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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교단의 회의실.
방의 중앙에는 용사, 요한을 포함한 몇몇 인물들이 서 있다.
그들의 리더격인 교주, 성영일은 굳은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서류에는 바티칸 내부의 협력자가 보낸, 두 줄의 정보가 적혀 있다.
“정말입니까?”
침묵을 깬 것은 요한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지로 눌러 담은 분노와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교주, 성영일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
“예, 대한민국 시각으로 오늘 낮에 바로 포탈을 사용해 이곳으로 귀환한다고 합니다.”
그의 확신에 찬 대답에, 요한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바티칸으로 떠난 지 고작 하루. 다행히, 여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러면, 아마 두 사람의 관계가 극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희망도 곧, 시커먼 질투심에 잠식당했다.
“이해가 안 가는군. 대체 왜 외간 남자랑….”
옆에 있던 다른 신자가 중얼거리자, 성영일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회의실을 휘감았다.
“우리의 목적은 그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닐세. 천박한 질투는 더더욱 용사의 덕목이 아니겠지요.”
그는 요한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교단의 규율을 바로 세우고, 성녀로서의 그녀의 본분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 명분이 가장 중요해.”
성영일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성녀께서 도착하시면, 모두 예를 갖추게.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질문할 걸세.”
그의 계획은 명확했다. 천여울의 이번 돌발적인 행동을 빌미로, 그녀의 평판에 흠집을 내고 용사파의 입지를 다시 한번 다지려는 속셈이었다.
“교단과의 상의 없이, 근본 모를 외부 남성과 단둘이 바티칸에 방문한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야.”
특히, 성녀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정해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떼어놓아야만 했다.
점점 체급이 커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하는 일이 족족 성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아마 이 걸로… 조금 잠잠해질 것이다.
요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로 들끓는 속을, 억지로 짓눌렀다.
지금은 교주의 계획에 따를 때였다.
다음 날 아침.
교황은 정해인과 천여울을 자신의 개인 식당으로 초대했다.
듣기로는, 오늘이 일정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
바티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대접해주기 위함이었다.
아침 햇살이 글라스를 통해 들어와 식당을 비춘다.
교황은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자신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젊은이를 관찰했다.
어제 처음 보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두 사람의 의자 사이 거리는 눈에 띄게 가까워져 있었다.
바로 그때.
정해인이 커피를 마시다 입가에 묻힌 아주 작은 크림 자국을, 천여울이 먼저 발견했다.
그녀는 몸을 숙여 자신의 냅킨을 집어 들었다.
교황은 성녀가 냅킨을 건네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예상을 벗어났다.
그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기울여 정해인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자신의 냅킨으로 직접,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정해인 또한 그 행동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연인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종류의 자연스러움.
교황은 확신했다. 하룻밤 사이에, 두 사람의 관계에는 엄청난 진전이 있었음을.
교단에서도 권유하는 편이다.
오르디눔은 꽤나 개방적인 교단이니까.
다만, 아르카디아가 그렇게 개방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음.’
그래도 어떻게 두 성인남녀의 열기를 막을 수 있겠는가?
교황은, 이게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 느꼈다.
“지난밤은 잘 보내셨습니까?”
교황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정해인은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지만.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옆에 앉은 성녀에게 향했다 돌아온 것을, 노련한 교황은 놓치지 않았다.
천여울은 한술 더 떴다.
그녀는 정해인을 힐끗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대답했다.
“네, 성하. 잊지 못할 밤이었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이 깃들어있다.
“다행입니다.”
교황은 그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었다.
교황과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준비된 포탈로 향하기 위해 짐을 챙겨 통관소로 돌아왔다.
어젯밤의 그 뜨거웠던 긴장감이 무색하게, 천여울과 나 사이에는 어색함 대신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오히려 큰 태풍이 한 번 지나가니까, 조금 잠잠한 느낌이랄까.
잠깐만… 지나간 게 맞긴 한 건가?
태풍의 눈에 들어와 놓고, 착각하고 있는 걸 수도.
힐끗, 옆에서 걷는 천여울의 입술을 바라봤다.
