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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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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스트 컷 신드롬

다친 부위가 하필 목이긴 하지만, 결코 깊은 상처는 아니다.

경동맥같은 큰 혈관이 베인 것도 아니라, 지혈 없이 방치하더라도 과다출혈로 이어지지 않을 거다.

애초에 나는 [전투 치유] 스킬이 있어서, 이 정도 상처는 가만두기만 해도 금방 회복된다.

“호들갑은, 안 죽어.”

불안한 표정으로 포션을 내미는 리즈멜의 손을 쳐냈다. 포션이라면 나도 많다, 애초에 필요도 없고.

리즈멜도 자기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자각은 어느 정도 있을 거다.

이 정도 상처가 치명적이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다. 크리스탈 거미때 자가치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었으니.

“벼, 별로 걱정한 거 아니거든?”

이번에도 뻔한 태도를 보이며 고개를 휙 돌리는 리즈멜. 나는 상처가 나은 것을 보여주며, 계속 이어서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5분만에 다시 시작된 어둠 속에서의 시험.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청각과 촉각을 활용해가며 인형에 맞섰다.

하지만 두어 번 합을 나누고 나면 꼭 한 번씩 헛손질을 했다. 직감 스킬의 보조가 있는데도 이 모양이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되는 리즈멜의 참견이었다. 내가 유효타를 허용했다 싶으면 곧장 달려와서 내 상태를 살핀다.

“이번에는 진짜 크게 다쳤잖아. 잠시 쉬었다가 해.”

“크게 다치긴 무슨, 멀쩡하니까 계속하라고.”

“피가 그렇게 나는데 어디가 멀쩡하다는 거야.”

나는 몸 쓰는 일에는 도무지 재능이 없다. 직접 구르고 깨지며 배우지 않으면 뭐 하나 제대로 익힐 수 없는 놈이다.

그런데 리즈멜은 내가 구르거나 깨진다 싶으면, 곧장 달려와서 시험을 멈추고 내 상태를 살핀다.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다. 이래서 대체 언제쯤 성장할 수 있을지, 까마득해 짐작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다.

솔직히, 시야가 제한되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고전할 줄 몰랐다. 상상도 못 해본 약점이다.

3층의 리자드맨 주술사를 시작으로, 조금씩 마법을 사용하는 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흑마법이나 저주 계열 쪽의 마법에는 상대의 시야를 방해하는 수단도 수두룩하게 있다.

당장 그림자 마법을 다루는 이곳의 다크엘프들만 해도 그렇지 않나.

박투술과 다른 무기술을 봉인한 상태였다고 해도, 고작 인형 하나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알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리즈멜이 말하는 감각의 확장을 꼭 터득해야만 한다.

“으흠, 그 정도면 처음치고는 엄청나게 잘하는 거야.”

내가 느끼고 있는 초조함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리즈멜이 대뜸 그렇게 말해왔다.

“원래 이건 하루이틀만에 터득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거든. 배움이 빠른 인간족이라도 다를 건 없어.”

“하루이틀로 안 되면, 보통은 얼마나 걸리는데.”

“매일같이 수련한다는 기준에서, 첫 단계를 넘기기까지- 길면 10년, 짧으면 반 년. 나도 반 년은 걸렸어.”

익숙한 단위다. 1층에서 내가 날려 먹은 시간이 반년 정도였고, 3층에서 폐관수련에 들인 시간도 그 정도였다.

투자하지 못할 만큼 긴 시간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짧아도 반년일 경우는 좀 다르다.

추모의 집의 유골 안치기간은 보통 처음에는 15년, 그리고 때마다 연장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무연고자의 경우에는 10년이라고 들었다. 임시 보관 기간이 2년씩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12년.

물론 졸업자들을 통해 탑 바깥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길드 쪽에 말을 전해두면, 어떻게든 늘릴 수는 있다.

고로, 꼭 몇 년 안에 나가겠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몇 년이 걸려도 나가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내 목표에 시간제한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내가 쌓아온 노력과 힘을 믿을지언정, 내 의지와 성실함은 결코 믿지 않는다.

내 근본은 결국 엄마의 등골을 빼먹던 앰생 백수 새끼다. 어쩌다가 달려나가기 시작했지만, 한 번 관성을 잃으면 끝이다.

인간을 마냥 귀여워하는 다크엘프에게 둘러싸여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분명 나는 다시 멈춰 서고 말 거다.

“반년이라고?”

“음, 빠르다면.”

리즈멜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것인지 황급히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너는 제법 재능도 있고, 인간족은 원래 배움이 빠르지 않으냐며, 넉넉히 일 년이면 꼭 익힐 수 있을 거라고.

그래,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도 일 년쯤 되면 익힐 수 있겠지. 그럴 생각이 없을 뿐.

느긋한 방식으로 일 년이 걸린다면, 과격한 방식을 쓰면 한 달 정도면 되지 않겠어?

**

리즈멜과의 수련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도 엘레노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 오늘은 조금 빨리 돌아왔구나. 연습이 일찍 끝난 건가?”

나는 엘레노어의 물음에 오늘은 볼 일이 있다고 대충 대답하며, 곧바로 장비를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너무하는구나, 제대로 대꾸도 안 해주고.”

엘레노어는 태도가 매몰차다며 서운하다는 듯 말하긴 했지만, 딱히 행선지를 묻거나 붙잡으려 하지는 않았다.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분명히 말리려고 했을 테니까.

