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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게냐?”

북해빙궁주, 백설향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녀 앞에 선 수하는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불같이 화를 내실 때는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궁주께서 정말 머리 끝까지 분노하셨을 때는, 오히려 그 기세가 모든 것을 얼리는 북해의 삭풍보다도 차갑다.

“예…. 마교에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북해빙궁 소속의 무인이 죽인 마인의 수만 수백이라고….”

“항의…. 정식으로? 마교에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놈들이라면 군사 놈들이겠군.”

콰드득-! 옥좌의 팔걸이가 얼어붙어 부스러졌다. 백설향이 주먹을 움켜쥔 채 두 눈을 형형히 빛냈다.

“군사 놈들이라면 인상착의 정도는 파악한 뒤 입을 놀렸겠지. 그래, 어떤 년이 그따위 짓을 벌이고 다닌다더냐.”

“그, 그것이….”

수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내…, 라 합니다.”

“뭐라?”

“게다가 스스로 이름을 밝히길 자신을 백서준이라 했다고…. 아마 누군가 역용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해빙궁 소속의 무인 중 사내는 드물다. 순수한 음기에 가까운 기운을 다루는 탓에 여인이 아니라면 빙궁의 무공을 대성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초절정 이상의 고수로 따지자면 현재 빙궁에 그만한 사내 고수는 없다.

아니, 현재뿐만이 아니라 최근 300년 간은 없었다.

외부인들이야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를 수 있지만, 궁주인 백설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잠깐. 백서준이라고?”

“예.”

“서준…. 서준?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남궁세가의 고수 중 이서준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아, 그래. 진기재천이라 했던가?”

“예.”

“혹시 그 자가 빙궁에 누명을 씌우려 작정했을 가능성은….”

하…! 백설향은 스스로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내가, 심지어는 빙궁의 소속도 아닌 자가 빙백신공을 어찌 다룬다고?

게다가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가명이랍시고 성씨만 바꾸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터였다.

골수까지 마기가 들어찬 마인 놈들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당당하게 본명을 밝히고 말지.

“하도 어이가 없으니 별 생각을 다 하는군.”

섬뜩한 미소를 머금은 백설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쩌적-! 그녀가 내뱉는 자그마한 날숨에 일대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백서준…. 백서준이라….”

어떻게 생각을 해봐도 그 백서준이라는 놈은 빙궁 소속의 무인이 맞다.

그렇다면 감히, 어떤 년이 빙궁의 이름을 앞세워 이따위 짓을 벌이는 것일까.

혹여 오래 전 갈라져나간 분파일까? 아니, 그들은 빙백신공을 알지 못한다. 빙정 역시 소유하고 있지 않으니 빙백신공을 대성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분명 빙궁, 그것도 본파에 속한 고수라는 뜻인데….

아니지. 설마? 300년 전의 그놈이 살아있다면?

‘과한 망상이다.

그럴 리는 없다. 그놈은 분명 죽었다.

“만약…….”

“예.”

“그년에 대한 어떤 소식이라도 들어온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내게 알려라.”

“허면…?”

“내가 직접 나서 그년의 정체를 밝히고 그 목을 본궁 꼭대기에 장식하겠다. 감히 이따위 짓을 벌여?”

백설향의 웅혼한 내공이 요동쳤다.

“총군사에게도 일러두도록. 그년이 뭔 짓을 벌이든 그것은 빙궁의 뜻이 아니니, 헛짓거리 하지 말고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당장 내게 알리라고.”

“존명!”

성만 바꾼 가명을 쓰는 당사자, 백서준은 드높은 봉우리의 꼭대기에 올라 곤륜산을 내려다보았다.

더이상 마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죽거나 물러섰다.

이만하면 곤륜도 한숨은 돌릴 수 있을 거다. 전력을 보전했으니 다음 공세를 막아내는 것 역시 그나마 수월할 터.

마교에서 단번에 터무니없는 수준의 전력을 보내는 것만 아니라면 알아서 잘 버틸 거다.

‘여차하면 장문인도 있으니까.

잘은 몰라도 곤륜파 역시 십육명문 소속의 문파다. 장문인 역시 화경의 고수일 터.

