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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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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과거 중원을 통일했던 무신 주운천의 후손이자, 현 십육명문에 소속된 황실의 주인이며, 손짓 한 번에 만인의 우러름을 받는다는 하늘 위의 고수 주원장.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나 남궁세가 직계의 약혼자이며, 단신으로 사흑련의 무수한 무인들을 쳐죽이고, 기련문과 검종문을 멸문시켰다 전해지는 하늘 위의 고수 이서준.

두 화경의 무인이 마주쳤다.

황제와 멸사천군.

두 사람의 대면은 당연하게도 수많은 무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어지간해서는 한 번 보기도 힘든 것이 화경의 무인이다.

중소문파의 무인들은 물론이요, 십육명문의 무인들 역시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과연 저 아득한 곳을 노니는 고수들은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지켜보는 무인들은 감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끔 숨조차 조용히 나눠 쉬었다.

“그래서, 멸사천군 맞제?”

“그 어색한 사투리는 계속 쓸 건가?”

“이런. 많이 어색하나?”

“많이 어색하지.”

“하이고. 조금 친근해 보인데서 써봤는디 영 아니구먼?”

황제가 가볍게 웃었다. 멸사천군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그를 보았다.

기세를 일으킨 사람은 없었으나, 그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싹한 소름이 전신을 내달린다.

무인들은 숨을 죽였다. 두 하늘의 대화를 끊임없이 곱씹었다.

지고한 위치에 서있는 무인의 한 마디는 천금보다도 귀하다.

그러다 쯧,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에 무인들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남궁의 태사 이서준이다.”

“태사? 오호. 그런 거였나.”

황제가 묘한 눈으로 남궁세가를 훑었다. 입가에 어린 가벼운 미소와 달리 그의 눈은 심유했다. 황제의 시선에 닿은 무인들이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멸사천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걸리적거리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

“나가 뭐 했나? 어째 눈빛이 썩 곱지 않은디.”

“마음에 안 들어서.”

“으음. 그건 큰일이구마.”

황제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충 걸쳐입은 탓에 흘러내린 용포의 소매가 그 손짓에 나풀나풀 흔들렸다.

“그러면 오늘은 이쯤 해두지.”

휘적이는 발걸음으로 멀어지던 황제가 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멸사천군을 보았다.

“곧 또 보자꾸나. 어린 동포여.”

멸사천군이 말없이 중지를 펼친 손을 치켜들었다.

검결지의 변형일까? 많은 무인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고심했으나, 황제는 그 손짓을 알아본 듯 크게 웃었다.

“하하…! 그래. 나도 기대하고 있으마.”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 같은데?”

사람들이 하도 쳐다보기에 방으로 돌아온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조금 이서준 느낌이던데.”

“뭣…! 야, 김춘뿡…!”

“뭐가. 맞잖아.”

“허참. 나 오늘 누나랑 잘 거야.”

“뭐? 오늘은 나랑 자기로 했잖아!”

“그러면 빨리 취소해. 걔랑 나랑 뭐가 닮아?”

“이게…! 해보자는 거냣…!”

“좋아! 와봐랏…!”

평소처럼 노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남궁수아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바깥의 무인들은 그의 손짓 하나, 말 하나에 담긴 뜻에 대해 궁구하기 바쁘나, 멸사천군이라는 별호를 가진 대단한 무인 역시 한 명의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 남궁진천 역시 마찬가지. 그 역시 먼저 떠나보낸 부인을 그리워하던 한 명의 사람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황제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분명 비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은 틀림없으나, 그렇다 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신격화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남궁수아는 알았다.

서준이 종종 말하길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라고 했던가?

아이젠이라는 소울…, 어디에 사는 사람이 한 말이라던데, 남궁수아는 그 말에 다분히 공감했다.

누군가를 신처럼 모시면 그들은 신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손에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허나 그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가끔은 약해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바라봐준다면, 그들 역시 땅 위에 발 딛고 선 개인으로서 자신을 대해주리라 믿었다.

“그렇지?”

서준의 등 뒤로 돌아간 남궁수아가 능숙하게 태산압정의 초식을 구사했다.

머리를 짓누르는 따스한 압박감에 침묵한 서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근데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건 알아둬. 누나 말대로 이미 신이 되어버린 놈들도 있을 테니까.”

“후후, 그럼. 어차피 내가 알고 싶은 건….”

잠시 고민하던 남궁수아가 묘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서방님밖에 없는걸?”

“뭣.”

태산압정과 횡소천군, 그 다음으로 이어질 선인지로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서준의 몸이 흠칫 굳었다.

‘서방님?

발음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짧은 단어 하나. 허나 그것에는 언령만큼이나 묘한 울림이 있다.

춘봉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입만 뻐끔거렸다.

“기, 기가 서준.”

“왜, 춘삣삐.”

“나도 서방님이라 부르는 편이 좋을까…?”

“글쎄…?”

평소 하던 대로 오빠라 불러도 별 상관 없지 않나?

결혼을 한 뒤에도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건 조금 애매한 느낌이 있지만, 오빠는 딱히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고.

“뭔가 지는 기분인데….”

춘봉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결혼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챱!

한 대 맞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호칭을 고민하며 끙끙 앓던 춘봉은 잘 시간이 되자 까무룩 잠들었다.

