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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족 특성
최소한 수천 년 이상을 암약하고 있었을 흑막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체를 드러내도 아무 상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어째서 저 녀석은 이 순간에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추측해 보자면, 둘 중 하나다.
우리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릴 자신이 있거나, 정체가 들켜도 상관이 없을 만큼 목표가 코앞이거나.
우리는 녀석의 정체는 알지만, 녀석의 진짜 목적은 전혀 알지 못한다.
역대 하이엘프 왕이 모두 저 녀석 하나였다면, 왜 녀석은 다크엘프와 평화 협정을 맺으려 했던 걸까.
왜 결혼을 통한 평화 협정이 어그러지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다짜고짜 전쟁을 선포한 것일까.
단순히 연명이 목적이라면, 굳이 세계수를 장악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엘프는 원래 영생하는 종족이니까.
-쿠르릉!
펜던트를 사용해 마력강화를 발동했다. 어쨌든 저 녀석이 흑막이라면 여기서 처치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쥐고 앞으로 돌진하려던 순간, 세계수가 다시 한번 마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내 발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마법적인 방해 효과를 받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공포나 두려움 때문에 발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머리가 멈췄다.
지금까지 느껴지고 있던 해일 같던 마력량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는 전력 차이에.
저걸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전혀 생각이 안 나서,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씨발, 저게 대체 뭐야.
하이엘프 왕의 머리 위에 떠오른 콘솔의 색깔이, 새까맣다 못해 조그만 블랙홀처럼 보인다.
그냥 저 모양의 구멍이 허공에 뚫려 있는 것 같다. 너무 어두워서 눈이 착시를 일으키고 있는 거다.
들고 있는 검이 그냥 나무토막처럼 느껴지고, 갑옷과 방패는 종잇장처럼 느껴진다.
“이런,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어깨에 닿은 손의 감촉, 나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후웅!
하지만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내 뒤편으로 이동했던 놈은 다시 왕좌로 돌아가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순간이동?
마력강화를 사용한 내 반응속도를 능가하는 전조 없는 이동기라고? 말이 되는 건가?
“왜 네가 그렇게 긴장하고 있나, 이름 모를 인간족 검사. 내 목적은 너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다.”
세계수의 마력을 등에 업은 하이엘프 왕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자, 아름다운 그림자여. 네 왕관을 내놓아라.”
“왕관……?”
“그래, 그 마지막 한 조각만 있으면……너희를 해할 필요도 없다.”
놈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이동해, 엘레노어의 앞에 나타났다. 나는 다시 검을 휘둘렀지만, 맞지 않았다.
“세계수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장치는 셋, 그 마지막이 왕관이다. 너희는 그것만 내놓으면 돼.”
정체를 드러낸 이유가 이거였나. 왕관을 가진 엘레노어가 자신 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까.
확실히, 그게 목적이라면 결혼으로 평화 협정을 맺는 게 가장 쉬웠겠지.
그게 어그러지자 힘으로 빼앗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 거고- 아니, 그건 좀 타이밍이 이상한데.
전쟁을 일으키려면 진작에 일으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이만한 힘이 있으면 굳이 전쟁 따위-
“아하.”
- 아니, 그런 거구나. 처음부터 이만한 힘을 갖고 있던 게 아니었어. 백 년에 걸쳐서 얻은 거야.
이건 저 녀석이 쌓아올린 힘이 아니다. 백 년을 들여서 세계수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것뿐.
그리고 구태여 이 방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것도, 당연히 이유가 있었겠지.
“그 말을 듣고 순순히 왕관을 내줄 것 같았나.”
-콰과곽!
엘레노어가 손을 휘두르자, 그림자의 가시가 튀어나와 하이엘프 왕을 덮쳤다.
“그래, 내어주지 않을 줄 알았지. 하지만 너희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음을- 왜 깨닫지 못했지?”
공간이동으로 가시를 피해낸 왕은 세계수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요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실력 행사를 해야만 하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했던 적이, 제대로 힘을 쓰려고 하고 있지만.
이제는 견적이 나온다.
어떻게 해야 이 어설픈 녀석을 이길 수 있을지.
**
얼타고 있던 메르세데스도 마력강화를 발동하고, 엘레노어도 그림자를 끌어올려 대비했다.
-우우웅!
하이엘프 왕의 손에서 만들어진 마법진이 발광하는 구체를 만들어 사방팔방으로 흩뿌렸다.
에메랄드 와이번이 있던 지하 던전을 연상시키는 공격이다.
구체 하나하나가 내 마나 총량만큼의 힘을 품고 있지만, 그 정밀함이나 밀집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콰광! 콰과광!
