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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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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종종 마주치는 야생마인들을 자연으로 환원시키며 자전괴마라는 야생마인의 출몰지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건 없었다.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달리 천산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사고방식이 조금 많이 다르긴 해도 정파의 영역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냥 사람 목숨이 조금 더 가볍고, 가끔 사람이 괴물처럼 변하기도 하고, 희한하게 생긴 마수들과 마주치는 정도?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꽤 다르기야 하지만 그건 원래 외국만 나가도 그렇다.

천산은…. 그렇지. 딱 식인종들이 모여 사는 외딴 섬 같은 느낌이다.

조금 먼 외국이라는 소리다. 근데 이제 약간의 조미료를 곁들인.

그래서 서준은 지금 이 상황이 꽤나 신기했다.

아아아아앍…!

고라니를 포획했다.

“사, 살려달라요…!”

정확히는 뿔 달린 고라니 인간이다. 아니, 뿔이 달린 건 사슴이었던가?

“넌 뭐 하는 친구니?”

서준이 고라니 인간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머리에 자그마한 뿔이 달리긴 했지만, 생긴 것 자체는 젖살 빵빵한 꼬맹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자, 잡아먹힌다요…!”

아이가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발버둥쳤다.

‘고라니든 사슴이든 둘 다 초식 동물이었던가?

잘 기억은 안 난다. 고라니는 잡식이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둘 다 풀은 먹었던 것 같다.

서준은 품에서 당근 하나를 꺼내들어 아이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가끔 만나는 마수 친구들에게 먹이라도 줄 겸 들고다니는 당근이었다.

“다, 당근은 싫다요…?”

“그러면?”

“요즘은 청경채가 맛있다요?”

아무리 그래도 청경채를 들고 다니진 않는다. 서준은 아이를 땅에 내려준 뒤 짐을 뒤적였다.

“복숭아는 어때?”

“복숭아 좋다요.”

복숭아를 건네주니 아이가 복숭아를 양손으로 잡고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험하게 왜 이런 데서 놀고 있는 거야?”

“안 놀고 있었다요?”

얘 말투는 도대체 왜 이럴까. 고라니 인간들이 쓰는 말투인가? 서준이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면?”

“도망치고 있었다요?”

“누구한테서?”

“모른다요? 막 보라색 번개를 뿜는 사람이었다요?”

“오.”

보라색 번개라면 자전괴마일 확률이 높다. 운이 좋군.

‘아니지?

서준이 의아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걔한테서 도망쳤다고?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초절정을 딱지 치기로 따진 않았을 텐데.”

“녹요는 원래 도망 잘 친다요.”

“이름이 녹요니?”

“맞다요.”

복숭아 하나를 금세 먹어치운 녹요가 양손을 내밀었다.

서준은 복숭아 하나를 더 꺼내 녹요의 손에 올려주었다.

“그래서 너는 그…. 고라니 인간 같은 건가?”

“고라니? 그게 뭐다요? 녹요는 사슴이다요?”

“아, 맞네.”

듣고 보니 뿔 달린 건 사슴이 맞았던 것 같다.

아마 뿔이 있으면 숫사슴이었던 것 같은데─ 서준이 보기에 이 녹요라는 아이는 영락없는 여자 아이였다.

소싯적의 금춘봉을 키워봐서 안다. 얘가 남자애일 리는 없다.

“혹시 너도 그 뿔 탈착식이야?”

녹요의 뿔을 툭툭 두드리니 녹요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뿌, 뿔 떨어지면 죽는다요…?”

“죽는다고? 아니, 뿔 좀 떨어졌다고?”

“인간도 목 떨어지면 죽는다요?”

“아하.”

그렇게 들으니 좀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녹요가 제 뿔을 살살 쓰다듬었다.

“어른이 되면 뿔을 마음대로 감출 수 있다요. 근데 녹요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 못 숨긴다요.”

그렇다는 모양이다. 잘은 몰라도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거기에 뭐라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보라색 번개를 뿜는 사람한테서 도망치고 있었다고?”

“아! 맞다요!”

녹요가 반쯤 먹어치운 복숭아를 냅다 입에 쑤셔넣었다.

“빠히 도하처야 핸하요?”

“빨리 도망쳐야 된다고?”

