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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부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18층의 지도와 미니맵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우리가 빠져나온 숲은 예상 이상으로 외진 곳에 처박혀 있었다. 말 그대로 미니맵의 맨 구석 끝 부분쯤.
아마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오래 걸리지 않아서 구역을 제한하는 파괴 불가 장벽을 만날 수 있었을 거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찾는 상대가 마법사인 이상 마탑으로 가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게 어떤 마탑이느냐인데.
적색이나 청색 같은 메이저한 마탑들은 한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찾아가기도 간단하지만-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보나마나 어마어마하게 마이너한 색의 마탑에 있을 테지, 아마 거의 모든 마탑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나 혼자서 작정하고 돌아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나 혼자서는 에인의 ‘엄마’를 알아볼 방법이 없다.
대강의 인상착의라도 알 수 있으면 어떻게든 할 만하겠지만, 이 부분에도 당연히 애로사항이 있었으니.
“엄마는 예쁘게 생겼어, 그리고 어른이고, 키가 크고, 으응.”
에인이 엄마의 인상착의를 도통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아무리 물어도 그냥 ‘예쁘다’ 라고밖에 표현을 못 한다.
키가 크다고는 하지만 아이의 시선이라 진짜 큰지 어떤지도 모르겠고, 머리색도 흔한 갈색이라고 하고.
결국 내가 에인의 엄마에 대해 아는 건,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은 갈색 머리의 여성이라는 것.
연령대도 모르고,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의외로 성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이건 뭐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가 더 쉽겠네. 정보가 진짜 아무것도 없잖아.
“진짜 이게 최선이야?”
“응, 똑같이 그렸어.”
“아닐 것 같은데.”
그래서 하다못해 그림으로라도 표현해 달라고 했는데, 역시 어린아이의 그림으로는 가망이 없었다.
복잡한 마법진을 쉽게 그려내길래 조금은 기대했건만, 결국 이런 식이로군.
게다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마법사들은 외부인이 마탑에 출입하는 것을 썩 반기지 않는다는 것.
평범한 도전자들은 결국 마탑에 의해 소환된 입장이라, 최소한 손님 취급을 받지만……나는 사정이 다르다.
문전박대는 물론이요,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연히 내가 이기긴 하겠지만.
“진혁악마님, 안 가는 거야?”
고민에 고민을 더해 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던 중, 에인이 옷소매를 당기며 재촉했다.
그래, 어차피 고민해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단은 움직이자.
“아냐, 가자. 손 꼭 잡고.”
나는 그대로 에인을 데리고 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적색등의 메이저한 마탑이 위치한 중앙 도시는 이 마을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구조다.
이곳에서는 일단 에인에게 입힐 옷을 좀 사고, 숙소를 빌려서 애를 좀 씻기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정화] 스킬로 꾸준히 오염을 제거해 주긴 했지만, 아직 꾀죄죄한 꼴인 건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자칫 병이 들지도 모르니, 청결은 여러 방법으로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마을의 입구는 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함인지, 뾰족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 간단한 무장을 갖춘 떡대들이 울타리와 함께 서 있었는데, 이들은 우리를 보고 대뜸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잽싸게 마을 안으로 들어가, 울타리 문을 거칠게 닫아버린 다음 쇠사슬을 걸었다.
“허?”
저게 뭐 하는 짓이지?
**
이 마을이 여행자나 외부인을 거절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저건 누가 봐도 우리가 마을에 들어오는 걸 막으려는 것 같다. 하지만 대체 뭘 위해서?
나는 지금 딱히 무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기껏해야 검은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을 뿐.
차림새만 보면 오히려 저 떡대 놈들이 더 든든하게 무장한 상태이기에, 외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 거다.
애초에 꾀죄죄한 꼬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들어오는 여행자를 문전박대할 이유가 있나?
무슨 사정이 있는 거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란 뜻인데.
“이봐요, 이것 좀 열어봐요. 무슨 일인데.”
“맞아, 열어줘.”
“어린애도 있다고, 최소한 설명은 해 주지?”
나는 울타리 문을 툭툭 두들기며 그 너머에 있는 떡대들을 향해 말했다. 에인도 작은 손으로 그것을 거들었다.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기는커녕, 떡대들은 쥐죽은 듯이 침묵만 지키고 있다.
“없는 척하지 말고, 문 앞에 서 있는 거 다 알거든?”
떡대 놈들은 내 말이 떠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오히려 입술을 깨물고 침묵을 지켰다.
입만 닥치고 있다고 기척이 안 나는 게 아닌데 말이지. 마력이 닿는 범위라면 내 시야에 사각은 없다고.
이 마을에서는 에인을 위한 생필품을 사야 했기에, 난동을 부릴 생각은 없었지만……어쩔 수 없나.
