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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얻으려면 친구가 되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대체 언제 쓰는 거냐.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시키세요. 제가 쏠게요.”

“마법 안 준다니까.”

헤이즈는 자리에 앉아 멀드 에일을 주문했다.

멀드 에일은 쉽게 말해 맥주 버전의 뱅쇼로, 따뜻하게 데운 맥주에 향신료, 과일,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음료였다.

당연하지만 해피 중세랜드의 서민 음식 중 하나였다.

“황실에 오래 머물렀다고 근본이 사라지진 않는군요. 저는 또 헤이즈 님이 저희를 버리고 업타운으로 가버린 줄 알았잖아요.”

“방음 마법 발동 중 맞지?”

“아니요?”

“야이.”

“농담이에요.”

나는 벌꿀주를 주문하고 재차 물었다.

“심부름 중 아니었어요? 이렇게 눌러앉아도 돼요?”

“주문한 음식 기다리는 중에 가볍게 한잔하는 거잖아. 이 정도는 괜찮아. 그리고 너 내가 밑바닥 출신인 건 어떻게 알았어.”

“손이 거칠어서요.”

“검사는 다 손이 거칠어.”

“하지만 같은 검사인 레온 님이랑은 결이 다르던데요?”

“레온은 또 누구야….”

사람을 홀리다 못해 남자마저 꼬시는 초절정 미소년 레온을 몰라?

“섭섭하네요.”

“별게 다 섭섭하다.”

헤이즈는 멀드 에일을 홀짝이고는 작게 말을 이었다.

“성은은 아쉽게 됐어.”

“그러니까요. 얼마나 아쉬웠으면 제가 눈물을 줄줄 흘렸겠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전혀 안 아쉽게 보이는데?”

“실제로 저는 안 아쉬워요. 언젠가 되찾아 올 거거든요.”

“황자를 상대로?”

“9위계 마법사 앞에선 그 무엇도 의미를 잃잖아요.”

“8위계만 돼도 의미를 잃지.”

헤이즈는 피식 웃고는 턱을 괴고 나를 봤다.

굉장히 익숙한 시선이었다.

그러니까 환생 전 중학교 시절, 마법을 익히기 위해 등교를 하지 않고 도서관에 처박혀 있을 때, 우연히 나와 마주친 동급생 여자애가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신기한 생물을 보는 표정이라는 뜻이 맞다.

“저는 환상의 동물이 아니에요.”

“마법은 모아서 어디다 쓰게.”

“저만 보면 다 그 소리를 하네요. 어디 쓰려고 모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쓰고 싶어서 모으는 거지.”

“그래?”

헤이즈는 눈을 굴렸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돼서인데, 저게 당연했다. 이건 보통 공감을 못 해줬다.

우표 수집 취미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내가 똑같은 기전을 가졌다 착각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나는 수집벽과 거리가 멀었다.

그것보다 더 깊고, 그것보다 더 좁은 의미로 나는 마법을 대했다.

“몇 위계야.”

“3위계예요.”

“내가 마법을 준다고 치면 대체 어떻게 받아 가는데. 배우는 건 아니라며.”

“특급 비밀이에요. 하지만 헤이즈 님은 우수 고객이니까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끼익. 내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마치 누군가 세상을 오려 붙이기라도 한 듯,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건….”

“이걸로 헤이즈 님의 마법을 영구적으로 양도받을 수 있어요.”

“고유 마법인가.”

마법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질적인 설명에 헤이즈는 바로 정답에 도달했다.

타인의 마법을 양도받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고유 마법이 아니면 불가능한 신기였다.

“뭐든지 되는 거냐?”

“네.”

“고유 마법도 양도가 된다고?”

“이미 한 분 만족하며 거래하셨어요.”

“그럼 내 특기 마법, 적영(寂影)은 당연히 되겠네.”

헤이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기사여도 마법 하나를 특기 마법 수준으로 끌어올린 헤이즈였다.

그만큼 마법을 ‘거래’하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설마 타인의 원소 적성도 거래가 가능하냐? 재능도?”

“그건 아니에요.”

