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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몬테 윈터헤이븐엔 온천이 굉장히 많았다.
그냥 땅을 파면 튀어나오는 게 온천이었는데, 그래서 온천을 즐기기 쉬웠지만, 그래서 원하는 온천을 찾기는 어려웠다.
“으으음.”
“루이나 님. 여기도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요.”
나랑 크리스는 사방이 탁 트인, 정말 야생 그대로의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근 채 조용히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여기 온천이 조금 더 진득한 거 같아.”
“저는 솔직히 말하면 아무 차이도 안 느껴져요.”
“잘 맡아봐. 유황 냄새도 더 진해.”
“크리스 님. 지금 성배 탐사 도와주는 거 맞죠?”
“응? 무슨 소리야 루이나 님. 당연히 판매하기에 적합한 온천수를 찾는 중이지.”
나는 쓸모없는 크리스를 내버려둔 채 팔짱을 꼈다.
크리스도 나를 따라 팔짱을 꼈다.
그에 따라 요리 주머니가 팔 사이에 짓눌렸다.
나는 크리스를 빤히 쳐다봤다.
“루이나 님?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리 주머니 없이 요리를 잘해 고평가했었는데, 사실 크리스는 요리 주머니를 숨기고 있었다. 이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혼자만 그런 요리 주머니를 보유하다니. 이러면 요리 주머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요리를 하라고.
없어도 나는 요리를 잘하지만.
“그나저나 크리스 님. 남장은 그만뒀나요? 여기는 공용 노천 온천이라 누가 보면 바로 정체가 들통날 텐데요?”
“생각해 보니 여태 너무 빡빡하게 남장을 한 거 같아서. 이 정도로 느슨하게 해도 별일 없지 않을까?”
그걸 이제야 깨달았구나.
사람들의 인식은 참 재밌어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어차피 지금의 크리스를 누군가 발견해도 남장 후의 크리스와 동일 인물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다.
만약 생각을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크리스가 여자라고 의심했던 건데, 그런 사람은 어차피 크리스가 여자라는 걸 알아서 밝혀낸다. 보든 말든 결과가 똑같은 거다.
나는 온천 수면을 발로 찰박이다가 몸을 뒤로 젖혔다.
먹을 거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온천욕을 연속으로 즐기니 몸이 노곤하다 못해 흐물흐물해졌다.
배가 고프다는 뜻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리스에게 슬슬 여관에 돌아가 식사를 하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글쎄?”
그리고 그것보다 누군가 온천에 들어오는 게 빨랐다.
온천에 들어온 건 웬 남자와 여자였는데, 둘 다 온몸이 흉터투성이라 주변에 위압감을 뿌렸다.
용병인가?
가벼운 의문에 내가 남녀와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거대한 근육남이 코를 킁킁대며 툭하고 말을 꺼냈다.
“마법사인가? 여기서 마법사를 만날 줄은 몰랐는데, 문제 되는 건 아니지?”
“워커. 너는 아직도 마법사의 생태를 잘 모르는군. 잘 봐라.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게 왜?”
“마법사가 저 꼴이라는 건 높은 확률로 화염 원소 적성에, 제대로 마법에 미친 인간이라는 뜻이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방구석에서 수련만 할 테니 우리와 마찰이 생길 일은 없어.”
이 인간들이 사람을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네.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봐라. 정상인이 여기서 인사를 하겠나?”
“나라면 화를 내지.”
“마법 외의 모든 가치가 밑바닥에 처박혔다는 증거다. 미치광이니 우리가 피하는 게 좋겠군. 가자.”
인사 한번 했다가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들으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나는 정말로 온천에 몇십 초만 담그고 떠나는 남자와 여자를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크리스에게 말했다.
“식사나 하러 갈까요.”
훈제육과 치즈를 입에 넣으며 나는 레온에게 물었다.
“뭐 건진 거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우유를 홀짝이며 대답한 레온은 이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이것으로 벨몬테 윈터헤이븐의 온천은 전부 조사했습니다.”
“생각보다 마을이 작네요. 둘이 나눠서 움직이니 며칠 만에 조사가 끝났어요.”
모든 온천에 몸을 담그고, 때때로 냄새도 맡은 결과 우리는 그 어떤 성배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벨몬테 윈터헤이븐의 온천은 몸에 좋아 보였지만, 치유의 샘이라 불릴 만큼의 위력은 갖추지 않았다.
“이번 마을도 허탕이네요.”
“첫날에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죠.”
나는 빵 사이에 훈제 고기와 치즈를 쌓은 후 한입 베어먹었다.
이 집 음식 괜찮네.
“그래서 말입니다.”
“다우 모루우―.”
“다 먹고 말하시면 안 됩니까?”
레온이 요구한 대로 나는 입안의 음식을 전부 삼킨 후 말을 이었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자고요?”
“그렇습니다.”
“흐음.”
나는 크리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크리스는 마찬가지로 빵을 먹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이나 님? 나는 왜 봐?”
