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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드 준비
7층에서 시작하는 진영 퀘스트는 진행 방식에 따라 20층대까지 이어진다.
다만 진영 퀘스트가 중심이 되는 층은 9층까지만이다. 그 이후로는 드문드문 연관된 퀘스트가 나올 뿐이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후일담이나 팬서비스 수준으로 엘프나 인간 진영이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정도.
소위 ‘세계관’이 엄밀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커뮤니티 도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저 꼬락서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수를 집어삼키고, 말 그대로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거대한 뱀.
그리고 극소수의 엘프 NPC가 등장하는 층의 황폐한 배경.
아마도, 이 9층의 세계관은 다른 층까지 이어진다. 저 뱀 때문에 한 번 멸망한 다음의 세계라는 설정으로.
“맙소사……어떻게 이런 일이.”
몇 번이나 그림자 마법을 사용해 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는, 멍하니 무너져가는 성을 바라보았다.
나도 엘레노어도 갑작스레 벌어진 참사에 말을 잇지 못했으나, 가장 동요하고 있는 것은 역시 메르세데스였다.
소중히 여기던 왕자는 몸을 빼앗겨 버렸고, 고향은 실시간으로 거대한 괴물에게 무너지고 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메르세데스에게는 이 참상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메르세데스는 추방당하기 전까지 하이엘프 왕의 곁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으며, 그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세계수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깊게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힘겨워하다, 끝내 추방당하고 기회를 빼앗겼다.
“……”
멍하니 파괴되는 성을 지켜보던 메르세데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들고 일어섰다.
“야, 어디 가려고.”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녀석을 붙잡았다.
“지금은 추방당한 신세지만, 나는 하이엘프의 제1기사다. 우리의 도시가 무너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안 두고 보면 뭐 어쩔건데, 네가 봐도 저긴 이미 그르지 않았냐?”
“그렇다고 해도……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겐 버려둘 수 없는 의무가 있어. 도와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평소같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이번에는 가게 둘 수 없었다.
미궁 지역이 소멸하고, 나는 에픽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에픽 퀘스트에 멸망 엔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저 뱀을 처치해야만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
[공격대를 결성하십시오. 현재 서버의 참여 가능 도전자 : 1명]
문제는 저 뱀이 공격대를 편성해 싸워야 하는 월드 보스고, 이 빌어처먹을 탑에는 나 혼자밖에 없다는 점.
나는 9층 도전자의 평균 스펙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으나, 저런 걸 혼자 쓰러트릴 수는 없다.
최소 50인의 공격대를 편성해야만 하는 적, 그걸 나 혼자 쓰러트리려면 평범한 도전자보다 100배쯤은 세야 할 거다.
나는 그 정도로 강하지 않다. 메르세데스 같은 강력한 아군을 잃으면 끝장이다.
“지금 저기로 달려가서 혼자 뒤지는 게 네 의무냐?”
나는 메르세데스에게 말했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해도 괜찮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동족을 구하고 싶어서 가는 거라면 안 말려, 말리기는 무슨- 도와줄 수도 있어.”
“……그 꼬락서니로 말이냐?”
“사지가 날아간 것도 아니고, 내장 좀 갈린 건 포션 때려 부으면 어떻게든 돼. 좀만 있으면 다 나아.”
어차피 전쟁은 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진영을 불문하고 하나라도 아군을 늘려야 하는 상황.
우호도 80 이상의 NPC를 파티원으로 넣을 수 있다는 건, 아마 이런 걸 의도한 설정일 테니까.
“엘레노어, 도와줄 수 있어?”
나 하나가 더해진다고 될 일도 아니기에, 나는 엘레노어에게도 물었다. 아마 엘레노어라면 흔쾌히-
“……그래, 그대가 원한다면.”
-도와줄 줄 알았는데, 어쩐지 좀 떫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두 눈에 별빛은 없다.
아니, 표정은 아무래도 괜찮지.
이거야말로 엘레노어가 원하는 전쟁을 종식시키는 일 아닌가.
**
커뮤니티에서 월드 보스에 관한 정보를 있는 대로 긁어모았다.
50인 이상 규모의 공격대가 필요한 대규모 레이드, 난이도는 출현 층수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매우 높음.
클리어 시 확정으로 에픽 등급의 보상을 드롭, 보상은 아이템이나 에픽 등급 전직서 등이 존재.
영국의 유명 S급 헌터인 제라드 그레이엄이 보유한 [용살자]라는 에픽 클래스가 월드 보스 레이드로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으로, 월드 보스는 출현 직후의 개시 패턴이 종료되면 잠시 휴식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
지금 내 눈앞에는 저 뱀의 재활동까지 남은 시간이 카운트 되고 있었다.
