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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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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익…! 치워라!”

백설향이 서준의 얼굴을 쭈욱 밀어냈다. 서준은 그런 백설향을 보며 픽 웃었다.

‘이거 재밌네.

사람이 좀 찐따 같아서 놀리는 맛이 있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다들 그렇지 않은가? 오히려 백설향 같은 타격감 발군의 인재가 있는데도 놀리지 않는다면 그게 역천이다.

새삼 역천의 왕, 천마의 비인간적인 면모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아무튼, 마지막 일은 뭘 시킬 것이냐 묻지 않았소.”

“좀 기다려라! 사내가 이리 인내심이 없어서야!”

백설향이 씩씩대며 서준을 삿대질했다.

“네 부인이라는 여인도 팔자가 참 기구하구나! 필시 밤일을 할 때도 인내심이라고는 티끌도 없겠지!”

“호오, 감당할 수 있겠소?”

“또 뭘 말이냐!”

“이런 화제로 몰고 가서 그쪽이 좋을 게 없을 텐데.”

“크윽…!”

그제서야 스스로의 실책을 깨달은 백설향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서준을 노려보며 분을 삭히더니, 문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갈 채비를 갖췄다.

“됐으니 따라와라!”

세 번째 일인가? 서준은 별말 없이 백설향의 뒤를 따랐다.

백설향은 아예 빙궁을 나서더니, 경공까지 펼치며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궁금해서라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딜 가는 거요?”

“마을이다.”

“마을? 무슨 마을?”

백설향이 코웃음을 쳤다.

“마을이 따로 있느냐? 빙궁이 다스리는 유일한 마을이다.”

빙궁의 마을에는 특별한 이름조차 없다. 그냥 마을 하면 그 마을이겠거니 하고 다들 알아듣는다.

북해가 사람 살기에 그닥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애초에 빙궁 근처의 마을이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는 까닭이다.

“어쩐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칠사흑문치고는 가난해 보인다 싶었소.”

“…네가 그 가난한 문파의 소궁주다.”

“허어, 이거 안타깝군.”

그리 빠른 속도로 이동한 것이 아님에도 마을까지는 금방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서준은 묘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소박하네.

자그마한 마을이다. 그럼에도 생활감이 넘쳐 나름 정이 가는 마을이기도 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대체로 표정이 밝았다. 활기 넘치는 거리에서는 몇몇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대체로 물고기 따위의 해산물이었다.

보통 사파 세력권의 마을 하면 떠올리는 인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특히 무인에 대한 반응이 그랬다.

“어이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백설향과 함께 걷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꾸벅꾸벅 허리를 숙인다.

서준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저건 공포에서 나오는 예가 아니다.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간혹 선물 따위를 건네오기도 했다.

지나가던 도중 백설향을 발견하고 냉큼 달려와 어포를 건네는 이 사내도 그중 하나였다.

“이번에 새로 말린 건데 염장이 잘 됐습니다. 조금 드셔보십쇼.”

“아, 고맙군. 요새 별일은 없는가?”

“바다에서 마물이 튀어나오긴 했는데 금세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일도 없습죠.”

사내는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배를 타고 나갔는데 바다 한가운데가 꽁꽁 얼어있어 깜짝 놀랐다는 둥, 요즘 들어 어획량이 늘어 삶이 풍족해졌다는 둥.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던 사내가 떠나가고, 서준은 백설향을 따라 걸으며 작게 웃었다.

“인기가 좋군 그래?”

“나를 알아본 건 아니다. 빙궁의 무인에게 호의적인 것뿐이지.”

마을 주민과 빙궁의 무인은 척 보기만 해도 구별할 수 있다.

행색은 둘째치고, 빙궁의 무공은 그 성취를 이루면 머리칼이 희게 변하기 때문이다.

새치가 많은 수준이 아니라 눈밭처럼 새하얀 머리칼을 가지게 되니 눈에 띄지 않을 턱이 없다.

