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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거참, 어린놈 기세가 살벌도 하구먼.”

팽추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별달리 기세를 내비치지도 않았는데 온몸의 피부가 아려왔다.

“온전히 화경에 들어선 듯합니다.”

제갈통의 말에 팽추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듣기로 분명 초절정에 다다른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터무니없군.”

저런 아해를 상대로 지도 대련?

팽추산은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헌데 그런 것치고는 어째 무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던데.”

“그렇습니까?”

“그렇고 말고. 자네도 일부러 자세히는 말하지 않은 것 아닌가?”

화경의 무인들이 전쟁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사실 별게 아니다.

물론 자신들의 문파가 중요한 까닭도 있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딱히 전쟁에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다.

사흑련과 무림맹에는 각각 현경의 무인이 자리잡고 있다.

기실 그 아랫것들이 아무리 날뛰어 본들 상대 조직을 완전히 부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헌데 화경의 무인들이 뭐가 그리 부족해서 목숨 걸고 전장에 나서겠는가?

어차피 길어봐야 몇십 년, 간혹 몇백 년 정도 치고박고 싸우다 끝날 전쟁이다.

“아뇨, 저는…. 괜한 말을 꺼냈다가 그가 크게 분노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것도 그렇군.”

팽추산이 끌끌 혀를 찼다.

“안타깝게 됐어. 어린 나이에 상처가 깊은 듯허이.”

성씨가 남궁이 아니라 한들, 팽추산의 눈에는 서준이 남궁의 사람으로 보였다. 남궁에 그만한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이 팽추산의 눈에도 보였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었으니….

무어라 위로라도 해주고 싶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그저 팽추산은 바랐다. 부디 그 칼끝이 무림맹을 향하지 않기를.

다 늙어 추한 늙은이들이 가득한 곳이 무림맹이나, 진심으로 의와 협을 따르는 이들이 가득한 곳 역시 무림맹이다.

“이번 전쟁은 어찌 되려나 모르겠군.”

제갈통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현의 집무실은 난장판이었다.

부서진 집기들이 바닥을 뒹굴고, 구겨지고 찢어진 지도 조각들이 먼지와 뒤엉켜 나뒹굴었다.

“세상 일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구나….”

사마현은 의자에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자신과 같은 범인이 제아무리 피를 토하며 판을 짜내봤자 뭘 하는가.

하늘까지 갈 것도 없다.

중원의 하늘이라 할 수 있는 화경의 무인들 앞에서는 그 어떠한 계략도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무(武)로 말하는 법이다.

‘텄군.

사마현은 눈만 굴려 지도를 보았다.

기련문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고, 그 외의 전선 역시 크게 뒤로 밀렸다.

이 추세대로라면 검종문 역시 멸문을 피하지 못할 터.

칠사흑문 중 기련문, 검종문, 북해빙궁이 빠진다면 남는 것은 네 문파밖에 없다.

심지어 파천제가의 가주인 제천혁 역시 명을 달리 했으니….

‘최선이라 해봐야 남은 문파들을 보전하는 것 정도.

사마현은 실성한 듯 헛웃음만 흘려댔다.

덜컥-!

그때, 수하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뭐냐.”

“검종문의 전대 문주가 돌아왔습니다!”

“뭐?”

사마현이 기우뚱 몸을 일으켰다.

“천검주(千劍主)가?”

“예. 홀연히 나타나 문파를 돌보고 있다고….”

사마현의 눈이 느릿하게 굴렀다.

천검주 검현이 돌아왔다라….

“그놈은?”

“예?”

“진기재천 그놈 있지 않으냐. 아니지. 멸사천군이라 했던가?”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그 탓에 피해가 상당합니다.”

지도를 보던 사마현이 손가락을 주욱 그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아예 뒤로 물려라.”

“예?”

“별것도 없는 잡문파들은 내어줘. 놈이 주제를 모르고 깊숙이 들어오면 천검주와 함께 놈의 목을 딴다.”

수하가 눈을 굴렸다.