“그나마 인간미가 있네.”

사실 원소 적성은 거래가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났지만, 이건 엄밀히 따지면 재능이 늘어나는 것과는 달라서.

굳이 따지면 자질이 늘어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새 원소 적성을 키우려면 화염 원소 적성을 깨닫기 위해 난리 쳤을 때보다 더 고생해야 됐지만, 원소 적성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었네?”

“제가 대단한 게 아니라 제 스승님이 대단한 거예요.”

“스승?”

“이 마법을 스승님에게 받은 거거든요.”

“3위계가 고유 마법을 가지고 있어서 이상하긴 했는데, 대단한 스승을 뒀네….”

헤이즈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애매한 반응에 나는 헤이즈의 마음속을 읽어버렸다.

“혹시 헤이즈 님의 스승님도 대단하신 분인가요?”

“어마어마하신 분이지.”

헤이즈는 입맛을 다시다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 스승님은 아마 너도 알 거야. 제국 최강의 검이거든.”

“발리온 드라고밀 님을 스승으로 뒀군요. 확실히 엄청난 분을 스승으로 뒀네요?”

“분에 안 맞는 사람을 스승으로 뒀지.”

헤이즈가 잔을 만지작거렸다.

내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켈튼이 스승인 아델리안을 언급할 때마다 저랬으니까.

“헤이즈 님.”

“왜.”

“발리온 님이 헤이즈 님을 선택한 건 이유가 있어서예요. 제 스승님도 아델리안 님에게 선택받았거든요? 그걸 스승님은 늘 의아해했어요. 자신은 대마법사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요. 그런데 스승님이 남긴 마법을 보세요. 8위계 마법사가 선택할 만한 재능이 맞죠?”

“…….”

헤이즈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헤이즈에게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제가 보기에 헤이즈 님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 건 검과 마법을 둘 다 하려고 해서 그래요. 마법을 저에게 넘기세요. 그러면 모두 행복해져요.”

“마지막 말만 아니었어도 내가 감동 받았을 텐데 말이야.”

“그럴 수가.”

열매가 익기 전에 너무 빠르게 수확했나.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다.

“여기 구운 밤 나왔다.”

“감사합니다.”

헤이즈는 포장된 구운 밤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나는 그런 헤이즈의 옆에 서서 거리를 걸었다.

헤이즈가 말했다.

“야.”

“네?”

“왜 따라 와.”

“뭔가 더 도와드릴 거 없나 해서요.”

“그래도 마법 안 준다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고객의 원하지 않는다면 찾아가 마음을 바꾼다. 내 장사 모토였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쉰 헤이즈는 막 구운 밤 하나를 던졌다.

그걸 내가 받아 들자 헤이즈는 짧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거 줄 테니까 이만 가라. 나도 돌아가야 되니까.”

“더 살 게 없나 보군요.”

“이거면 충분하지. 오히려 많아. 황녀님은 반도 못 먹고 남길걸?”

“남은 건 어떻게 하나요. 헤이즈 님이 먹나요?”

“버리지.”

헤이즈는 포장지를 곱게 싸고는 천천히 물었다.

“너 황도엔 언제까지 머무냐?”

“그건 왜요? 설마 마법을 주려고요?”

“아니라고 여섯 번 말했다. 언제까지 머물러.”

“그건 저도 몰라요. 근데 금방 다른 곳으로 갈걸요?”

“그래?”

헤이즈는 작게 대답하고는, 이내 정말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을 꺼냈다.

“되도록 황도는 빨리 떠나.”

“왜요?”

“떠나라면 떠나. 그럼 나는 간다.”

헤이즈는 손을 흔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몸을 돌렸다.

여관으로 돌아가서 제리랑 놀아야겠다.

“…여기 약속한 보상입니다.”

“안 받는다고 했잖아요.”

다음 날 아침. 나는 여관을 찾아온 뮤란과 마주 앉았다.

뮤란은 테이블에 금화로 가득 찬 주머니를 올려놨는데, 대충 살펴도 엄청난 양이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며 고개를 기울였다.

