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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용들은 지식에 메말라 있다.

그래서 이미지도 현자와 같이 지적이며 논리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나도 이제 늙었군.]

그게 다 늙어서 그렇다.

모든 것이 익숙해서, 권태기에 먹히기 전에 발버둥치는 것에 불과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수명에 스스로 묻힌 꼴이다.

‘그래서 재물로 사려고도 했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나오면, 어떻게든 알아내고야 만다.

필멸자에게 막대한 재물까지 쏟아주며 알아내는 게 그런 이유였다.

용에게 지식은 곧 존재 가치였다.

[우주, 이것이 우주인가?]

그런 의미에서 그 종이는, 절대로 돈으로 지불할 수 없는 지식이었다.

닉스는 두려움도 잊고 눈을 빛냈다.

세계수의 옆에 바짝 붙어, 종이에 담긴 우주의 풍경을 샅샅이 눈에 담았다.

그럴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손으로 그린 그림인가?

[아니, 실존하는 것이군.]

끝없는 공허 위로 찬란히 반짝이는 별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장엄했다.

너무 장엄한 나머지, 압도된다는 감각이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내가 여태껏 알아온 모든 지식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이는구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다음장을 넘긴 기분이었다.

주딱*: 어떰, 마음에 듬?

그때 닉스의 눈앞에 채팅이 날아왔다.

닉스는 자연스레 주딱을 두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생명을 홀리신 건가?

닉스는 주딱을 극도로 경계했으나.

고작 한 장에 넘어가버렸다.

아니, 경계만 풀었을까.

자신에게 이 지식을 엿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무한한 감사함과 경외심마저 들었다.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것이 무엇입니까?]

죽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 아름다움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물론 염치가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위대한 경험과 지식을 아무런 대가없이 요구하다니.

하지만 주딱은 고민도 없이 대답해주었다.

주딱*: 우리 은하

주딱*: 아니 이제 우리가 아닌가?

주딱*: 아무튼 저 속에 태양계도 있음

[우리 은하]

닉스는 그 말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몹시도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식을 하나 얻으니 새로운 궁금증이 들었다.

마치 껍질 속에 껍질이 있는 것처럼.

[태양계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물었고.

주딱은 또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주딱*: 거기 같이 보냈을 걸?

[...!]

즉, 세계수가 보고 있다.

  • 홱!

닉스는 거의 빼앗다시피 세계수로부터 사진을 가져왔다.

그 행동에는 용으로서의 자제력과 품격 따위는 엿볼 수 없었으니.

“너무합니당.”

[미, 미안하다.]

그만큼 닉스는 빠져 있었다.

닉스는 태양계의 사진도 눈에 담았다.

정확히는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미치도록 아름다워...]

어쩌면 구에 불과한 이 그림이 왜 이렇게도 마음을 간지럽히는지.

닉스는 그 모양과 형태를 눈에 각인하듯 새겨 넣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별...]

이게 하나가 행성이자, 이 세상이라면.

이것이 합쳐진 게 태양계.

그럼 주딱이 보여주었던 우리 은하의 풍경은.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거지?

또한 이걸 목격하고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는 주딱의 존재는 얼마나...

[아... ...]

위대한 용의 두뇌가 과부하에 걸렸다.

순간 닉스의 동공이 임종을 앞둔 생명처럼 거대하게 확장되었다가...

주딱*: 그래서 이제 믿어줌?

주딱의 채팅에 돌아왔다.

닉스는 여태껏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주딱의 존재가 알고 보니 선한 존재였다?

그런 작은 고민의 해결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작은 시선에 붙잡혀 있었군.]

우주의 존재조차 미지였던 자신이 선하다 악하다를 논하고 있었다니.

은하를 보는 주딱은 얼마나 그 모습이 하찮고 우스웠을까?

닉스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스르륵

그때 닉스의 몸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협곡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흑룡에서, 평범한 인간만큼 작아질 정도로.

