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0 KiB
- 시련의 탑 23층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커뮤니티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탑이 등장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바깥세상에서도 헌터와 시련의 탑을 다룬 콘텐츠는 어마어마하게 소비되고 있다.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탑 내부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사나 방송, 유튜브 렉카 채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몇몇 인기 있는 헌터들은 연예인처럼 개인 방송이나 예능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는 추세라고 한다.
높은 등급의 헌터를 보유하는 것이 곧 국력으로도 이어지는 시대이니, 이 정도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마당에,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인 솔플러인 내가 유명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정작 나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고- 이제 나는 커뮤질을 잘 하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멀리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생각은 없으니.
[작성자 : 강지호#1431]
[제목 : 근데 걔 스펙은 어느정도임?]
전에 봤을때 19층인가 깨고 있었던거같은데 그럼 별로안쎈거 아님?
솔플로 다 공략하니까 비슷한층 공략파보다는 훨쎄긴할텐데
그래봤자 저층랭커급 아님? 걍 근들갑같은데
-
진혁이 말하는거면 걔 지금 21층인가 그럴걸 저번에 물어봤음
-
ㄴ 22층 올라간지 좀됐을껄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
사실 근들갑이긴 함 ㅋㅋ 솔플로 보스잡는게 뭐 그렇게 어려운가 공략도 다 있는데
-
ㄴ ㅄ 니가 솔플로해봐라 20층 보스같은건 기믹못풀면 난이도 존나올라가는데
-
진혁이 직업도 전붕이라 별로 쎄진않을걸
-
솔직히 저층랭커급도 많이 올려쳐줬다고 본다 ㅋㅋ 랭커가 괜히 랭커냐?
-
모르겠음 근데 중층급한테는 못비비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내 참전 소식으로 한바탕 떠들썩했던 커뮤니티에도 슬슬 이런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일무이한 솔플러라는 이색적인 타이틀 덕분에, 압도적 우승 후보로 추켜세우는 글들이 넘쳐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분위기가 식으니, 점차 이런 식의 ‘냉정한’ 평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 스펙을 커뮤니티에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아, 한 번 있긴 했구나.”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월드 보스에 도전했던 9층, 그때만큼은 제법 상세히 스펙을 밝힌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내 스펙은- 지금보다 레벨도 20 정도 낮았고, 마력 강화도 아직 터득하지 못했던 때다.
뭐, 나는 이미 6층 시절에도 저층 랭커인 최길현을 개처럼 팰 수 있었지만- 실력은 수치로 드러나지 않으니까.
애초에, 그것도 최길현의 기본적인 기량이 바닥을 기고 있어서 이길 수 있었던 거였다. 실제로 스펙은 놈이 훨씬 높았었지.
추측해 보자면, 최길현은 딜타임이 되면 강한 스킬로 데미지만 넣고 빠지는 무뇌 딜러 노릇만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아버지가 헌터협회의 높으신 분이어서, 고층의 랭커들도 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하니까.
[근데 진짜 진지하게 진혁이 빠는새끼가 있음?]
[그래도 진혁이가 16강은 충분히 가지]
[월드 보스 솔플은 걍 클래스가 다른거임]
[스펙은 모르겠고 일단 와꾸가 궁금함 ㅋㅋ]
일부러 불을 지핀거긴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들끼리 말이 너무 많다.
저평가하는 쪽은 기껏해야 25층 랭커 수준일 것이라고, 고평가하는 쪽은 최소 8강 안에는 들 거라고.
글쎄,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도전자의 라인업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만약 지난 페스티벌이랑 비슷한 수준으로만 나온다고 친다면……당연히 내가 우승하지.
우승컵, 가지러 간다니까?
**
한동안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페스티벌에 관한 소식을 찾아보다가, 인터페이스를 닫았다.
확실히 저번에는 제대로 못 즐기고 왔지만, 시스템이 진행하는 것 외에도 별의별 행사가 다 진행되는 것 같았다.
페스티벌의 메인이벤트인 토너먼트 말고도, 대형 길드의 주최로 열리는 온갖 콘테스트 같은 것들도 있었다.
미인대회라던가, 요리 경연 대회라던가, 허수아비 극딜 대회라던가, 친선 스포츠 경기라던가.
나는 중간에 나오는 바람에 못 봤지만, 저번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에는 불꽃축제와 콘서트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볍게 흥미가 있거나 구경할 행사들을 메모해 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미궁 지역으로 향했다.
분위기는 거의 페스티벌 전야 수준이지만, 아직 진짜로 페스티벌이 개최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다.
그 때까지 22층에서 단련에 힘써도 되겠지만, 토너먼트를 대비해 실전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해 둘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양손의 마력회로 손상을 회복할 방법도 찾고 싶으니- 대충 24층까지는 쭉 진도를 빼 두기로 하자.
