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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1. 장소법

조금이라도 전투 능력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은 모두 사용한다.

[사고 가속]

스탯이 상승하는 감각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사고 가속까지 발동시켰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사고력은 주변의 광경을 멈춘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찰나를 수백 번으로 쪼갠 끝에 도달한 정지된 세계.

의념기를 구현할 시간을 버는 것이라면 이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사고를 더욱 가속한다.

오러와 검기를 처음 각성했던 순간- 그때 나는 분명히 정지된 세계를 넘어, 나의 의식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들어섰다.

처음 체험했을 때는 단순한 주마등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그것이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상임을 안다.

그곳에서 수억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해, 끝내 오러를 완성시켰듯- 이번에는 의념기를 깨우치는 것이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해내야 한다. 그 공간으로의 입성은 의념기를 터득하기 위한 기본 전제니까.

가속된 사고로 인해 멈춘 듯 보이던 세상이, 천천히 흑백으로 물들어 간다.

극점을 향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이, 인식할 필요가 없는 것부터 순서대로 지워 없애는 과정이다.

처음엔 색이 사라지고, 이어 선이 흐려지며, 마침내 시야가 완전히 암전된다.

시야가 검게 물든 뒤엔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 차례로 소실된다.

그렇게 모든 오감을 소실하고, 세상을 인지하던 미약한 기감마저 사그라든 그 순간.

“됐다.”

나는 다시 한 번, 축축한 강물과 나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들어선다.

오롯이 내 사고만이 존재하는 공간. 검령은 과거 의념기에 대해 설명하며 이 현상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체험하는 현상이라고.

검령이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검의 절벽. 하지만 나의 내면세계에는 절벽도 검도 없다.

뭔가 적당한 다른 이름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내면세계라고 부르자.

“이거 좀 무협지 같네.”

나는 괜히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물이 흐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도 차림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음, 이게 정말 내 사고로 이루어진 내면세계라면, 옷쯤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할 텐데.

내 무의식이 이 상태를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고 인식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뭐 됐어,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일단 복습부터 해볼까.”

나는 가볍게 마력강화부터 시작해, 몸에 오러를 두르고, 마지막으로는 오러 서클을 구현해 보았다.

오러의 고리를 또 하나의 마력 회로처럼 활용해, 마력이 사용되는 기술의 위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도핑 기술.

이건 검령이 생전에 만들어냈던 의념기다. 하자가 많은 기술인 것 같지만, 그건 사용자가 나이기 때문이겠지.

검령의 말에 따르면, 의념기란 전사 자신의 심상을 오러에 녹여내 구현하는 것이라 한다.

마력은 사용자의 감정과 마음에 영향을 받지만, 오러는 감정과 무관하게 언제나 안정적인 성질과 형태를 보인다.

그러나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전사는 자신의 의지를 오러에 투영함으로써, 그 성질과 형태를 변환시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의념기’라고.

타인의 의념기를 모방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동일한 심상을 가지지 않은 채 발현된 의념기는 결국 반쪽짜리.

오러 서클은 검령이 품고 있는 의지가 형태로 발현된 것이기에, 타인인 내가 사용하는 한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오러에 담아낼 수 있는 의지는 무엇일까?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나를 싸우게 하는 것, 내게 이 탑을 뚫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심어준 존재.

심상의 세계가 요동치며, 떠올린 모습을 그려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담아낼 의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심상이 그려낸 것은 익숙한 얼굴의 다크엘프. 처음으로 함께 ‘다음’을 약속했던, 엘레노어.

주변을 둘러본다. 얕은 강이라 생각했던 심상의 풍경은, 어느새 호수로 변해 있었다.

여기는 별빛이 흐르는 곳.

내 심상이 이 장소를 그려냈다는 건- 자각하지 못했지만, 역시 그때부터 마음이 있었다는 거겠지.

하긴, 저런 끝내주는 그림자 주머니를 달고 있는 다크엘프가 나랑 어울려줬는데, 어떻게 마음이 없었겠어.

애써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 심상이야말로, 내 의지에 불을 붙이는 기름.

“모여라.”

피식 웃으며 손을 뻗는다. 널리 펼쳐져 있던 심상이 내 손안에서 압축되며 불꽃의 형태를 이룬다.

내 의지와 욕망이 하나 되어 만들어낸 불꽃. 이것이 바로, 나의 의념기가 구현할 형태.

이제 남은 건, 이걸 검에 담아 쏘아내는 것뿐.

뭐, 의념기도 생각보다 어려운 건 아니네. 자신 있었다니까.

“자, 가보자고.”

무한히 가속되던 사고가 정속을 되찾고, 세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

백 개의 오브를 소환한 재버워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거대한 마력의 창을 직조하고 있었다.

그냥 맞았다가는 분명 몸이 가루가 되겠지,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공격 범위도 아니야. 맞받아쳐야만 한다.

나는 오른손에 흐르는 마력을 내면세계에서처럼 조작해, 불타는 오러의 줄기를 만들어냈다.

