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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초록색 머리카락이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흩날렸다.
머리카락과 똑같은 초록색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했다. 신기한 동물을 보는 눈빛이었는데, 나는 온천을 헤엄쳐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 얼굴을 보고 그런 눈빛이라니. 아무리 저라도 처음 겪는 수모네요.”
“너, 화염 원소 적성 마법사지?”
“그걸 보기만 해도 아나요?”
상대가 마법사라는 거야 마력의 잔향 등으로 추측하기 쉽지만, 정확한 경지나 원소 적성은 실제 마법을 보기 전까진 알기 어려웠다.
어떻게 안 거지?
심지어 나는 마력을 숨기는 게 특기라 겉보기만으론 알기 어려울 텐데.
후우. 길게 곰방대를 빨아 뱉은 여자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 업계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저도 알아요. 마법은 멋지고 사랑스럽다잖아요.”
“마법사는 죄다 정신이 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얼굴을 태워 먹은 화염 원소 적성 마법사는 조심해라. 들어본 적 있나?”
“아니요. 처음 들어요.”
“마법을 익히겠다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은 한 차원 더 정신이 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저는 죽음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데요. 모든 마법을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어요.”
“그런 점이 정신 나갔다는 거다. 이 미치광이 마법사야.”
“제 스승님은 저를 정상이라고 했다고요.”
“인격자에 어지간히 널 사랑하셨나 보군. 좋은 말만 해준 걸 보면.”
뭐야. 켈튼을 칭찬하다니.
이 여자 좋은 사람이었잖아?
심지어 켈튼처럼 담배도 피웠다. 나쁜 사람일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통성명을 시도했다.
“제 이름은 루이나예요.”
“플로라다.”
“플로라 님도 마법사인가요?”
플로라도 마력을 숨기는 게 능숙한지 잔향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뒤에 우뚝 선 계절에 맞지 않는 나무는 그런 것과 무색하게 그녀가 마법사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복숭아나무를 키운 마법, 저에게 줄 수 있나요? 대가는 치를게요.”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냐? 고유 마법이 왜 ‘고유’ 마법이라고 불리는지 모르나 보군.”
“아니요. 가르쳐 달라는 게 아니에요. 거래로 제게 넘길 수 있나 물어본 거예요.”
“…넘길 수 있냐고?”
플로라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말하는 투로는 5위계 이상의 고위 마법사인 듯했는데, 그런 플로라조차 마법을 거래하는 개념은 처음 들어보는 모양이었다.
플로라의 시선이 내 얼굴, 가슴, 배, 허벅지에 머물렀다가, 이내 왼쪽 손등을 훑었다.
플로라가 말했다.
“스승에게 터무니없는 유산을 받았나 보군.”
“제 스승님이 많이 위대한 마법사예요. 이름은 켈튼이니 기억해 두세요.”
“그래.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마법사다. 진심으로.”
플로라의 초점이 풀렸다.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말이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인데, 나는 그런 플로라를 5초 기다렸다가 재촉했다.
“그래서 마법을 거래하실 건가요? 거래 조건은 뭐든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요.”
“뭐든지라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요.”
플로라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도 플로라와 눈을 마주쳤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플로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생도 가능하나?”
“제가 할 수 있는 거야 된다니까요. 별개로 지금 성배를 찾는 중이라 만약 찾으면 되긴 해요. 그때까지 기다리실래요?”
“성배? 초대 황제와 여정을 떠났던 화신체의 뼈로 만들어진 잔을 말하는 거냐?”
“네.”
“정확한 정보라도 있나?”
“그건 아니에요.”
“하.”
플로라는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곰방대를 쭉 빨았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 찾기 쉬운 거였으면 진작 내가 찾았지.”
“그런가요.”
“영생이 아니면 관심 없다. 그 외에 내 마법을 줄 생각은 없어.”
“아쉽네요.”
거래는 불발됐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온천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 말을 꺼냈다.
“제가 먼저 입찰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마법 넘기면 안 돼요? 성배는 꼭 찾아올 테니까요.”
“마법의 거래가 가능한 게 너 외에 있을 거 같나.”
“혹시 모르잖아요.”
“루이나 님. 나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어. 이곳의 온천물을 병에 담아 다른 곳에 가져가서 파는 거야. 어때?”
“정말 놀라울 정도로 크게 남겨 먹을 생각만 하시네요?”
“그 말 상인 업계에선 칭찬이야.”
“칭찬한 거 맞아요.”
온천물을 담아다 판다라.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물은 상할 위험이 없어 운송에도 용이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2개 있어요. 하나는 그런 걸 살 사람이 있냐고, 나머지 하나는 구매자가 있어도 과연 크리스 님이 가져온 물을 실제 온천수라고 믿어줄까예요”
“그 부분은 기술의 영역이야 루이나 님. 예비 대상인인 내가 알아서 할 부분이라고.”