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문파가 휘청이는 만큼 어지간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곤륜이 멸문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다.

‘감회가 새롭구만.

십육명문쯤 되는 문파를 걱정해주는 날이 올 줄이야. 스스로의 앞가림도 하기 힘들었던 시절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데.

아니지.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먼 과거의 일이 아니긴 하다. 이제 2년이 좀 넘었나?

새삼 스스로의 재능이 두려워진다.

‘이 정도면 천하제일인도 금방…, 은 아니겠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장인어른은 너무 멀다. 서준이 쩝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저 아래서 인영 하나가 솟구쳐 올라왔다.

곤륜의 풍월이다.

“…정말로 해냈군.”

“뭐, 어려운 일도 아니오.”

“어려운 일은 맞지. 본문의 장로 중 다수가 나선 전장이었는데.”

풍월은 백서준을 띄워주면서도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살폈다.

“그래서, 정말 바라는 게 뭐요.”

“바라는 것이라니?”

“설마 바라는 것도 없이 곤륜을 도왔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그것도 사흑련 소속의 고수가.”

“흠….”

백서준의 시선이 풍월을 꿰뚫었다. 그 의미심장한 시선에 풍월이 긴장했다.

물론 서준은 별 생각이 없었다.

‘뭐라 해야 되지?

우리 편이니까 도와준 걸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던 서준은 답을 내렸다. 그냥 북해빙궁에 엿이나 먹이자고.

알면 알수록 금가의 멸문에 북해빙궁이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커져갔지만, 어찌 됐건 춘봉에게 절맥을 안겨준 무공을 소유한 집단이다. 엿을 먹일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나는 내 사냥감을 누군가 노리는 것을 싫어하오.”

“…….”

“곤륜 역시 그러하지. 곤륜은 우리 북해빙궁의 사냥감. 마교 놈들이 침을 발라두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놈….”

풍월의 시선이 사나워졌다.

현재 백서준은 격전을 치른 상태다. 노린다면 지금이 적기일 터.

풍월이 다른 장로들과 함께 합공을 결심했을 때, 백서준이 싱긋 웃었다.

“그러면 다음에 보지.”

“이런…! 모두 놈을…!”

쩌어어엉──────────!!

백서준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풍월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백서준이 있던 자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놈의 경공이….”

발밑에 응축된 빙공을 터뜨려 폭발적인 속도를 얻은 것인가? 무식한 방식이다. 아주 약간이라도 틀어진다면 스스로의 몸이 박살날 터였다.

“빌어먹을….”

어찌 되었건 놈을 놓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놈은 곤륜을 덮칠 또 다른 칼날이 되어 돌아올 터.

“이런 똥물에 튀겨죽일 놈 같으니…!”

풍월의 노호성이 곤륜산에 울려퍼졌다.

“어휴휴.”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바로 눈앞에서 혼원보를 펼치기에는 좀 그래서 적당히 빙공을 이용해 써봤는데, 이게 혼원보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아서 살짝 쫄렸다.

물론 그냥 대놓고 혼원보를 써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빙백신공의 내공을 감출 수 있는 이상 나중에 ‘어? 너 이 새끼 설마…! 같은 상황이 돼도 오히려 무고죄로 역관광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그래도 양심에 좀 찔린다. 서준은 나름 스스로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 자부했다.

물론 그렇다고 빙공으로 야매 혼원보를 펼치다 잡히면?

  • 쨔잔! 사실 이서준이었습니다!

  • 뭐뭣! 이놈! 감히 나를 능멸해!?

  • 뜌, 뜌땨…?

이것도 좀 곤란하긴 하다.

뭐, 아무튼 안 잡혔으니 그만이긴 하지. 괜히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당장이야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다지만, 이래저래 이후의 활동에 지장이 갈 것이 뻔하지 않은가.

황실의 대장군을 암살한 게 자신이 아니냐는 누명을 쓸 수도 있고.

‘아무튼 이제 진짜 시작인가.

정파 영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곤륜을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천산과는 꽤 거리가 있는 만큼 이 언저리가 마교의 영역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정파의 영역도 아닌지라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고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아무런 일 없이 천산에 도착했다.

“굿.”

오히려 좋다.

서준은 슬슬 기감에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곧장 역용술을 펼쳤다.

