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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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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빵 부스러기

기대한 것과 다르게, 너무 싱겁게 끝나버린 경기.

박원호도 분명 제 딴에는 철저히 준비한다고 했던 거겠지. 그게 실수를 넘어 자충수가 된 게 문제였지만.

원소술사 클래스인 박원호는 다양한 상황에 대응이 가능한 육각형의 마법사 타입이다.

어림짐작이지만, 아마 근접 전투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을 거다. 반응속도는 꽤 빨랐으니까.

예선전의 도전자들은 내 주먹에 반응도 못 하고 뻗었지만, 이 녀석은 내 방패 공격을 눈으로 쫓을 수 있었다.

정작 몸이 따라가지 못한 게 문제지만, 방패로 얻어맞고 나서도 바로 뻗지는 않았던 걸 보면 맷집도 괜찮은 편이다.

경기 시작과 함께 전개한 게 절연 마법이 아니라 물리 방어 마법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겠지.

패인은 결국 잘못된 분석, 번개 속성에 대응하겠답시고 아이템 세팅을 이상하게 바꿔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 한들, 결과는 먼저 도발까지 했다가 딱 두 방에 뻗어버린 추한 모양새.

그렇잖아도 호감고닉으로 유명했던 녀석이니, 커뮤니티의 익살꾸러기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작성자 : 김지성#2411]

[제목 : ??? : 오케이 서진혁 분석완료]

(사진)

못이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냉철한 분석은 대원호 ㅋㅋㅋㅋ

  • 자기객관화 지리노 ㅋㅋㅋㅋㅋ

  • 한방컷날거 분석해서 두방컷난거임?

  • 이 씨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왤케 당당하노 ㅋㅋㅋㅋ

[작성자 : 박윤호#2551]

[제목 : 방금 경기로 서진혁 분석 끝났음]

클래스는 대충 모르겠고 스탯이랑 레벨도 모르겠다

퍼포먼스하겠다고 괜히 스킬 낭비한거 후회하지 않을거임

본선에서 만나지말자, 제발부탁이다

  • 이새끼는 뭐야 씨발 ㅋㅋㅋㅋ

  • 원호인줄 알았는데 윤호노ㅋㅋㅋㅋㅋ

  • ㄴ 서버도 똑같음 뭐하는새끼냐 ㅋㅋ

  • 윤호게이 이게 커뮤 첫글인게 ㅈㄴ 웃기네 ㅅㅂㅋㅋㅋ

  • 너는 뒤통수에 마법날아와도 그런갑다 해라 ㅋㅋㅋ

주된 소재거리는 당연히 며칠 전 커뮤니티에 올렸던 ‘분석 완료’ 게시글.

콘돔 운운한 내 목소리는 관중석에까지 들리지 않았는지, 그걸 소재로 드립을 치는 경우는 보이지 않았다.

그 밖에는 박원호가 과거에 커뮤니티에 올렸던 몇몇 게시글이 파묘당해, 그걸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정도.

“그놈 그거, 평판은 나쁘지 않은가 보네.”

박원호 같은 랭커급의 강자가 커뮤니티에서 이렇게까지 놀림거리가 되는 일은 원래 거의 없다시파하다.

당연한 일이다, 머리에 스팀이 오른 랭커에게 물리적으로 보복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가 최길현의 악명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진짜 위험한 놈들 상대로는 쉬쉬하게 되니까.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조리돌림을 당한다는 건, 당사자가 이런 일로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도전자들에게 있기 때문.

파헤쳐진 옛날 게시글을 좀 살펴보니, 입을 털다가 굴욕을 당하고도 웃어넘겼던 일이 몇 번씩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이러니까 가만히 있기 아쉽네. 나도 장작 좀 넣어볼까.

[작성자 : 서진혁#2661]

[제목 : 원호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상대가 나잖아 ㅋ

이 정도는 비틱질이 아니라 쇼맨십이지.

**

내 경기가 끝난 뒤에는 다른 도전자들의 32강 경기를 지켜보았다.

15번의 경기를 모두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승후보로 불리는 이들의 경기는 모두 챙겨볼 수 있었다.

확실히 75층의 고층 랭커들은 만만하지 않다. 단체전에 참가한 원숙한 도전자들보다도 더 강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 사이에서 가장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우승후보로는 전혀 꼽히지 않던 무명의 도전자였다.

-카앙!

커다란 경기장 위에서 두 명의 전사가 맞부딪힌다. 한쪽은 평범한 검방 전사지만, 반대쪽은 도끼를 든 야만전사.

전자의 클래스는 [검투사], 후자의 클래스는 [광전사]다. 둘 다 동등한 레어 등급의 클래스로, 공략 층수는 64층과 72층.

