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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이 끝나자마자 청문회가 열렸다.
서준도 이유는 알았다.
백보신권 따라해서 그런 거겠지 뭐.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화산의 매화를 따라했을 때는 걸리면 진짜 큰일나는 거였지만, 지금은 글쎄?
내가 남궁세가 사윈데 뭘 어쩌려고.
아무 뒷배도 없던 시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또한 자신도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고수다.
그래서 굳이 백보신권을 다르게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확연히 높아진 경지로 말미암아 전보다 더욱 정확하게 무공의 이치를 꿰뚫었고, 혜운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기 위해 소림의 것과 최대한 비슷한 모습을 취했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 백보신권이었다.”
방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서준은 당당했다.
뭐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무공을 보고 베끼는 것이 잘못인가? 이 문제 자체가 굉장히 애매한 탓이다.
무공에 저작권 따위는 없다.
서준이 생각하기에 무공을 베끼는 건 표절보다는 게임의 운영법 따위를 따라하는 것과 비슷했다.
구단에 침입해 전술을 훔치면 그건 범죄가 맞지만, 그들이 쓰는 걸 보고 따라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단지 무공은 보통 그걸 보고 따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게 조금 다를 뿐이다.
‘아닌가? 무공은 유포하면 전쟁하자는 소리니까 좀 다르긴 하겠네.’
문파들이 무공의 유출에 예민한 것은 혹시 만들어질지 모를 파해법을 경계함과 동시에, 그것이 그들 스스로의 재산인 까닭이다.
상징적인 무공의 경우 특징이 명확해 하지도 않은 짓의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런 탓에 무공을 베낀 게 힘없는 놈이라면 괘씸죄로 조져도 큰 문제가 없다.
다른 문파들도 대부분 동의할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보통 수련을 훔쳐보는 둥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억울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남궁세가의 사위라면?
조지려다가 역으로 조져질 수도 있다.
일단 그게 잘못이 맞는지 아닌지부터가 확실치 않다.
‘무공을 보고 따라하는 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닌가.’
‘보고 베낀 무공을 과연 원본과 같다 할 수 있는가.’
‘그것을 도둑질이라 치부할 수 있는가.’
‘무공을 견식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이치를 깨달았다면 그 결과물인 무공 역시 비슷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언가를 보고 얻은 깨달음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있는가.’
등등 애매한 문제가 상당히 많다.
최소한 몇 년 정도는 논쟁해야 할 만큼.
‘뭐, 뇌피셜이긴 하지만.’
사실 무공을 몇 번 보고 베낄 수 있다는 사람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발각되면) 무공에 저작권이 생길 가능성도 있긴 했다.
‘근데 지금은 없잖아?’
그래서 서준은 당당했다.
다만 아까 사고친 게 미안해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보고 비슷하게 따라 쓴 건데요?”
“무공의 겉모습을 따라하는 것과, 그 안에 담긴 이치를 펼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 내 그것조차 알아보지 못할 것 같으냐?”
“이치를 보고 따라한 거니까 그렇겠죠?”
“그걸 말이라고….”
방장으로서도 무어라 더 추궁하기는 애매했다.
백보신권이 유출된 적이 없음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몇 번 보고 따라했을 뿐이라는 것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런 경우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장도 아는 것이 없었다.
세월과 함께 쌓인 지혜라는 것이 있지만, 경험해본 적 없는 일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전례 따위 있을 리가 없으니 방장으로서도 섣불리 판단하기 곤란했다.
“무공 좀 보고 따라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쪼잔하게 구나?”
권왕이 입을 놀려대니 더더욱 그러했다.
“자네는 입 좀 다물고 있게.”
“허허, 뚫린 입이면 말이라도 해야지. 말도 안 하고 있으면 금방 늙어.”
그 모습에 서준은 그냥 머쓱하게 웃었다.
방장이 이 사실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면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지만, 설마 그러진 않으리라 믿었다.
만약 그러더라도 큰 문제까지는 없고.
기껏해야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서 무공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정도 아닐까?
그 정도야 무공을 볼 방법은 많으니 상관없다.
아무튼 이제 잔뜩 신난 남궁혁 어르신과 대충 놀아주다가, 적당히 소림 관광 좀 하고 별장으로 돌아가면 될 듯싶었다.
그렇게 적당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지암과 눈이 마주쳤다.
까딱, 서준의 눈썹이 움직이자 지암의 표정이 묘하게 찌푸려진다.
