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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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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락으로의 길

어쩐지 하루종일 낮일 것만 같은 천계에도 밤은 온다.

하늘 위의 세계는 밤의 풍경도 여러모로 다르다. 다른 건 몰라도 경치 하나만큼은 죽여주는 동네다.

공간도 탁 트인 곳이 많아서 단련하기에도 이만한 곳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가볍게 몸을 풀고 바깥으로 나왔다.

단련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맨몸운동에 이것저것을 덧붙였을 뿐.

[무지한 자의 비약]

우선 인벤토리에 쌓아둔 비약 중 하나를 마신다. 근력 스탯을 낮추고 지능 스탯을 높여주는 아이템이다.

이런 아이템을 사용해 근력을 낮춰 두면, 그만큼 근육을 더 혹사해 초회복을 유발할 수 있다.

변화하는 수치 자체는 미묘하지만, 천계의 기본 제약으로 반 토막 난 스탯에는 상당히 유의미하게 작용할 거다.

몇 종류의 비약을 섭취한 뒤, 얕게 호흡하며 마력강화를 발동한다.

-쿠르릉!

천둥 소리와 함께 몸에 힘이 깃든다. 그와 동시에, 순환하는 마력을 사지의 근육에 집중적으로 흘린다.

마력 자체를 근섬유에 침투시키는 한편으로 강화 효과는 최대한 적게 들어오도록 조정하고 나면, 준비 완료.

준비를 마쳤으면, 가능한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갑옷을 껴입고 그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탁탁탁탁탁!

달리기는 도전자의 몸으로도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강도 운동이다. 속력을 내는 만큼 부하를 가할 수 있으니까.

기구를 사용하는 운동은 그야말로 산만한 기구가 필요할 거고.

다른 맨몸운동들은 체중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달리기만큼은, 높아진 수행능력을 그대로 부하로 전환하는 게 가능하다. 그냥 속도를 팍팍 내면 되니까.

중요한 포인트는 [질주]등의 속도 관련 보조 스킬을 비활성화시키는 것.

이런 보조 스킬은 대부분 자동으로 발동하는 버프 내지는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에, 원래는 마음대로 비활성화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오랜 연습 끝에 일부 패시브 스킬과 자동 발동형 버프 스킬의 영향을 차단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내 스킬을 내가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면 쪽팔리니까. 내 목표를 생각하면 시스템에 너무 기대는 것도 안 좋고.

아무튼- [질주]나 [도약]같은 스킬들의 보조를 모조리 차단한 상태.

마력강화의 힘을 빌어 끝없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달린다.

-투둑, 뚜둑!

몸 여기저기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마력강화를 이용해 무리하게 혹사한 신체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망가진 부분은 [초재생]의 효과로 금방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망가진다.

결국 운동은 자기파괴다.

파괴와 회복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구조, 마력강화와 초재생의 조화는 이를 한계까지 가능케 한다.

스탯이 반토막난 덕분에 오늘은 특히 운동이 잘 먹는 느낌이다. 이거 생각보다 스탯을 더 키울 수 있겠는데.

“후우, 후우……”

얼마나 달렸을까, 슬슬 체력이 부쳐온다. MP도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슬슬 그 타이밍이다.

억지로 이어오고 있던 마력강화가, 마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강제로 끊어진다.

-뚜둑!

“어억!”

씨이이이발, 진짜 뒤지게 아프다. 누가 내 근육에다가 갈고리를 박고 잡아 뜯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지랄 맞은 통증이 몸을 잠식하고 있을 때가 피크다. 가장 강하게 부하가 닥친 순간이니까.

“으아아아악!”

소리를 아낌없이 내지르며 억지로 계속해서 달린다. 말 그대로 악으로 깡으로 버텨가며.

혼절할 것만 같은 고통을 이겨내며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리다가.

-털썩.

“으헉, 후욱, 켁, 씨, 발.”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멈춘다.

원래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운동하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지만, [초재생] 스킬이 있는 나는 별 상관없다.

다시 체력과 MP가 회복되기를 기다린 다음, 똑같은 짓을 또 반복. 그렇게 몇 시간을 쓴 결과.

단순한 운동만으로 레벨업 없이, 근력 스탯과 민첩 스탯을 각각 2씩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좋은데……?”

하루만에 이만큼 올리는 거 진짜 쉽지 않은데, 개꿀이잖아.

**

다음 날, 나는 천족 부부와 함께한 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간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예에, 뭐.”

“다행이네요, 불편한 점은 없으셨고요?”

자기는 커녕 달밤에 체조나 하고 있었지만, 예의상 적당히 대답했다. 어차피 상대도 예의상 물어본 걸 테고.

그리고 아예 안 잔 것도 아니다. 운동을 마치고 나서 한두 시간 정도 잠을 청했으니까.