“성은 도난엔 성의 없이 성은을 옮긴 제 책임도 있다. 쌍방 과실이니 연금술 길드에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렇게 정했을 텐데요?”

“…설사 고객이 온 세상에 물건을 자랑하고 의뢰를 하더라도 그것은 고객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렇게 맡은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무조건 연금술 길드의 잘못입니다.”

“흐으음.”

이쯤 거절하면 포기하든가, 아니면 금화 주머니를 냅다 던지고 받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며 도망갈 법도 한데, 내가 싫다고 하니 계속 찾아오는 이 끈기. 확실했다.

연금술 길드 이놈들은 내가 계속 거절하면 대륙 끝까지 쫓아와 제발 받아달라고 읍소할 인간들이었다.

그건 안 되지.

나는 담배 연기를 천장에 흘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정 보상을 하고 싶으면 마법으로 하세요.”

“…마법, 말인가요?”

“제가 연금 마법 적성이 아예 없거든요. 연금 마법을 영구적으로 양도할 사람을 찾아오세요. 그거 아니면 안 받아요.”

“…마법의 양도가 될 리가, 아니. 알겠어요. 찾아올게요.”

살짝 의아해하던 뮤란은 곧 몸을 일으켰다.

여관을 떠나는 뮤란에게 손을 흔들던 나는 앞에 놓인 빵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루이나 님. 나 궁금한 게 있어.”

“말하세요.”

“제리 님은 이제 그림자 같은 거야? 무슨 쥐도 새도 모르게 담배에 불만 붙이고 사라져?”

“저도 잘 몰라요.”

제리가 왜 저러는지는 나도 몰랐다. 본인에게 물어봐라.

나는 파이프 담배를 털어 끄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으로 황도에서의 볼일은 전부 끝났다.

방금 뮤란 덕에 볼일이 추가로 더 생겼지만, 저건 어차피 금방 해결됐다. 은퇴해 연금 마법을 다시는 안 쓸 연금술사를 찾는 건 연금술 길드 입장에서 어렵지 않았으니까.

빠르면 오늘 저녁에 사람과 같이 오지 않을까?

그렇기에 현재 내가 의문인 건 하나밖에 없었다.

왜 황실은 이토록 정신이 없는 것인가.

황도에 온갖 수명을 늘리는 물건이 모이는 이유? 뻔했다. 황실에서 찾는 중이니까.

제2 황자가 무리하게 성은을 훔쳐 간 이유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갔다. 모종의 이유로 황실이 그런 물건들을 찾으니 제2 황자도 허겁지겁 성은을 훔쳐 간 것이었다.

거기에 황실 관계자인 헤이즈의 경고까지.

성은, 황실, 경고.

그 셋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돈다.

무언가 떠오를 듯하면서 떠오르지 않는다.

“…….”

“루이나 님? 왜 그래?”

그러다 서큐버스의 얼굴을 보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큐버스. 첩실. 황위 다툼.

……설마 황제가 위독한가?

그럼 확실히 계속 황도에 있는 건 별로였다.

황제가 죽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괜히 피곤해질 수 있으니까.

나는 차분히 입술을 뗐다.

“당장 내일 출발하도록 해요.”

“왜 갑자기? 며칠 더 머물기로 한 거 아니었어?”

“저도 그러려 했는데, 최대한 빠르게 떠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나야 상관없지만. 레온 님이랑 제리 님은?”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도요.”

이것으로 결정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 준비를 미리 마치기 위해서였다.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라! 당장!”

그리고 갑작스러운 외침에 멈춰 섰다.

얼핏 들어선 단순 협박이었지만, 그 주체가 심상치 않았다.

“저 녀석들은 남부 군이잖아요. 쟤네가 대체 왜?”

제리가 중얼거리자 남부 군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성문을 폐쇄하고 통행을 막겠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반란자로 취급하겠다!”

“뭐야.”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웅성인다.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해서였다.

허나 나는 아니었다.

반란자.

그 흉악한 단어에 깨달았다.

황제가 죽었다.

그리고 제2 황자가 검을 뽑았다.

누구 하나 죽기 전까진 멈추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마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