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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가락을 들어 바닥에 쓰러진 도적 길드원들을 콕콕 찔렀다.
반응이 없었다.
죽었나 보다.
“으으.”
아니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타시아의 수행원에게 말했다.
“이래선 아무런 정보도 못 얻잖아요. 적당히 하셨어야죠.”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타시아의 수행원은 경계심을 유지한 채 질문했다.
진짜 진지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우선 그 전에 중요한 걸 먼저 하기로 했다.
“저는 루이나예요. 안녕하세요.”
“알아.”
“저는 루이나예요. 안녕하세요.”
“…헤이즈야.”
헤이즈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랑 인사하는 게 영 안 내키나 보다.
이유가 뭘까.
현재 대인기인 악신의 사제 토벌자, 루이나 앞에서 이런 몰골을 보여주기 꺼려져서 그런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님 말고.
헤이즈는 도적 길드원의 멱살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 물음에 답해. 여기엔 왜 왔어.”
“볼일이 있어서요.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그분들은 저랑 약속이 있는데, 혹시 헤이즈 님과도 약속을 잡았나요?”
그렇다면 이건 이중 예약이었다.
이 녀석들 그래도 좋게 봤는데 양다리를 걸쳐?
이건 아니지.
“…….”
헤이즈는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팔짱을 꼈다.
직후 기절한 척 누워 있던 도적 길드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도적 길드원은 ‘죽어!’ 같은 말도 없이 단검을 세우고 헤이즈 등 뒤에서 달려들었다.
허나 헤이즈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에, 내가 마법을 발동하려던 순간이었다.
헤이즈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두 개의 검 중 하나가 뽑히며 도적 길드원의 목을 베어버렸다.
다만 헤이즈는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였다.
혼자 뽑혀 나와 혼자 적을 썰고 혼자 검집에 들어가는 검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마법이다!”
“무슨 마법을 처음 보는 어린애 같은 반응이군요. 당신도 마법사지 않습니까.”
옆에서 제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시하고 나는 헤이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바람 속성의 마법인가요?”
“…….”
“바람 속성을 응용해서 염동력 비슷한 효과를 내는 거군요.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마법이 발동하는 건가요? 아니면 직접 마법을 발동했으면서 아닌 척 팔짱을 끼고 있는 건가요?”
“원하는 게 뭐야.”
“그 마법. 저에게 줄 수 있나요? 대가는 치를게요.”
내 말에 헤이즈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것이다.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야?”
“아니요. 저는 바람 속성 적성이 없거든요. 말 그대로 거래를 하자는 거예요.”
“거래? 너는 마법이 물건인 줄 알아? 거래를 어떻게 해.”
“저는 돼요. 대답이나 해주세요. 원하는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려요.”
“생각 없어.”
아쉬웠다.
정말 좋은 마법 같아 보이는데, 이걸 거래를 안 하다니.
하는 수 없이 나는 헤이즈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꼭 말해주셔야 해요?”
“일 없어. 그나저나 얘네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 건데.”
“제 물건을 훔쳐 갔거든요.”
“물건? 설마 그 무식하게 큰 성은의 주인이 너였어?”
어라.
“헤이즈 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다 아는 방법이 있어.”
“아니요. 이상하잖아요. 성은이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그걸 훔쳐 간 소문이 벌써 제3자의 귀에 들어가요. 심지어 지금은 딱히 소문이 퍼진 상태도 아니잖아요.”
연금술 길드는 사람을 은밀히 풀었다. 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았고, 때문에 원래라면 성은의 소식을 아는 건 셋밖에 없어야 됐다.
나, 연금술 길드, 성은을 훔쳐 간 도둑 길드.
그런데 헤이즈를 봐라. 마치 도둑 길드에 사람을 심어놨다는 것처럼 달려오지 않았나?
“우연이야.”
“흐음.”
“아무튼 네가 주인이라면 일이 편해지네. 성은은 ‘붉은 달’ 녀석들이 가져갔어. 붉은 달은 얘네들의 윗대가리?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편해. 도와줄 테니까 가서 챙겨 가.”
“왜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건 좋다. 그만큼 일이 편해지니까.
하지만 도움을 받는 게 ‘늘’ 좋은 건 아니었다.
그 의도가 투명하지 않으면 도움의 손길을 쳐내는 게 오히려 신상에 이로울 때도 많았다.
