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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백팔빙마주진은 백팔나한진의 나한들을 108개의 얼음 기둥으로 대체한 진법이다.

얼음 기둥을 이루는 토대는 빙백신공과 오행의 수(水).

본래는 마기 없이 펼쳐 백팔빙주진(百八氷柱陣)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려 했으나, 의도치 않게 마기가 섞여 들어갔다.

혈오문주가 하독한 혈염만인혼 탓이다.

호신강기는 분명 완벽에 가까운 방어 수단임에도, 서준은 공기 중에 섞인 혈염만인혼에 중독됐다.

혈오문주가 처음 뿜어낸 붉은 연기는 눈속임. 그 뒤로 은밀하게 혈염만인혼을 하독한 듯했는데, 서준의 호신강기는 공기 중에 섞인 독을 걸러내지 못했다.

공기와 일체화된 독을 호신강기가 구별해내지 못한 까닭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것이 무림에서 독공(毒功)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 추측할 뿐.

이러나 저러나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독됐다는 결과 자체.

서준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독이라 해봐야 결국 이물질이 체내에 들어온 것.

혈염만인혼의 경우 피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기에, 체내의 모든 혈액을 일순 마기로 치환해 모든 이물질을 태워버렸다.

그러고도 남은 잔여물들은 입에 모아 침과 함께 뱉어냈다.

그 탓에 혈관이 검게 물든 채 불거졌으나, 몸에 별 이상은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붙잡은 영역의 편린을 끌어내 세상에 새겨넣을 뿐.

쩌저적──────────

바깥으로 꺼낸 내단과 108개의 얼음 기둥들이 공명하며 혈오문 전체를 한기로 가득 채운다.

“후우….”

서준은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혈오문의 모든 것을 느꼈다.

살아있는 이천삼백칠십이 명의 기척, 내부에 설치된 진법, 건물들의 구조, 지하의 비밀 통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의 감정, 유독 커다란 공포.

자신의 일부라 할 수 있는 내단을 외부로 꺼내어, 백팔빙마주진의 범위 안에 스스로의 의식을 퍼뜨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방식은 주술에서 착안했다.

무공으로는 화경에 이르기 전까지 외부의 기를 자유로이 다룰 수 없으나, 주술의 경우 공명이라는 방식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가능하다.

내단은 서준의 정(精)과 신(神)을 보조하는 기(氣)의 결정체.

어찌 보자면 서준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였고, 그것을 바깥으로 꺼냄으로써 외부에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냈다.

다시 그것을 축으로 108개의 얼음 기둥들과 공명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나누었으며, 끝내 기둥끼리의 공명을 통해 진법 내부의 모든 공간에 스스로를 투영했다.

이에 이름 붙이길 팔한지옥(八寒地獄).

화경의 영역을 모방한 유사영역.

서준은 혈오문 내부의 모든 한기(寒氣)를 제어하에 둔 채 모든 숨 쉬는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뭐, 뭐냐….”

혈오문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임은 알 수 있었다.

살을 찌르는 한기에 점차 생각마저 굳어진다.

깨달았을 때는 눈앞의 사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이를 악문 채 발악하듯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허나 이 정도 위기에 마음이 꺾일 만큼 호락호락하게 살지는 않았다.

저 자를 죽이고 살아남는다.

혈오문주가 이를 악물었다.

혈인강기(血燐罡氣). 혈오문의 독문무공.

혈오문주의 양손에 새빨간 강기가 휘감겼다.

치이익-!

엄지만 남은 왼손의 강기에 핏물이 타들어가며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대로 손을 휘둘러 기운을 떨쳐냈다.

파바바박-!

쏘아진 강기가 분열한다. 그 모습이 마치 수천 개의 도깨비불과 같다.

날아드는 강기의 파편들을 보며 서준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런 방식이었나.”

하아…. 서준이 숨을 내쉬자 날아들던 강기의 파편들이 모조리 얼어붙어 떨어진다.

혈오문주는 입술을 짓씹었으나, 절망하는 대신 크게 외쳤다.

“쳐라!”

문주의 명에 문도들의 대략 절반이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든다.

삼 분의 일은 망설였으며, 나머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서준이 손짓했다.

