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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마계의 최강자
인간의 세계도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듯, 마계 역시 과거에는 통일되지 않고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 탓에 마족들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외곽 지역인 외마계와, 마족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는 내마계.
그리고 내마계는 한 번 더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지역마다 그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마왕이 존재했다.
동쪽 마계에는 동쪽의 마왕, 서쪽 마계에는 서쪽의 마왕. 마계에는 총 네 명의 마왕이 균형을 유지하며 대립하고 있었다.
마왕의 좌에 앉기 위한 자격은 오직 하나, 다른 마족을 짓누를 힘.
각 지역의 마왕은 곧 그 지역의 최강자였으며, 최강이 아니게 된 마왕은 다른 강자에 의해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힘의 법칙에 의해 반복되는 쇠락과 부흥, 수많은 도전 속에서 마왕이 교체된 것이 그야말로 수십 번.
몇 번이고 바뀐 왕좌의 주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이 바로, ‘원색’을 가진 마족들이었다.
마족들마다 타고나는 고유한 마력의 색깔, 그중에서 가장 순수한 색을 가진 이들에게 부여되는 원색의 칭호.
원색의 마족들은 역대 마왕 중에서 누구보다 마왕의 좌를 오래 지켰다.
그 원색의 마족에게서 왕좌를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원색의 보유자, 즉 그 마족의 혈연이 대부분이었고.
각 마왕이 20대째를 넘어섰을 시점엔, 동서남북의 마왕 모두가 원색의 마족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원색을 타고나는 것이야말로 마왕의 자격, 그런 인식이 마족들 사이에 박힌 후로 수백 년이 흘렀을 때쯤.
척박한 환경으로 누구도 살 수 없다던 외마계에서 나타난 한 마족이, 각 지역의 마왕을 차례차례 격파하기 시작했다.
가진 마력의 색 따위는 힘을 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 마족이 가진 마력의 빛은 회색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원색이라 칭하기 힘든 어중간한 회색, 창고 구석에 쌓인 먼지 내지는 아무렇게나 섞인 물감의 색.
회색은 최강이라 여겨지던 원색의 마왕들을 모조리 무릎 꿇리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었던 마계를 홀로 통일시켜버렸다.
최초의 통일 마왕이자, 역대 최강의 마왕.
회색의 마왕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온 마계에 강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원색 마족들의 뿌리를 뽑는 것이었다.
마왕은 정체 모를 마법으로 색을 가진 마족들에게서 힘의 정수를 뽑아내고, 그들에게 제약을 걸어 자신의 종으로 삼았다.
힘의 정수라는 알 수 없는 것을 빼앗긴 원색의 마족들은 더는 예전만큼 강하지 않았다.
소수의 전대 마왕들은 정수를 빼앗긴 후에도 힘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회색의 마왕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전대의 마왕들을 힘으로 복속시키고, 그들을 한낱 문지기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이것이 고작 문지기 따위가 14층의 보스인 마족 백작보다 강한 이유다.
그렇다면, 왜 14층의 보스가 마왕이 아니라 문지기보다 약한 마족 백작인가. 회색의 마왕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뭐야, 끝이야?”
나는 스크롤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혼잣말했다. 게시글의 마지막 줄에는 ‘다음 편에 계속’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허 참, 절단신공이 아주 기가 막히다. 드라마나 소설 하나 쓰면 아주 대성했겠어.
나는 툴툴거리며 다음 편을 검색했다. 그런데 작성자의 이름으로 아무리 검색해봐도, 다음 편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씨발새끼가.”
이 마족보다 더한 새끼가, 1편만 싸질러놓고 튀었다!
**
다행이게도 영영 나오지 않을 2편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 게시글의 작성자는 14층의 배경을 파본 도전자 중 하나일 뿐이지, 딱히 창작자가 아니었으니.
14층의 배경을 조사한 도전자는 그 밖에도 있었고, 그런 이들의 글과 댓글을 뒤지다 보니 금세 다음 내용을 알게 됐다.
원색의 마족들로부터 힘의 정수를 빼앗아 간 존재, 이 14층의 최강 몬스터인 문지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회색 마왕.
현재 14층은 그 마왕이 모종의 이유로 쓰러져서 모습을 감춘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상당히 골때렸다. 이 14층의 배경도 다른 층의 배경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법공학이 극도로 발전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46층, 그곳의 보스가 바로 회색의 마왕- 그 영혼이었다는 거다.
46층의 어떤 퀘스트에서 등장하는 사교도가 실행한 소환 의식이 성공해, 마왕의 영혼이 소환되었다는 것.
즉, 마왕이 쓰러졌다는 건 영혼만 다른 세계로 소환되어서 몸만 남아버린 상황이라는 거다.
“와, 어이가 없네.”
문지기가 마력량에 비해 약한 이유는 힘의 정수라는 게 뽑혔기 때문이고, 그걸 뽑아간 건 회색 마왕.
