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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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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평화롭고, 또 너무나도 평화로운 주말 아침.

  • 뒹굴뒹굴.

천여울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이불을 발끝까지 감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게 흐릿하게 느껴질 만큼 나른한 기분.

게임 속… 아니, 게임이라 하고 싶지 않다.

행복했던 그 경험들.

잠시 눈을 감으면, 아직까지도 그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

최대한 놓치지 않고… 담아둬야 한다.

그때였다.

  • 우우우우웅.

워치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천여울은 이불 속에서 조심스레 팔을 꺼내 워치를 확인했다.

RIN: 다들 좋았어?

단톡방이었다.

강아린의 장난기가 가득 남긴 메세지.

RIN: 뭐해? 칭찬 안 하고.

RIN: 고심 많이 했어.

물론, 강아린의 의도는 단둘이었지만.

결국 궁극적 목표는 의도대로 된 셈이었다.

천여울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인정.”

천여울은 이번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치도 못한 방법이었다, 정신 나간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플레이를 유도한 줄이야.

철벽과도 같았던 그의 심리적 방화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건 회귀 전에도 이루지 못했던 쾌거다.

커피를 마시던 정해인의 눈빛이 생각난다.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눈동자,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던 그 시선.

그걸 보는 순간, 그에 있던 모든 여성들은 단번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달라졌다.

철벽이, 무너졌다.

  • 톡톡.

천여울은 조용히 메세지를 남겼다.

정말이지, 지금이 절호의 찬스였다.

일시적인지 완전히 무너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멈추지 않고 파고들면, 분명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차례가 유하나라는 점이었다.

벌써 쥐도 새도 모르게 정해인과 단둘이 중국행 여행 약속을 잡았으니… 그게 상당히 골때리는 포인트였다.

“으으….”

천여울은 침대 위에서 기지개를 길게 펴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워치의 화면을 토독토독 두들겼다.

1000_y: 축하드려요? 최고 수혜자, 유하나씨.

그리고 그 수혜자로 칭해지는 유하나.

유하나는 땀에 젖은 도복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워치에 띄워진 메시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훈련을 마치고, 여전히 숨은 가쁘다.

메시지가 아직도 화면에 남아 있다.

답변을 고심하고 있었다.

“…….”

유하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천천히 워치를 내려놓았다.

정해인과의 단독 여행.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빨리,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와 함께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라면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기묘하게 들끓는다.

이상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게임 속 장면들.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다른 이의 남자를 빼앗으려 했었던 자신.

내면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여행은 다른 애부터 보내!

그리고, 그 다음, 그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속에서 욕망이 은근하게 피어오른다.

“미쳤지.”

유하나는 머리를 흔들며, 헛웃음을 삼켰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감정.

게임이 사람 여럿 망치게 생겼다.

-쉬익 쉬익 쉬익.

정신을 차리려는 듯, 검을 힘껏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기를 가르며, 허공에 세 번.

“…….”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남은 잔불은, 쉽게 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뱅퀴셔의 기지, 그 휑한 지하 훈련장 한복판에 앉아 있다.

오늘은 간만에 박광철 씨와의 합동 훈련.

직접 요청한 거였다.

조용히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명상이다.

강아린이 말한 게 떠올랐다.

‘후유증…? 글쎄, 최소 일주일은 갈걸? 어쩌면 더?

그러나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심불란(一心不亂)]

사도와의 결전 끝에, 명경지수가 진화하여 탄생한 나의 심공.

한 가지에만 마음을 써서 마음이 흩어지지 아니하게 한다.

즉, 하나에 집중하면 잡생각이 떨쳐지는, 완벽하고 무결한 심공이자, 명경지수의 상위호환.

그러니 훈련을 함에 있어서는 절대 흔들릴 일이 없었다.

… 그래야만 했다.

“개뿔.”

진짜 죽을 것 같다.

지금 머릿속은 며칠째 난장판이었다.

‘애들 지금 뭐하려나?

‘천여울은 누워있을 거고… 강아린은 업무….

‘시온은 영감이랑 영화 보러 갔고… 채하는 퍼질러 자고 있을 거고….

‘아 하나랑 중국으로 여행가기로 했는데….

‘… 가서 별일 없겠지?

나를 나조차도 믿을 수 없어졌다.

마음속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온다.

내가 정신력이 이렇게 나약했나?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당장 누구라도 불러내고 싶다.

불러내서,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터져 나오는 잡생각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형… 대련 한 번만 더 하자.”

박광철은 한숨을 내쉬며 날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한 번 치켜올렸다.

이미 잡생각을 비우려고 세 번이나 그와 겨뤘고, 그때마다 작살났다.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지만,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나았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처절해? 차였어?”

순간 움찔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만 다섯.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요즘 좀, 복잡하네.”

“뭐야 진짜야?”

“아니… 아니라니까.”

나는 답했다.

그때였다.

박광철은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나의 등을 두들겼다.

“야, 넌 평생 연애 안 할 줄 알았다. 이제야 좀 학생 같네.”

“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예쁜 애들은 천지인데 맨날 혼자 뚱한 표정으로 생각만 많고, 거리 두고. 나이에 맞게 좀 살아라 임마. 그래야 힘도 나지. 아무튼 다행이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틀렸던 모양이다.