나는 마력강화의 힘에 더해 [혼신]스킬을 발동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엘레노어도 그림자를 이용한 이동 기술로, 메르세데스는 그냥 무식한 속도로 회피해 냈다.
하지만 구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진다. 이것만 피하다가 체력이 다 떨어지게 생겼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흐읍!”
배에 힘을 빡 넣고, [혼신]스킬로 내구 스탯을 높이고, 마지막으로 [철벽]까지 사용했다.
-콰광!
날아드는 구체를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버렸다. 폭발의 영향으로 전신이 찌릿거린다.
내 다중 내성을 뚫는 공격력, 거기에 폭발 지점에서 마력 폭풍이 휘몰아쳐 속을 진탕으로 만든다.
씨발, 내장만 따로 빼서 원심분리기에 돌리는 것 같다. 목으로 울컥 피가 올라온다.
하지만 부상을 감수하는 것으로, 마법 공격을 뚫고 상대와 거리를 좁히는 것에 성공했다.
“세계수의 마력은 별의 지맥에서 끌어올리는 것이다.”
-카강!
왕은 가볍게 배리어를 생성해 내 검을 막아내며,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땅의 힘을 빼앗아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지. 그렇기에 그 힘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다.”
하이엘프 왕의 눈이 빛나고, 괴상한 열선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나는 재빨리 방패를 들었다.
-푸슉!
하지만 열선은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관통해, 내 팔과 가슴팍을 꿰뚫고 그 자리를 열기로 지져버렸다.
“별의 지맥도 언젠가는 고갈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별은 벌써 밑천을 드러내고 있어.”
주절거리는 하이엘프 왕을 향해 거대한 그림자의 도끼가 내리쳐졌다. 엘레노어의 공격이다.
하지만 왕은 이번에도 순간이동을 사용해 가볍게 피해 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 말을 내 힘에 끝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이번에는 왕의 배후를 노리고 메르세데스가 검을 휘둘렀지만, 마찬가지로 빗나가 버렸다.
“아, 그러셔.”
나는 포션을 들이키며 들고 있던 검을 집어던졌다. 내 주특기를 펼칠 시간이다.
검은 당연히 빗나갔지만, 이미 내 손에는 새로 창이 들려 있다.
창도 빗나가고, 이어서 도끼를 휘둘러도 막히고, 방패를 던져도 빗나간다.
-촤라라라락!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벤토리 안의 물건들을 쏟아내며 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
공격이 막히는 건 상관없다. 빗나가는 것도 상관없다. 상처를 입는 것도 상관없다.
아무리 요란하게 날뛰어도 통하는 공격은 하나도 없고,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흐를 뿐이지만 상관없다.
내가 안간힘을 써서 덤벼들수록, 저 멍청한 녀석은 나를 얕잡아 볼 테니까.
-콰광!
쏟아낸 무기들이 산산이 조각나서 흩날린다. 하이엘프 왕이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막대한 마력이 모인 손아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소리쳤다.
“문을 부숴! 여기서 나가!”
메르세데스와 엘레노어는 내 외침에 곧바로 반응했다.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많이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하이엘프 왕은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저놈은 우리가 이 방에 들어온 뒤에야 문을 닫고, 다 이겼다는 듯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녀석의 힘은 세계수에 의존하고 있다, 다른 존재의 힘을 아무런 제약 없이 행사할 수는 없을 터.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전장에 나가서 죄다 쓸어버리고 엘레노어의 왕관을 빼앗았겠지.
그렇다면 추측해 볼 수 있는 제약은- 세계수와 연결된 왕좌가 있는 이 방 안에서만 힘을 쓸 수 있다는 것.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
하이엘프 왕은 공간이동을 사용해, 도주하려는 엘레노어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이 방 바깥에선 세계수의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저렇게 급하게 막는 거겠지.
그런데 어쩌나, 사실 내 노림수는 탈출이 아니었는데.
내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면서 시선을 끌고, 탈출하라고 외쳤기 때문에- 당연히 그게 노림수라고 생각했겠지.
힘에 취해서 상대를 얕보다가 엿 먹는 거, 그게 니들 종족 특성인가 보구나.
[라이트닝 차지]
[감각 증폭]
[약점 간파]
[혼신]
사용할 수 있는 버프 스킬을 모두 사용하고, 수없이 던져대던 무기 중 하나를 붙잡아 다시 내던졌다.
녀석에게 무식하게 달려들었던 이유도, 탈출하라고 외친 이유도, 모두 이걸 노리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내던져진 무기가 노리는 것은, 세계수와 연결된 하이엘프의 왕좌.
-콰앙!
전력으로 내던진 한 자루 창이 왕좌를 산산조각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모든 하이엘프의 아버지이자 왕이라고 했나, 확실히 그런 것 같네.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실력은- 그 왕자 놈이랑 다를 게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