그렇다면 회색 마왕은 힘의 정수를 잃지 않은 문지기- 그 막대한 마력을 온전히 활용하는 마족들보다 훨씬 셀 거다.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설정이 잔뜩 붙었으니, 히든 보스로 회색 마왕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뭐, 영혼이 다른 세계에 소환돼? 남은 건 빈껍데기 몸뚱어리 뿐?
관심 가는 키워드가 여럿 있긴 하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층에서 전투적인 면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
**
마지막 세 번째 관문의 정공법은 거대한 블록으로 만들어진 퍼즐을 푸는 것.
퍼즐의 해법은 커뮤니티에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여태껏 그랬듯이 나는 그딴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멈춰라, 이곳을 지나가려면 네놈의 지혜를 보여야 한다.”
“그래그래, 난 무식하니까 내 방식으로 지나갈게.”
“지혜롭지 못한 자는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돌아가라.”
나는 인벤토리에서 큼지막한 망치를 꺼내, 녹색의 마족이 들이민 거대 블록을 박살내버렸다.
-쾅!
산산조각난 블록이 후두두 떨어지자, 녹색 마족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처음 봤던 붉은 마족은 육탄전 위주의 근접 전투형, 그다음으로 본 푸른 마족은 마법을 난사하는 원거리 공격형.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도록 배치된 건지, 두 쌍의 날개를 펼친 녹색 마족의 주 무기는 속도였다.
-훙훙훙훙훙!
날개를 펼치고 내 주변을 고속 비행으로 맴돌았다. 그 여파로 발생하는 충격파만 해도 심상찮은 수준.
속도 면에서는 기믹을 풀지 않은 13층의 보스와 비슷한 정도. 층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거다.
13층 보스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놈은 뛰는 게 아니라 아예 날아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비행 중의 움직임도 별 제약 없이 매우 자유로워 보이니, 나 같은 근접 전사 타입에겐 무척 불리한 상성이다.
원거리 공격은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지만, 공중전은 비행 능력이 없는 한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까.
“근데, 그렇게 붕붕 날아서 뭐 어쩔건데.”
다만 이 녹색 마족은 붕붕 날아다니기만 할 뿐, 뭔가 공격을 시도하려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내가 공중전이 약점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상대방이 공중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
즉, 비행과 원거리 공격 수단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성립한다는 거다. 이놈은 그런 게 없어 보이고.
“숨통을 끊어주마!”
그 때, 녹색 마족이 소리치며 급하게 속도를 높였다. 설마 저 속도로 들이받으려는 건가?
근데, 그런 식으로 공격하려면 최소한 숨통을 끊니 어쩌니 하면서 타이밍을 알려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병신인가.”
나는 곧바로 타이밍을 맞춰 스킬을 발동했다.
[철벽]
[혼신]
-콰앙!
전속력으로 내 몸에 들이받은 녹색 마족의 몸뚱이가 박살 나며, 육편을 흩뿌렸다.
몸통박치기를 하려면 자신과 상대 중 어느 쪽이 더 단단한지는 알고 했어야지.
“크허억……말도 안 된다, 어떻게……!”
바위에 부딪힌 계란 꼴이 된 녹색 마족이 부들거렸다. 그래도 간신히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다.
곧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이마에서 뿔이 돋아났다. 뿔의 개수는 이번에도 여섯, 푸른 마족과 똑같다.
이거, 첫 번째로 만났던 붉은 마족이 가장 강한 놈이었던 것 같다. 그놈도 한 방감이었는데.
“제법이구나, 남쪽 마계의 26대 마왕인 이 로투랑이 뿔을 꺼내게 할 줄이야!”
봤으면 알겠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 저 새끼가 와서 혼자 들이받고 뒤지려 한 거지.
놈은 뿔을 꺼냈으니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처럼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내구력도 올랐을 테고, 이미 한 번 당해봤으니 무식하게 들이받으려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속도로 승부하려는 시점에서 이미 글러 먹었다.
나는 이미 13층 보스를 단순한 전력질주로 따라잡아 본 전적이 있다. 그보다 더 빨라질 수단도 있고.
[신속]
순간적으로 이동속도를 높여주는 [신속] 스킬을 사용해 단번에 녹색 마족의 배후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뒷덜미를 붙잡은 뒤, 얼굴을 땅에 처박아 버렸다.
-쾅!
그대로 지면에 뿌리채소처럼 심어진 놈의 팔다리를 우둑우둑 꺾었다.
전투적인 면에서는 말했듯 이미 기대를 접었지만, 영혼 소환이라는 키워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야, 너는 전직 마왕씩이나 되는 놈이 쪽팔리게 뭐 하는 거냐?”
나는 제압한 녹색 마족을 향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얌마, 인간한테 털리니까 기분이 어때. 힘의 정수인가 뭔가, 그거 다시 찾고 싶지 않아?”
너, 나랑 혁명 한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