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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3 KiB
Raw Blame History

교국을 지탱하는 파벌…아차차 계파는 총 7개였다.

지혜, 절제, 용기, 정의, 사랑, 소망, 믿음.

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으르렁댔다.

‘아니. 창세교는 전부 창세신을 믿는 거 아니었어?’라고 묻는다면, 맞다. 창세교는 모두 창세신을 믿었다.

그런데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이건 간단했다.

저들이 믿는 게 창세신이면서, 동시에 창세신이 아니어서 그랬다.

왜냐하면 지혜, 절제, 용기, 정의, 사랑, 소망, 믿음은 전부 창세신의 다른 모습이라서.

따라서 지혜를 따르는 게 곧 창세신을 따르는 건 맞았으나, 그것과 다른 창세신의 모습까지 따르는 건 아예 얘기가 달랐다.

뭐, 다 같은 창세신인 만큼 배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원래 사촌이 더 싸우고 난리가 나지 않나? 창세교도 마찬가지다. 가깝지만, 그렇기에 더욱 양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차피 전부 창세신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여기부터는 신학과 교리의 문제라. 애초에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냥 외워라.

창세교는 7개로 나누어져 개판이다.

“이것이, 이것이―.”

정의의 수석 추기경이 감동에 찬 표정을 짓는다.

위대한 여정을 함께한 소망의 화신체의 뼈로 만들어진 기적, 성배.

이 성배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교국에겐 역사적인 유물이기도 했다.

제국으로 비유하자면 초대 황제의 검이 발견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좋아서 미쳐 날뛰는 게 당연했다.

“레온.”

“하명하시길.”

“그대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줬다. 가히 교국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일이야.”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수석 추기경님.”

잘 말했다 레온아.

자신의 몫을 온전히 챙기고 싶으면 자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 남이 얼마나 노력했냐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슬쩍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대는?”

“루이나예요.”

수석 추기경이 수염을 쓰다듬는다.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는 제스쳐였는데, 그걸 보자마자 레온이 추가로 말을 꺼냈다.

“사실상 성배를 찾는 여정의 처음과 끝을 같이한 분입니다. 성배를 빼앗아 갔던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도 루이나 님이 쓰러트렸죠.”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을? 허어.”

수석 추기경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가 성배 퀘스트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그건 참, 감사한 일이군. 많은 일이 있었겠어.”

“그럼요. 부상도 많이 당했어요.”

“설마.”

“불이 참 뜨겁더라고요.”

“이런.”

수석 추기경이 내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거짓말은 안 했다.

불은 뜨겁고, 부상도 입었으니까.

나 말고 레온이 말이다.

“정의시여.”

수석 추기경이 성호를 긋는다. 몸을 아끼지 않고 성배를 가져온 내게 감사를 표하는 거다.

추기경이 말했다.

“간악한 자들을 없애기 위해 노고가 많았습니다.”

“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것 또한 거짓말이 아니다.

이 세상을 올바르게, 그러니까 마법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건 내 목적이었으니까.

“허나 여성의 몸으로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을.”

“그러니까요. 저도 원치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세상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에 세상이잖아요.”

“정의시여.”

이것 또한 거짓말이(생략).

나라고 몸을 태우고 싶어서 태운 줄 알아?

위계가 안 올라가는 걸 어떡해 위계가.

누가 보면 내가 일부러 몸을 태우는 줄 알겠어.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수석 추기경은 신뢰의 시선으로 나를 살폈다. 이미 수석 추기경의 머릿속에서 나는 성배를 되찾기 위해 온몸이 불타는 것도 감수하는 순교자였다.

이것 참, 의도하진 않았는데 오해를 하셨네.

정정하면 민망해지니 가만히 있어야겠다.

“그래서 말입니다, 수석 추기경님.”

레온의 부름에 수석 추기경이 고개를 돌렸다.

수석 추기경과 눈을 마주친 레온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루이나 님이 성배를 가져온 공로를 생각해, 대가 없이 완전 치료를 해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레온. 그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라네. 공로의 대가로 주기엔 부적절하지.”

“죄송합니다.”

수석 추기경의 꾸짖음에 레온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뭐야.

왜 이렇게 말이 잘 통하지.

교단 얘네 꼴통 집단 아니었어?

레온이 나를 흘긋 본다. ‘제가 그래서 오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생각을 하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를 리는 없으니 교국이 난장판인 건 사실일 텐데…. 아마 정의의 계파가 비교적 멀쩡한 게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소문의 반만 사실이라도 이 상황이 말이 안 되거든.

논리적으로도 서로 견제하는 7개의 집단이 한배를 탔는데, 난장판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했고.

뭐, 예상 밖이라 좋긴 했다.

일이 잘 풀리는데 싫어하면 그건 정신병자지.

나는 정신이 멀쩡한바. 따라서 수석 추기경의 선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교국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네.

그에 반해 제국 이 녀석들은 황제를 구해줬는데도 돈 한 푼 안 주고 말이야.

수전노 집단이 따로 없구만.

에휴.

착한 내가 참아야지.

수석 추기경이 입술을 뗐다.

“레온. 그대는 약속한 대로 팔라딘이 될 걸세. 그리고 그 부분으로 본청에서 물어볼 게 있다니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루이나 님의 치료는 제가 직접 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알겠어요.”

본청으로 간 레온은 기나긴 질의응답을 거쳤다.

