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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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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잠시 얘기 좀 하자던 춘봉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그녀를 뒤따랐다.

탁 트인 마당에서 걸음이 멈췄다.

뒤를 돌아 서준과 눈이 마주친 춘봉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빠.”

“응?”

춘봉이 입술을 우물대다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 너 괜찮아?”

“괜찮냐니?”

“내가 널 하루 이틀 봐?”

타박타박 걸어온 춘봉이 손을 뻗었다. 두 손으로 서준의 볼을 꾹 누르고서 얼굴을 끌어당겼다.

부릅 뜨인 춘봉의 눈이 코앞에서 반짝였다.

“표정 좀 펴. 오빠 요즘 기세가 너무 날이 서있어.”

“…사람들이 불편해 하나?”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고.”

춘봉이 서준과 이마를 맞댔다.

“웃어봐.”

“갑자기?”

“확 씨. 웃으라면 웃어봐.”

웃으라니 웃었다. 방긋 입꼬리를 끌어올리니 춘봉이 훅 콧김을 내쉬었다.

“잘했어.”

“뭔데?”

“감정에 잡아먹히면 안 돼. 경험자로서 조언해주는 거야.”

서준의 입이 꾹 다물렸다. 경험자의 조언이라니. 뭐라 말을 꺼내기 곤란했다.

“힘든 거 알아. 안 그런 것 같으면서 정도 엄청 많잖아.”

“그런가?”

“많지. 네가 가주님을 잘 따르기도 했고.”

챱챱, 서준의 볼을 두드린 춘봉이 손에 힘을 줘 서준의 입술을 붕어처럼 만들었다.

“혼자 끙끙 앓다 병 나지 말고 힘들면 나한테 와.”

“응…. 기가 춘봉.”

“서삣삐, 뒤지기 싫으면 이럴 때 헛소리는 하지 말고.”

“알았어.”

서준이 픽 웃었다. 쪽, 춘봉이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알았으면 언니한테 가. 힘들 테니까 옆에 있어줘.”

“그래.”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가. 서준이 춘봉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머리가 산발이 된 춘봉이 서준의 엉덩이를 챱챱 때렸다.

“난 가서 잔다.”

“엉.”

서준은 멀어지는 춘봉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다행이다.

잡아줄 사람이 있어서.

춘봉이 있기에 자신은 마음 놓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서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눈꺼풀 너머로 햇살이 비친다.

서준은 눈을 떴다. 그러자 코앞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던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

서준이 웃자 남궁수아 역시 희미하게 웃었다.

“…응.”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남궁수아는 애써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닌데….”

남궁진천의 죽음으로 인해 세가 전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수아 역시 남궁의 직계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신경 쓰지 마.”

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 위에 올려둔 남궁진천의 검을 집어들었다.

반 토막 난 검의 조각들을 이어붙인 뒤, 손가락으로 부러진 부분을 가볍게 쓸어냈다.

그러자 검이 마치 새것처럼 매끈하게 붙었다.

서준은 검을 검집에 넣은 채 남궁수아에게 다가갔다. 우웅-, 검이 선명하게 검명을 흘린다.

‘신에 가까운 사내가 쓰던 검이니까.

검 자체에 무언가 신비한 공능이 깃들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서준이 남궁수아에게 검을 건넸다. 그녀가 검을 받아들자 검이 기꺼운 듯 다시 한 번 검명을 흘렸다.

“세가에 대해서나, 앞으로의 일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다들 바쁜데 나만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으음….”

확실히, 바쁘게 움직여서 나쁠 건 없다. 마음이 힘들 때 몸이라도 움직이다 보면 숨통이 트이기도 하니까.

고민하던 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면 명이한테 가볼까?”

“아….”

멍하니 입을 벌린 남궁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십육명문의 가주는 그 권위가 하늘과 같다.

그 권위의 드높음은 지구에서의 황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다.

마땅히 그들의 장례 역시 성대하게 치러졌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고, 새로이 가주가 된 남궁명은 바빴다.

세가의 장로들이 그를 도왔기에 그나마 마음을 추스를 여유 정도는 있었다.

“형님, 누님.”

흰 상복을 입은 남궁명이 서준과 남궁수아를 맞이했다.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눈가가 퀭해졌다.

남궁명 정도의 무인이 일을 좀 고되게 했다고 저런 상태가 될 리는 없다. 아마 마음고생 탓이리라.

서준이 쓰게 웃으며 남궁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슬쩍 남궁명의 책상 위를 살피니 이런저런 서류들이 많다. 주로 문상객들에게 보낼 편지 따위로 보인다.

서준은 잠시 남궁수아와 남궁명을 번갈아 바라보다 물었다.

“내가 도울 건 없어? 서류 쪽은 힘들어도 힘 쓰는 건 자신 있는데.”

“아직은 괜찮습니다. 다만….”

남궁명이 책상 위의 편지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문상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면 일이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궁세가는 명실상부한 십육명문의 일원이다. 남궁진천이 살아있을 적에는 그랬다.

허나 지금의 남궁세가에는 화경의 고수가 없다.

전대의 고수들은 이미 은거하여 모습을 감췄고, 그나마 화경에 가까운 무인이라고는 남궁혁뿐.

그 밑의 전력은 여타 십육명문에 비해서도 강대했으나, 결국 문파의 격을 정하는 것은 최고수의 존재다.

서준과 패진광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결국 외부인. 남궁이 어찌 생각하건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다.

남궁진천이 살아있을 적에는 눈치만 보던 승냥이들이 이를 드러낼 수도 있었다.

‘아니, 반드시 드러낸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남궁명이 쓰게 웃었다.

“그때는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치 불고는 무슨.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어쩌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어.”

서준의 말에 남궁명이 그를 보았다.

