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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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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레온은 우유를 마시며 생각했다.

드디어 몇 달간의 여정이 끝난다.

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연이었다.

레온은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서 루이나가 벌꿀주를 들이켠다.

이 세계엔 화상을 입은 화염 마법사를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그런 놈들은 높은 확률로 위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지졌고, 그런 짓을 정상인이 할 리 없다는 판단하에 생긴 격언이었다.

전신 화상 마법사, 루이나와의 첫 만남을 레온은 떠올렸다.

늦은 밤, 달이 밤하늘에서 빛날 때,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레온은 루이나와 만났다.

그 세상 위에 선 듯한 분위기 속에서, 무자비하게 용병들의 숨통을 끊었던 루이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등불을 든 사람을 홀리는 마법사.

마법밖에 모르는 루이나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와의 동행이 익숙해진 레온이었다.

레온은 입맛을 다셨다.

루이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전혀 믿기지 않겠지만, 루이나는 사람을 잘 파악했다.

잘 파악하는 것과 잘 맞춰주는 건 다른 얘기라 그렇지.

루이나는 모든 가치관 위에 마법이 올라가 있는 사람이다.

그 무엇보다 마법이 우선이었다.

그런 루이나가 때때로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함께하기로 했는걸.

물론 루이나와의 여정이 재밌긴 했다.

교국에서 한가지 목표를 위해 검을 휘두르던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 레온은 거의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악신의 사제. 그 증오스러운 이름을 레온은 혀 안에서 굴렸다.

부모님이 불타 죽은 날. 그때부터 레온의 목표는 하나였다.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자신을 구해줬던 전대 팔라딘처럼, 팔라딘이 돼 악을 멸하는 것.

그 목표도 이제 곧이었다.

곧, 레온은 팔라딘이 된다.

그게 기쁘면서, 어딘가 묘한 레온이었다.

아직 레온은 팔라딘의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좀 더 노력해야겠지. 진짜 팔라딘이 되도록.

속으로 다짐한 레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온 님. 어디 가시나요.”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혹시 아직도 성배의 정보를 모아야 된다고 착각하시는 거 아닌가요? 이제 저희는 성배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요.”

“산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레온은 이런 식으로 움직였었다.

마을에 도착하면 늘 펍에 죽치고 앉아 정보를 모았었다.

그동안 레온이 얻은 정보는 참 많았다. 세상은 뜬소문으로 가득 찼으니까.

결국 그렇게 모은 정보가 성배 획득에 큰 도움이 안 된 걸 생각하면, 뜬소문은 뜬소문으로만 취급해야 되는 이유가 있었다.

레온은 노스 스탈라 우드의 거리를 거닐었다.

이제 막 도착했지만, 마을의 풍경이 익숙한 레온이었다.

이 사람이 거의 없는 적막한 마을.

레온의 고향 마을과 비슷했다.

지금은 불타 사라진, 레온의 고향 마을과 말이다.

레온은 문득 나중을 생각했다.

나중에, 먼 훗날에, 레온이 은퇴할 시기가 찾아왔을 때.

그때면 이런 마을에서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레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느긋이 앉은 자신의 옆에서 루이나가 조잘대는 걸까. 의문이었다.

만난 지 1년도 안 됐건만, 벌써 루이나는 레온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만큼 주변을 이리저리 흔드는 사람이었다.

상상 속 루이나는 여전히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순간 레온은 루이나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지금도 루이나는 옛 모습의 흔적은 남아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흔적이었다. 거기서 원모습을 추측하는 건 어려웠다.

뭐, 하려면 못 할 건 없었다. 당연히 가능했다.

허나 그러면 정확하지 않았다.

레온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루이나의 모습이 궁금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의문이지 않나?

어떤 얼굴이었기에 아무 망설임 없이 온몸을 불구덩이에 집어넣은 건지 말이다.

타인의 외견에 관심이 없는 레온이었지만, 루이나는 예외였다.

루이나잖아.

루이나는 어쩔 수 없지.

실컷 산책을 한 레온은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나긴 야영으로 지친 몸을 좀 쉬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여관의 문을 열자마자 레온의 사고가 정지했다.

