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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남긴 숙제는 말이 숙제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춘봉, 남궁수아, 남궁명의 경우 생사타통공을 쓰기 전에 경지를 다지는 것.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니만큼 과정 자체가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절정 끄트머리에서 한 발짝 내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간단하다는 소리 따위는 결코 할 수 없었다.
황보혜지의 경우 조금 달랐다.
그녀의 경우 일단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
그를 위해 서준은 그녀만을 위해 과제 하나를 준비했다.
“자, 나 갔다 올 동안 이거 열심히 두드리고 있어.”
서준이 준비한 것은 커다란 바위였다.
기실 절정의 무인쯤 되면 바위 하나 부수는 것 정도야 전혀 어렵지 않다. 황보혜지의 경우 주먹질 한 번이면 바위가 산산이 부서질 터.
그런 만큼 평범한 바위는 아니었다.
“이건….”
황보혜지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알아차린 듯한 시선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부적 보이지?”
서준 특제 주술이 담긴 부적이다.
춘봉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해보니까 되더라.”
“뭔 또 개소리를….”
“진짠데.”
수인(手印)과 비슷하다. 어차피 주술의 사용을 보조하는 무언가에 불과하지 않은가.
바위에 토계(土系) 주술을 사용해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감각대로 종이에 기운이 담긴 글씨 좀 휘갈기면 그게 부적이다.
이 부적은 서준이 없는 동안 주술의 유지를 담당해줄 친구였다.
서준의 설명에 춘봉이 히히 웃으며 박수쳤다.
“미친놈. 나 이제 진짜 안 놀랄 거야.”
“그건 좀 서운한데.”
나중에 마인화 한 번 꼭 보여줘야겠다. 아예 머리까지 셋 달아서 삼두육비 이서준쯤 되면 춘봉이도 놀라주지 않을까?
“자자, 아무튼. 제수씨는 이거 열심히 두드리고 있으면 돼.”
“네.”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지만, 서준은 확신했다. 아마 꽤 효과가 있을 거다.
물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관찰한 황보혜지는 조금 과할 정도로 수련에 열심이었다.
그녀를 데굴데굴 굴리려던 서준조차도 크게 터치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러면 이제 나 갈 테니까 사고 치면 안 된다?”
서준이 춘봉의 볼따구를 죽죽 늘리며 당부하자, 춘봉이 코웃음쳤다.
“녀냐 쟈래.”
“난 원래 잘 해.”
“퍼기냐.”
“퍽이나?”
“아오…!”
투다닥-! 얻어맞은 서준이 낄낄 웃었다.
“진짜 금방 갔다 올게!”
자칭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스마트한 남자.
서준은 우선 섬서로 향하기 전 계획을 세웠다. 이전처럼 이상한 곳에 불시착하지 않기 위한 계획이다.
물론 섬서는 가깝다. 하남과 바로 붙어있다.
하지만 이번이라고 방향을 잘못 잡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를 위한 대책이 무엇인가.
‘경유지 몇 개 잡으면 되지.’
비교적 가까운 목적지를 여럿 잡고, 차근차근 가면 된다.
서준은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콰아아아앙──────────!!
정파의 영역인 만큼 조심할 것도 없이 마음껏 혼원보를 펼쳤다.
그렇게 채 한 시진조차 되지 않아 섬서와 녕하, 감숙의 경계선 언저리에 도착한 서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으음─ 이 그리운 공기.”
사실상 무림 라이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섬서 아닌가.
연약하던 뉴비 시절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만끽하던 서준은 곧장 땅을 박찼다.
“보자….”
그는 우선 근처의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선 채 기감을 펼쳤다.
찾는 것은 기루. 그 중에서도 묘하게 무인이 많은 곳.
목표하던 기루를 찾자마자 건물 지붕을 박차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탓-
기루 최상층에 가볍게 착지하자마자 은밀한 기척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서준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무해함을 어필하며 품 속에서 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현월이 건네준 성급 지부장을 증명하는 금속패다.
“제가 진기재천이라는 사람인데요. 정보 좀 살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더니 어둠 속에서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하신 분께서 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을까요?”
“정보 사러 왔죠.”
“개방에 가도 됐을 텐데요.”
어허, 말대꾸? 서준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요즘 너무 무림 고수에 심취해 있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꼰대짓을 해대는 건 좋지 않다.
“아무래도 거지들은 일을 대충 할 것 같아서…. 그래도 하오문이 낫지 않아요?”
개방의 홍안개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서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서준의 대답에 여인이 마땅한 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서준은 다른 말을 하는 대신 꺼내든 패를 그녀에게 던졌다.
“이건….”
패를 받아든 여인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이네요. 정파의 고수가 하오문의 패를….”
“아무튼, 제가 좀 급해서 그런데. 혹시 근처에 마인 위치 아는 거 있어요?”
“이미 이동했을 테지만, 그 전에 머물던 위치는 몇 군데 아는 곳이 있습니다.”
여인이 손짓하자 수하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왔다.
여인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품 속에서 붓 하나를 꺼내들어 두루마리 위에 무언가를 빠르게 써내려갔다.
“그 붓 뭐예요? 먹도 안 묻어 있는데.”
