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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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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투

엘레노어의 말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그 결투라는 게 내가 아는 결투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그래, 평범한 결투다.”

엘레노어는 내가 차원을 넘나드는 모험가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쪽 세계의 상식에 어둡다는 것도 안다.

그런 엘레노어가 그냥 평범한 결투라고 말하는 거라면, 내가 아는 그 결투가 맞겠지.

명예를 걸고 승패를 가리기 위해, 참관인을 두고 공개적으로 행하는 싸움.

엘레노어는 이어서 몇 가지 예시를 들며 결투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 내용은 매우 평범했다.

특이한 엘프식 결투 규칙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

아니, 근데 너무 갑작스럽게 정한 거 아닌가.

대립하고 있는 두 종족의 왕족이 엮인 결투라면 보통 일이 아니잖아. 최소한 나한테 언질은 줬어야지.

“그대답지 않은 말을 하는구나, 언질을 줬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었을 텐데.”

“결투에 대한 대비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

“대비라니, 그 비실비실한 왕자 놈이 상대인데 무슨 대비를 한단 말이냐?”

엘레노어는 내가 굉장히 이상한 소리를 한 것처럼 피식거렸다. 생각해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하이엘프 왕자 놈은 7층에 갓 진입한 나한테 아무것도 못 하고 제압당했었으니까.

그 수준으로는 리즈멜과 엘레노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더 강해진 지금의 내 상대가 될 리 없다.

“물론 그놈들도 나름대로 수를 쓰기야 할 거다, 하지만 잔재주로 어떻게 해 볼 만한 차이가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

“아마 자기들 편한 대로 규칙을 만들거나, 핸디캡을 요구하겠지만- 그대의 수준이라면 뭐든 괜찮겠지.”

엘레노어만큼 내 실력을 잘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왕자 놈의 실력도 나보다는 엘레노어가 잘 알 거다.

그런 엘레노어가 일말의 변수도 없을 거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럼 아마 그렇겠지 뭐.

7층의 마지막 퀘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낮은 거 아닌가 싶지만.

평균적인 7층 도전자의 강함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지금의 내 강함은 시련의 탑 몇 층 수준일까.

대강의 깡스펙만 해도 20층대 도전자 수준은 되고, 실력을 감안하면 25층 랭커 이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25층 랭커의 기준을 창기능사 최길현으로 잡아도 되는지가 좀 문제긴 하다.

그놈은 스펙만 높지, 실력은 거의 고블린 수준이었으니까.

저층 유저들에게 버스를 태워주는 랭커들도, 엄연히 파티를 짜서 보스전에 임한다.

뉴비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변수 없이 빠르게 보스를 터트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최길현은 파티원의 보조를 몰아받고 스킬을 퍼부어서 폭딜을 넣는 역할을 맡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등신같이 찌르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거다.

고로, 강함의 표본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내 수준이 25층 랭커 이상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물론 7층 수준을 한참 넘었다는 건 확실하니까, 이번에는 걱정할 것 없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나는 정확히 얼마나 강한 걸까?

**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결투의 날짜는 일주일 뒤,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물론 대단한 결전을 치를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딱히 결투를 대비한 특별훈련 같은 걸 하지는 않았다.

그냥 평상시처럼 검술을 단련하고, 여전히 잘 안 되는 명상과 마력 운용을 연습할 뿐이었다.

그 밖에는 엘레노어와 괜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차원을 넘나드는 모험 썰을 풀거나, 여왕을 접견하거나 했다.

다크엘프의 여왕은 엘레노어와 매우 닮은 얼굴에, 좀 많이 지쳐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화친을 위한 약혼을 깨려고 하는 나를 매우 아니꼽게 생각할 것 같았는데, 뜻밖에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던 걸 수도 있지만, 그냥 무덤덤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대할 뿐이었다.

여왕 본인보다는 막강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세계수 뿌리의 왕관 쪽에 더 눈이 갈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7층은 그 특성상 보스룸으로 가는 길이 매우 간단한 편이다.

미궁 지역보다 일반 필드가 더 험한 면이 있을 정도다. 사실상 진영 퀘스트를 마치면 곧바로 보스에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럴 예정이다. 다크엘프의 마을에서 너무 오래 지내다가는 마음이 풀어지고 말 테니까.

결투를 마치고, 보상을 받고, 곧바로 보스를 깨고 8층으로 올라간다.

7층의 보스는 나 같은 근접 전사랑은 상성이 안 맞는 편이지만, 공략대로의 스펙이라면 쉽게 깰 수 있을 거다.