그렇게 말한 크리스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뜻이지?
음, 잘 모를 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됐다.
나는 크리스의 손가락 위에 검지와 중지를 올렸다.
그 후 기어갔다.
그러자 크리스가 눈을 깜빡였다.
“루이나 님? 뭐 하는 거야?”
“개미가 기어가요.”
“개미치곤 큰데?”
“느낌은 개미잖아요.”
“그런가? 그런 거 같기…아니. 이게 아니라. 루이나 님. 투자해야지. 개미 놀이는 그만하고.”
투자라.
나는 크리스가 짜온 사업의 현실성을 고려했다.
으으음.
“힘들 거 같은데요?”
“왜?”
“사람들이 온천수에 흥미가 있다고 해도, 그게 진짜라 믿기는 어려우니까요. 사기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안 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건 기술의 영역이라고.”
“이렇게 해요. 지금 제게 온천수를 팔아보세요. 설득력이 느껴지면 투자할게요.”
크리스의 계획은 온전히 크리스의 기술에 의존했다.
따라서 투자를 받고 싶다면 그 기술이 얼마나 탁월한지 증명해야 됐다.
내 말에 크리스는 돌연 표정을 바꾸고 벌꿀주 잔을 들었다.
“휴양의 고장에서 가져온 온천수입니다. 치유의 샘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벨몬테 윈터헤이븐의 온천수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게 진짜라는 걸 어떻게 믿죠?”
“여기 벨몬테 윈터헤이븐의 연금술 길드에서 받아온 온천 성분 증명서입니다. 여기까지 가서 굳이 온천수를 안 가져오는 것도 웃기지 않습니까?”
“투자하겠어요.”
“탁월한 선택이야 루이나 님.”
나는 크리스에게 여윳돈인 금화 150개를 넘겼다.
크리스는 희희낙락하며 사업의 계획을 점검했다.
“이런 건 장기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 따라 하기 쉬워서 금방 유행이 식거든.”
“최소한의 돈으로 장비 투자를 해야겠네요.”
“아니지. 제대로 투자한 다음 후발 주자에게 아이디어 가격까지 합쳐서 장비를 넘겨야지.”
“정말 돈의 신도 기겁해서 도망갈 악마적인 계획이군요.”
“그 말은 상인 업계에서도 칭찬이 아니야 루이나 님.”
“이번엔 칭찬 아니에요.”
대체 난 누구와 손을 잡은 걸까.
굉장히 두려워졌다.
“성분 증명서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돼 바쁘겠네. 루이나 님은 어떻게 할 거야?”
“저는 계속 조사를 해야죠.”
“온천욕을 즐기겠다고?”
“저희에게는 그게 조사예요.”
나는 크리스가 내려놓은 벌꿀주 잔을 들어 들이켰다.
단맛이 몸을 적셨다.
“알겠어. 나는 이만 준비하러 가볼게.”
“중간 경과는 알려주세요.”
크리스는 여관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조용히 있던 레온에게 말을 걸었다.
“레온 님.”
“…….”
반응이 없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나는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재차 말을 걸었다.
“레온 님?”
“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신가요. 또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에 대해서인가요?”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벌써요?”
내가 의아해 묻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허탕인 거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 고작 하루 머물렀잖아요?”
“그럼에도 느껴지는 게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윈터헤이븐에 성배가 묻혀있다기엔 온천의 효과가 너무 미미하다고 해야 되나. 까놓고 말해 아무것도 안 느껴졌다.
“정말 성배가 묻혀 있었다면 온천이 회복 포션이 됐겠죠?”
“성배 전설의 얘기가 반만 진실이어도 그렇습니다.”
“아닐 확률이 높긴 하네요.”
나는 손을 만지작댔다.
화염에 짓눌린 상처가 손가락 끝을 스친다.
그냥 레온 코인 말고 대상인 크리스 코인으로 갈아타?
기세만 보면 반년 안에 치료비 마련할 거 같던데?
아니. 자만하면 안 된다. 상대는 도박 중독자 크리스다.
언제 빈털터리가 될지 몰랐다.
계란은 여러 바구니에 담으라는 오랜 격언을 되새기며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근데 그래도 이제 고작 하루잖아요. 저희가 벨몬테 윈터헤이븐에 있는 온천을 전부 경험해 본 것도 아니고요.”
“그 말씀은.”
“다른 온천도 전부 조사해 보죠? 혹시 모르잖아요.”
어차피 크리스가 상행 준비가 끝날 때까지 윈터헤이븐에 머물러야 됐으니까.
그 김에 온천을 전부 조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 맞다. 이 여관 외의 온천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노천 온천인데, 어떻게 하실래요. 같이 조사하실래요?”
“…서로 구역을 나눠서 따로따로 조사합시다.”
“그게 효율적이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