질문을 통해 상대가 팔라딘에 적합한지 검증하는 건데, 아무리 성배를 가져오는 자에게 팔라딘의 자리를 약속했어도 이 과정은 꼭 거쳐야 됐다.

마을 이장 자리도 검증을 거치는데 하물며 교국에 12명밖에 없는 팔라딘이어서야.

한 번 팔라딘을 뽑으면 은퇴, 사망 등으로 공석이 생기기 전까진 새로운 팔라딘을 뽑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번 뽑을 때 신중해야 됐다. 이상한 사람을 팔라딘의 자리에 앉히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이미 공수표를 날린 터라 레온이 팔라딘이 되는 건 확정이었으나, 그럼에도 절차라는 게 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레온은 성검을 든 채 연무장에 섰다.

반대편에는 교국의 열한 번째 검이 성검을 든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레온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저 남자는 원래 교국의 열두 번째 검이었다. 그러다 교국의 열 번째 검이 사망하며 자동으로 열한 번째로 승격했는데, 그게 딱 작년의 일이었다.

남자는 팔라딘이라는 지위를 손에 넣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그런 와중 웬 성기사 하나가 성배를 찾았다고 팔라딘이 되는 거다.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레온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본래 사람을 미워하는 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감성의 영역이지.

논리적으로 따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용기를 따르는 팔라딘, 클라우드가 짜증을 냈다.

“실력 미달이야. 이제 막 성물 강림을 허락받은 성기사가 팔라딘이 되는 건 난생처음 본다.”

저 말엔 레온도 동의했다.

확실히 팔라딘이 되기엔 레온은 아직 실력이 부족했으니까.

“이미 팔라딘이 되는 건 확정입니다.”

“그럼 이런 절차는 왜 밟아. 그냥 반지 하사하고 끝내지.”

“아무리 그래도 절차라는 게.”

“하아.”

클라우드는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그 ‘관심 없으니 너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태도에 담당 사제는 목례를 했다가, 레온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내일 이어서 하겠습니다. …클라우드 님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괜찮습니다.”

“많이 달라지셨군요.”

사제와 헤어져 연무장을 벗어난 레온은 어두운 세상에 입맛을 다셨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워낙 절차가 많고 복잡해 하루가 꼬박 지났다.

레온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거리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루이나는 어떻게 됐을까.

벌써 치료가 끝났나?

아닐 거 같았다.

완전치료는 고위 사제가 심혈을 기울여야 되는 대성법이다.

심지어 루이나는 전신 화상 환자. 치료해야 되는 부위가 많았고,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쩌면 나눠서 치료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며칠간은 치료만 받아야 할 텐데, 그 경우 루이나의 성격상 귀찮다고 치료실에서 안 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면 갑자기 치료 말고 마법을 원할 수도?

레온은 화상 상태로 여관에 돌아오는 루이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상상 속의 루이나가 말한다. ‘레온 님. 치료는 다음에 유료로 받기로 했어요. 대신 교국에 있는 모든 마법을 챙기려고요. 너무 그럴듯해서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

한참을 걷자 익숙한 들판이 등장했다. 교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레온이 애용하던 들판이었다.

들판에 들어서며 레온은 루이나와의 여정을 떠올렸다.

루이나와의 첫 만남은 수면제에 찌든 상태에서 일어났다. 용병의 함정에 빠져 위험하던 순간, 루이나는 환상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마녀처럼, 매혹적으로 레온을 구해줬다.

그 뒤로 루이나는 꾸준히 레온을 도왔다.

포도로 유명한 마을에 가 촉수 괴물을 처치했고, 치료로 유명한 온천에 가 악신의 사제를 쫓아냈으며, 황도로 가 황제를 구했다.

예언의 마녀를 찾아가 성배의 정보를 얻어냈고, 대마법사를 만나 성배의 위치를 알아냈으며, 미궁을 탐사해 기어코 성배를 손에 넣었다.

성배를 뺏어간 악신의 교단을 응징한 건 덤이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그 여행이, 꽤 재밌었던 레온이었다.

팔라딘 검증 절차를 담당하던 사제는 레온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레온은 많이 달라졌다.

오직 악신의 교단을 멸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레온은 아예 다른 사람인 수준이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 답은 너무나도 명료하고, 간단했다.

루이나.

사람을 인도하는, 등불의 마녀.

그녀가 인도하는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나 하나는 확실했다.

그 인도를 따라가면, 반드시 달라졌다.

어떤 방향으로든.

레온은 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빛나고, 별빛이 쏟아진다.

루이나와의 여정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제 레온은 다시 교단의 임무를 수행해야 됐다.

루이나도 마법을 찾아 세상을 떠돌아야 됐다.

그게, 조금 아쉬운 레온이었다.

끝나지 않는 만남은 없다.

모든 인연은 끝이 있기에 아름다웠다.

그래도, 그렇긴 해도.

마지막으로, 축제라도 같이 즐겼으면 참 좋았을 것 같은―.

“누가 보면 세상이 끝난 줄 알겠어요.”

익숙한 목소리.

레온은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내렸다.

그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옆에서 인기척이 나면 누구나 확인하기 마련이니까.

레온은 인기척을 낸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별빛이 담긴 백금색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연초록 눈동자가 세상을 담고, 그 아래 자리 잡은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달빛에 반짝였다.

그 세상과 동떨어진, 정말 다른 세상의 존재 같은 분위기에, 레온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여신?”

“마녀에서 여신이라니. 저도 신분 상승을 많이 했네요.”

레온의 말에 여자가.

루이나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