너무 훌쩍 떠나버리면 엘레노어가 아쉬워하겠지만, 그런 이유로 7층에 계속 박혀있을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8층에 올라가면 다시 만나게 될 예정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7층을 떠날 것이다.

“후우……”

마력운용을 병행한 마지막 트레이닝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골랐다.

바깥에서 인상적인 기척이 느껴진다. 이 유독 강렬한 마력의 흐름은 분명 엘레노어다.

“그대여, 슬슬 시간이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결투 시간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엘레노어는 일부러 나를 일찍 불렀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하는 낭만적인 자리인데, 최소한의 치장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숲쟁이 놈들의 왕도 결투를 참관한다더구나, 놈들의 콧대를 바짝 눌러 줘야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받아들였다.

치장이라고 해도 전투용의 갑옷을 조금 멋지게 꾸밀 뿐이다. 결투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좋아, 가자꾸나.”

결투 장소와 방식은 결투를 받아들인 쪽이 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이엘프의 구역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하이엘프 놈들이 수작을 부릴 가능성을 경계해, 참관인 명목으로 엘레노어 외의 다크엘프 여럿이 함께했다.

그리고 중요한 결투이기 때문인지, 다크엘프의 여왕과 하이엘프의 왕도 모두 참관하기로 했다.

-바스락, 바스락.

수풀을 헤치며 대삼림 안쪽으로 들어온 우리는, 오래 걸리지 않아 다른 하이엘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결투 상대인 왕자 본인과, 호위기사 몇 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원래는 기사들만 나오기로 했던 것 같은데, 왕자놈까지 나와 있네.

“후후.”

엘레노어는 왕자놈의 얼굴을 보자마자, 보란 듯이 내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큭……!”

그러자 왕자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투지가 넘치는구만.

듣기로는 약혼 관계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자주 봐 온 사이라고 하던데.

살다살다 남의 소꿉친구를 뺏어가는 금발 태닝 양아치 포지션에도 서보는구나.

-타닥!

그렇게 잠시 신경전을 벌이던 중, 왕자의 호위기사 사이에서 한 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달려나오는 기세도 심상치 않고, 손에는 날카로운 검을 든 채다.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사악한 인간족 검사놈!”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든 것은, 저번에 나한테 얻어터졌던 그 하이엘프 기사였다.

**

참관인 자격으로 동행한 다크엘프 기사들이 대응하려 했지만, 그보다 내가 먼저 나섰다.

결투를 앞두고 있으니 힘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카앙!

휘둘러지는 기사의 검을 내 검으로 받아내고,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하이엘프 왕자도 크게 당황하고 있는 걸 보니, 깐프 놈들이 개수작을 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왜 내가 여기 있느냐고 말하는 걸로 봐서는, 왕자의 결투 상대가 나인 줄 모르고 급발진을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굳이 내가 상대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 줄 거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엔 좀 아쉽지.

“마침 잘 됐네.”

실력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상대가 아닌가.

하이엘프 기사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나를 향해 검을 휘둘러 대었다.

-카앙, 카앙! 카강!

전과 마찬가지로 무척 날카롭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검로, 역시 이놈의 검술 실력은 상당하다.

전에는 이 검술과 방패술의 연계를 어쩌지 못하고,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 변칙수로 상대했어야만 했었는데.

감각의 확장과 증폭을 습득한 지금은, 그 현란하던 기술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고 있다.

물론 이놈도 감각의 확장은 터득한 상태일 거다.

-후웅!

일반적인 템포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방패 공격을, 두 박자 빠르게 읽어내고 회피했다.

설마 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하이엘프 기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놈은 감각 확장을 가진 상태에서, 감각 확장이 없는 내 잔재주에 손쉽게 공략당한 전적이 있다.

그렇다면, 똑같이 감각 확장의 경지에 도달한 지금은 어떨까.

방패를 휘두른 기사의 팔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당겨서 중심을 무너트린 뒤, 바닥에 메다꽂아버렸다.

-쾅!

“크윽!”

검술을 단련하며 자연스레 함께 단련하게 된 격투술이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내 힘까지 더해 처박아 버리는 기술이니, 충격이 상당할 거다.

땅에 쓰러진 기사놈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철벽]

정령 친밀도가 오르며 더욱 강력해진 [철벽]스킬을 두르고, 주먹을 내리꽂는다.

-쾅!

이 놈, 생각보다 별 거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