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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낙원
그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지만, 하늘 위에 존재하던 진짜 천계는 이미 옛적에 멸망했다.
하늘 위의 남은 땅은 이제 비둘기 괴물의 둥지뿐, 천족들이 모시는 천신이라는 것도 어느 시점에선가 사라져버렸다.
아니, 애초에 천신이라는 게 원래 존재하기는 했던 건지도 불명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 기원불명의 정신조종 능력을 갖춘 비둘기 괴물이 천신의 자리를 빼앗아 기생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은 천신교의 교리를 교묘하게 뒤틀어, 천족들을 자신의 둥지에 가두고 먹이를 바치는 종으로 만들었다.
웃기는 것은, 정작 그런 비둘기 괴물 본인의 지성은 지극히 희박하다는 점이다.
괴악한 능력을 갖췄을 뿐, 그 본질은 그냥 먹고 싸는 괴물에 불과하다. 결국 끝내는 모든 천족을 먹어치울 것이 뻔하다.
모든 탑의 15층 천계는 저 비둘기의 둥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천천히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도전자들이 이런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다.
커뮤니티의 영향을 배제했을 때, 도전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15층 보스전을 치른 이후다.
15층의 보스가 저 비둘기의 동족으로, 머리가 두 개 달린 하위 버전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보스전 이후 진실을 깨닫고 천신을 토벌하고 싶어도, 천신의 뉨터로 향하는 문은 부정을 씻어낸 자들에겐 열리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된 도전자들도 마찬가지, 부정을 씻지 않은 상태여야만 천신에게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을 씻기 전의 반 토막 난 스탯으로 히든 보스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자살행위.
여태껏 히든 보스에게 과감하게 도전했던 이들은 모두 소식이 끊겨 버렸다.
“그, 그럴 리가……이게 천신님의……정체라고……?”
내 간략한 설명을 들은 대신관이 처참한 표정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평생을 믿고 따른 신이 저런 괴물딱지였고, 자신들은 고결한 것도 뭣도 아니었다니.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클 테고, 이 공간에 넘쳐흐르는 마력에 의한 충격도 클 테지.
“빠져 있어.”
나는 빨간약을 먹고 발작 중인 대신관을 밀쳐낸 뒤, 비둘기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은 대신관을 챙겨줄 여유가 없다. 괜히 시작부터 마력강화를 켠 게 아니다.
저 비둘기 괴물은 우스운 꼬락서니와 다르게,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도약하자마자, 그 힘의 일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번쩍!
시야를 메우는 강렬한 빛, 다음 순간 내 온몸에는 화염이 달라붙어 있었다.
로피엘이 사용하던 성스러운 불꽃이라는 것과 동질의 힘이다.
그럴 테지, 신관들이 사용하는 은총의 근원이 저 녀석이니까.
신관들이 자랑스럽게 달고 있는 여러 쌍의 날개는 마력을 수신하는 안테나 역할.
은총이란 비둘기 괴물의 거대한 마력을 빌려서 사용하는 평범한 마법에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즉, 저 비둘기와 싸운다는 것은 모든 천족과 신관을 하나로 뭉쳐 놓은 것에 맞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거 나한테 안 통해, 새대가리 새끼야.”
좆밥이라는 뜻이다.
**
은총이라는 게 정말로 신성한 힘이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만 거창할 뿐 그 본질이 평범한 마법이라면, 종합 대마법 내성을 지니고 있는 내겐 통하지 않는다.
지금도 내게 들러붙은 화염은 어마어마한 온도를 내고 있지만, 나를 완전히 불태울 만한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타닥!
비둘기 괴물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힘차게 도약해 아래턱을 노리며 창을 뻗었다.
깃털 날개로 몸을 감싸고 있던 비둘기는 자세를 일으키며, 퍼드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결국은 짐승, 반응이 아주 정직하다. 이러면 다음으로 날아오는 공격도 뻔하겠지.
세 개의 대가리 중 하나가 확하고 뻗어나와, 부리로 나를 내려찍으려 한다.
앞쪽으로 미끄러지며 슬라이딩해 그것을 피해내고, 이번에는 도끼를 꺼내 휘둘렀다.
-파박!
비둘기의 날개에 스치며 깃털 몇 개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 깃털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나 참, 별걸 다 할 줄 아네.
좌측으로 몸을 크게 구르며 피해냈다.
-콰과곽!
땅에 박힌 더러운 깃털은 표창이라도 되는 것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고, 묘한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공격 하나하나에 마력이 담겨 있군. 이런 점에서는 마족들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가.
나도 비슷한 짓을 할 수 있지만, 지능 스탯이 크게 떨어져 있는 지금은 좀 어렵다.
어려울 뿐이지, 못 한다는 건 아니지만.
[투척용 수리검]
인벤토리에서 소모성 투척무기를 몇 개 꺼내 손에 쥐었다.
10층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인데, 쇠구슬에 비해 특별히 좋은 점이 없어서 잘 쓰진 않는다.
연달아 쏘아지는 깃털을 향해, 마력을 담은 그것들을 일제히 집어던졌다.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내 투척술은, 날아드는 깃털을 하나하나 맞춰 떨구는 것도 가능케 한다.
