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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성배인가요.”
나는 새하얀 술잔을 유심히 살폈다.
독특한 문양이 양각된 술잔은 태양 아래에서 아름답게 빛났는데, 확실히 톨트피어가 만들었던 가짜 성배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 되나.
혼자 선명도가 3배쯤 높은 느낌이었다.
나는 성배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레온에게 건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것도 텅 비어 있어서 많이 아쉽네요.”
“마지막 힘을 바이스가 탐욕의 그릇을 만드는 데 썼으니까요.”
가짜 성배와 마찬가지로 진짜 성배도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진짜 성배 쪽은 내용물이 텅 비어도 성배 자체를 완전소모해 최후의 기적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잠깐 고민했었다.
그냥 성배를 완전소모해서 영생을 얻고 치료는 나중에 따로 받으면 이득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허나 아쉽게도 성배는 소문과 다르게 영생을 내려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영생을 내려주긴 했는데, 일반적인 영생과는 달랐다.
진짜 성배를 직접 손에 넣고 안 건데, 성배의 영생 방식은 회춘에 가까웠다. 늙은 사람을 젊게 되돌리는 거지 수명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아직 젊은 나한테는 쓸모가 없는 능력이었고, 때문에 나는 깔끔하게 성배를 교국에 전하기로 했다.
가짜 성배와 달리 진짜 성배는 자연적으로 힘이 차올랐는데, 힘이 차는 속도를 생각하면 100년은 지나야 기적을 한 번 쓸 수 있었다.
정말, 여러모로 가성비가 안 좋은 물건이었다.
“그래도 가짜 성배 말고 진짜 성배를 얻어서 마음이 편하네요. 이걸로 교국이 뒤통수를 칠 일은 사라졌어요.”
“루이나 님. 그거 아직도 걱정 중이었구나.”
“교국은 주의해야 돼요.”
돈에 미쳤고, 7개로 나누어진 파벌이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난장판을 벌이는 곳이다.
어떤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안 이상했다.
“레온. 우리는 남은 잔당을 추적하겠네. 자네는 자네의 일을 하게나.”
“부탁드립니다.”
하이블은 레온의 어깨를 툭툭 치고 떠났다.
바이스는 죽었지만, 아직 탐욕의 잔당은 남았다. 이걸 처리해야 모든 게 깔끔히 마무리됐다.
도울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성배 운반이 더 중요하다는 게 하이블의 의견이었다.
하이블을 떠나보낸 나는 몸 안에 떠도는 마법을 점검했다.
고유 마법, .
참 재밌는 마법이었다.
는 굳이 신경을 할애하지 않아도 늘 나와 연결됐다. 상시 발동인 것이다.
이 엔 다양한 기능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기능만 소개하면 그거였다.
모든 현상의 이전.
마법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공간이 모든 현상을 대신 빨아들이는 것.
따라서 만 있으면 방어력이 급격히 상승했는데, 이건 비단 물리적인 방어력만 말하는 게 아니었다.
거기엔 정신적인 방어나, 마법적인 방어도 포함됐다.
내가 여태까지 전대 탐 원소 보유자인 라이젤이나,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인 바이스에게 무기력하게 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치가 기형적이니까.
언젠가 말했듯 나는 특정 파라미터는 한계를 뚫을지라도 다른 능력치는 그에 비해 처졌다.
덕에 고유 마법을 마음껏 써도, 실제론 5위계가 아니라서 생기는 문제였다.
내가 정상적인 5위계였으면 라이젤의 에 쉽게 정신 공격을 당하지도, 바이스의 탐욕의 미로에 쉽게 빠지지도 않았을 거였다.
그만큼 고위 마법사는 완성도가 높았다.
3위계…였다가 어제 4위계가 된 나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사실 공격력을 제외하면 모든 게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물론 공격력 하나만큼은 고위 마법사도 접어주는 수준이긴 한데, 공격력만 믿고 세상을 돌아다니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두 차례나 보여주지 않았나?
따라서 또 정신 공격에 당해 처음 보는 남자를 친오빠라며 따르고 싶지 않으면 다른 능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고, 그 부분에서 는 탁월한 성능을 보여줬다.
이제 나는 정신 공격도, 특수한 마법 공격도 어지간하면 방어가 됐다.
의 유틸적인 성능은 상당했다. 그만큼 다른 능력치가 거의 0에 가깝긴 했지만, 나는 이게 더 좋았다. 한 우물을 파는 대신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게 최고지. 다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보다는.
이 를 탐 원소로 가져온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이러면 여기서 더 성장이 안 되잖아.
바이스 이 녀석, 마지막까지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마법 하나에 바로 반죽음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해.
니가 그러니까 으로 거래 시도 자체를 못 했잖아.
에휴.