스윽-

그의 얼굴이 천서준의 것으로 바뀌었다. 검과 천잠사의 역시 마찬가지다. 천잠사의의 경우 색 따위는 바꿀 수 없었지만, 이미 있는 문양을 대충 입맛대로 바꾸는 정도는 가능했다.

‘나, 뜨개질에 재능이 있을지도.

무난한 검은 바탕에 흰 실로 문양이 새겨진 구조였기에, 서준은 고민 끝에 대충 천잠사의에 역오행진을 새겨넣었다.

급하면 주술까지 발휘할 수 있는 나름 진짜 역오행진이다.

“어디 보자….”

큼큼, 서준은 몇 번 목을 가다듬다 곧장 기감에 걸려든 한 도시로 향했다.

우선 마교 외곽에서 분위기를 좀 파악한 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넌 뭐야?”

그리고 대뜸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창이 겨눠졌다. 천서준이 미간을 좁혔다.

“이놈이 정신이 나갔구나.”

창을 붙잡아 반으로 뚝 꺾어주니 경비병이 사색이 되어 오체투지했다.

“히익…! 죄, 죄송합니다…! 촌놈 무지렁이라 귀한 분을 못 알아뵀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쇼…!”

정보 셔틀 겟.

서준이 픽 웃으며 쪼그려 앉았다. 오체투지한 경비병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사내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쪼르르-

땅이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뭣…!”

기겁한 서준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허억…!”

경비병은 제 실수를 깨닫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급기야 숨을 헐떡이다 기절했다.

‘뭐지 진짜….

당황스럽다. 서준이 검을 검집 째 뽑아들어 사내의 볼을 쿡쿡 찔렀다.

“허억…!”

깨어난 사내가 겨눠진 검을 보고 기겁했다.

“히이익…!”

사내가 다시 기절했다.

“얼탱….”

시작부터 진짜 쉽지 않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사내에게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Q. 딱 봐도 고수처럼 보이지 않나? 왜 깝쳤어요?

A. 고수인 줄 정말 몰랐다. 보통 고수들은 가까이에만 있어도 오금이 저리고 몸이 떨려온다. 그런 증상이 없기에 겉멋 잡는 머저리인 줄 알았….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쇼…!”

아무래도 마교 쪽 사람들은 그냥 마기를 대놓고 드러낸 채 다니는 모양이었다. 가능하면 경지를 숨기는 것이 미덕인 정파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듯싶다.

서준은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다.

Q. 요즘 뭐 분위기 달라진 거 없어요?

A. 딱히 없다. 무슨 큰일이 났다고는 들었는데 이런 촌구석 마을과는 연관이 없는 일이다.

Q. 혹시 여기 제일 큰 문파 어디에요?

A. 문파라고 할 만한 건 없다. 원래 이런 작은 도시에는 그런 체계적인 집단이 없다.

Q. 정파는 있던데?

A. 그걸 왜 저한테…?

“죄송합니다…! 부디 목숨만…!”

…A. 원래 이쪽은 문파가 드물다. 어지간히 힘이 있는 세력이 아니라면 마공을 익히다 사고가 터져 금방 와해된다.

“아하.”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마공이라는 게 머리가 회까닥하기 쉬운 무공이다 보니 스승이든 제자든 칼부림 나는 게 일상일 터.

웬만큼 규모 있는 집단이 아니라면 유지하기 힘들 듯했다.

Q. 그러면 여기에는 무인이 없나?

A. 계신다. 교에서 오신 분이 도시를 다스리신다.

거기까지 들은 서준이 손을 내저었다.

“이제 가봐라. 들을 건 다 들은 듯싶군.”

“예, 예…!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평생 가슴에 품고 살겠습니다…!”

목숨을 구해줘?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서준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도시에 들어섰다.

‘나머지 정보는 교에서 왔다는 친구한테 들어보면 되겠네.

심지어 그 무엇도 거리낄 게 없다. 지금의 자신은 천서준이다. 그 누구도 이서준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이다.

그야 이서준이 저지른 짓이 아니니까…!

좋다. 이 책임 없는 쾌락.

서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새 정보 셔틀 겸 마공 셔틀을 만나러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