허나 어찌 되었든 주민들이 빙궁의 무인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그만큼 빙궁이 마을을 잘 다스린 까닭.

“그대가 빙궁의 대표 아니오. 인기가 좋은 건 맞지.”

서준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니 백설향이 팩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다.”

그녀는 괜히 쯧쯧 혀를 차며 한 건물에 들어섰다. 서준 역시 그녀를 뒤따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따스한 온기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세 번째 일을 맡기려던 것 아니었소?”

“흥.”

백설향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몇 번(십수 번쯤 됐다) 목을 가다듬은 뒤 주인장을 불렀다. 좁은 가게인지라 주인장이 주방에서 고개만 내밀어 외쳤다.

“주문입니까?”

“그래. 어죽 두 개다.”

“옙!”

주문과 동시에 둘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설향은 사회성이 부족했고, 서준은 백설향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최근 들어 좋아진 결과다.

외부 부착형 양심 겸, 사회성 겸, 예절 겸, 제어 장치 겸…, 아무튼 금춘봉 덕분이다.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나으니까.

저 혼자 사명감을 가진 서준이 애써 대화 주제를 짜냈다.

“그 뭐냐, 농사가 되긴 되나 보오? 어죽이라니.”

“뭐, 선대 분들의 노고가 컸지.”

“그렇군.”

다시 대화가 끊겼다. 어색해진 분위기. 서준의 눈이 데굴 굴렀다.

‘원래 이러면 저쪽에서 이어줘야 되는 거 아닌가?

말주변 없는 년놈 둘이서 대화하는 게 참 쉽지 않다.

결국 한숨을 내쉰 서준이 의자에 늘어지듯 기댔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이오?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다 외출을 다 하고.”

“연회를 싫어하는 것 같길래 배려해준 것뿐이다. 일을 마쳤으면 보상이 있어야지.”

“그대와 같이 마을에 나오는 것이 보상이다?”

“그래. 감사한 줄 알아라. 이곳이야말로 북해 제일의 맛집이니.”

어죽 그릇 두 개를 들고 다가오던 주인장이 씩 웃었다.

“아이고, 별 말씀을. 그래도 빙궁 분들이 자주 들러주시는 곳이긴 합니다. 하하!”

식탁 위에 놓인 어죽은 과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생선을 듬뿍 넣어 커다란 건더기가 가득하고, 뽀얀 국물에서는 고소한 향이 난다.

서준이 신기한 듯 어죽을 뒤적이자 백설향이 미간을 찌푸렸다.

“버릇없게 뒤적거리지 말고 식기 전에 먹어라.”

정론이라 할 말이 없었다. 서준이 어죽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오, 맛있군.”

“당연한 소리를.”

백설향은 어죽을 호호 불어 식힌 뒤 입에 넣었다. 입을 오물대다 어죽을 꿀꺽 삼킨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아련한 빛을 띠었다.

“…여전한 맛이군.”

“자주 왔던 모양이오?”

“자주 오진 못했다. 선대 궁주가 몇 번 데려와준 것이 전부지.”

그 말을 끝으로 백설향은 조용히 어죽을 먹는 데 집중했다.

누가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표정에 서준도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또 오십쇼!”

주인장의 인사를 받으며 건물을 나선 백설향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그녀를 뒤따르며 물었다.

“선대 궁주와 제법 관계가 괜찮았던 모양이오?”

“내 부모와 같은 사람이었지. 이제는 없지만.”

“…이런. 괜한 말을 했군.”

서준의 사과에 백설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서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해라도 한 모양인데, 딱히 돌아가신 건 아니다. 말하지 않았느냐. 빙궁의 궁주는 후대에게 진기를 물려준 뒤 자유의 몸이 된다고.”

“아, 그랬지. 그러면 가끔 연락을 취하거나 하지는 않소?”

“전혀. 빙궁을 나선 순간부터는 더 이상 빙궁의 사람이 아니야.”

