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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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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온. 그 이름을 듣자마자 세피아는 기겁했다.

전대 공작이자 현 제국제일검인 발리온이 왜 여기에?

“뭘 그리 놀라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발리온은 능글맞게 말하며 거리를 조절했다.

그 능숙한 움직임에 세피아도 정신을 차렸다.

세피아가 아는 발리온은 노인에 가까운 나이였다. 저런 청년이 아니라.

즉 저건 발리온이지만 발리온이 아니었다.

어린 발리온이 구현된 것이었다.

검의 끝을 본 발리온은 지금의 세피아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겠지만, 이런 짧은 거리도 좁히겠다고 발놀림을 하는 어린 발리온은 얘기가 달랐다.

발리온이 천재라면 세피아도 천재였으니까.

황금 마탑이 기어코 찾아낸 마법의 정수를 담을 그릇.

‘별의 운명’을 틀어버릴 마지막 퍼즐.

그게 세피아였다.

따라서 아무리 발리온이라도 같은 나이라면 황금 마탑이 전력으로 육성한 자신 쪽이 더 강하다고, 그렇게 세피아는 생각했다.

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정렬하며 발리온과의 거리를 벌렸다.

마법사와 검사의 기본 전투 양상은 결국 거리 싸움이었다.

거리를 좁히려는 검사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는 마법사.

그래서 원래라면 이미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부터 세피아가 불리하겠지만, 일류 마법사는 그런 약점마저 보완한 존재.

몇 년 전인 15살에 이미 4위계가 된 세피아에겐 검사와의 싸움을 대비한 수많은 방법이 준비돼 있었다.

원반형 암석 무기에 올라타며 세피아가 뒤로 날았다.

직후 발리온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졌다.

쏟아지는 원소의 빗속에서 발리온이 검을 빙글 돌린다.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2식.

암룡비상(暗龍飛上).

무거운 기류가 원을 그리고, 모든 마법이 바위에 부딪힌 달걀처럼 부서진다.

“수십 개의 마법을 사용하는 어린 마법사라. 이런 녀석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발리온은 차분히 세피아를 분석했다.

세피아는 단순히 원소를 던지는 게 아닌, 다양한 원소로 구성된 수십 개의 마법을 던지는 마법사였다.

드물다 못해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고, 그런 만큼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면 소문이 귀에 들어오는 게 당연했는데, 정체를 전혀 모르겠으니 발리온의 입장에선 이상한 것이다.

실제로 세피아의 유명세는 엄청났지만, 이곳은 가상 세계.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유명해봤자 가상의 존재인 발리온이 알 턱이 없었다.

“이름이라도 말해봐라. 이름이 뭐지? 슈린?”

“몰라도 돼!”

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발사하며 특기 마법을 준비했다.

발리온의 눈에 검은색 빛이 맴돈다. 연단 마법의 1차 각성, 신체 강화였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모든 원소의 무기를 베어낸 발리온은 허공을 가르며 세피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불의 창이 발리온을 꿰뚫었다.

특기 마법, 멸각(滅角)이 순조롭게 발동된 것인데, 그럼에도 세피아는 이를 악물었다.

발리온이 멸각을 밟고 그대로 앞으로 내달린 탓이었다.

저런 몸이 날랜 검사를 상대로는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정교한 마법이 유효했다.

이러면.

물이 솟아올라 형태를 갖췄다.

촤르륵. 물의 사슬이 세피아의 몸 주위를 맴돌다가, 이내 발리온을 향해 길어졌다.

마치 복제되듯 새로운 고리가 추가되며 물의 사슬이 발리온에게 접근하고, 그걸 발리온은 멸각을 밟아 하늘을 날며 피했다.

콰앙! 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질량이 대지에 박힌다. 멸각 또한 발리온의 등 뒤 먼 곳에서 폭발한다.

발리온은 허공을 유영하며 검 끝을 세피아에게 겨눴다.

모든 공격을 피했으니 이번엔 자신의 차례다, 라고 생각하는 게 훤히 보였다.

커다란 착각이었지만.

촤르륵! 물의 사슬의 중간 부근에서 새로운 고리가 추가되며 발리온을 노렸다.

챙! 발리온이 물의 사슬을 쳐내자 마치 금속과 금속이 부딪친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깔끔한 방어였다. 과연 미래의 제국제일검다웠다.

허나, 세피아의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청(聯靑).”

고리가 증식한다.

고리가 연결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게 사슬의 어느 부위든 가리지 않고 고리가 생겨났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사슬이 동시에 발리온을 몰아세웠다.

잡았다.

미래의 제국제일검을 이겼다는 기쁨에 세피아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발리온이 나직이 읊조렸다.

“마법은 뛰어나지만, 그걸 연계하는 솜씨는 영 별로군. 실전 경험을 더 쌓는 것이 좋겠어.”

발리온이 검을 들었다.