이게, 정상인가.

예전의 나는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목표를 설정했고, 그를 이루기 위해서만 삶을 살았으니까.

당연히 주요 등장인물들은 그저 성장시켜줄 대상이거나, 동료이거나.

그 이상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살짝, 아주 살짝 눈이 떠진 기분이다.

방향성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너무 사무적으로 대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그러네."

내가 너무, 닫고 살았구나.

왠지 모르게,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최근 가온은 아주 여유롭고, 또 적막하다.

교수는 여전히 학생들을 건들지 않으며, 학생 또한 주어진 자유를 성실히 챙긴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정규수업이 잡혔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아무래도.

1학기 성적 공개.

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덕분에 간만에 교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나는 9시 정각에 교실로 입장했다. 그리고 지정석인 맨 뒷자리로 향했다.

윤채하는 책상 위에 두 팔을 포갠 채 조용히 졸고 있고, 천여울은 창밖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있다.

나를 본 천여울이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왔어?”

“어.”

나는 자리에 앉으며, 윤채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굿모닝.”

윤채하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응.”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그때, 천여울이 조용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보통 이럴 때는, 장난을 건다는 신호다.

“… 여보?”

그럼 그렇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천여울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맞댔다.

그리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왜? 우리 자기?”

그대로 되갚아줬다.

내가 게임 속에서 그녀의 부름에 흔히 하던 응답이었다.

천여울의 눈이 동그래졌다.

“으, 으응?”

진짜로 받아칠 줄은 몰랐다는 듯, 얼굴에 홍조가 번진다.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어쩔 줄 몰라 고개까지 숙인다.

나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까불지 말도록.”

“네에….”

기운 빠진 대답, 금세 두 귀까지 빨갛게 물든다.

  • 꾸욱.

그때, 테이블 밑에서 슬며시 압박이 느껴졌다.

왼쪽에 앉은 윤채하의 발이 내 발등을 은근하게 누른다.

고개를 들어 슬쩍 그쪽을 바라보니, 모른 척하며 창문을 바라본다.

평소였으면 왜 그러나 싶었겠지만, 마음을 바꾸고 다시 보니 하는 짓이 다 귀엽다.

“윤채하….”

그때.

  • 쾅!

갑자기 교실 문이 활짝 열렸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단정한 제복 차림의 도한성 교관이 교실로 들어왔다.

오늘이, 성적 공개일이라는 걸 모두가 동시에 떠올렸다.

순식간에 교실 안이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오늘 뭘 할지는 다들,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도한성 교관은 손목의 워치를 스윽 바라봤다.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마치 시간을 재듯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제 모든 등수와 성적의 반영 기준을 설명하겠습니다.”

등수는 단순하다.

중간과 기말, 필기와 실기.

외부 활동 점수, 봉사 점수, 그리고 입학 등수까지.

칼로스에서 전학 온 인원들은 전적 학교의 등수까지 반영되고, 교류전의 결과가 중간고사로 대체된다.

입학 등수라는 누적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솔직히, 내 순위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너 몇 등 할 것 같아?”

옆에 앉은 천여울에게 슬쩍 물었다.

“음… 모르겠어.”

역시 별 생각 없는 천여울.

그때, 교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교실을 울렸다.

“지금, 모두 워치를 확인해주세요.”

순간, 학생들은 일제히 손목을 들고 워치를 켜기 시작했다.

알람음, 화면 전환음, 작은 숨소리들이 곳곳에서 번졌다.

나 역시 조용히 화면을 열었다.

[랭킹 1위 강아린]

1등은 예상대로 강아린.

누적 성적부터, 실기, 필기, 봉사, 외부 활동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2등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썹이 올라갔다.

[랭킹 2위 정해인]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순위였다.

중간고사, 교류전, 기말고사까지 MVP를 연이어 차지했던 덕에 누적의 벽을 뚫고, 2위까지 올라선 모양이었다.

요한을 몰아내고.

[랭킹 3위 천여울]

[랭킹 4위 유하나]

[랭킹 5위 윤채하]

[랭킹 6위 주서준]

[랭킹 8위 하시온]

나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은 착실하게 줄 세우기를 성공했다.

등수를 보니 내심 뿌듯하다.

방향성이 옳았다는 뜻이니까.

“…?”

그러나 뭔가 이름이 하나 비는 듯한 기분이 들어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랭킹 10위 요한]

아.

… 못 본 걸로 해주자.

나는 고개를 들어, 천여울을 바라봤다.

그녀는 순위에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다.

윤채하도 비슷했다.

묘하게 여유 있는 미소, 평소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다시 워치로 시선을 내렸다.

[랭킹 2위 : 정해인]

‘랭킹 없음’에서 시작해, 어느새 2위까지.

교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과 한숨, 누군가는 고개를 떨구고, 누군가는 워치를 연신 들여다본다.

사실, 나는 순위에는 별 뜻이 없을 줄 알았다. 어차피 스쳐 가는 과정이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지난 학기 내내 달린 나날이, 이 짧은 숫자로 작게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든다.

“… 나쁘지 않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