조금 놀려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슬슬 방장과 패진광의 대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 그래. 의도 자체가 혜운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함으로 보였으니 뭐라 하기도 애매하군.”
실제로 혜운이 약간의 깨달음을 얻고 한 발 나아갔으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또한 저 티없이 맑은 기운으로 봤을 때 심성 자체는 곧은 자일 터.”
“저놈 심성이 곧은 것 같지는 않은데.”
방장은 패진광을 무시하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무공을 사특한 일에 쓰지 않는다면 별말 하지 않겠다.”
“사특한 일에 쓰면요?”
“그 뜻이 더럽혀지기 전에 손을 써야겠지.”
남궁혁이 표정을 찌푸렸다.
“이 아이 역시 남궁이오.”
“이는 소림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일이네.”
“남궁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오.”
“그럴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 만약의 일에 대비해 말해둔 것뿐이니 기운 빼지 말게.”
방장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스님답지는 않다.
화경이라 그런가?
서준이 턱을 긁적이고 있자, 방장이 몸을 돌렸다.
“이 일은 이만하면 됐으니 따라들 오게. 중히 할 말이 있네.”
방장은 일행을 어느 소박한 방으로 안내했다.
정확히는 초절정 이상인 이들만을 들였다. 그 아래는 잠시 밖에서 대기.
다만 남궁의 소가주인 남궁명은 예외였다.
그렇게 방에 모인 인원은 소림의 방장, 남궁의 서준, 남궁혁, 패진광, 남궁명, 아미의 보연신니, 그리고 청성의 월망.
‘월망 저 양반은 있는 줄도 몰랐네.’
생각해보니 몇 번 말도 한 것 같은데, 인상이 꽤 흐릿하다.
“용봉지회의 본선이 시작되면 십육명문(十六名門)이 다시 한 번 모이겠지만, 그 전에 미리 말해두고자 하는 것이 있네.”
방장의 말에 다른 생각을 하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십육명문.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어쩌면 이번 용봉지회의 본목적이 그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패진광의 말에 방장이 무겁게 가라앉은 눈을 번뜩였다.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마인 놈들이 여기저기 쏘다니는 게 하루 이틀 일인가? 그놈들 생각은 알려 들면 안 돼.”
“이번에는 다르네. 천마(天魔)가 움직였어.”
천마. 그 이름에 패진광의 낯이 단번에 심각해졌다.
“천마가? 빌어먹을. 그놈이 움직였다면….”
“마라 파순의 뜻이겠지.”
일순 주변 공기가 무거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서준이 물었다.
“마라 파순이 누군데요?”
“마선(魔仙)이다.”
남궁혁이 험악하게 구겨진 낯으로 설명했다.
“마교 놈들이 모시는 신이지. 천마는 그녀의 대행자다.”
“마선이면 신선 아니에요? 신선들은 선계에 있다면서 대화가 돼요?”
그러면 소림도 부처님이랑 수다 떨고 그러나?
“몇 가지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마교의 경우 성녀가 신혈(神血)을 이었기에 제한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모양이더군.”
얘기를 듣던 서준의 입꼬리가 굳었다.
신혈. 들어본 적 있다.
화산파의 종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 놈들이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본도가 직접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나온 게지. 신혈이 세상에 남아있으면 곤란하거든.
신혈이라는 것이 그저 검신의 피를 이었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면 춘봉이도 검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그래서 제거하려 들었던 건가? 굳이 왜? 다른 뭔가가 또 있나?
서준이 입을 다물고 있자 남궁혁이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천마가 움직였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 자체로 마라 파순의 뜻인 게지.”
보통 마교는 어지간해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휘하의 마인들은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게 일상이지만, 마교 자체가 움직인 것은 기나긴 무림사에서도 몇 번 되지 않았다.
허나 그들이 한 번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었을 때, 그때는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붉은 피로 된 발자국을.
침묵하던 월망이 물었다.
“이보시오, 방장. 천마가 움직였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오?”
“직접 움직인 건 아니네. 사대호법이 나섰을 뿐.”
“그건…, 불행 중 다행이로군.”
“그렇지. 반신들이 움직였다면 애초에 누구 하나 모르는 이가 없었을 걸세.”
만약 그들이 제약에서 벗어나 움직인다면 이미 중원의 태반이 박살났을 터.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그건 말 그대로 재앙이다.
보연신니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마교가 움직인 탓에 이번 용봉지회에 곤륜은 참석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흑련과 전쟁을 치르는 도중인 터라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알지만, 다음 회담에서 반드시 곤륜에게 보낼 지원을 편성해야만 합니다.”
