를 지나 윤채하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전에 와본 적 있었기에, 그녀의 방이 어디인지는 알았으니까.

  • 똑똑.

나는 그녀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 끼익….

문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문틈 사이로, 윤채하가 서 있었다.

윤채하는 몸이 반쯤 드러나는 얇은 잠옷 차림이었다.

어깨 끈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려, 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런데 그것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부은 눈가.

방금 전까지 한참을 울었는지, 눈가는 퉁퉁 부어 붉어져 있었고, 가래떡처럼 새하얀 볼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주황빛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윤채하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때.

  • 포옥.

그녀가 먼저, 아무 말 없이 내 품에 작은 얼굴을 묻으며 안겨 왔다.

가늘게 떨리는 몸. 내 셔츠 위로,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다시 한번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 또한, 잠자코 그녀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한 번, 두 번 쓰다듬을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살짝씩 떨린다.

그렇게 일 분.

좀 진정됐는지, 윤채하의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 아주 천천히, 내 등 뒤로 손을 뻗었다.

  • 끼익….

  • 철컥.

그녀가 방문을 닫고, 잠그는 소리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라벤더 향과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머리칼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샴푸 향기가 뒤섞여,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채하야, 괜찮아?”

내 부름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 옷자락을 꽉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그대로 체중을 실어 나를 밀기 시작했다.

“잠깐….”

나는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돌려 나를 그녀의 방 침대로 몰아넣었다.

  • 풀썩.

나는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졌고, 윤채하도 내 위로 함께 쓰러졌다.

그녀는 내 품에 얼굴을 박은 채, 아이처럼 웅얼거렸다.

“나 안 싫어하지…?”

내가 윤채하를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하면 단번에 알아듣고, 똑똑하고 눈치 있으며.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확실히 뭔가 단단하게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나는 부정하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내 다정한 손길에 안심한 듯, 그녀가 점점 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읏… 흐으….”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고, 대신 뜨겁고 젖은 숨결이 섞인, 끙끙거리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부모에게 파고드는 새끼 동물처럼, 내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며 몸을 부빈다.

얇은 잠옷 너머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의 굴곡과 뜨거운 체온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윤채하의 눈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도달한 결론이 있다.

윤채하도… 다른 여성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포기했다.

“흐… 으….”

그녀는 허리를 비틀며, 어느새 자기 다리로 내 다리를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젖어, 완전히 풀린 주황빛 눈동자가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 쪽.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들고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밀어내지는 않을까 하며.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는 살짝 안도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좀 더 대담하게.

  • 쪽.

볼에다가 입술을 갖다 댔다.

그럼에도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는 이것이 일종의 허락이라 여겼는지, 아주 작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주 서툴게.

마지막 목적지인 내 입술을 향해, 자기 입술을 천천히 포개어왔다.

  • 쪽.

키스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혀의 아무런 개입 없는, 수줍은 입맞춤.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그녀의 서툰 입맞춤을 묵묵히 받아주었다.

오늘만큼은 고양이의 모든 응석을 받아주기로 했다.

  • 쪽, 쪽.

그렇게, 몇 번 쪽쪽.

그녀는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마주쳤다.

한참 후에야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녀는 숨을 살짝 몰아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표정이 얼굴에 감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해냈다는 듯, 뿌듯한 표정도 감돌았다.

윤채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해줘.”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젖은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대답 대신.

다시 내 입술을 윤채하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처음에는 그녀가 했던 것처럼, 그저 부드럽게 입술만 맞댔다.

그녀가 안심한 듯 내 입술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녀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이고, 살짝 깨물었다.

"으응?!”

윤채하의 입술이, 깜짝 놀라며 살짝 벌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혀를 밀어 넣었다.

“앗…!”

몸 전체가 놀란 듯 뻣뻣하게 굳는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혀가 움츠러들며 나를 밀어내려 한다.

나는 더욱 꽉 끌어안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게.

여린 혀를 쫓아가 감싸며, 쓸어올렸다.

“흐으… 하읍….”

점차 윤채하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이 녹아내리면서 축하고 늘어진다.

나는 그 즉시, 입술을 뗐다.

'여기까지.'

방금까지 보인 모습을 보건대, 윤채하는 상당히 순수했다.

따라서 너무 강한 자극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예상은 정확했다. 입술을 떼었을 때.

이미 윤채하는 정신줄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주황빛 눈동자는 여운으로 완전히 풀려 초점을 잃었고.

입술은 살짝 부어올라 있다.

나에게 기댄 채, 가쁜 숨만 색색 내쉬고 있었다.

너무 자극이 셌나.

저질러 버린 것 같기도 하고.

... 바티칸에 비하면 아직 시작도 안 한거 같은데.

그런데 윤채하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하다.

괴롭힘을 유도한달까.

그녀가,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그… 머야….”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을 받쳐, 침대 위로 부드럽게 눕혔다.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뭔지 궁금하면.”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좀 더 커야겠는데?”

나는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쪽.

윤채하에게 여러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나였지만.

아직 이 세계는… 조금 일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