재버워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MP를 회복해둔 덕에, 지금 내 상태는 한없이 만전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최상의 컨디션에서도, 이 불타는 오러를 완전히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

젠장, 안정적인 오러를 다루는 것과는 난이도가 전혀 다르다.

화염의 형태를 띠는 탓인지, 입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무척 불규칙하다.

“후우……천천히, 천천히 가자.”

심호흡을 하며, 오른손을 감싸는 불타는 오러 줄기를 조심스럽게 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어떻게든 검에 쑤셔 넣기만 하면, 그다음은 검기를 쏘는 요령대로 분사하면 끝이다.

위력은 충분할 것이다. 이번이 첫 사용이지만, 이거라면 놈을 불태우고도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기대 위력은 둘째치고, 막상 실전에 투입하려니 생각도 못 한 문제점이 발목을 잡았다.

“염병, 이거 왜 이렇게 느려?”

아무리 봐도 내가 검에 오러를 담는 것보다, 재버워크의 마법이 준비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저 새끼가 정정당당하게 내 준비 시간을 기다려 주지는 않을 테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 잠깐만, 그건 서로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왜 저 새끼랑 정정당당하게 풀파워 화력 대결을 해 줘야 하지? 그냥 먼저 베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100% 완성된 의념기를 휘둘러야 할 필요는 없다. 놈의 방어를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만 있으면 그만.

백 개의 오브는 대부분 창을 직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물론 그 중 몇 개는 방어를 위해 쓰이고 있겠지.

하지만 예지의 오브는 없다. 예지마법이 담긴 오브만큼은 유일하게 눈으로 식별 가능하니까, 확실하다.

그렇다면 미완성된 의념기로 놈의 방어를 뚫는 것은 가능한가- 당연하지.

“인벤토리.”

황색 마탑에서 빌려 온 마도구, ‘천뢰의 장갑’을 꺼내서 다시 발동한다.

번개 속성을 띠는 마력의 입자로 몸을 바꾸어, 재버워크의 한 발짝 앞까지 단번에 돌진한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추어, 마도구의 효과를 해제- 그리고 오른손에 들린 불타는, 아니, 반쯤 불타는 검을 휘둘렀다.

원래라면 원거리까지 강력한 화염을 분사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기술이지만, 이 상태로도 위력은 충분.

“뒤져라, 새끼야!”

재버워크의 몸 앞에 재빨리 몇 겹의 방어막이 나타났지만, 오러의 불꽃은 그 모든 것을 살라버렸고.

미완성의 의념기는 그대로 놈의 상반신을 파고들어, 그 안쪽까지 불태워 증발시켰다.

쏘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마력의 창은 주인의 통제가 끊어짐과 동시에 격렬하게 발광한다.

“어어 씨발.”

젠장, 저거 폭발할 것 같은데.

검을 놓아버리고 재버워크의 몸을 밟아 최대한 멀리 도약하며, [철벽]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의 창이 붕괴함에 따라 세상이 밝게 변하고, 터져 나온 천둥소리가 귓가를 울리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새하얗던 시야도 이내 몰려드는 통증과 함께 새까맣게 암전되고, 전신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마비된다.

무너지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보인 것은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

[레벨 업!]

조금 어이없는 결말이지만, 어쨌든 내가 이겼다.

**

천지를 뒤흔들던 마력의 폭풍이 끝나고, 내 눈에 비친 것은 하늘이었다.

재버워크가 만들어낸 창이 폭발하며 발생한 충격파는 정말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했다.

저 폭발이 지향성을 갖고 나한테 날아올 예정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절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당연히 그 충격파에 휩쓸린 나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하늘이 보인다는 것은 내가 땅에 뻗어 있다는 의미겠지.

인벤토리를 열어 얼굴이 있을만한 위치로 포션을 꺼내 드롭시켰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먹을 방법이 없었다.

에라이, 나중에 몇 개는 병을 딴 상태로 넣어두든가 해야겠다. 이런 상태에선 있어도 먹지를 못하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누워서 [초재생]의 효과로 몸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어우……뒈질 뻔했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탑의 마도구로 형성했던 지형은 온데간데없었다.

재버워크가 텔레포트로 빠져나갈 수 없게끔 벽을 매우 두껍게 만들었었는데, 그게 방금 걸로 싹 소멸할 줄이야.

그 녀석의 마법과 내 의념기가 정말 그대로 충돌했으면, 승패랑 별개로 같이 뒤졌을 가능성도 있었겠다.

-쿠구구구궁!

머릿속으로 직전의 전투를 복기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 때, 돌연 진동이 일었다.

그러고보니까 여기, 공중에 떠 있는 섬이었지- 그것도 재버워크의 마력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버워크가 죽어서 섬이 붕괴하려는 건가, 마지막까지 더러운 새끼 같으니.

“쉴 틈도 안 주냐 치사한 새끼야!”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고, 에픽 퀘스트의 진행도가 99%를 초과함에 따라, 계층의 설정이 변경됩니다.]

그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새빨간 시스템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