-카강! 카가강!
깃털을 전부 요격해 내며, 다시금 벌어졌던 거리를 좁힌다. 그 때, 두 개의 비둘기 머리가 움직였다.
-■■■■.
벌어진 부리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무슨 의미인지는 대충 눈치챘다.
공간을 가득 채운 마력이 물결치며 성질을 변화시킨다. 14층의 마족들도 종종 보여줬던 다중 마법 전개.
화염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했는지, 화염을 제외한 각종 속성 마법이 몰아친다.
뭐, 가장 잘 견디는 속성이 화염일 뿐이지 다른 속성 내성도 딱히 부족하진 않다.
-쾅! 콰광! 콰과광!
마력강화가 제공하는 방호력에 더해, [철벽] 스킬을 발동시키며 그냥 전진한다.
애초에 내성 스킬이 없었어도 별 문제는 없었을 거다.
[철벽] 스킬의 보조, [혼신] 스킬을 통한 방어력 증폭, 마력강화의 추가 방호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기 특성, [강철의 혼]의 모든 피해 60% 감소 효과.
속으로 좆밥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저 비둘기 괴물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기본 스펙만 봐도 15층 보스인 두 머리 비둘기의 상위호환 개체.
다양한 속성의 마법 공격과 더불어, 깃털을 이용한 원거리 물리 공격까지 가능한데다 속도도 빠르다.
거기에 시스템 인터페이스마저 흉내 낼 수 있는 정신오염 효과를 상시 전개하고 있다.
좆밥은 커녕 좆같이 센 놈이다. 그런데 스탯 감소 제약까지 붙은 채로 싸워야 한다.
이런 이유로, 커뮤니티에서는 ‘공략 불가’ 라는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한 놈.
하지만 도전자라고는 나 혼자뿐인 이 2661번 탑에서 객관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15층 도전자의 평균 수준, 15층 몬스터의 평균, 도전자들의 객관적 평가.
그딴 게 뭐 어쨌다고.
내 주관으로 평가하건대, 이 비둘기 새끼는 좆밥이 맞다.
모든 마법 공격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신속] 스킬을 발동해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이번에는 피할 기회 같은 건 주지 않겠다. 여기는 좁고 지저분한 새둥지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이 비둘기는 내 몇 안 되는 약점인 공중전 강요와 일방적인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적이지만.
그런 놈이 음흉하게 처박혀서 날개를 펼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으니, 다 무슨 소용이랴?
맨날 받아 처먹기만 하느라 날아오를 생각도 안 하는 꼬라지 하고는.
시내 한복판의 닭둘기랑 다를 게 전혀 없잖아.
-콰직!
도약과 함께 펼친 소드 차지로, 비둘기 대가리 하나를 꿰뚫었다.
**
머리를 꿰뚫린 비둘기는 그대로 픽 쓰러졌지만,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대가리를 장식으로 셋이나 달고 있을리는 없겠지, 하나당 페이즈가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잠시 움직이지 않게 된 비둘기 괴물을 내버려두고, 구석에 처박혀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대신관의 멱살을 쥐었다.
“야, 야, 정신 차려. 너 지금부터 진짜 중요한 일 해야 하거든? 자, 포션 마시고.”
“윽, 이거 놓으……지상의 부정한 약물을……”
“저 꼬라지 보고도 아직도 그 소리가 나오냐? 닥치고 그냥 처먹어, 좀!”
힘으로 대신관의 입에 포션병을 쳐넣고, 억지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킨 후 일으켜 세웠다.
“잘 들어, 천계는 이미 저 비둘기 새끼의 둥지야. 저놈이 죽으면 붕괴해, 그리고 나는 저놈을 꼭 죽일 거고.”
“그런데 니들이 가만히 있으면, 천계랑 같이 무너져서 추락사하겠지?”
“바깥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훅 떨어질 텐데, 제대로 날아서 살아남을 놈들이 몇이나 될 거 같냐?”
말하는 사이, 쓰러져 있던 비둘기 괴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2페이즈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천계는 망했어, 니들은 이제 지상에서 살아야 해. 네가 나가서 그걸 설명하라고.”
“그, 그런……어찌 그런 가혹한.”
“가혹하기는 개뿔, 너희가 지상을 알기는 하냐? 내가 지상 물이 좀 든 천족을 하나 알거든?”
앤젤라를 물들여 타락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떡볶이 튀김 순대에 홀딱 반해서 일탈을 선택하던 앤젤라처럼, 한 번 고삐가 풀리면 그다음은 쉬울 거라는 것을.
온갖 것들을 다 부정하다며 멀리하고 금지해 온 천족은, 사실 자극에 약한 개허접 종족이라는 것을.
“장담한다, 니들 다 지상 내려가고 한 달 안에……인생 절반 손해 보고 살았다고 말할 거야.”
2페이즈로 넘어간 비둘기 괴물이 마력을 내뿜으며, 천장과 바닥이 모조리 뒤흔들린다.
나는 바깥을 향해 대신관을 밀어서 날려버리고, 다시 무기를 들었다.
“지상은 살판나겠어.”
순수하고 세상 물정 모르면서 자극에 약한 미남미녀 종족이 잔뜩 이주해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