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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복수까지는 좋은데, 그 범위를 확실히 해야 돼. 안 그러면 잡아먹히는 건 네가 될 수도 있어.”

춘봉의 말에 서준이 묘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내가 너무 많이 죽였나?”

“아니.”

“그래?”

“어. 할 거면 확실히 하는 게 맞긴 하지. 우습게 보이는 건 더 안 좋으니까.”

춘봉의 눈이 묘한 빛을 띠었다. 노을빛 섞인 백금빛. 그 오묘한 광채가 서준을 담았다.

“근데 앞으로는 어떨지 고민을 해봐야지. 전에 네가 그랬잖아. 지키는 것보다는 이빨 드러내는 놈들 조지는 게 쉽다고.”

“그랬지.”

“그건 진짜 생각을 잘 해봐야 돼. 아예 문파를 멸문시킨다 해도 사람의 연은 문파 내에만 머무는 게 아니야. 쳐내고 쳐내다 보면 세상을 적으로 돌리게 될 수도 있어.”

춘봉이 서준을 겨누던 꼬치로 그의 팔을 콕콕 찔렀다.

“사흑련도 그래. 네가 어떻게든 사흑련을 부숴버린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상 사도(邪道)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런가?”

서준이 벤치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젖혔다. 당연하게도 노을 진 하늘은 붉었다.

“그러면 이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고민이 깊어진다. 다름 아닌 춘봉의 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 같은 면을 보일 때가 많지만, 그녀는 현명하다. 서준은 누구보다도 춘봉의 판단을 믿었다.

슬쩍 눈을 굴려 춘봉을 바라보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나야 모르지?”

“뭣.”

“그냥 그렇다는 거야. 판단은 네 몫이지. 네가 애도 아니고.”

춘봉이 주섬주섬 마지막 빙탕호로 꼬치를 소매에 넣었다.

“그냥 한 번쯤 말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언니는 너 하겠다는 건 안 말릴 테고.”

“수아 누나는…. 그렇지.”

알몸 산책을 하자 해도 수줍게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다.

‘서준이 네가 원한다면….

조금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생각 했냐?”

“알몸 산책.”

“…미친 새낀가?”

춘봉이 슬쩍 거리를 벌렸다. 서준은 용납하지 않았다.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춘봉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 하지 마…! 하지 말랬다…!?”

번쩍 들어올린 춘봉을 목마 태웠다. 기겁한 춘봉이 혹여나 떨어질까 서준의 뒤통수를 꽉 끌어안자 서준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이 오빠는 미친놈이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알몸 산책은 내가 싫어.”

“흠. 그건 다행이네.”

서준은 춘봉을 목마 태운 채 남궁세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무튼 그거야.”

“응?”

말이 끝난 게 아니었나? 고개를 치켜들자 그를 빤히 내려다보던 춘봉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오빠를 믿어. 대신 가끔 한 번씩은 생각해 봐.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게 맞나, 하고.”

“그거 좋지.”

“네가 그렇게 확신하면 나는 끝까지 함께할 테니까. 누가 뭐라 해도 이 중원에 오빠보다 소중한 건 없어.”

진지한 눈이다.

이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애정 표현 같은 것보다 훨씬 부끄러운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춘부이 오빠라 참 행복해요.”

“알면 잘하도록.”

“나는 항상 잘하지.”

남궁세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올 만큼 가벼웠다.

서준은 배운 것을 실천할 줄 아는 남자였다.

“사랑해.”

“으응…?”

품에 꼭 끌어안긴 남궁수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싫어?”

“나야 좋지….”

남궁수아가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살짝 치떴다.

“…나도 사랑해.”

수줍게 짓는 눈웃음이 교태롭다. 서준이 픽 웃으며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자 웅얼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 매는?”

“응?”

“의외로 금 매한테 말로 잘 안 하잖아.”

“아아, 새로 태어난 뉴 이서준은 다르다.”

애정 표현을 자주 해야 한다고 말한 게 춘봉이다.

그걸 본인만 쏙 빼놓으면 아무리 대자대비한 금춘봉이라 해도 극대노하여 베개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버릴 수도 있었다.

“이미 하고 왔지.”

얼굴이 시뻘게진 금춘봉이 몇 번 주먹질을 날리고 도망쳤을 뿐.

“흐응…. 어제 둘이서 무슨 얘기를 했길래.”

묘한 콧소리를 흘린 남궁수아가 서준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품에서 놓아주자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하며 말했다.

“아무튼 이제 슬슬 문상객들이 도착할 시기야.”

“집에만 붙어있으니까 시간이 빠르네.”

검종문이 멸문한 지도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당연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멸사천군이 단신으로 검종문을 멸했다!

문주였던 검율이 남궁진천의 손에 죽었으나, 대신하여 문파를 지키던 전대 문주 검현 역시 이름 높은 전대의 고수다.

이전 세대의 고수라 하여 반드시 이번 세대의 고수보다 강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럼에도 세월은 곧 힘.

천검주 검현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고, 멸사천군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이제 와서 보니까 명성 같은 건 딱히 필요 없더라.”

서준은 부끄러움에 도망쳤던 춘봉을 등에 업은 채 걸었다. 자연스럽게 서준의 팔을 품에 끌어안은 남궁수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있으면 좋지 않아?”

“글쎄. 큰 의미는 없을걸.”

화경이라는 경지에 발을 디딘 이상 명성 따위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 허울에 불과하다.