“잠시.”
월망이 끼어들었다.
“혹여나 해서 묻소만, 마교와 사흑련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 간 정황은 없소?”
방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네.”
“그나마 다행이로군.”
“다행이라…. 사흑련과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 설상가상으로 마교까지 끼어든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군.”
“뭐, 이 대 일보다는 낫지 않겠소.”
월망은 나름 농담이랍시고 던진 한 마디였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월망이 입맛을 다시며 침묵했다.
분위기가 무겁다.
소가주로서 회의에 참석한 남궁명 역시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눈치를 보던 서준은 이제서야 천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깨달았다.
‘지암 그 양반이 발작한 게 괜히 그런 건 아니었구나?’
어쩐지 내가 천마다, 한 마디에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더라니.
아무래도 장난으로 입에 담을 이름은 아닌가 보다.
중원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탓에 지금껏 그냥 가볍게 생각했지만, 듣자하니 천마라는 이름은 대대로 마교의 반신들이 이어왔다는 것 같은데….
단순히 그것만 생각해도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서준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찾았다. 만마종주의 싹.
아마 자신을 무림에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여인의 한 마디.
설마 마교 이 새끼들, 나 찾으러 오는 건 아니겠지?
데굴, 서준의 눈이 바쁘게 굴렀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끝난 뒤.
차마 소림사 관광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던지라 일행은 별장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새 용봉지회의 예선 첫날.
춘봉과 함께 예선이 펼쳐지는 곳으로 향한 서준은 넘치는 인파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와…, 사람 뭐야.”
바글바글하다.
농담 하나 없이 그냥 절반쯤으로 확 줄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겨.”
“응?”
중얼거리는 춘봉.
귀를 기울여보니 무어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다.
“내가 이겨. 절대 지면 안 돼. 무조건 결승까지는…. 아니지. 무조건 우승이야.”
각오가 대단하다.
서준이 씩 웃으며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이고 우리 춘봉이. 당연히 우승이지! 오빠가 그냥, 어? 알잖아. 우리 그냥 본선 가기 전에 초절정 함 찍을까?”
“나 진지해.”
“그럼그럼. 오빠도 진지해.”
“…흥.”
삐죽, 입술이 튀어나온다.
냅다 저 입술을 꼬집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 서준은 사람들을 헤치고 연무장에 도착했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니 어중이떠중이는 없다.
기도로 봤을 때 최소 절정 수준.
가끔 일류 정도로 보이는 무인도 있지만, 무력 자체는 절정 고수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느낌이 없다.
아마 예선에 참가하는 것 자체도 꽤 까다롭게 심사한 듯하다.
이전 화산의 비무대회에서 예선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통나무를 베어야 했던가?
그보다 훨씬 많은 무인들이 몰리는 용봉지회인 만큼, 아마 시험 자체도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춘봉이는 프리패스로 합격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혹여나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론 따위, 무인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정파의 문파들은 어느 정도 민생을 살피긴 하나, 그렇다고 여론에 휘둘리는 일은 없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다른 문파들의 말이지 민중의 평판 따위가 아니다.
백만의 민중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초절정 고수의 한 마디가 일만 배는 무겁다.
그들의 고충을 듣는 것은 그저 자비요, 위에 선 자로서 베푸는 아량일 뿐이라 생각하는 이 역시 많다.
그것이 무림이다.
지금껏 만난 이들은 대부분 온화한 편이었지만, 과격한 이들의 경우 절정 미만은 인간으로 취급조차 않는 일도 허다하다.
절정에 올라서야 비로소 인간. 그 밑은 비인간.
서준도 얘기로만 듣긴 했지만 대충 머리로는 이해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초인이, 채 백 년조차 살지 못하는 나약한 범인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 취급을 해줄까?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초절정이었나 싶긴 하지만, 원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건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려니 해야지.
그들도 나름 스스로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
범인들을 아직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 예비 인간으로 본다거나 하는.
뭐, 서준 자신이 아는 이들에게 지랄하는 것만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부여받은 번호에 따라 연무장으로 이동하시오!”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예선전이 시작했다.
“갔다 올게.”
춘봉이 비장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서준은 진지하게 응원했다.
“다 죽이고 오도록, 금춘봉.”
“미친놈이야?”
“그러면 죽이진 말고 줘패고 오도록.”
“흥, 당연하지.”
춘봉이 허리춤에 메인 검집을 움켜쥐며 삐죽 웃었다.
“나 금춘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