“셋 셀 때까지 안 열면 그냥 힘으로 연다.”
-절그럭.
말을 꺼내자마자 들려오는 사슬 소리, 하지만 문에 걸어놓은 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아니다.
떡대 놈들이 사슬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하고 있었다. 뭔가 마력이 움직이는데.
어라, 잠깐만, 이거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몇 층에서였지?
결계 마법이랑 비슷한 기척이다. 움직인 마력의 양을 보면 결계는 절대 아닐 테고.
“이 새끼들 봐라.”
사슬을 더 강화하거나 마법적인 잠금장치를 다는 마법쯤 되겠네, 나 참.
너무 가소롭고 같잖아서 짜증이 치밀 지경이다. 그때, 에인이 내 등을 쿡쿡 찔렀다.
에인은 자신의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는, 묘한 마력의 흐름을 일으켰다.
“나 저거 할 수 있어, 내가 해볼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게 잠긴 울타리 문을 향해 에인이 마력을 흘려 넣었다.
-철컥, 철컥!
사슬을 매개로 발동한 마법이 점점 해제되어간다. 울타리 너머의 떡대들이 웅성거린다.
많이 놀란 모양인데,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얘가 언제 이런 것까지 할 수 있게 됐지?
검령은 마력의 운용법을 알려줬을 뿐, 제대로 마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집광]을 보고 흉내를 내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건 얘기가 다른데.
“됐다, 진혁악마님, 이거 열렸어.”
에인은 그렇게 순식간에 마법 자물쇠를 풀어버리고는, 위풍당당하게 울타리 문을 밀어젖혔다.
물론 마법은 풀렸어도 떡대들이 문을 막고 있는 탓에 열리진 않았지만.
“으응……읏차, 왜 안 열리지……”
에인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줄 알았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에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문은 제대로 열렸으니까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이건 마법으로 막혀 있는 게 아니라고, 마법은 네가 풀었으니까 남은 건 내가 풀겠다고.
7층 다크엘프들의 말투를 흉내 내 보니, 나치고는 꽤 괜찮은 위로의 말이 나왔다.
-콰앙!!
그리고 울타리 문은 내 발차기 한 번에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
**
문을 막던 떡대들은 근골은 훌륭했지만, 체내의 마력량은 극단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마력이 없어서 몸이라도 기른 느낌?
그동안 보아온 NPC는 대부분 약한 일반인 아니면 강한 초인 두 종류로 갈리곤 했는데, 이놈들은 딱 그 중간에 있었다.
마력이나 특수한 힘이 없는 순수 인간 중에서는 최상급, 하지만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하급.
어정쩡하기 없는 그 강함 때문에, 이번에는 나도 힘 조절이 조금 어려웠다.
“큭, 커헉……!”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얻어맞은 떡대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오러를 씌운 것도 아니고, 마력을 실은 것도 아니고, 스킬을 써서 때린 것도 아니다.
그냥 힘이 좀 많이 들어갔을 뿐인 평범한 주먹질, 하지만 그 한 대를 못 견디고 무너져버렸다.
쓰읍, 마력 없이 단련된 인간의 몸이 이렇게 물렁물렁할 줄은 몰랐네.
완전 뭉개질 만큼 부드러운 건 또 아니고, 그렇다고 내 주먹을 견딜 만큼 단단한 것도 아니고.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때린 느낌이다. 아마 뼈가 죄다 으스러졌겠지.
“그러게 왜 사람 면전에서 문을 닫아. 설명도 안 하고.”
“헉, 허억……”
“뭐라고 말 좀……어휴, 가만있어봐. 입 벌려.”
나는 쌕쌕거리며 죽어가는 떡대의 입에 억지로 고성능의 포션을 물려주고 잠시 기다렸다.
에인에게 쓴 것과 같은 포션인데, 이렇게 기골이 튼튼한 놈이라면 부작용 없이 효과만 누릴 수 있을 거다.
사실 부작용이 어느 수준인지는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병든 어린아이도 견딜 수 있을 정도니까.
별 문제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크윽……으으윽……”
떡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파랗게 물들며, 눈이 뒤집혀 검은자위가 사라져버렸다.
재빨리 마력을 전개해 놈의 몸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포션으로 인한 치료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었는지, 여러 장기가 기능부전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허우대도 좋은 놈이 요 조막만 한 어린애보다 체력이 없단 말이야? 뭔데?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포션을 꺼내 떡대에게 퍼부었다.
열받아서 한 대 패줄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니까.
한편, 마을 안쪽에서는 하나둘씩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아니다. 무기도 절반 이상은 농기구였고.
쪼그만 어린애만도 못한 체력을 가진 덩치들이며, 잔뜩 쫄아 있는 주민이며.
에픽 퀘스트라는 설정에 어울리는 모종의 사건이 있었던 건 확실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