녹요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복숭아 탓에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녹요의 뺨을 몇 번 쿡쿡 찔러보다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돼. 내가 더 세거든.”

“오오…?”

퉤! 복숭아 씨를 뱉어낸 녹요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면 녹요는 좀 쉬겠다요.”

“뭣.”

“끝나면 깨워달라요.”

말을 마친 녹요가 그대로 쿨쿨 잠들었다. 서준은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진짜 뭐 하는 애지?

자전괴마에게서 도망을 칠 수 있는 능력자에, 범상치 않은 대범함까지.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건지 비법을 좀 전수받고 싶어진다.

우르릉-!

그때, 천둥 소리와 함께 기척 하나가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피부를 간지럽히는 뇌기에 서준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거참. 양반은 못 되는구만.”

머리를 긁적인 서준이 크게 외쳤다.

“멈춰라!”

마인을 강제하는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일순 자전괴마의 기척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꽈아앙-! 거대한 천둥 소리와 함께 놈이 달려들었다.

“천마 흉내를 내는구나…! 네놈은 누구냐!”

자색 전류를 휘감은 노인이 오른손을 뒤로 크게 당겼다. 파츠츳-! 그 손에서 거대한 뇌기가 부풀어오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문답무용!”

우르릉────────!!!

일순 뇌광이 번쩍이고, 자전괴마의 신형이 코앞까지 다다랐다.

‘지가 물어봤으면서.

서준은 마주 손바닥을 내밀었다. 자전괴마의 장과 서준의 장이 맞부딪혔다.

꽈아앙-!

그리 크지 않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서준이 백하귀양과 흡성대법을 펼쳐 장의 위력을 크게 감소시킨 까닭이다.

‘과연.

자전괴마를 가까이에서 관찰한 서준은 자전마공의 특성을 알 수 있었다.

전신이 은은한 자색으로 물들었고, 묘한 전류가 몸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니 상시로 호신공을 운용하는 효과도 있는 듯하다.

‘사람 시체에 손을 박아넣고 익히는 건 흑수대마장과 비슷했지?

이미 자신은 그런 과정 없이 흑수대마장을 쓰고 있으니, 적당히 무공을 변형하면 남궁수아에게도 썩 쓸만한 무공이 될 듯싶다.

“우으…! 시끄럽다요! 잠 좀 자자요!”

뒤편에서 쿨쿨 자던 녹요가 대뜸 소리쳤다. 자전괴마가 그녀를 보고 눈을 부릅 떴다.

“여기 있었구나! 당장 그 몸을 바쳐라!”

자전괴마는 서준을 지나쳐 녹요에게 향했다. 하지만 서준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장이 맞닿은 상태로 손가락을 굽혀 붙잡고, 놈의 팔을 안쪽으로 당기며 발로 복부를 후려찼다.

“커읍…!”

꽈아앙-! 자전괴마가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서준은 흙먼지 사이로 번뜩이는 자색 뇌전을 보며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를 데려가서 어디에 쓰려는 거지?”

“어디에 쓰기는!”

푸화악-! 기파가 터져나오며 흙먼지가 걷혔다. 전신이 조금 더 짙은 자색으로 물든 자전괴마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녹인(鹿人, 사슴 인간) 암컷은 살아서는 순수한 음기를 머금고, 죽어서는 녹용에 순수한 양기가 깃든다.”

자전마공은 극강의 양강지공(陽剛之功)이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넘쳐나는 양기에 스스로의 몸이 타들어가 죽는다.

그 넘쳐나는 양기를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인의 음기가 필요한데, 녹인(鹿人) 암컷의 음기는 아주 순수하기 그지없어 그 효과가 탁월하다.

또한 녹인을 사용한 끝에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 녹용에서 순수한 양기를 얻을 수 있으니, 자전마공을 익힌 자에게는 녹인 암컷이야 말로 최고의 영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제안하마. 그년을 넘겨라. 그러면 내 두 번 정도는 그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마.”

“사용?”

“채음보양을 말하는 것이다. 녹인의 음기를 취한다면 네 내공을 상당히 늘릴 수 있을 터.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니냐.”

“미친 페도 새끼였구나.”

“옳다! 이 자전괴마야 말로 패도를 걷는 사내 중의 사내지!”

서준이 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자전괴마가 의아한 표정을 하며 다시 제안했다.