화아악-!

가볍게 휘저은 손에 바람이 인다. 한기로 이루어진 바람이다.

쩌적-! 혈오문 전체에 몰아친 삭풍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아, 아아….”

“살, 려….”

1987개의 얼음 동상이 생겨났다.

이제 2372개의 기척 중 남은 것은 385개.

317개의 기척은 혈오문이 잡아놓은 제물로 추측되는 만큼, 남은 혈오문의 잔당은 68명.

따악-!

서준이 손을 튕기자 허공에 생겨난 거대한 얼음 기둥이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쿠우우웅──────────!!!

이제 18명.

쩌억-!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얼음 기둥에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째앵-!

산산이 부서져 수천만 개의 얼음 파편이 되었다.

이어 서준의 손가락이 까딱이자 다시 한 번 바람이 분다.

수천만 개의 얼음 파편이 바람을 타고 혈오문 내부를 휘저었다.

“아아악…!”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칼날 바람에 휩쓸려 한줌 핏물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

얼굴이 희게 질린 혈오문주가 서준을 올려다보았다.

“말도 안 돼…. 중독은….”

“됐을 리가.”

서준이 손을 펼쳤다.

공기 중의 무언가가 얼어붙으며 붉은 입자가 손 위로 모여든다.

혈오문주가 혈인강기를 펼치며 그 사이에 섞어 하독한 혈염만인혼이다. 피에 깃들어있던 독을 강기에 태워 흩뿌린 것이다.

추측에 불과하나, 아마 그 과정에서 호신강기를 무력화하는 공능이 생겨났을 터.

분명 성가신 독이지만 두 번 당할 정도는 아니다.

서준이 혈오문주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의지가 꺾였다.

허나 무인의 자존심은 이대로 순순히 죽어주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양손에 새빨간 강기를 깃들인 혈오문주가 땅을 박찼다.

진기를 끌어올려 절초를 펼쳐낸다.

진혈조(眞血爪).

손톱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열 가닥의 강기가 공간을 수놓는다.

서준은 유사영역 내의 모든 한기를 일점에 끌어모았다.

빙정(氷晶).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눈꽃 모양의 결정에 혈오문주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화아아아악────────!!!

일대가 새하얗게 물들고, 냉기가 걷혔을 때는 혈오문주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얼어붙어 부서진 그의 흔적만이 바람에 흩날렸다.

서준은 땅에 내려선 채 새하얗게 얼어붙은 혈오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직 멀었네.”

유사영역 팔한지옥.

분명 화경에 한 발짝 다가갔으나, 아직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영역 내의 기(氣)가 아닌 한기(寒氣)만을 다룰 수 있다는 점부터 그러하다.

더욱이 스스로의 절반 가량을 내단에 담아 외부에 노출했기에 본신의 힘이 떨어졌고, 백팔빙마주진의 영역에 퍼진 심상 자체도 너무 옅다.

자신과 동격의 상대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기술이다.

또한 내단이 노출됐기에 약점 역시 명확하다.

하늘 위에 고정시켜둔 내단이 파괴된다면 오히려 서준이 큰 타격을 입을 터.

백팔나한진을 경험한 뒤의 영감으로 급조한 기술이었으나, 상대의 상성을 노리는 게 아닌 이상 수준 이하의 적들을 학살하는 용도 이외에는 딱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화경의 신위를 잠시나마 경험했다는 데 의의를 둘 뿐.

“하아….”

한숨을 내쉰 서준이 손짓했다.

쿠구궁-!

땅의 수분이 얼어붙어 그대로 대지를 들어올린다.

지하 깊숙이 숨겨져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좁은 공간에 갇힌 317명의 사람들.

그들은 이미 이지를 잃은 채 숨만 붙어있는 인형에 불과했다.

아무리 서준이라도 치료할 수 없는 상태.

혀를 찬 서준은 그들의 심장과 뇌를 얼려 고통 없이 죽음으로 인도했다.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주자니 이후 사흑련의 병력들이 혈오문을 샅샅이 수색하며 시체를 훼손할 터.