“음...”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닉스는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거대하고 무겁던 저음 대신, 가볍고 깔끔한 미성이 들려왔으니.

“헉, 작아졌습니당.”

닉스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결국 네 말이 맞았다.”

“헹.”

닉스는 세계수의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지로 직접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목: 눈치...]

(도시 중앙에 다소곳 앉아 있는 긴 흑발의 여자 짤)

(다크엘프들이 우물쭈물 눈치보는 짤)

세계수님하고 같이 올라온 분인데...

다들 어쩔 줄 모르고 눈치 보는 중...

주딱님 이분 누군지 아세요? ㅠㅠ

[추천1102] [비추천11]

  • 알겠는데

ㄴ 작성자) 헉 누구죠?

ㄴ 도네 최고 미소녀아님?

ㄴ 작성자) (고통스럽게 죽어. 닼엘콘)

지하도시 루멜린 중앙 광장.

신목 곁에 웬 긴 흑발의 여자가 눈을 감고 다소곳 앉아 있었다.

“누구지.”

창백한 피부에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세계수와 나름 친분이 있어 보였다.

처음 보는 외모이지만, 누구인지 짐작해볼 순 있었다.

협곡 밑바닥에서 세계수와 함께 올라올 존재는 하나뿐이었으니.

“일단 채팅이라도 걸어봐야겠는데.”

그래서 닉스에게 확인차 채팅을 보냈다.

[해당 닉네임은 없는 사용자입니다.]

“엥?”

그런데 어느샌가 닉스가 갤러리에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찾는 방법은 다 있다.

이전에 내가 대화를 나눴던 글에 들어가 다시 닉네임을 찾다보면 알아낼 수 있으니.

‘아우주따먹고싶다’.

고고했던 흑룡은 어쩐지 천박한 닉네임으로 변해 있었다.

“진짜 닉네임 상태 제정신인가?”

순간 인지부조화가 왔다.

정말 닉스에서 이딴이름으로 바꿨다고?

우주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물론 존 말파이트를 실명으로 박아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주딱*: 아니 님아

아우주따먹고싶다: 아아 주딱님

아우주따먹고싶다: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채팅을 보내자, 답장과 함께 흑발의 여자가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얹었다.

마치 상전을 대하는듯한 극진한 태도.

하지만 묘하게 숭배도 아니고, 밴할만한 닉네임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닉스 즉, 우따먹이 내게 하려는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주딱*: ㅇㅇ 할 말은 뭐임?

아우주따먹고싶다: 저는 주딱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아우주따먹고싶다: 그런데 주딱님께선 그런 저를 용서해주시는 걸로 모자라 이상향을 보여주셨죠

아우주따먹고싶다: 그래서 약소하지만 보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답?”

[우따먹님이 ‘검은 결정체’를 선물했습니다!]

의아해하던 찰나 도착한 것 하나.

[검은 결정체]

흑룡이 수 세기를 걸쳐 쌓아둔 마나 덩어리.

마법사들에겐 평생의 꿈이자, 인간들에겐 만병통치약이다.

마나가 많을수록 얻는 효과가 크다.

.

.

마나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전시장에 전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

우따먹이 보낸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값어치의 보물이었다.

이세계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마나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이 작은 결정체가 가지는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었다.

나 빼고는.

마나가 없는 내가 먹어봐야 아무런 효능도 효과도 없었다.

주딱*: 아니 이거 나한테 필요없음

주딱*: 차라리 님 드셈 ㅇㅇ;

무의미하게 소비될 바에 다시 돌려주려고 채팅을 보냈는데.

우따먹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아우주따먹고싶다: 물론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아우주따먹고싶다: 주딱님 되는 분께 이건 무의미하다 못해 쓸모가 없겠죠.

주딱*: 아니 나 마나가 아예 없음 ㅇㅇ;

아우주따먹고싶다: 그러지 말고 제 약소한 마음이라고 부디 생각해주세요

아우주따먹고싶다: 그러지 않고는 제 양심이 도저히 견딜 길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강제로 소매 넣기를 당했다.