그리고 스펙 역시 72층을 공략중인 광전사 쪽이 더 높다. 하지만 경기의 양상은 조금 달랐다.

-카앙! 캉! 카강! 쿵!

길쭉한 외날검과 방패를 든 검투사가 광전사를 상대로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뭉개버려라!!”

하지만 관객들은 광전사가 우위라고 느끼고 있는 듯싶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검투사의 공격은 모두 가벼워 보인다. 한편 광전사는 여러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강력한 일격을 적중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제대로 적중하는 공격은 없고, 전부 다 막히거나 흘려질 뿐이다. 화려하기만 하고 유효하게 들어가는 일이 없다.

-쿵!

그 때, 광전사가 몸에 붉은 기운을 두르며 무식한 돌진을 개시했다. 체급을 앞세워 억지로 몰아붙일 셈이다.

광전사는 가히 인간 전차라 해도 좋은 미친 체급을 갖고 있다. 저런 덩치와 근육은 탑 내부에서의 단련만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다.

타고난 프레임에 더해, 탑 바깥에서 큰 사이즈의 근육을 만드는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야만 만들 수 있는, 딱 봐도 강해 보이는 몸.

그에 비해 검투사의 체격은 상대적으로 작다. 하지만 세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저쪽의 체형이 훨씬 더 낫다는 걸 알 수 있다.

헐크같은 근육을 가진 광전사에 비해 작을 뿐, 190은 되어 보이는 신장- 거기에 쭉쭉 길게 뻗은 팔다리.

무식하게 덩치만 큰 것보다는 저런 체형이 근접 전투에선 더 유리하다. 균형 잡힌 몸에서 나오는 유연함과 안정적인 움직임.

-촤악!

아슬아슬하게 돌진을 피해낸 검투사의 공격이, 광전사의 몸에 커다란 상흔을 새겼다. 이걸로 승패가 갈렸다.

아무런 특징도 없지만 그렇기에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그냥 무난하게 강한 타입.

다음 날 열리는 토너먼트 16강, 내 대전 상대는 저 녀석이다.

**

토너먼트 경기를 모두 보고 난 후, 나는 3번째 친목회를 가졌다.

이번에 만난 것은 각 계층의 배경과 설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일명 ‘고고학자’ 계열의 도전자들.

독특한 방식으로 계층을 공략하고, 특이한 퀘스트를 많이 진행해 온 나에게, 이들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수가 행성의 지맥을 빨아먹는 괴물이었다고요? 진짠가요?”

이를테면, 7층에서 9층까지 이어진 엘프 퀘스트를 통해 알게 된, 세계수의 비밀과 하이엘프 왕이 꾸며온 음모 같은 것.

어찌저찌 알게 된 배경 이야기를 풀어놓자, 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몇명은 아예 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 대며, 빨리 더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라고 독촉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뻐억!

“흐억!”

물론 그런 놈들은 진정하라는 의미로 주먹 맛을 좀 보여줬지만, 아무튼 무수한 관심이 쏟아졌다.

사실, 비단 이들만이 내게 무수한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토너먼트를 통해 내 얼굴이 워낙 많이 팔린 탓이다.

처음 보는 도전자들이 응원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리거나, 아니면 싸인을 해달라고 하거나, 먹을 걸 건네주거나.

커뮤니티에서의 인지도는 곧 현실의 인지도로 이어졌고, 이제 인지도는 그대로 인기가 되었다.

아, 그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 하나.

내가 아줌마들에게서 느꼈던 이상한 기척은 의외로 그렇게 드문 것이 아니었다.

아직 그런 기척이 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느낌의 기척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보이고는 했다.

레벨, 성별, 외견, 소속, 그 어떤 부분에서도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수상하게 여길 건 아닌 것 같다.

뭔가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들, 솔직히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건 대형 길드에서 알아서들 하겠지. 그러라고 있는 길드 아닌가.

“성위요?”

한편, 나는 고고학자 도전자들에게 성위에 대해 물었다.

검색을 통해서는 알아낸 게 없지만, 배경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별과 연관된 매우 격이 높은 존재라는 것밖에는……저도 참 궁금한데,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 역시 성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만,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아, 하지만 성위와 신은 또 다른 존재라는 것 같아요. 이건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요.”

“어떤 책에 적혀 있기를, 성위랑 동격으로 놓일 수 있는 건, 신령(神靈)과 진룡(眞龍)뿐이라고 해요.”

“그렇다는 건 적어도 성위와 신령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거잖아요, 진룡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내용이 적힌 책은 상층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하니, 당장은 검증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는 있겠다.

성위에 대해서 알아낸 건 없지만,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친목회였다.

그리고 다음 날, 토너먼트 개인전 16강 경기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