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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와 규율
[그레이 캐슬의 사신이 당신을 추적합니다.]
2층에서 늑대 퀘스트를 받았을 때 나오던 것과 비슷한 알림창.
갱단을 통합하자마자 조금의 지체도 없이 갱신된 퀘스트 목표는 [제한시간 동안 사신에게서 살아남기]였다.
그 밑으로는 48시간짜리 타이머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신이라는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갱단을 통합한 내 존재를 인식하고 추적을 개시하면 시작되는거겠지.
그나저나, 대뜸 48시간 동안 ‘사신’의 추적으로부터 살아남으라니. 좀처럼 보기 힘든 방식의 목표다.
사신을 처치하라거나, 사신의 정체를 알아내라거나, 뭐 그런 목표가 생길 줄 알았는데. 왜 하필이면 생존이지?
이 엘리시온이라는 도시의 특정한 시스템 자체가 ‘사신’이라서, 애초에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거나.
아니면 단순히 23층 도전자의 실력과 스펙으로는 결코 쓰러트릴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상대라서?
개인적으로는 후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페스티벌 전에 실전 감각을 닦아두려고 여기에 온 거니까.
-띠링.
“응?”
박살난 건물 잔해를 걷어차며 고민하던 중, 오픈 커뮤니티의 사운드 알람이 울렸다.
토너먼트 참가 선언을 한 이후로 개인 쪽지가 너무 많이 와서, 어지간한 알람은 다 꺼두고 있었는데.
시스템 창을 열어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내가 설정해 둔 키워드 알림이 반응한 것이었다.
[참가자 필독)페스티벌 토너먼트 관련 정보와 주의사항 안내 드립니다.]
확인해 보니, 시련의 탑 내부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대형 길드에서 올린 공지글이었다.
내용은 지난 토너먼트 때 올라왔던 것과 거의 똑같았다. 시스템과는 별개로 대형 길드가 만든 자체적인 규칙들이 대부분.
토너먼트라고 할지라도 살인은 금지, 고의성이 없는 사고일지라도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 가장 강조되어 있다.
뭐, 그렇겠지. 시스템의 기본 설정이 HP가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승부가 난 것으로 판정하니까.
판정이 나오면 서로에게 자동으로 보호막이 씌워지고, 몇 초 후 자동으로 경기장 바깥으로 전송되는 방식이라던가.
그런 시스템이 있는데도 상대방을 사고로 죽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살인으로 보고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치’라는 것은, 일반적인 법률이 기능할 수 없는 시련의 탑 환경에서는 당연히-
“PK겠지.”
예전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 다른 서버도 무척 이상한 환경인 것 같다.
막강한 무력을 가진 대형 길드끼리의 연합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어설픈 규칙과 법률로 굴러가는 오묘한 사회.
시스템의 존재 탓에 그 규칙에는 당연히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논쟁과 논란거리도 없을 수가 없다.
뭐, 당장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2661서버에서 솔플러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는 어떤 길드의 어떤 규칙도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든 서버의 도전자가 모이는 페스티벌 맵이 아니고서야, 내게 간섭할 방법은 전무하니까.
그리고, 사실 페스티벌 맵에서도 마찬가지다. 길드 연합이 규칙을 강제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무력이 있기 때문.
정확하게는- 탑 안의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겠다며, 수년 이상을 탑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길드 간부들이 있기 때문이다.
쌓아올린 시간이 곧 힘이나 다름없는 세계이기에, 그들은 절대적인 규칙의 수호자로 존재할 수 있다.
서진혁 Lv.73 (전사)
HP : 1450/1450
MP : 1200/1200
근력 : 126 (116+10)
민첩 : 121 (110+11)
내구 : 128 (113+15)
지능 : 121 (109+12)
하지만, 아직 23층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만한 스펙을 자랑하는 내가- 규칙을 깨부수려 한다면 어떨까.
지금 당장 그들을 무력으로 앞설 수는 없겠지만, 여러 가지 편법을 사용한다면 혼란을 주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대형 길드가 내게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잔뜩 깽판을 쳐 놓고 재빨리 2661서버로 귀환한다면 어쩔 거지.
아니, 비단 내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갑작스레 굉장한 힘을 가진 에픽 직업 전직자 같은 게 나타난다면?
그 사람의 서버에 그 사람보다 강한 도전자가 아무도 없다면, 별로 다를 것 없는 환경이지 않나.