목에 살짝 부어오른, 붉은 자국.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다.
어젯밤, 우리는 동이 틀 때까지 서로를 탐했다.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둘 다 암묵적으로 합의한 느낌.
어쨌든 숨이 막힐 정도의 입맞춤을 반복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보드게임 속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통관소에는 교황이 직접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마지막 축복을 내렸다.
우리도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감사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성하.”
그에 맞춰 교황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테르나의 축복이 함께하길.”
교황의 축복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마침내 포탈 게이트 앞에 섰다.
눈앞의 파장이 일렁이며, 푸른 빛의 장막이 소용돌이친다.
나와 천여울은 망설임 없이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우우웅.
몸이 분자 단위로 쪼개졌다, 재조립되는 어지러움과 함께.
다시 눈을 떴다.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아르카디아 교단이다.
포탈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어지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싸늘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지하 포탈 게이트에서 이어진 중앙 홀.
몇몇 교단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용사파 소속이었고, 그 중심에는 요한이 서 있었다.
대체 어떻게?
바티칸에서의 포탈 이용 시간은 그들이 알 수가 없다.
천여울에게 듣기로, 성녀가 외간 남자와 단둘이 성지 순례를 떠난 것을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천여울이 나를 돌아보며 요염하게 웃었다.
애초에 그들을 신경 쓰는 듯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 미소는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적의에 찬 시선들을 향한 과시이기도 했다.
“집에 왔네?”
그녀는 그렇게 속삭이더니, 주저 없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의 뜨거운 입술을 내게 가져다 댔다.
“하읍….”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혀가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 츄릅.
농밀하고도, 보란 듯이 긴 키스.
그녀의 어깨 너머로, 충격과 분노로 새하얗게 질려가는 요한의 얼굴이 보였다.
- 쯥.
한참 후에야, 입술이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 순간, 요한 옆에 있던 교주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었다.
“성녀시여!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 무슨 무례하고 경박한…!”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홀 전체를 울렸다.
하지만 천여울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저 우아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 틱.
그러자 하늘에서 작은 빛의 구멍이 열리더니, 백색의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니였다.
그 모습에 홀에 있던 모든 교단 인원들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저, 저것은 에리엘님의… 신조(神雕)…?”
물론 에리엘의 새는 훨씬 커다랗고 위엄이 넘치지만, 아무튼 얘도 크면 그렇게 될 것이다. 본질은 같으니까.
천여울이 바티칸 여행을 통해, 에리엘의 정통성을 완벽하게 계승했음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용사파는 분명 교단의 성녀로서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책임을 묻고, 그 동행인 나를 핑계로 그녀를 압박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녀가 외간 남자와 사사로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아르카디아의 성녀가, 불가람의 후계자와 함께.
성지를 순례하여 여신의 권능을 온전히 이어받아 돌아온 것이 되어버렸다.
이 정신 나간 성과 앞에서는, 어떤 트집과 도덕적 잣대도 명분을 잃기 마련.
홀 안의 인원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입만 뻥긋거렸다. 물론 교주도 마찬가지.
천여울은 그런 그들을 향해, 아주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홀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죄드립니다. 며칠 전, 제게 에리엘님의 신탁이 내려졌습니다.”
신탁?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에리엘님께서는, 저의 이 성스러운 여정에 이 자, 불가람의 후계자가 반드시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다. 부드러운 감촉이 팔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리고 저는, 바티칸에서 테르나님의 흔적에 닿으며, 그 신탁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혹시… 이의가 있으신 분이라도 계신가요?”
전부 구라다.
일단 첫 번째, 여행을 제안한 것은 나였고.
두 번째, 에리엘이 그런 신탁을 내릴 리도 없다.
- 짹짹?
그러나 천여울의 혼이 담긴 거짓말은, 가니라는 증거 앞에 진실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교주는 굳은 표정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깊이 고개를 숙였다.
“… 축하드립니다, 성녀님. 교단의 영광입니다.”
천여울은 그제야 나만이 보이는 각도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가자.”
그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유유히 홀을 빠져나갔다.
- 짹짹?
오직 가니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짹짹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