23층은 나도 조금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 계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22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 : ‘경험치’,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시련의 탑 23층 전이문을 활성화하실 수 있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 : ‘황금빛 양털’ 를 획득하셨습니다.]
[최대 기여도 보상 : ‘인도하는 자의 지팡이’, ‘경험치’ 를 획득하셨습니다.]
[최후의 일격 보상 : ‘인도하는 자의 지팡이’를 획득하셨습니다.]
**
22층의 보스는 날개 없는 용을 닮은-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특이한 생물이었다.
이름은 너무 길어서 외우지도 못하고 까먹었고, 패턴은 너무 좆밥이라 외울 필요가 없었어서 기억이 안 난다.
22층은 계층 자체가 매우 쉽게 설계된 만큼, 보스전 난이도도 매우 쉬운 축에 속했고- 보상도 마찬가지였다.
최대 기여도 보상과 최후의 일격 보상 공통으로 나온 지팡이는 조금 특이한 기능이 달린 스태프.
최초 클리어 보상인 황금빛 양털은 장비나 소모품도 아닌 그냥 기타 아이템이었다.
[황금빛 양털]
어떤 영웅이 용에게서 훔쳐내었다는 황금 양털의 복제품.
매우 가치가 높아, 비싼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
푹신푹신하여 바닥에 깔고 눕기에도 좋다.
또 한동안 골드를 쓰지 않아서 돈은 넘쳐나기에, 사실상 그냥 푹신한 방석을 얻은 셈이다.
[황금빛 양털]을 잠시 꺼내서 만져보고, 다시 인벤토리에 처박은 다음 23층으로 향하는 전이문을 사용했다.
약간의 울렁거리는 감각과 함께, 곧 생경한 세계가 펼쳐진다. 커뮤니티에서 본 것과 똑같은 풍경이다.
23층은 다른 계층과 비교해도 유독 특이한 배경인데, 그 특성 때문에 제법 ‘인기가 있는’ 층이기도 하다.
새롭게 펼쳐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이 솟은 금속의 탑.
그리고 사방에서 번쩍이는 마법과는 무관한 빛줄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비행물체들.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풍경이지만, 사실 이런 풍경을 간단하게 설명하려면 한 단어면 충분하다.
“진짜 사이버펑크네.”
23층은 마법과 같은 중세 판타지적인 요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저 퇴폐적으로 발달한 문명 세계.
흔히들 말하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이다.
**
현대 문명에서 격리되어 온갖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다 이런 곳에 와 보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다.
세상에, 저렇게 큰 건물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높이만 보면 거의 세계수만한 건물도 있다. 바깥 세계도 수십 년쯤 지나면 이렇게 되는 건가.
더 이상 시각에만 의존해 세상을 파악하지 않는 몸이지만, 이렇게 위쪽 시야가 답답한 건 오랜만인걸.
내가 떨어진 장소는 아무래도 이 사이버펑크 도시의 외곽- 그중에서도 형편이 좋지 않은 동네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 있고, 고물 드론과 깜빡거리는 네온사인이 잔뜩 보이는 걸 보면 아마 맞겠지.
“어디 보자.”
다시 커뮤니티를 켜서 23층의 지도를 검색해보았다. 정말 드물게도, 23층은 아직 완성된 지도가 없었다.
사이버펑크 도시라는 특성 탓에 지리가 장난 아니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맵 전체가 어지간한 미궁 이상이라나.
그래도 미궁 지역이 있는 중심 도시나, 숙소 등을 얻을 수 있는 주요 지역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지도에 적힌 설명을 읽어 보니, 별로 형편이 좋지 않은 동네인 것 같다는 내 추측은 정확했다.
“여기가…그레이 캐슬?”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물과, 불법으로 덧붙인 온갖 시설물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우범지역.
23층의 주요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폭주 드론이나 폭주 사이보그도 자주 출현하는 장소라고 한다.
여느 층에나 있는 외곽 지역의 사냥터라고 보면 되려나. 그래도 좀 많이 구석진 곳이긴 하네.
중앙 도시로 가는 길은……이거 뭐 어떻게 가야 하는 거지. 지도로는 잘 모르겠네.
“어디, 그러면……”
나는 일단 가볍게 마력감지를 펼쳐, 생명반응이 느껴지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발소리를 죽이고 은밀하게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한 시커먼 무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버펑크 도시답게 몸에 기계 파츠를 이식한 껄렁거리는 불량배 놈들이다.
“어이, 어디서 온 샌님인데 우리 구역에서 어슬렁거리지?”
역시 길을 모를 때에는 현지인한테 안내받는 게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