구경하던 서준이 묻자 여인이 살풋 웃었다.
“제갈세가에서 최근에 개발한 자생묵필(自生墨筆)이랍니다. 스스로 먹을 만들어내는 기물이지요.”
그녀는 두루마리 위로 손부채질을 몇 번 해 먹을 말린 뒤 그것을 서준에게 건넸다.
“간단한 지도와 설명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서준이 두루마리를 살폈다. 지도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 서준도 알아볼 정도로 쉽게 그려져 있어 나쁘지 않았다.
“좋네요. 쿨거래 감사합니다.”
“예? 쿨…?”
“어허, 이거 공부 좀 더 하셔야겠네.”
서준이 낄낄 웃으며 정보에 대한 값을 치렀다.
위치 정보 겟.
곧바로 출발했다.
하오문을 나선 서준은 우선 가장 가까운 목적지를 향해 혼원보를 펼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던 만큼 혼원보로 이동하자 채 1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이 근처란 말이지.”
두루마리를 품에 넣은 서준은 기감을 펼쳤다.
큰 기대를 하고 기감을 펼친 건 아니었다. 기감을 펼친 채 주변을 헤집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어라?”
기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마인은 아니고 마기다.
‘역시 우리 마기.’
참하기 그지없다. 이 정도면 금춘봉의 팔 분의 일 정도는 똘똘하다 할 수 있겠다.
서준은 곧장 마기의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마기의 흔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의 기에 동화되고 있었는데, 서준이 눈길을 주자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듯 진득한 흔적으로 변해 서준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듯 마인의 뒤를 손쉽게 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이동한 끝에 자그마한 도시 하나가 나왔다. 시커먼 연기 한 줄기가 도시 한복판에서 피어오른다.
상황을 직감한 서준은 곧장 속도를 올렸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사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 안 돼…! 제발! 제발…!”
주변에 사람 시체가 서넛 굴러다닌다. 보아하니 흑도 놈들인 듯싶다.
시체 사이에는 마기를 풀풀 날리는 놈 하나가 서있었다. 놈은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를 손에 든 채 시체의 가슴에 손을 쑤셔 박았다.
두둑-!
아직 온기가 남은 심장이 놈의 손에 뜯겨나왔다. 놈은 그것을 한 입에 삼키려다,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뭐냐 너는.”
놈의 눈이 굴렀다. 아직 살아남은 흑도 놈들과, 그를 빤히 바라보는 서준. 이내 그가 씩 웃었다.
“운이 좋군.”
마인이 우선 심장을 씹어 삼키려는 순간, 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
우뚝, 마인의 동작이 멎었다. 당황한 듯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오?’
서준은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말에 무언가 힘이 깃들었다.
어차피 절정 정도 되는 피라미에 불과한 놈이다. 무슨 실험을 하든 변수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궁금증을 참을 이유가 없는 만큼 곧장 실험에 돌입했다.
콰르륵-!
서준의 전신에서 순도 높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순수에 가까운 마기를 목도한 흑도의 사내들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마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깡은 좋네.”
마인이라 그런가, 겁을 먹은 기색이 없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서준을 쳐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꿇어.”
쿠웅-! 서준이 명하자 마인의 무릎이 꿇렸다.
그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서준을 노려본다. 서준이 픽 웃었다.
“손에 든 거 내려놓고.”
마인이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익힌 무공이 뭐냐.”
“…섭, 심공과, 이름 모를 조법….”
섭심공이라 함은 말 그대로 심장을 먹어 성취를 늘리는 종류의 무공이다.
거기에 이름조차 모르는 조법? 피라미 중의 피라미다.
쯧, 혀를 찬 서준이 말했다.
“구결.”
“…사람의 심장은 중, 단전과 가까워 기를 머금으며……”
서준은 즉석에서 구결을 해체했다. 섭심공의 원리는 어렵지 않았다. 중단전이 어쩌고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선천진기를 흡수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게 흡수한 선천진기는 조잡한 내공심법에 의해 마기로 변질되는데, 그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과연. 역류라….”
사람의 피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되었고, 피가 거꾸로 흐르면 보통 죽는다.
기 역시 마찬가지다.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기가 흐르는 통로를 경맥(經脈)이니 혈맥(穴脈) 따위로 부른다.[경락(經絡) 중 낙맥(絡脈)은 익힌 무공에 따라 다르므로 제외한다.]
혈관과 마찬가지로 경맥 역시 기가 흐르는 방향이 정해져있는데, 이놈이 익힌 섭심공의 경우 기의 순환 방향이 반대였다.
아마 익히다 죽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고, 익히더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들 터였다.
애초에 제정신이라면 사람 심장을 처먹는 무공 같은 걸 익히진 않겠지만.
‘능력이 안 되니 이렇게라도 역천에 가까워지려 한 건가.’
대충 이해했다.
서준은 쓸모를 다한 마인을 내려다보았다.
-
이쪽이다!
-
너희는 저쪽으로 향해 퇴로를 막아라!
마침 도시의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겠다, 서준은 마지막 실험을 행했다.
“자살해라.”
후두둑-! 마인이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죽었다. 스스로 내부의 기를 터뜨려버린 것이다.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