대신 한기를 다뤄 317구의 시체를 분해하니,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미세한 얼음 입자들이 달빛을 산란시켜 오묘한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서준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흐려지던 빛무리가 끝내 밤하늘 사이로 흩어진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서준은 이내 허공의 내단을 불러들여 다시금 입으로 삼켰다.

화악-!

유사영역이 풀어지며 한 줄기 따스한 바람이 분다.

“웨엑…!”

입에서 피를 쏟아낸 서준이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유사영역에 불과했으나, 그조차 서준의 수준에서 펼치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이 정도면…, 본선까지 아슬아슬하려나.”

빠르게 회복되는 몸상태를 가늠한 서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약간의 회복 기간을 가진 후, 다시금 하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춘봉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이서준 이 새끼, 금방 돌아온다면서 결국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용봉지회의 본선.

남궁명, 남궁수아와 함께 대기하던 춘봉이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 새끼 무슨 일 생긴 거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금 매.”

“으음….”

입술을 삐죽 내민 춘봉이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걔가 어디서 맞고 다니진 않겠지.”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다.

용봉지회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봐도 무방하다.

신검금가의 후계자라는 신분.

그것을 밝힐 시점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본선이 시작함과 동시에 밝혀 그 화제를 우승까지 끌고 갈 것인지, 혹은 우승하고 난 뒤 한 번에 쾅 터뜨릴지.

이미 결론은 내렸다.

남은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이내 짧은 개막식이 끝나고, 대련의 시작이 선언됨과 동시에 심판이 첫 번째 대련의 대상자들을 호명했다.

  • 황실의 주양일!

와아아-! 함성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연무장에 오른다.

그는 무표정한 낯으로 좌중을 훑었다.

용봉지회에 별 흥미가 없는 듯 가라앉은 눈. 그의 위엄 어린 시선이 닿자 관중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춘봉이 그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저저 건방진 새끼. 눈깔 뜬 거 봐봐.”

한때 중원을 평정했던 무신 주운천의 후손.

무신이 등선하며 잠시 휘청였으나, 황실은 여전히 육대세가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너져버린 신검금가와는 다르게….

  • 아…!

그때, 심판을 맡은 승려가 당황한 듯 뒤편에 자리한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전해들은 바가 있었던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은 묘하게 벅찬 표정을 잠시 가다듬더니, 이내 크게 소리쳤다.

  • 신검금가의, 금희…!

신검금가(神劍金家).

위대한 검의 신이 머물던 가문이자, 덧없게도 하룻밤 사이에 몰락해버린 가문.

그 이름에 일순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심한 낯으로 서있던 주양일 역시 눈을 크게 뜬 채 어딘가에 있을 신검금가의 후계자를 찾았다.

그리고 신검금가의 후계자, 금희.

‘금희?

잠시 당황하던 춘봉은 이내 깨달았다.

‘맞다. 내 이름 금희였지?

정신을 차린 춘봉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연무장에 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한다.

연무장에 올라 잠시 침묵하던 춘봉이 외투를 벗어던졌다.

펄럭-!

외투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며 신검금가의 복장이 드러났다.

와, 와아아아아────────!!

숨 죽인 채 지켜보던 관중들이 끝내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완전히 사라진 줄만 알았던 신검금가의 후계자라니.

천지가 울리는 함성에 삐죽 웃은 춘봉이 허리를 꼿꼿이 폈다.

신검금가의 소가주를 상징하는 화려한 의상이 바람에 펄럭인다.

황금빛 바탕 위에 수놓아진 검은 용.

용포를 본 주양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의복 역시 춘봉의 것과 비슷했다.

단지 색을 반전시킨 것마냥 검은 바탕 위에 황금빛 용이 수놓아졌을 뿐.

“용포라….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도다.”

주양일의 눈이 서늘한 빛을 품고 춘봉을 노려보았다.

“한낱 무림인 주제에 감히.”

춘봉이 비웃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가문 이름에 신(神) 자도 못 붙이는 놈들이 뭐래.”

“신이 떠난 가문이 신의 이름을 참칭하는가?”

“…진짜 뒤질라고 새끼가.”

건방진 황가 놈들.

춘봉이 이를 드러냄과 동시에, 심판이 선언했다.

  • 용봉지회의 본선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