오픈 커뮤니티를 열어 7층 전역의 지도를 켜고, 미리 점찍어둔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목적지는 진영 퀘스트를 수행하느라 거의 손대지 않았던 필드 보스의 출몰 지역이다.

[저주받은 제단]

여긴 다크엘프 진영에서 황혼 거미 토벌을 진행하는 것처럼, 왕국군 진영을 선택할 경우 와야 하는 장소다.

출몰하는 몬스터는 이 지역에 흘러넘치는 저주에 영향받아 이성을 상실한 인간들.

근처를 지나다니다 저주에 당한 산적, 왕국 병사, 기사 등이 적으로 나타난다.

-적이다, 적이다, 적은 죽인다.

-싸워라, 우리의 왕국을 수호하라.

-모조리 쓸어버리자, 얘들아.

초점 없는 눈으로 무기를 빼 들고 접근하는 저주받은 인간들을 앞에 두고, 나는 단검을 뽑았다.

내가 3층에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무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위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독화살을 몸에 찌르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강력한 리자드맨에게 무모하게 덤벼들고.

그렇게 자신의 생존 본능을 자극해, 폭발적인 성장을 해낸 거다.

이번에도, 해야 할 일은 다르지 않다.

-촤악!

오른손의 단검으로 내 눈을 그었다.

거창한 그림자 마법이 없어도 이거라면 쉽게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

“끄, 으윽, 씨발.”

상상 이상으로 고통이 크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게 피인지 눈물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에 더해, 사방에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눈, 제대로 베었으니 포션을 마셔도 바로 회복되진 않겠지. 이걸로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압도적인 위기감. 그리고 묘한 흥분에 손끝이 덜덜 떨린다.

“후, 후우.”

적은 무딘 무기만 쓰는 그림자 인형이 아니다. 다쳤다고 멈춰줄 리즈멜도 이제 없다.

검을 뽑아들고, 적의 발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

스펙을 낮추고 촉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이번에는 방어구도 모두 해제하고 왔다.

어떤 게임처럼 빤쓰만 입고 나온 건 아니지만, 방어력 면에서는 그것과 큰 차이도 없다.

이성을 잃은 인간들의 무기는 저주로 인해 더욱 강화된 상태이기에, 더더욱 공격을 허용하면 안 되는 상황.

-휘잉!

작은 바람 소리에 의존해,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냈다. 이미 내 몸에는 깊고 얕은 자상이 네다섯 개는 새겨져 있다.

하지만 개중 치명상은 하나도 없다. 모든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해도, 치명상에 한해서라면 어떻게든 됐다.

산적으로 추측되는 냄새나는 놈의 도끼 공격을 피해내고, 앞으로 크게 전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목, 휘둘러지는 무기의 높이를 추측해 어깨의 위치를 계산하고, 그보다 살짝 위로 검을 그었다.

-촤악!

살을 찢고 뼈가 있는 부분까지 칼날이 닿는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대로 목을 노렸다.

목을 베어버린 산적을 걷어차고, 다른 방향에서 덤벼드는 누군가의 창을 회피하고 반격했다.

-서걱!

눈이 보이지 않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공격에는 크리티컬이 터졌을 것 같았다.

그런 손맛이다. 치명상을 입힐 때의 손맛.

리즈멜이 알려준 오감의 활용법이 머릿속에서 쏙쏙 떠오른다. 뺨에 닿는 흙먼지의 감촉에 웃음이 나온다.

분명, 무거운 망치를 땅에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었지.

지금 날아온 흙먼지는 그 망치가 휘둘러지며 닿은 것. 그리고 특유의 묵직한 바람 소리, 휘두를 때의 호흡.

정확한 타이밍에 검을 들어, 망치를 휘두르고 있을 산적의 손목 위치를 베어버렸다.

고작 무기 휘두르는 소리와 발소리만으로 상황을 어림하고 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감각이 주변의 상황을 읽어주고 있는데, 고작 그런 것에만 의지하고 있었다니.

-촤악!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적을 베어버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시야가 한결 밝아진 것이 느껴졌다.

[전투 치유]와 아이템 효과로 눈이 회복된 것 같다.

그리고 회복된 눈앞으로 푸른 인터페이스 메시지가 여럿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패시브 스킬 : 감각 강화 1레벨을 습득하셨습니다.]

어느새 새로운 스킬이 습득되어 있었고, 직감 스킬의 레벨도 조금 올라 있었다. 해낸 거다.

“흐핫.”

실실거리는 웃음이 저절로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에 더해,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위대한 이 땅의 왕이시여, 사악한 마법사의 제단을 어째서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왜 병사도 기사도 더 이상 보내지 않으시고, 그저 주변을 봉쇄하라는 명령만 내리십니까.]

[그곳을 지키는 망자가 그토록 두려우십니까. 이미 부패해 썩어버린 무사의 시체가!]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나타난 것은, 6층의 좀비를 연상케 하는 검을 든 시체.

[BOSS - 그 옛날 썩어버린 무사]

무기를 든 자세와 기백 모두 예사롭지 않으나, 나는 다시 한번 웃으며 눈을 그었다.

느긋한 방식으로 일 년, 과격한 방식으로 한 달.

그리고, 내 방식으로는 반나절.

역시 나한테는 이게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