여관 바닥에 일행이 누워 있었다.

“이거, 빠져나간 사람이 있었군.”

검은색 로브. 오만한 말투.

무엇보다 레온의 육감을 콕콕 찌르는 역겨운 감각까지.

악신의 사제.

레온이 증오하는, 이 세상에 뿌리내린 악.

레온은 검을 뽑으며 악신의 사제에게 달려들었다.

검은색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레온의 검을 막는다.

직후 레온의 검에서 신성력이 뿜어졌다.

순백의 신성력과 칠흑의 신성력이 맞부딪히며 강한 충격이 퍼진다.

악신의 사제가 웃는다.

“햇병아리 성기사치고, 검이 꽤 무겁군.”

레온은 대꾸하지 않고 일행의 상태를 확인했다.

죽지는 않았다.

다만 깨어날 기미도 안 보였다.

음식에 수면제라도 탄 건가?

대체 여기는, 뭐 하는 마을이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악신의 사제의 손짓을 따라 허공에 검은색 검이 늘어선다.

신의 소유물을 신성력으로 ‘재현’하는 단계의 성법은 사제의 기본 소양이었지만, 저만큼 능숙하면 이미 기본은 넘어섰다.

어쩌면 ‘강림’을 사용할 줄 아는 사제일지도 몰랐다.

틈을 줘서는 안 됐다.

레온은 기민하게 검을 움직였다.

교국은 항상 기구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모았다. 불행으로 가득 찬 세상인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레온은 그렇게 모인 아이들 중 단연코 압도적인 재능을 보유했다.

레온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은 기사가 될 아이가 성기사의 길을 걷는다고 탄식을 뱉곤 했다.

성기사도 검을 쓰지만, 결국 성기사와 검술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성기사의 강함은 검의 실력이 아닌 얼마나 신에게 가까운가로 결정이 됐으니까.

때문에 레온은 굳이 따지면 재능을 낭비 중이었으나, 그걸 레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성기사가 검 실력이 좋아서 나쁠 게 없기도 했고, 레온이 원하는 건 성기사의 길에 있었으니까.

악신의 교단을 멸하기 위해 레온은 수많은 검술을 갈고닦았다.

그 끝에 탄생한 것이 레온류.

수많은 검술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레온만의 검술 유파였다.

쏟아지는 성법을 레온은 검으로 쳐냈다.

최적의 경로로 낭비 없이 이동한 검은 굉장히 빨랐다.

파이론류. 쾌(快)의 묘리가 담긴 방어 검술.

루이나도 익힌 파이론류는 이렇게 수많은 공격을 혼자서 막을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악신의 사제들이 멈추지 않고 성법을 발동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형태의 낫이 빙빙 돌며 레온의 목을 노리고, 레온은 그걸 오히려 앞으로 이동하며 전부 회피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빛을 본떠 만든 검술이, 신속에 도달하며 악신의 사제를 반으로 갈랐다.

촤아악―. 쏟아지는 붉은 빗속에서 레온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감히!”

번쩍. 하늘에서 빛기둥이 떨어진다.

강림.

신의 소유물을 신성력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아예 ‘대여’해오는 것.

당연히 진품은 아니다. 진품 대여는 성녀나 성자쯤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적이었으니까.

허나 가품이어도, 레플리카여도 그 원본은 신의 소유물.

어중간한 능력자는 감당 못 하는 위력을 가졌다.

레온은 입술을 강하게 씹으며 검을 꽉 쥐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뭔가, 뭔가.

뭔가 돌파구가 필요―.

“실내에서 성법을 마구잡이로 쓰다니. 예의가 아니네요.”

불꽃이 허공을 달린다.

12갈래로 나뉜 불꽃의 구체가 붉은 띠를 남기며 악신의 사제를 덮치고, 이어서 나무 병사가 적들을 구속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온은 악신의 사제를 모조리 베어 넘겼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레온은 자신을 도와준 마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일어나셨군요.”

“운이 좋았어요.”

루이나는 등불을 짤랑이며 밝게 대답했다.