“좋은 일이라니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잖아.”

적과 아군.

극단적인 구분이지만, 오히려 확실하게 나뉘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두고 보다가, 이제 됐다 싶을 때 모조리 쳐내면 돼.”

서준의 눈이 묘한 빛을 품었다. 안광이 붉게 일렁인다.

그 피비린내 나는 기세를 엿본 남궁명이 마른침을 삼켰다.

서준이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남궁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놈들은 그 싹부터 짓밟아 놔야지.”

“그 말씀은…?”

“기어오르는 놈들, 잘 기억해둬. 이름은 필요 없고 문파만.”

“그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서준의 말뜻은 아예 그들의 문파를 멸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남궁세가라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그런가?”

서준이 턱을 긁적였다.

“그러면 적당히 수상하다 싶은 놈들만 골라놔.”

처리하는 건 백서준이 맡으면 되니까.

남궁세가의 이름에 먹칠할 일은 없다.

남궁수아는 남궁명을 돕겠다며 그의 집무실에 남았다.

그녀를 곁에서 조금 더 보살피고 싶었지만…, 서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장례식 전까지 검종문 정도는 정리를 해야지.

그것이 서준이 장인어른께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였다.

서준은 세가를 나서 하북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하남과 하북의 경계, 황하 북쪽에 있는 무림맹이다.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무림맹의 결계를 찢고 들어서 깊숙한 곳의 회의장으로 향했다.

예고 없이 문을 열어젖히니 총군사, 제갈통의 모습이 보였다.

전과는 달리 장로들은 거의 없었다. 몇몇 이들만이 제갈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네는….”

한 중년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제갈통이 쓰게 웃으며 서준에게 손짓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서준이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예의 중년인이 서준과 제갈통을 번갈아 바라보다 물었다.

“진기재천?”

제갈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팽 장로님.”

“역시 그렇구만. 얘기 많이 들었네. 팽추산일세.”

팽추산이 씩 웃었다. 서준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갈통이 멋쩍게 웃으며 그를 소개했다.

“무림맹의 장로는 아니시지만, 팽가와 무림맹을 오가며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하북팽가. 십육명문의 일원이다.

서준은 미간을 구긴 채 애꿎은 탁상만 두드리다 못내 입을 열었다.

“남궁의 장로 이서준.”

무림맹이니 정파니 하는 것들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금가의 멸문 때도, 남궁진천이 함정에 빠졌을 때도, 결국 그따위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놓고 혀를 찬 서준이 제갈통에게 물었다.

“전황은 전해들었을 거다.”

“예. 이 장로께서 기련문과 검종문 근처의 전장에 큰 도움을 주셨다 들었습니다.”

“여기 온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야.”

붉은 기가 감도는 서준의 눈이 제갈통을 꿰뚫었다. 서늘한 감각에 제갈통이 마른침을 삼켰다.

“무림맹의 총군사쯤 되면 그래도 나보다는 전략 전술에 조예가 깊겠지.”

사마현과의 수 싸움에서 밀린 것은 속이 끓지만, 어찌 됐건 무림맹의 총군사다.

최소한 자신보다는 수를 쓰는 데 능할 터. 사흑련을 쳐부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견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준의 시선에 애써 숨을 가다듬던 제갈통이 입을 열었다.

“사실…, 화경의 무인들이 제대로 나서면 지금과는 전쟁의 양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죠. 그들이 나서게 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되어버립니다.”

전선 근처의 화경들은 자리를 지키며 상대편 화경을 견제하고, 후방의 화경들은 뒤에서 보조하며 자신들의 문파를 지킨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전쟁 양상이었다.

“허나 전쟁이 격화된다면…, 후방의 화경들이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무림맹이니 사흑련이니 이름은 거창해도 무인들에게는 결국 자신들의 문파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화경의 무인들은 어지간해서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하지만 비교적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운 후방의 화경들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웬만해서 상대의 화경이 아군의 영역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진 않으니, 후방에 위치한 문파의 화경들은 전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서준 역시 그런 이유로 남궁세가를 비울 수 있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안휘까지 기어들어올 화경의 무인은 없을 테니.

“결론만 얘기하지. 그래서, 이제 사흑련 측 화경들이 슬슬 기어나올 거다?”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서준이 미간을 구겼다. 제갈통이 급히 말을 이었다.

“이미 그들은 화경 넷을 잃었습니다. 제정신이라면 수비에 집중하겠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제갈통은 끝내 인정했다.

사마현이 자신보다 한 수 위다.

“사실 이번 일도 남궁세가주께서 그런 위업을 이루지 못하셨으면 정파 측이 그대로 무너져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

서준이 말없이 눈을 감았다.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회의장 내부의 공기가 무게를 가진 채 사람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서 검종문을 멸문시키려면 어디를 치는 게 좋을지, 그것만 말해라.”

“물론입니다.”

제갈통은 한참 동안 전체적인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전략을 들은 서준은 수긍했다. 확실히 검종문의 세를 약화시키기에 적합한 수인 듯싶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혹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힘으로 끼워 맞추면 그만이다.

서준이 무림맹을 나섰다.

그로부터 며칠간, 전장에서는 한 사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파 무인들의 피에 미친 고수가 날뛴다는 이야기였다.

그 손짓 한 번에 수십, 수백의 무인이 한 줌 핏덩이가 되고, 그렇게 죽은 이들은 제대로 된 형체가 남지 않아 정확한 수조차 셀 수 없다던가?

“그건 괴물이야…. 피에 미친 악귀라고…!”

적아를 막론하고 모든 무인이 두려움을 담아 그를 칭하니, 그 별호가 멸사천군(滅邪天君)이라.

사(邪)를 멸하는 하늘의 군주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