“뭔가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있나 해서요.”
행상인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 크리스다. 뜬 소문에는 누구보다 강했다.
크리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성배의 능력은 영생, 치유, 풍요, 정화, 지혜였지?”
“네.”
“그러고 보니 황도에 사람의 수명을 늘리는 온갖 수단이 모이는 중이라는 얘기가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많잖아. 불사조의 깃털, 인어의 눈물, 달의 정수, 대지의 심장, 세계수의 과실 등등.”
“그런 게 황도에 모이는 건 늘 있는 일이었잖아요.”
“맞긴 한데, 소문 얘기를 물어봐서 말해준 거야.”
영생의 단서가 황도에 몰리는 중이라….
저게 진짜라면 이유가 뭘까.
나는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내 모습에 크리스가 해맑게 웃었다.
“평소에도 느낀건데 루이나 님의 머리카락 성은(星銀)이랑 비슷한 색이다.”
“제 몸에서 유일하게 예전과 똑같은 부위예요.”
“그런 걸로 치면 눈도 그대로잖아. 초록색이라 예뻐.”
“크리스 님은 전부터 느꼈는데 아예 거리낌이 없네요.”
크리스는 내 화상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기에 마음 자체는 잘 맞았다.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레온은 작게 중얼거렸다.
“황도.”
“레온 님. 황도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곳이니까요. 온갖 정보가 모이는 만큼, 한번 들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네요.”
에테르노 제국의 수도.
천년의 고도, 에테르니아.
이게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다.
“빠르게 결정됐네요.”
“언제쯤 출발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크리스 님의 상태에 따라 달라져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와 레온은 크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시선에 크리스는 벌꿀주를 입에 쑤셔 넣다가 말고 급하게 설명했다.
“지금 성분 검사는 받는 중이고, 온천수를 보관할 대량의 용기도 거의 다 구했어. 곧 준비가 끝날걸?”
“그럼 저희는 그동안 온천욕을 즐기면 되겠네요. 레온 님?”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너무 많이 온천욕을 해서 피곤하네요.”
“벌써 지치다니. 레온 님은 은근히 지구력이 약하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레온을 더 놀리는 대신 벌꿀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욕은 전생부터 좋아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그것만큼 피로가 풀리는 일도 없었다.
여관의 온천, 그중 여성용 공용 온천에 들어간 나는 하늘을 가득 메운 복숭아나무를 올려다봤다.
저 분홍색 꽃잎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마법으로 이 추운 날에도 생생하게 나무를 키우는 듯했는데, 어떤 마법일까. 가지고 싶었다.
나무의 주인은 없었다. 자리를 비운 거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온천에 몸을 담갔다.
뜨거운 감각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그 노곤해지는 감각에 나는 눈을 감고 벽에 등을 기댔다.
정말 모든 온천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 건데, 결국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여기였다.
돌이켜보면 이 온천이 가장 피로가 잘 풀렸다고 해야 되나? 밤에 잠이 잘 왔었다.
그래. 마치 몸에 좋은 약초 물로 목욕이라도 한―.
“…….”
문득 든 생각에 나는 가만히 온천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풍덩 잠수했다.
이거 진짜 성배랑 관계없는 온천 맞아?
온천 속에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면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딜 보나 평범한 온천일 뿐이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나? 아니면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다.
“그렇게 뒤져봐도 여기에 성배는 없다. 이 정신 나간 계집아.”
“저는 정신이 멀쩡해요.”
수면 밖으로 나오자 초록색 머리카락이 나를 맞이했다.
곰방대를 길게 마신 플로라는 복숭아나무 밑 평평한 바위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성배를 찾는 이유가 있나?”
“교국에서 내려진 퀘스트라서요. 이걸 완수하면 공짜로 완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너는 외견에 신경을 안 쓰는 인간일 텐데?”
“유언이라서요.”
“그런 걸 받았으니까. 어떤 유언이든 반드시 지키긴 해야지.”
플로라는 짧게 웃고는 곰방대를 탁 털었다.
그다음 재차 입을 열었다.
“가만히 뒀다간 온천수를 다 없앨 인간이라 무섭구나.”
“저는 안 그래요.”
“그래서 온천수를 화염 마법으로 증발시킬 생각을 안 했다고?”
“잠깐만 증발시킬 생각이었어요.”
“이것 봐라. 내 생각이 맞지. 그래. 왜 유독 내 온천에 몸을 담그면 개운했을까. 그 정답을 알려주마.”
그렇게 말한 플로라는 곰방대로 바위를 툭툭 두들겼다.
“이 바위 말이다.”
“네.”
“이렇게 보여도 성은(星銀)이다.”
“성은이라고요 그게.”
“그래.”
어쩐지. 온천 놔두고 자꾸 이상한 데 누워있다 싶더라니.
그게 성은이었어?
이러니 여기에서 온천욕을 하면 묘하게 개운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