“크리스 님이 실수로 제 벌꿀주를 엎었거든요. 그래서 수면제를 조금만 먹었나 봐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일행의 최대 전력인 루이나가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무려 ‘강림’을 사용하는 악신의 사제를 이토록 손쉽게 처리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긴 악신의 사제가 숨은 마을인가 봐요.”

“이만큼 소란이 일어났음에도 조용한 걸 보면 확실합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루이나가 묻는다.

레온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전부 제압합시다.”

“좋아요.”

레온은 루이나와 함께 여관을 벗어났다.

“창세교의 말단이!”

지하 공간을 파놓고 음침하게 숨어 지내던 악신의 사제를 모조리 검거한 레온은 가쁜 숨을 내쉬며 노획물들 확인했다.

“여기 다른 악신의 교단의 거점이 그려진 지도입니다.”

“많네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검거하죠.”

“성배는요?”

“이대로 놔뒀다가는 어떤 민간 피해를 발생시킬지 모르니까요. 기껏 얻은 거점 정보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고요. 빠르게 처리해요.”

“좋습니다.”

레온은 여관으로 돌아가 일행과 함께 옆 마을로 떠났다.

지하에 고문실을 장만한 악신의 교단을 쓸어버린 레온은 혹독한 고문을 당한 아이 하나를 구해냈다.

아이는 레온을 유독 따라다녔는데, 그 모습에 루이나가 말했다.

“제자로 받는 게 어떤가요. 어차피 교단은 유명한 고아 수집가잖아요.”

“교단을 이상하게 부르는 건 그만둬주시기 바랍니다.”

레온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자라.

레온의 인생 계획에 제자는 없었지만, 이미 루이나를 통해 사제 관계가 뭔지 배운 레온이었다.

한 명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온은 아이를 열심히 가르쳤다. 놀랍게도 아이에겐 재능이 있었다. ‘나도 레온처럼 성기사가 될 거야. 아이의 말버릇이었다.

레온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악신의 교단을 불태웠다.

옆에는 항상 아이가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납치됐다.

범인은 악신의 교단이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레온은 악신의 사제들을 전부 몰살했다.

피투성이의 거점에서, 레온은 기절한 아이를 들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레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점을 빠져나왔다.

그런 레온에게 루이나가 말을 걸었다.

“이제 뭘 하실 건가요?”

“악신의 교단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은 올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악신의 교단을 박멸할 생각이군요.”

“네.”

“도와드릴게요.”

레온은 루이나와 눈을 마주쳤다.

루이나는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딘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그래.

루이나와 함께라면, 뭐든지 가능할지도 몰라.

자신감이 생긴 레온은 아이를 등에 업고 다리에 힘을 줬다.

숨겨진 악신의 사제의 거점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갈 길이 멀었다.

그리고 레온은 자리에 멈춰 섰다.

“…….”

문득, 여태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던 중, 강한 의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레온은 루이나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루이나 님. 혹시 마법 수집은 그만두셨습니까?”

레온의 물음에 루이나는 몸을 빙글 돌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레온 님. 저는 늘 마법을 모으잖아요.”

“그렇군요.”

레온은 검을 뽑았다.

그 후 눈을 가라앉혔다.

루이나는 언제나 마법이 우선이었다.

그 무엇도 루이나에겐 마법보다 뒤였다.

즉, 모든 걸 제쳐놓고 헌신적으로 레온을 도와주는 저 루이나는 가짜였다.

“스승님?”

레온의 등 위에서 아이가 레온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이름이 뭐였더라?

레온은 가짜 루이나와 함께한 기나긴 여정을 되새겼다.

루이나가 가짜면 그 여정도 가짜였다.

여정이 가짜라면 이 세계도 가짜였다.

이 세계가 가짜라면, 레온도 가짜였다.

이걸 탈출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레온은 검을 거꾸로 잡았다.

직후.

강하게 찔렀다.

“허억.”

꿈에서 깨어나듯 레온은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밤이 된 세상에서 레온은 주변을 훑었다.

외딴 숲속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가물가물한 기억에 레온은 머리를 짚었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생각났다.

이건 전부 그 녀석의 짓이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레온은 노스 스탈라 우드에 온 첫날을 떠올렸다.

바이스.

그 악신의 사제 놈을 만났던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