후우, 길게 숨을 내뱉은 백설향이 옅게 웃었다.

“뭐, 잘 살고 있겠지. 그럴 만한 능력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후로도 백설향은 전대 궁주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에 서준을 데려갔다.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백설향이 그 장소들 외에 아는 곳이 없었을 뿐.

그 말을 들은 서준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밖에도 좀 돌아다니고 하시오. 빙궁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정신 건강에 하등 좋을 게 없소.”

“헛소리. 나는 화경의 무인이다. 정신 건강 따위에 연연할 필요 없어.”

“그거 참, 주화입마에 들었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 그런지 설득력이 넘치는군.”

“이익…! 내게 경의를 보이라 하지 않았느냐! 나는 빙궁의 궁주다!”

“어이쿠 무서워라.”

서준이 실실 웃으며 걸음을 옮기자 백설향이 씩씩대며 그 뒤를 쫓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 빙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빙궁 심처의 방으로 향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백설향이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서준이 본 바에 의하면 하루 24시간 중 23시간 30분 정도를 방에 틀어박혀 있는다.

백설향은 무(武)뿐만이 아닌 은둔형 외톨이의 경지에 있어서도 경지에 다다른, 그야말로 일류의 집순이라 할 수 있었다(절정의 경지까지는 아닌 듯 보였다).

서준이 그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짜증난다는 듯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네게 맡길 세 번째 일이다.”

“오, 생각보다 빠르군.”

“네가 하루 종일 들들 볶지 않았느냐! 하여간 인내심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어가지고….”

백설향이 툴툴대며 바닥을 발로 크게 내리쳤다. 쿠웅-! 묘한 진동과 함께 옥좌 뒤편의 벽면이 열린다.

서준의 눈썹이 까딱였다.

‘기관진식인가.

뭐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열리는 문인지는 몰랐다.

자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대부분이 물리적으로 이루어진 기계 장치.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백설향이 손짓했다.

“따라와라.”

그녀를 따라 들어선 벽 너머의 공간은 기다란 통로였다.

불빛 하나 없어 어두컴컴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두 사람은 화경. 어둠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앞서 나아가는 백설향은 익숙한 듯 능수능란하게 온갖 장치들을 해제했다.

뭘 어떻게 봐도 대단한 기밀이 숨겨져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나를 데려와도 되는 곳이 맞나?”

“나는 궁주다.”

“그 말, 오늘 하루에만 수십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빙궁에서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의미다.”

길게 이어진 통로는 본궁 바깥까지 이어진 듯했다. 화경의 예민한 감각이 파악하길 얕은 내리막길이 이어져 어느덧 지하.

어깨 너머로 흘끗 묘한 시선을 보낸 백설향이 거대한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묘한 기운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재질이 평범하지 않은 듯한데, 백설향이 그것을 가볍게 밀자 기이할 정도로 간단하게 문이 밀려났다.

“호오.”

문이 열리자마자 예상을 한참 벗어난 수준의 냉기가 피부를 간질인다.

서준은 가늘게 뜬 눈으로 문 너머의 공간, 그 중심에 놓여있는 주먹만 한 구슬을 보았다.

‘저게 빙정인가.

터무니없는 기운이다. 어지간한 초절정쯤 되는 무인이라도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얼어붙을 만큼.

“놀랄 것 없다. 지금의 빙정은 그 냉기가 많이 약해진 상태니까.”

“이게 약해진 거라고?”

“그래. 빙정은 주기적으로 그 냉기를 보충해야 한다.”

백설향이 혀를 차며 빙정을 툭툭 두드렸다.

“보통 사 년에서 오 년을 주기로 냉기를 보충하는데, 그 기한이 조금 지나버린 탓에 서둘러야 한다.”

“기한이 지났다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래.”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혹시 신녀 사태 때 빙정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서준이 묻자 백설향이 당당하게 말했다.

“의욕이 나질 않더군.”

“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