“천검주가 따라주겠습니까?”

“모르지. 어찌 됐건 놈은 검종문을 노리고 있다. 충돌은 예정되어 있어.”

흐…. 사마현이 기운 없이 웃음을 흘렸다.

“아니면, 뭐.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자신은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른다. 오히려 아직까지 목이 붙어있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이 빌어먹을 무림. 하늘을 노니는 저 무인이라는 작자들 앞에서 한낱 범인에 불과한 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마현은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은 왜 이 사마현을 이따위 세상에 낳았는가!

무공. 그 빌어먹을 공부만 없었어도 이미 이 사마현의 손으로 중원을 통일했을진저.

‘빌어먹을 세상이로다.

탄식만이 덧없이 흩어졌다.

[남궁진천이 죽었다?]

[그래. 대신 멸사천군이라는 놈이 날뛴다는군.]

[시혈만천이 그놈에게 죽었다지?]

[그렇소. 힘을 감추고 있었던 모양이오.]

[대계는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순조롭지는 못하다. 예비 회주께서 몸이 근질근질하시다는데?]

[제대로 관리해라. 이미 쏟은 세월이 500년이야.]

[안다. 이미 300년을 관리해왔어. 이제 와 별일이 생기진 않는다.]

[그래. 피로써 중원을 정화할 구원자 아니시냐. 적당히 맞춰줘라.]

낄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으니 나는 이만 가보지. 알아서 조심들 해라. 저번에 태양이 베인 건 봤을 거다.]

[그 빌어먹을 신혈.]

[정파와 사파가 흔들리고 있어. 때가 머지않았다.]

뚝, 연결 하나가 끊어졌다.

[매정하기는.]

이어 차례로 연결이 끊기며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멸신회(滅神會)라…. 정말로 이제 곧인가.”

나른한 목소리가 조용히 흩어졌다.

서준은 삭막한 고원을 둘러보았다. 비명으로 시끄럽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고요하다.

그는 핏물에 젖어 질척해진 땅을 박차 날아올랐다.

이 전장에 남은 사흑련의 무인은 없다. 이미 전부 죽었다.

그들이 남긴 것이라고는 땅에 스며든 피와, 채 스며들지 못한 찌꺼기뿐이다.

‘다음 전장은 이쪽인가.

서준은 전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바쁘게 돌아가는 남궁세가를 도왔다.

이제 서준에게는 물리적인 거리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멀리 떨어진 전장조차 오래 걸리지 않아 이동할 수 있으니, 그는 전장을 돌아다니다 보통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세가에 복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님께서 괜찮으시다면…, 혹시 태사(太師)직을 맡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태사?

남궁명의 말에 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태사라면 분명 천자의 스승 정도 되는 위치로 알고 있다.

황제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런 직책이 있었나?”

“예. 남궁세가에서는 가주의 스승을 그리 부릅니다. 보통은 별 의미가 없는 위치입니다만….”

“원래 남궁의 가주는 보통 그 부친에게서 무공을 사사해.”

남궁수아가 붓을 내려놓으며 서준을 보았다. 그녀의 눈밑이 퀭하다.

“웬만하면 전대 가주의 직계가 가주직을 승계받으니 태사라는 직책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야.”

“맞습니다. 딱히 실질적인 권한도 없죠.”

허나, 하며 남궁명이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태사직을 맡게 되시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현재 남궁세가에는 화경의 고수가 없다. 서준과 패진광이 있긴 하나, 그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외부인이다.

아직 남궁수아와 식을 올리지도 않은 탓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서준이 태사직을 맡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준이라는 화경의 고수가 정식적으로 남궁세가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는 당장은 남궁세가에만 득이 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자.”

“예?”

“태사 그거, 아무튼 하면 좋다는 거 아니야.”

남궁명과 남궁수아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남궁명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허나, 훗날에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응?”

“지금은 남궁세가가 형님의 덕을 보겠지만, 훗날, 반드시 천하제일세가로 우뚝 선 남궁세가가 형님께 힘이 되어드릴 것입니다.”