아마 이건 시스템의 안배로 주어진 공격대 결성을 위한 시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유효하게 활용해야겠지.
-촤악!
똬리를 튼 거대한 뱀 근처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가시덩굴 괴물을 베어버리고, 무너진 건물로 향했다.
거대한 석재 덩어리를 힘으로 밀어서 치우고, 그 밑에 깔려 있던 엘프를 일으킨 뒤 포션을 먹였다.
구해낸 엘프는 그대로 엘레노어가 설치한 그림자 워프 포인트로 옮겨, 마을로 호송한다.
벌써 이 짓거리를 몇 시간이나 반복했다.
재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된 기분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무기를 쓴다는 것 정도일까.
“이건 뭐 끝이 없어서 더 좋네.”
계속해서 스폰되는 가시덩굴 괴물을 썰어버리며 나는 계속해서 파괴된 도시를 누볐다.
휴면 상태에 들어간 월드 보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잡몹들은 내게 훌륭한 포션이 되어주었다.
원래는 이놈들도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내 스펙 앞에서는 그저 그런 잡몹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여러 스킬과 무기의 옵션으로 잡몹을 잡을수록 HP와 MP를 회복할 수 있다.
“이쪽은 거의 끝났다.”
다른 쪽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던 메르세데스가 합류하며 말했다.
“왕성과 인접한 지역이라 피해가 컸어, 살아남은 이들이 무척 적었다……이쪽은 어땠지?”
“여기도 대충 그래.”
“역시 그런가, 예상하고 있었지만……남은 이들이라도 구할 수 있었던 것에 기뻐해야 할까.”
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마땅히 답해줄 방법이 없는 말이었다. 다만 조용히 포션 한 병을 건네주었다.
HP와 MP를 무한대로 회복할 수 있는 건 나 뿐, 메르세데스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친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만한 숫자를 구할 수는 없었을 거야.”
내가 준 포션을 받아들며, 메르세데스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뭐, 내가 구조에 큰 몫을 한 건 맞다.
하지만 구조된 인원을 받아준 건 엘레노어와 다크엘프들이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대수로운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메르세데스가 느끼는 건 또 다르겠지. 어쨌든 내가 말을 꺼내서 실행할 수 있었던 일이니까.
나로서는 레이드에 참여할 아군을 하나라도 늘리기 위한 일이었을 뿐이지만.
“정말로, 고맙다.”
이 고압적인 엘프의 태도를 바꿔놓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
갑작스러운 월드 보스의 출현으로 하이엘프 세력은 완전히 와해하였고, 소수 난민만이 남았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것은 하이엘프만이 아니었다. 마침 도시를 공격하려고 준비 중이던 왕국군 진영도 큰 피해를 보았다.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다크엘프 진영뿐, 하지만 세상을 먹어치우겠다고 선언한 뱀이 다음으로 향할 목표는 뻔하다.
하이엘프를 쓸어버렸으니, 다음에는 다크엘프의 차례겠지. 그다음에는 남은 인간 세력을 쓸어버릴 테고.
그래도 어쨌든, 유일하게 피해를 당하지 않은 다크엘프 진영은 현재- 난민촌이 되어 있었다.
“개판이네.”
구조된 하이엘프와 마찬가지로 구조된 소수의 왕국군 병사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모여 있다.
하이엘프들은 그나마 같은 엘프종 사이라서, 상대적으로 경계가 심하지 않다.
하지만 왕국군 병사들은 상황을 조금도 모르고 휩쓸렸다 구조된 상황이다 보니, 유독 날이 서 있다.
그리고 인간을 좋아하는 다크엘프들은 난데없이 받게 된 인간 난민들을 향해 어마어마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젠 전쟁의 기억 때문에 인간이라고 무조건 호의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지만, 기본적인 습성은 그대로.
다크엘프들에겐 화재 현장에서 꼬질꼬질한 새끼고양이 무리를 구조해 온 꼴이니까, 이 정도면 잘 참고 있는 거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불편한 대치를 원해서 이들을 구조해 온 게 아니다.
월드 보스의 활동 정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이들을 규합해서 전력으로 삼아야 한다.
“엘레노어가 잘 해줘야 할 텐데.”
이미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왕국군 본진에 전령을 보내두었다. 곧 이 자리에서 삼대 세력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들을 설득해 아군으로 만드는 건, 말재주라고는 쥐뿔도 없는 내겐 불가능한 일.
판은 깔아뒀으니, 이젠 기대를 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긴급)월드 보스 레이드 팁 구함]
지금부터 나는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레이드 전략을 구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