작게 한숨을 쉰 나는 이번엔 불꽃을 피웠다.
등불 안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나는 원소에서 여러 개의 특징을 발견했다.
화염에서 공평과 포식의 특징을.
물에서 변화의 특징을.
바람에서 연결의 특징을 말이다.
이중 포식에선 소화와 해체의 원리를 발견하며 3위계가.
공평에선 규칙과 제약의 원리를 발견하며 3위계가 됐는데.
이번에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진정한 공평이라면, 내가 원하는 걸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된다.
‘조약’ 원리를 발견하며 4위계에 오른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바이스의 덕이 컸다.
탐욕의 미로를 떠돌며 공평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거든.
탐욕의 미로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오고, 그와 동시에 공평에 대한 사유 또한 하나둘씩 돌아와 중첩되다가 현실로 돌아온 직후 펑하고 터진 건데, 바이스가 아니었으면 4위계에 오를 때까지 몇 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마법 수련 시켜줘, 성배도 진짜로 바꿔줘, 고유 마법도 줘.
당신을 켈튼과 원장 수녀님 옆에 놓겠습니다.
항상 고생이 많습니다. 바이스.
다음 생에 만나면 돈도 주세요.
감사합니다.
“루이나 님은 가만히 보면 나보다 돈을 더 밝히는 거 같아.”
“저는 돈을 밝히는 게 아니에요. 원활한 마법 활동에 도움을 주는 돈이 좋은 거예요.”
“그게 그거지.”
“달라요. 돈을 좋아하는 건, 이를테면 크리스 님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니까요.”
“돈이 최고야.”
나는 벌꿀주를 들이켰다.
돼지 통구이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나는 코를 찌르는 고소한 냄새를 음미하다가,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 접시에 얹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먹는 술과 고기.
이것만큼 맛있는 것도 드물었다.
나는 고기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레온 님도 이제 어엿한 성기사가 됐네요. 성물 강림이라니.”
“운이 좋았습니다.”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빌었기에 성물 강림에 성공했나요.”
“운이 좋았습니다.”
“혹시, 누군가를 구해야 된다는 그런 마음이었나요?”
“운이 좋았다고요.”
이겼다.
만족스럽게 합을 겨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대화지.
“루이나 님. 방금 그건 대화가 아니야. 큰 착각을 하고 있어.”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크리스의 지적을 일축하고 파이프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직접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천장에 흘렸다.
그러자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제리였다.
“제리 님. 혹시 할 말이 있나요?”
“아닙니다.”
“혹시 불을 붙일 기회를 놓쳐서 아쉬우신 건가요?”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우리의 대화에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루이나 님. 왜 제리 님의 일자리를 뺏어. 담뱃불을 루이나 님이 붙이면 제리 님은 이제 뭘 하라고.”
“할 일이야 많지 않을까요. 5위계 마법사의 할 일이 담뱃불 말고 없으면 그건 그거대로 심각한데요.”
말을 하다 보니 새삼 일행의 수준이 높은 게 체감됐다.
성물 강림까지 가능한 성기사, 레온.
5위계 마법사, 제리.
천재 연금술사, 뮤란.
고위 마족, 서큐버스 크리스.
대마법사(예정)의 제자, 노아.
거기에 고유 마법을 3개나 보유한, 사상 최연소 대마법사가 될 나까지.
이거 못 막습니다.
“스승님.”
“네.”
“이제 어쩔 거야?”
노아가 질문한다.
이제 어쩔 거냐니, 그거야 뻔하지.
“성배를 교국으로 옮겨야죠.”
“그래?”
“갑자기 왜요.”
“아니 별건 아니고.”
노아는 물을 홀짝이곤 말을 이었다.
“늘 스승님이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내일 당장 출발하려고요. 이거면 변수가 없을 거예요.”
나는 성배를 훔쳐 간 적과 마주 봤다.
녀석은 마족 특유의 기운을 풍겼는데, 그 이질적인 기운은 사람의 신경을 마구 긁었다.
마족.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주민.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건 시간을 일주일 전으로 돌려야―.
“루이나 님? 뭐해?”
갑자기 크리스가 말을 건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들었다.
“잠깐 상상 좀 해봤어요.”
“무슨 상상?”
“성배를 기어코 마족에게 빼앗긴 상상이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우리 마족은커녕 산적도 안 만났잖아.”
왜냐니.
그야 재밌으니까.
“루이나 님은 가끔 이상한 짓을 하더라.”
“가끔이요?”
“말실수했네. 항상 그러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노아에게 말했다.
“가끔은 제 의도대로 되는 일도 있는 법이랍니다.”
“신기하네.”
“루이나 님! 저기 봐!”
크리스의 말에 나는 차분히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에 단단하게 솟은 새하얀 성벽이 보인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교국, 바트리안.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종착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