결의에 찬 눈빛이다. 서준은 남궁명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픽 웃었다.

“안 그래도 돼.”

덕을 보니, 힘이 되어주니, 그런 것을 위해 애쓸 필요 없다.

“가족이잖아.”

이미 받은 것이 많다. 장인어른께 받은 것들만 전부 토해내도 태사를 열 번은 더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오래 산 건 아닌데, 그래도 강호를 조금 살아보니 천하제일세가니 십육명문이니 다 의미 없더라.”

전부 허울에 불과하다.

이미 소중한 이들을 품에 안았다면, 필요한 건 단 하나뿐이다.

그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

허나 서준은 지켜내는 것보다 더욱 쉬운 길을 알았다.

‘노려지기 전에 먼저 주변 짐승들의 송곳니를 모조리 뽑아내면 그만이지.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겠으나, 서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역풍 따위, 백서준이 감당하면 그만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해. 나도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까.”

서준이 씩 웃으며 남궁수아를 번쩍 안아들었다.

“꺄앗…!?”

“명이 너도 좀 쉬고 있어.”

남궁수아를 안아든 채 성큼성큼 멀어지는 서준의 뒷모습을 남궁명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 형님.”

꾹 다물린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이 새었다.

천장을 바라보는 남궁명의 시야가 뿌옇게 일렁였다.

“내가 좀 쉬면서 하라 했지.”

서준은 냅다 방에 납치해온 남궁수아를 침상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식탁 위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춘봉의 빙탕호로 하나를 그녀의 입에 물려줬다.

“당 충전하고, 여기서 좀 쉬다 가.”

바삭, 빙탕호로의 설탕 껍질이 남궁수아의 입 속에서 부서졌다. 폭력적인 달콤함에 혀가 아릿하다.

남궁수아가 쓰게 웃었다.

“나름 쉬엄쉬엄 하고 있어.”

“누가 봐도 아닌데.”

도망칠 수 없게끔 그녀의 등 뒤에 앉아 꽉 끌어안으니, 남궁수아가 말없이 빙탕호로를 한 알 한 알 씹었다.

서준은 그녀의 어깨 위로 턱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빙탕호로 씹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울린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남궁수아가 물었다.

“금 매는?”

“춘봉이? 수련 중이지.”

“아….”

남궁수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과연.

감이 온 서준이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면 쉴 겸 해서 검이라도 좀 휘두를래?”

대답은 딱히 듣지 않았다. 냉큼 그녀를 연무장까지 들어 옮겼다. 그러자 남궁수아가 기운 빠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정말….”

“헛!”

오빠의 기척을 감지한 춘봉이 집중하다 말고 퍼뜩 고개를 돌렸다.

“뭐야? 나 빼고 둘이 뭐 해?”

묘하게 과장된 말투다. 괜히 조금 더 치근덕대는 춘봉의 모습에 남궁수아가 끝내 조금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나 정말 괜찮대도.”

그녀는 비틀비틀 걸어 연무장 한편에 놓인 기다란 대검을 손에 쥐었다.

“그 검도 써봐.”

서준의 말에 남궁수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항상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던 검을 쓰다듬다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남궁수아가 평소 사용하던 것에 비해 확연히 짧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웅-, 검명이 울린다. 남궁수아는 가만히 선 채 눈을 감았다.

이 검명을 들을 때면 종종 검과 대화를 나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왼손에는 아버지의 검을 들고, 오른손에는 항상 사용하던 대검을 들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들.

그것들을 토해내듯 신경질적으로 두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공기를 거칠게 찢어낸 검들이 연무장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서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렇게라도 조금씩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원래 스트레스 해소에는 뭐라도 때려부수는 게 효과가 좋다.

그때, 춘봉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너 언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조금 화난 것 같은데?”

히히 웃던 춘봉의 눈이 일순 부릅 뜨였다.

헉, 이 새끼 설마!? 무언가 깨달은 춘봉이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