며칠밤 정도야 가볍게 지새울 수 있는 몸이지만, 최근에는 정신 건강을 위해 하루에 한 번은 꼭 자려고 하고 있다.

“……”

테이블에 앉아 수프에 적신 빵을 우물거리고 있는 앤젤라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벽 뒤에 숨어있을 때랑 비슷한 눈빛이다. 아무래도 내가 밤에 몰래 나갔다가 온 걸 눈치챈 모양.

[암영]스킬까지 써서 나름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1레벨짜리 스킬로는 좀 부족했던 것 같네.

“이번에는 뭐가 궁금한데.”

나는 식사를 마치고, 천족 부부가 식기를 치우러 움직일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물었다.

앤젤라는 포크 하나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채로 대답했다.

“어제 뭐 했어? 집에서 안 잤지?”

“잤어, 잠깐은.”

“잠깐밖에 안 자고 뭐 했는데?”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냥 운동’ 이라고, 그러자 앤젤라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올려 뜨며 말했다.

“나는 하늘지기 집안이라 천리안의 은총을 갖고 있어, 신수님의 눈을 빌려서 다른 곳을 볼 수 있지.”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운동할 때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다.

“너무 빨라서 뭐 하는 건지 몰랐는데, 그게 운동이었어? 지상의 인간들은 그런 운동을 해?”

“아니, 나만.”

“너는 인간이라면서 왜 다른 인간들이랑 다른 게 그렇게 많아? 너 진짜 인간이야?”

역시 앤젤라는 지상에 관심이 많다. 선민의식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천족답지 않은 호기심.

이쪽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기질이다. 내가 여기서 앤젤라의 호기심에 반응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질문에 대답해줄 때마다, 앤젤라의 강렬한 호기심은 조금씩 금기를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

엘레노어를 연상시키는 저 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앤젤라를 위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 호기심을 원천 차단하는 것, 앤젤라의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호기심에 답해주는 것, 앤젤라가 천벌을 받을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애초에 천계는 파멸이 확정되어 있다.

이미 스토리가 진행된 다른 탑의 천계는 대부분 엉망이 된 상태다. 천계의 시스템이 그럴 수밖에 없게 짜여 있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

그리고 내 결정은 후자였다. 천신이 천벌을 내리건 어쩌건 간에, 앤젤라의 호기심에 대답해 주는 것.

어차피 천계는 멸망할 거니까, 앤젤라가 천벌을 받아 죽건 말건 상관없어서- 그런 이유는 아니다.

나는 천계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했지만, 천계를 멸망시킨다는 게 천족을 다 죽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천계는 천신에 의해 만들어져서 유지되고 있는 세계, 고로 천신이 죽으면 천계는 자동으로 멸망한다.

내 목표가 그거다.

이 15층의 유력한 히든 보스 후보- 천신을 죽여서 천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천족을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

천신이 뒈지면 천벌이고 뭐고 없다. 나는 이 호기심 많은 천족을 무사히 살려서 땅으로 보낼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야 결정할 수 있었던 9층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아, 아니, 그런 거 안 궁금해. 부정한 인간족의 생태를 내가 왜 궁금해하는데?”

“궁금하잖아, 쫄지 마. 천벌 같은 거 안 내려.”

“너, 너 정말 천벌 받을 녀석이구나? 그건 천신님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는 말이야!”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그게 뭐 어때서.”

적어도, 천계의 답답한 룰에서는 벗어나게 해 주마.

**

안젤로스-달피온 부부와 앤젤라는 하늘지기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하늘지기란 천계의 외곽을 지키는 파수병임과 동시에, 신수들의 생태를 관리하는 양치기와 같은 직종.

이들은 천리안이라는 은총을 대대로 물려받으며, 대부분 생을 마칠 때까지 하늘지기로 평생을 산다고 하는데.

그런 하늘지기 집안에서 앤젤라 같은 호기심 왕성한 아이가 태어난 것은 의미가 복잡한 듯했다.

“와, 왔어?”

때는 조금 늦은 저녁, 나는 앤젤라가 하늘지기로서 맡은 구역으로 넘어왔다.

천족 부부 몰래 지상의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다. 앤젤라는 천벌 따위가 뭐 어떠냐는 내 말에 가볍게 넘어온 거다.

하지만 지금도 앤젤라의 표정에서는 ‘이건 나쁜 짓인데……’라는 생각이 그대로 엿보인다.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진 것이다.

표정이랑 쭈뼛거리는 태도만 보면, 뭔가 불건전한 밀회라도 하는 것 같네.

하필 연령대도 사춘기 여자애라서, 더더욱 그런 분위기가 난다.

심지어 내가 여자애를 꼬드겨서 일탈로 빠트리는 금태양 포지션이기까지 하다. 허, 참.

“그, 그럼 빨리……누가 올지도 모르니까.”

천족 딸내미 꼬셔서 타락시키기, 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