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도와준단 말인가.
심지어 헤이즈는 나를 딱히 안 좋아했다. 첫 만남에는 살기까지 흘렸으면서 친절히 도와주려 한다?
이런 친절을 공짜로 받았다가는 탈이 났다.
“도움받기 싫어? 그러면 말고.”
“설명을 해주세요. 왜 저를 도와주려는 건가요.”
“어차피 너랑 상관없이 내가 하는 일은 안 달라지는데, 굳이?”
헤이즈는 피식 웃고는 얼굴에 묻은 피를 엄지로 닦으며 걸음을 옮겼다.
명백히 붉은 달을 만나러 가는 움직임이었기에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헤이즈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설명을 해주세요.”
“아니. 내 말 못 들었어? 붉은 달이 네 성은을 가져갔다니까.”
“들었어요.”
“그러면 왜 이러는 거야. 되찾기 싫어?”
“하지만 설명을 듣고 싶은걸요.”
내 성은과 얽힌 이 질척하고 음침한 손길들의 주인을 알기 전에는 한 발짝도 못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안전한 길이었다.
“아니. 넌 내 말을 안 들었어. 너랑 상관없이 내가 하는 일은 안 달라진다니까? 아, 됐어. 성은은 내가 가져올 테니 얌전히 기다렸다 받기나 해.”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나는 헤이즈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다음 그의 앞을 막은 거였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헤이즈는 알아채지 못했다.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건 오히려 헤이즈였던 것이다.
“성은이고 뭐고, 저는 설명을 들을 때까지 헤이즈 님을 막을 거예요. 이해하셨나요?”
“이거 미친년 아니야. 아니. 놈들이 훔쳐 간 성은 네 거라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요. 별로 안 중요해요.”
지금 중요한 건 하나였다.
헤이즈에게 사건의 진상을 들을 수 있는가, 들을 수 없는가.
이거 외엔 아무래도 좋았다.
구구궁. 땅에서 나무 병사가 솟구쳐 올랐다.
헤이즈는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았다.
“해보자 이거지?”
“단순히 방해할 뿐이에요.”
“그게 그 얘기…야!”
달려드는 나무 병사를 헤이즈가 가볍게 벤다.
유려하고 절제된 움직임이었는데, 내게는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었다.
레온과 비슷한 움직임. 헤이즈가 뛰어난 검사라는 의미였다.
“적영(寂影).”
헤이즈가 낮게 속삭이자, 헤이즈의 두 번째 검이 뽑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헤이즈는 첫 번째 검을 양손으로 잡아 머리 옆 높이로 들고, 검 끝을 내 쪽으로 겨눴다.
이어서 허공에 둥실 떠오른 검 또한 내 쪽으로 누웠다.
두 개의 검이 나를 겨누는 와중 헤이즈가 말했다.
“봐줄 생각 없으니 지금이라도 항복해라.”
나는 대답하기 않고 등불 안의 불꽃을 키웠다.
헤이즈는 혀를 차고 추가로 마법을 발동했다.
검에 초록색 마법이 일렁이며 덧씌워졌다. 연단 마법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내가 많이 사용해 본 연단 마법과는 달랐다.
헤이즈의 갈색 눈이 초록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헤이즈의 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연단 마법의 1차 각성, 신체 강화가 발동된 것이다.
그에 맞춰 8개의 붉은 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붉은 선이 헤이즈에게 적중하기 직전, 쐐애애액―!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헤이즈의 검이 붉은 선을 거의 동시에 베어버렸다.
콰직. 헤이즈가 밟은 나무 바닥이 짓눌리며 박살 나고, 헤이즈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나는 준비했던 포식의 불꽃을 던졌지만, 헤이즈의 두 번째 검이 흔들림 없이 포식의 불꽃을 베어버렸다.
헤이즈가 코앞에 도달하고, 녀석의 검이 뒤집어졌다. 날이 아닌 면으로 나를 후려칠 생각인 모양이었다.
누가 보면 이미 헤이즈가 이긴 줄 알겠다.
어림도 없지.
쿵. 내 등 뒤에서 튀어나온 조그마한 나무 거인이 헤이즈를 내려쳤다.
쿠구구궁! 나무 거인의 주먹이 난타를 시작한다.
나무 거인의 무자비한 주먹질에 헤이즈는 뒤로 뛰듯이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등불을 흔들었다.