착한 새 나라의 어린이 금춘봉의 천적은 과연 수마라 할 수 있었다.

‘수마라.

문득 녹소평이 떠올랐다.

나중에 마교에 다시 가면 그녀부터 포섭해 세력을 만들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자니 묘한 기운이 서준의 기감을 툭툭 건드렸다.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서준이 미간을 구긴 채 방을 나섰다. 가볍게 땅을 밀어내며 이동하니 그곳에 황제가 있었다.

“뭐냐요, 이 새끼야.”

“오호, 내 사투리에 어울려주려는 시도인가? 아쉽게 됐군. 사투리를 쓰는 건 이제 영 귀찮아졌어.”

“그런 거 아니다요. 확 그냥, 팍 씨.”

혀를 차며 대충 지붕에 걸터앉으니 곧이어 또 다른 기척 하나가 가까워졌다. 황보륭이다.

“륭 씨, 그쪽도 이놈이 불렀어?”

황보륭이 묘한 표정으로 서준을 보았다.

“그래.”

“전부터 알던 사인가?”

“몇 번 보긴 했지.”

“그럼 그쪽도 알겠네. 저놈 머리가 좀 이상하지 않아?”

“부정은 못 하겠군.”

아군이 생긴 서준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황제를 보았다.

“들었냐?”

“이거 섭섭한데.”

황제가 픽 웃었다. 황보륭이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뭐냐. 시답잖은 일로 부르진 않았을 테지.”

“물론. 시답잖은 일은 아니지.”

황제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각각 서준과 황보륭에게 던졌다. 손으로 낚아챈 서준의 눈썹이 까딱였다.

“술?”

“몇 없는 동포끼리 친목이라도 다져야 하지 않겠나?”

“내가 황실에는 안 좋은 기억이 좀 많은데.”

“아, 주양일 그놈? 어린애잖아. 쩨쩨하게 굴지 마라.”

무슨 생각이지? 황제를 바라보자 그는 거리낌없이 술을 들이켰다.

“크으…. 내가 직접 온 것도 그것 때문이야.”

“사과라도 하려고?”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냥 한 번 보러 왔지. 다음 세대의 남궁은 어떨까.”

황제가 실실 웃었다. 황보륭은 그를 꺼림칙한 눈으로 보면서도 마지못해 술병을 기울였다.

‘좀 치는 놈인가?

왠지 모르게 황보륭이 황제의 눈치를 살피는 느낌이 든다.

굴종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부딪히고 싶어하지는 않는 듯한 분위기.

서준이 쯧쯧 혀를 차며 술병을 흔들었다.

“그런 것치고 황제라는 놈이 사람이 덜 됐구만.”

“음?”

“사람을 따 시키면 안 되지.”

일순 황제의 눈이 번뜩였다. 황보륭 역시 묘한 눈으로 서준을 보았다.

옅게 펼쳐진 영역이 길게 뻗어나가 무언가를 했다.

“최근에 화경에 오른 것치고 꽤 하는구만?”

황제가 실실 웃을 때, 멀찍이 떨어진 한 건물에서 인영 하나가 솟구쳤다.

“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패진광이다. 훌쩍 뛰어올라 서준의 곁에 내려앉은 그가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었다.

“자는 사람 입에다 뭘 넣는 거냐!”

“하늘?”

“허허, 이놈 당당한 거 봐라?”

“가져오라 한 건 가져왔어요?”

“옛다.”

패진광이 술병 하나를 던졌다. 받아든 서준이 그것을 황제에게 던졌다.

“받아라.”

“이걸 왜?”

서준은 대신 황제가 마시던 술병을 자연스럽게 빼앗아 패진광에게 건넸다.

“여기요. 이거 왠지 비싼 술 같던데.”

잘은 몰라도 황제가 마시는 술이면 상당한 고급 술이 아닐까?

“오호? 소흥주(紹興酒)인가.”

술 냄새를 맡아본 패진광이 황제와 술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북경이면 차라리 이과두주(二锅头酒)가 낫지 않나?”

“술은 취향껏 즐기는 것이지.”

황제가 픽 웃으며 패진광이 가져온 술을 살폈다.

“극상품의 구온춘주(九醞春酒)로군.”

그가 슬쩍 서준과 거리를 벌리며 술병을 지켰다.

“이제 와 바꿔달래도 안 바꿔줄 거야. 내가 가져온 술보다 훨씬 좋은 술이거든.”

“뭣.”

서준이 패진광을 노려보았다.

“영감, 남궁세가 돈으로 뭔 술을 마시는 거야?”

“안휘 하면 구온춘주지. 난 달라고 말 안 했다. 술 달라니까 저걸로 주던데.”

“어차피 퍼마실 거면서 좀 싼 걸로 마셔요.”

“구온춘주를 궤짝으로 퍼마셔도 남궁세가 재산에는 흠집도 안 난다.”

맞는 말이다. 애초에 패진광이 남궁세가에 머무는 것만으로 비싼 술쯤이야 마시다 배가 터질 만큼 퍼줘도 남궁세가가 이득이다.

화경 비스무리한 함천경의 무인이 세가를 지키는 것 아닌가?

서준이 마음껏 중원을 쏘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패진광이었다.

“그나저나 권왕이 화경…, 은 아니군. 아무튼 그에 상응하는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놀라운 일인데.”

황제의 옅은 황금빛 눈이 패진광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