드라고밀류는 드래곤을 본떠 만든 검술이었다.

마법의 종주이자 생명의 정점인 드래곤을 동경하는 인간은 많았다.

먼 옛날, 신들이 뛰놀던 시절에도 밀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했던 게 드래곤이었으니까.

드라고밀류는 총 7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술이었다.

여태까지 발리온이 쓴 건 총 2개의 초식. 1식과 2식이었다.

각각 적의 방어를 꿰뚫을 때와 적의 공격을 방어할 때 효과적인 초식이었는데, 그럼 이렇게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올 때는 어떤 초식이 효과적이냐.

그건 바로 3식이었다.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3식.

암룡천류(暗龍千流).

검은 선이 허공에 길게 남는다.

그리고 모든 물의 사슬이 반으로 갈라져 땅으로 낙하했다.

세피아는 다급히 마법을 준비했지만, 그것보다 발리온의 몸이 가속하는 게 더 빨랐다.

세피아가 탑승한 원반형 암석 무기에 올라탄 발리온은 세피아의 목에 검을 겨누며 물었다.

“그래서 정체가 뭐―.”

콰아앙!

원반형 암석 무기가 폭발한다. 세피아는 새로운 마법에 탑승하며 전력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일단.

일단 재정비를 해야―.

…어라.

세피아는 의아함에 입을 뻐끔거렸다.

왜, 세상이 점점 기울지?

왜, 점점 몸에 힘이 빠지지?

철푸덕. 세피아가 추락한다.

바닥에 떨어진 세피아는 땅을 기다가, 밑을 바라봤다.

다리가 없었다.

“이거 버릇이 고약한 아가씨구만.”

뒤이어 찾아온 격통에 세피아가 비명을 질렀다.

발리온은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다가, 천천히 세피아에게 접근했다.

“이만하면 됐다.”

발리온의 검날이 햇빛 아래에서 번뜩이고, 세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생각했다.

기습에 당하는 순간에도 정확히 적의 다리를 잘라버리는 검기.

이게 미래의 제국제일검?

아델리안 이 정신 나간 여자.

저런 걸 풀어놓으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이 발리온의 검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고, 그만 쉬어라.”

발리온의 마무리 대사에 세피아는 눈을 감고 이어질 고통에 대비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이상함에 세피아는 눈을 떴다.

검었던 세상이 밝아지고, 여전히 검을 든 채로 서 있는 발리온이 세피아의 시야에 잡혔다.

다만 발리온은 세피아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리온이 입을 연다.

“이거 손님이 많군.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파티라도 열렸나?”

“파티긴 해요.”

익숙한 목소리가 세피아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새로 등장한 불청객이 말을 이었다.

“나중에 제자를 키우면 마법을 좀 더 많이 만들라고 전해주세요.”

가상의 공간엔 장점이 많았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거였다.

팔이 잘려도, 다리가 잘려도, 심장이 꿰뚫려도, 어디까지나 가상에서의 일.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때문에 여기에서라면 무슨 일을 해도 켈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은 게 됐다.

꿈에서 자해를 했다고 켈튼의 약속을 어긴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마법을 즐기며 나는 느긋하게 탑을 올라갔는데, 10층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깜빡였다.

언젠가 본 여자가 다리가 잘려 땅을 기어다니는 탓이었다.

대화를 들어보면 여자의 다리를 자른 남자가 발리온인 거 같은데, 나는 거기서 감탄했다.

아델리안 이 인간 하다 하다 발리온도 준비했어?

뭐, 전성기 발리온이 아닌 어린 발리온을 준비하긴 했지만, 발리온은 명실상부 제국제일검. 싹수부터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봐라.

황금 마탑의 미래가 저 꼴이 되지 않았나?

“내 이름은 발리온 드라고밀이다. 네 이름은 뭐지?”

“루이나예요.”

“루이나. 목적이 뭐냐.”

“그건 말이죠.”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10층에 붙은 이름은 ‘협동 전투’.

즉 발리온은 1:1로 싸우라고 만들어놓은 적이 아니었다.

다 같이 힘을 합쳐 쓰러트리는 적이었지.

고작 20살 언저리의 나이인 발리온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세피아를 사족보행 짐승으로 만든 걸 보면 적어도 연단 마법 2단계 각성엔 진작 도달한 게 분명했다.

따라서 지금 가장 현명한 판단은 시간을 끌며 새로운 아군이 10층에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아예 스테이지를 재시작해 세피아와 함께 전투를 하는 거였지만….

나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말했듯 가상의 공간엔 장점이 많았다.

여기서는 죽음조차 가짜였다.

그런 곳이다.

굳이,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화륵. 등불 안에 불꽃이 타올랐다.

허공에 붉은 선이 그어진다. 구구궁. 나무 거인이 땅에서 솟아오른다.

폭발을 검으로 가르며 발리온이 내게 달려들고, 나는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법 마음껏 써봐.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