등불 안에는 튀어 나갈 준비를 끝낸 응축된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체크예요.”
“그거 쏴 봤자야. 무난히 막혀.”
“끝까지 가자 이거죠?”
나 돈 많은데, 맷값 준다 생각하고 진짜 제대로 간다?
나는 비장의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마력을 모았다.
“굉륜(轟輪).”
그리고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헤이즈도 마찬가지였다.
모터음과 비슷한 소음이 건물 안을 가득 메우고, 그 사이에서 제리가 입술을 뗐다.
“2:1인데, 계속하실 겁니까?”
“그래. 내가 졌어. 설명을 해줄게.”
헤이즈가 양팔을 들며 항복했다.
나도 마법을 해제했다.
“제리 님 정말 예상외로 도움이 많이 되네요?”
“그러니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면 대체 왜 데리고 다니는 거냐고요.”
“저희는 팀이라니까요.”
제리가 한숨을 쉰다. 헤이즈도 한숨을 쉬며 검을 집어넣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헤이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이건.”
“진 사람이 마법을 넘기기로 했잖아요.”
“이제는 기억까지 왜곡해?”
“안 속네요.”
“미리 말하는데 나는 분명 말 안 하려고 했다? 들어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네 책임이야.”
“호들갑이 심하시네요. 세상에 듣는 것만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극히 적어요.”
“그래?”
내 반응에 헤이즈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을 뱉었다.
“네 성은 가져가려는 건 제2 황자야. 정확히는 제2 황자의 심복이긴 한데, 하여간 나는 그런 제2 황자를 방해하려고 너를 도와주는 거고. 이해했어?”
“진짜 별거 아니네요. 진작 설명해 줬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나저나 제2 황자는 왜 남의 성은을 탐내는 거야.
아닌가? 제2 황자가 탐내는 게 아닌가?
현재 제2 황자는 수도에 없었다. 제국 남부에서 구르다 귀환 중이었는데, 그러니 이건 전적으로 그의 심복이 꾸민 일이었다.
물론 심복에게 지침을 내린 건 제2 황자겠지만, 그래서 이놈들은 왜 남의 성은을 탐냈을까.
성배, 성은, 영생.
크리스가 들었던, 사람의 수명을 늘리는 온갖 물건이 황도에 모이는 중이라는 소문….
흠.
잘 모르겠네.
나는 헤이즈를 빤히 봤다.
분명 숨기는 게 더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도 숨긴 걸 말하지 않는 녀석이다. 더 닦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등불을 짤랑이며 몸을 돌렸다.
“붉은 달의 본거지가 어딘지 안내해 주세요. 성은을 되찾아야죠.”
“참 빨리도 결정한다.”
“루이나 님?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제가 대낮부터 술이나 먹는 걸 보면 알잖아요.”
“그건 늘 하는 거잖아. 혹시 이미 넘어간 거야?”
“네.”
붉은 달의 본거지를 헤이즈와 함께 싹싹 털었지만 성은은 발견하지 못했다.
흔적조차 없었다.
정황상 이미 제2 황자에게 넘어간 거였으나, 증거가 아예 없는 이상 따지기 힘들었다.
증거가 있어도 따지기 힘들었겠지만.
“그러게 왜 달밤에 실랑이를 벌였어.”
“그걸로 지체된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요. 흔적도 없는 걸 보면 이미 진작에 넘긴 거예요. 안 싸웠어도 결과는 똑같았어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냐라.
“뾰족한 방법이 있나요. 넘어가야죠.”
“억울하겠네.”
“힘이 없어서 그래요. 이건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대마법사가 된 후에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요.”
제2 황자 너 내가 기억했어.
나중에 보자.
“나중이 아니라 지금 보는 중이잖아.”
“비유잖아요. 거기에 얼굴을 알아둬야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어요.”
나는 크리스를 타박하며 고개를 들었다.
와아아아―!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며 거리를 가로질렀다.
대열의 가장 앞. 새하얀 말 위에 탄 남자가 손을 흔든다.
금색 머리카락과 보랏빛이 맴도는 황혼색 눈동자.
이번 개선 행진의 주인공이 등장하자 함성이 더 거세졌다.
나는 제2 황자 이사크 에테르노의 모습을 눈에 새기며 입맛을 다셨다.
내 성은….
내 새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