“여, 역시 형님이십니다! 그레이 캐슬을 혼자서 점령하시다니!”
기어이 모든 갱단을 무력으로 쓸어버린 나를 보고 굽실거리는 전직 모히칸 대머리.
이 잡스러운 갱단 녀석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 그레이 캐슬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내가 난입한 것만으로, 모든 질서와 구도는 박살 났다.
대형 길드가 업로드한 규칙 글의 댓글창에서는 다들 모범생처럼 알겠다고 말하고 있고.
그런 대형 길드의 철저한 주의에, 평범한 도전자들은 안심된다고 떠들고 있지만.
“어어, 볼일 다 봤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내 눈에는 이 사이버펑크 세계의 뒷골목이나, 시련의 탑 사회나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뭐, 어느 쪽이건- 결국 나랑은 별 관계없는 것들이지만.
**
그레이 캐슬 전역의 갱단을 깨부숴 놓은 뒤, 아이언피스트의 아지트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그리고 다시 오픈 커뮤니티를 열어, 23층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사두면 좋은 아이템 목록을 쭉 읽어보았다.
23층은 극도로 발달한 기술 덕분에, 이곳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크레딧만 구할 수 있으면 가져가기 좋은 물건이 많다고 한다.
간단하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는 칼로리 스틱은 아무래도 좋지만, 랭커들도 애용하는 특수 재질의 속옷에는 나도 관심이 있다.
입어도 전혀 입은 것 같지 않다는 편안함뿐만이 아니라, 착용하는 것만으로 체중이 감소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속옷 따위에 반중력 장치라도 달린 건지, 어떻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인기가 있다나.
크레딧이야 적당히 삥을 뜯으면 얻을 수 있을 테니, 몇 개쯤 사서 올라가고 싶다.
[48 : 00 : 00]
한편, 퀘스트창에 붙어 있는 타이머는 아직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이것때문에 그레이 캐슬을 마냥 떠나기도 뭣해서, 가능하면 빨리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문제의 ‘사신’이 암살자 같은 거라면, 빈틈을 드러내면 그때 찾아오려나? 한번 실험해 봐?
마침 22층 보스를 깨고 얻은 [황금빛 양털]이 매우 편안하게 느껴지는 참이다.
시각도 거의 밤인 것 같고, 딱 두 시간 정도만 눈을 붙여 볼까.
-풀썩.
양털을 깐 소파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적당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수면에도 상당히 익숙해져서, 이제 나는 정확히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다.
주변에 마력을 퍼트려 놓고, 약간의 긴장 상태만 유지하면, 누가 접근해도 바로 알아차리고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에 든 지 대략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움찔.
사신이 나타났다.
**
사방에 퍼트려놓은 마력이 무언가 움직임을 잡아냈다.
곧바로 체내에 마력을 돌려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따로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자는 척을 그만두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내 [초감각]과 연동된 마력감지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은신을 간파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다만, 아주 약간의 위화감-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직감에 의존하여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턱.
“잡았다, 이 새끼야.”
손끝에 잡힌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냅다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콰과광, 큰 소리와 함께 바닥이 무너지고 아래 층으로 추락했다. 흙먼지 사이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을 퍼트리고 [초감각]을 활성화해봐도, 그 정확한 위치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었다.
역시 사이버펑크 세계인가, 내 마력감지로도 잡아낼 수 없는 미채 기술 같은 게 있나 보지?
단순히 투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발자국과 발소리도 남기지 않고, 내 마력감지를 완벽히 통과한다.
그러나 내 [초감각]스킬에 통합되었던 [직감]스킬에는 희미하게나마 걸려든다.
[47 : 57 : 54]
퀘스트창에 붙어 있던 타이머도 움직이고 있다. 역시 ‘사신’은 실체가 있었나.
“내가 그레이 캐슬을 통합하는 것 같으니까 나타났나 본데, 진짜로 중앙 도시에서 보낸 살수 같은 거야?”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신’을 향해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방패와 도끼를 하나씩 꺼내 장비했다.
[직감]스킬로 아슬아슬하게 감지하고 있지만, 역시 정확도가 너무 떨어진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 방패를 들고, 검보다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도끼를 사용한다.
“묻는데 대답을 안 하네, 뒤질라고.”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싸워본 적은 있지만, 아예 보이지 않는 적이랑 싸우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간만에 머리까지 피가 빡 도는 느낌이다. 아주 마음에 든다.
자, 실전감각 한번 다시 깨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