“마음에 들지 않나? 그러면 세 번으로 하지.”

“네 몸을 삼등분해주마.”

서준이 달려들었다. 자전괴마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왜? 이 좋은 제안을?”

당황한 와중에도 자전괴마는 능숙하게 무공을 펼쳤다.

자전폭멸(紫電爆滅). 우르릉-! 자전괴마의 전신에서 터져나온 자색 뇌전이 일대를 휩쓴다.

서준은 무시하고 나아갔다. 뇌전이 서준의 몸을 탐하려 들었으나, 그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파츳-!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뇌전이 서준의 검에 휘감겼다. 어지간한 마기는 서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서준은 앞으로 나아가며 검에 담긴 자전마공의 뇌전을 살폈다. 남궁수아의 청아한 뇌전과는 달리 끈적하고 탁하다.

‘뇌전이라.

한 가지 떠오르는 무공이 있다. 창궁무애검법. 남궁수아의 창궁무애검법은 하늘보다 그 사이를 수놓는 뇌전에 집중한다.

하지만 천산에서 대놓고 남궁세가의 무공을 사용하기는 꺼려진다. 무엇보다도 자전마공의 뇌전은 남궁세가의 것과 조금 느낌이 다르다.

느리게 흘러가는 세계. 서준은 심상 속 만물을 꺼내어 눈앞에 펼쳤다.

화악-!

혼잡하게 뒤섞인 심상 속의 세계가 낱낱이 분해된다.

‘일단은 역시 하늘인가.

남궁의 패도(覇道)는 하늘을 거스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미 선례도 있다. 제왕검형과 천마군림보.

그 사이를 잇는 선을 붙잡아 검에 담아낸다.

천마신검(天魔神劍).

파츠츠츳-! 검에 새카만 벼락이 휘감겼다. 서준은 검끝에 하늘을 걸었다. 문득 뒷골목 시절에 배운 삼재검법의 묘리가 머리를 스쳤다.

‘천(天)은 하늘. 거기에서 따온 태산압정은 말 그대로 태산 같은 기세로 머리를 내리누른다는 뜻이야. 뭔 소리냐고? 그냥 세로베기라고.

춘봉의 목소리와 함께 삼재심법의 주된 심상을 떠올렸다. 천지인. 최근 머릿속을 맴돌던 정기신의 이치를 그 위에 덧댄다.

지(地)는 곧 정(精)이며, 인(人)은 기(氣), 천(天)은 신(神)이라.

삼재(三才)와 정기신을 하나로 묶어내 그 깨달음을 펼쳐낸다.

정답은 없다. 스스로 그리 생각한다면 이루어지리니.

찰나의 영감과 함께 서준의 검이 떨어져내렸다. 검끝에 걸린 하늘 역시도.

천마신검 제1초, 태산압정(太山壓頂).

우르릉──────────!!!

내리친 일검이 세상을 베어냈다.

서준은 느닷없이 찾아온 깨달음을 정리했다.

삼재와 정기신. 그 요소 하나하나에 집중하던 서준은 시선을 조금 더 멀리 했다.

정기신의 균형을 이루어 초절정. 신의 비대를 이루어 화경. 끝내 신으로 통합하여 현경.

그렇다면 삼재는? 삼재의 균형을 이룬 끝에 무엇이 있는가.

두루뭉술하고 비약이 심한 깨달음이었으나 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결국 고민하다 보면 머지않아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천마신검을 완성하는 날이 되리라.

“끄으으…!”

좌반신이 떨어져나간 자전괴마가 이를 간다. 일부러 살려두었다. 그가 익힌 자전마공을 조금 더 파악하기 위함이다.

서준이 그를 향해 다가가자 꾸벅꾸벅 졸면서 전투를 지켜보던 녹요가 쪼르르 따라왔다.

“아저씨, 우리 엄마보다는 약해도 엄청 세다요?”

크아아…! 자전괴마가 극마로의 도약에 실패하며 폭주하기 시작했지만, 서준은 거기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아니, 잠깐. 너네 엄마 뭐 하시는 분이니?”

녹요가 자신의 강함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금 본 게 있을 텐데?

서준이 빤히 바라보자 녹요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엄마는 왕 큰 사슴이다요?”

진짜 뭐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