결국 화경과 대적할 이는 같은 화경뿐. 그 밑의 범인들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범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한들 그것은 화경에게 있어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화경의 무인과 연이 닿아있는 범인이라면 조금 얘기가 다를 수는 있다. 길고양이가 아닌 애완 고양이 정도로.

원래 애완 고양이를 건들면 그 주인과 싸움이 나기도 하는 법 아닌가?

“뭐, 이것도 화경 나름이긴 할 텐데, 보통은 그럴 것 같더라.”

황보세가주가 남궁명에게 당연하다는 듯 혼인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 역시 같다.

황보세가주와 남궁세가주.

얼핏 비슷한 위치 같으나, 그런 허울뿐인 직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황보륭은 화경이고, 남궁명은 절정이다.

이후 황보륭이 말을 무른 것은 멸사천군 이서준이라는 화경의 무인이 그에게 직접 항의했기 때문이다.

조금 과격하게 비유하자면 비로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진 셈.

스윽-, 등에 업힌 춘봉이 고개를 쭉 내밀어 서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너도 막 화경이라고 나한테 막 대하고 그러면 안 된다?”

“다른 놈이 그러면 나 불러. 화경이고 뭐고 머리를 깨줄게.”

“너 말이야, 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도록, 금춘봉.”

화경도 일단은 사람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친인척을 사람 미만의 무언가로 보지는 않는다.

“아마도.”

“쓰읍…. 나 이 혼인 물러야 되는 거 아니야?”

“진짜?”

춘봉을 바라보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노, 농담이잖아! 안 무를 거야! 안 물러줘!”

“좋아, 금춘봉. 혹시 나중에 금춘봉을 막 대하는 이서준을 본다면 그건 이서준이 아니니 즉시 도망치도록.”

“이서준이 아니면 뭔데.”

“귀신?”

“그 정도는 내가 이겨.”

“뭣.”

낄낄 웃으며 걸음을 옮기자 남궁수아가 몸을 찰싹 붙여오며 속삭였다.

“누나는 조금 막 대해도 되는데.”

“그러면 내 가슴이 아파서 안 돼.”

“으음, 그러면 아쉬워도 어쩔 수 없네.”

남궁수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나중에 엉덩이라도 때려줘야겠다.

서준은 가주전에 도착해 춘봉을 등에서 내려줬다. 내부에 들어서니 남궁명과 황보혜지가 그들을 반겼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이제 슬슬 문상객들이 하나 둘 도착할 겁니다.”

“어, 누나한테 들었어. 사람이 많으려나?”

“아무래도 십육명문 사람들도 있고, 여타 중소문파의 사람들도 있다 보니 수가 상당할 겁니다.”

남궁명의 말처럼 날마다 수많은 문상객들이 남궁세가에 방문했다.

중원이 넓다 보니 장례까지는 약간 시간이 남았음에도 다들 미리 도착한 듯했다.

남궁세가 역시 바깥에 나가있던 인원들을 일제히 세가로 불러들였다. 때마침 사흑련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어 큰 무리는 없었다.

“아, 허도진인.”

“오래간만이오, 멸사천군.”

“섭섭하게 왜 그래요? 편하게 말하시지.”

“그러면 그리 하겠네.”

현 남궁세가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멸사천군을 의식했는지, 십육명문에서 방문한 이들 중에는 서준과 안면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용봉지회에서 만났던 무당의 허도진인 역시 남궁에 방문했다.

“점심 드셨어요?”

“아직이네.”

“같이 드실래요?”

“그러면 점메추를 받지.”

상 중의 분위기는 무겁다. 허도진인 역시 낮고 조용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점메추 따위의 소리를 해대는 모습에 서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좀 자세히 알려줬어야 됐나?

그냥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인 줄로만 아는 것 같은데.

mz어에 통달한 금춘봉이 허도진인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며칠에 걸쳐 십육명문의 사람들이 하나 둘 남궁세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화산, 종남, 점창, 청성, 곤륜, 아미, 공동, 소림, 개방, 당가, 제갈, 팽가.

마지막으로 황실까지.

특히 상당한 대규모의 행렬을 이끌고 온 황실 사람들에게 무수한 시선이 꽂혀들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삼황자 주양일. 그를 빤히 바라보던 춘봉이 혀를 찼다.

“뭔 남의 상 중에 저런 행렬을 끌고 와? 황실 놈들 허영심은 알아줘야 된다니까.”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남궁진천의 장례가 목전인 만큼 서준도, 춘봉도 웬만해서는 조문객들과 마찰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하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쩐다야.”

허나 그 소리를 들었을까? 한 사내가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춘봉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춘봉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만, 그만. 무서워서 말도 못 걸겄네. 행렬은 미안허게 됐어. 다들 황제가 어쩌고 위엄이 어쩌고 하다 보니까는.”

사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서준의 의지에 반응하여 은근하게 사내를 경계하던 기(氣)가 조용히 흩어졌다.

서준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사내를 살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사내의 정체에 대해서는 간단히 알 수 있었다.

검은 바탕 위에 수놓아진 황금빛 용. 공간과 하나 된 기세.

정체가 뻔하다 못해 명명백백하다.

‘생각이랑은 조금 다르네.

입가에는 실없는 미소가 걸렸고, 분위기는 가볍다. 대충 걸친 듯한 용포 역시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사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니가 걔지? 멸사천군. 소문은 많이 들었는디. 만나서 반갑다.”

“그쪽은?”

“주원장.”

황실의 주인, 황제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