“아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받아서 나쁠 것은 없긴 했다.

꼭 내가 복용할 필요도 없고.

결국 나는 이 결정체를 창고에 넣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고작 사진 몇 장 보낸 걸로 이런 걸 받기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상점/사진]

[성운 사진 세트] - 7p

주딱*: 일단 ㄱㅅㄱㅅ

주딱*: 나도 좀 보내봤는데, 마음에 들진 모르겠네

“어차피 용이라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을테고.”

이번엔 색다르게 우주 성운 사진 모음집을 우따먹에게 보냈다.

어렸을 적,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나 볼법한 어설픈 사진이라 좋아할까 걱정했는데.

아우주따먹고싶다: 허어어

아우주따먹고싶다: 아으으

걱정은 기우였다.

실제로도 화면 너머 흑발의 여자가 사진을 두손으로 들고 부들거리고 있었으니.

거의 천만원급 리액션을 선보이는 우따먹을 두고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기쁨 반, 묘함 반을 느끼다 글에서 나갔다.

[제목: 하급 미각 포션...jpg]

작성자: 포션마스터가될거야

(보랏빛 안개가 가득 찬 유리병 짤)

(책상 옆에 캔커피가 잔뜩 나뒹구는 짤)

드, 드디어 완성했어요...!

이론만 무성하던 그 미각 포션을!

말 그대로 혀를 속이는 포션이에요!

[추천7521] [비추천2]

  • ?

ㄴ 니가 고블린 생으로 뜯어먹어도 닭 먹는 맛 난다고

ㄴ !!!!!

  • 와 씨발 넌 천재냐?

  • 씹블린 씹고기가 치킨맛...?

  • 그래서 얼마에 팔 거임???

ㄴ 작성자) 안 팔 건데요 ㅋ

ㄴ ?

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프 짤)

ㄴ 작성자) 주딱님만 주려고 만들었는데요. 내가 니들한테 왜 뿌려요? ㅎㅋㅋ

ㄴ 그럼 도대체 왜 글 올림?

ㄴ 작성자) 보고 배아프라고요 ㅋ

ㄴ (오열한 채 소리치는 기사 콘)

포션 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재료가 썩어 넘치기 때문에,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던 덕이었다.

미각 포션 같은 것도 만들어볼 정도로.

  • 이거 원래 개비싼 학문 아니었냐?

ㄴ ㅇㅇ 개비싸지

ㄴ 주딱이 지원하기 전까진

그 이유에는 상점 지원이 있었다.

아무리 비싼 재료도 상점에선 고작 몇 포인트에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이세계에만 존재하는 희귀 재료도 있긴 한데.”

그것도 거래처가 존재했다.

가령 인어의 눈물이 그랬다.

인어는 돈을 벌어서 좋고, 마녀는 희귀 재료를 얻어서 좋고.

물론 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어를 울리는 거야 쉽다.

“잘 구운 생선 한 마리.”

그걸 먹으면 바로 펑펑 우는 게 인어니까.

“이론상 한계가 없다고 했었나?”

포션 제조자의 역량과 뛰어난 재료만 있다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갑자기 이걸 언급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목: 아드리안 황성 폐쇄 공지]

작성자: 다리안

(알현실 입구에 쓰러져 죽은 귀족 짤)

범인은 아직 황성 내부에 있다고 판단.

모든 출입문 봉쇄 및, 기사단 투입 공지.

모든 명단을 확인했음에도 범죄자를 특정할 수 없음.

따라서 비상 소집령을 알리는 바이다.

[추천4931] [비추천12]

  • 아오 씨발 암살자 시치!!!

  • 방금 퇴근했는데 ㅅㅂ...

  • 아니 새벽에 이게 머선 일이고

아드리안 황성 내부에서.

그것도 알현실 앞에서 귀족이 영문도 모른 채, 대낮에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