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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20 KiB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와 유아린은 따로 먼저 나오기로 했고, 서예린은 남아서 대본을 받고 설정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듣기로 했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서예린은 결국 배역을 맡기로 했다.

“…….”

돌아가는 도중에도 유아린은 딱히 별말이 없었다.

아까 서예린의 뒤를 따라 같이 나갔다 오면서 얘기를 좀 했을 텐데 말이다.

“야, 편의점 가자.”

“……주인님 소리는 이제 끝난 거야?”

“소가 다 들어가서 이제 주인 아냐.”

뻔뻔한 걸 보니 멀쩡하구나.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편의점으로 갔다.

“내가 사줄게, 자.”

말은 그러면서 뭔가 고를 세도 없이 허시를 나한테 쥐어주는 거 봐라. 본인은 초코몽을 골라서 계산대로 간다.

“네가 사람이긴 하구나. 사준다는 거 보니까.”

“근데 사실상 돈은 저쪽에서 다 낸 거 아냐? 우린 먹튀 했고.”

“그래도 성의가 중요하지.”

내 말에 딱히 책잡지 않고 초코몽을 마시는 유아린.

쫍쫍거리며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기다린다.

묵묵하니 초코몽을 마시던 유아린은 기습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예린이가 배우 된다고 하면 어때?”

물어보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진짜로 물어보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

슬쩍 떠보듯 묻자 유아린은 초코몽을 마시는 걸로 무시한다.

솔직하게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좀…… 아니, 꽤 많이 아쉽겠지?”

떨떠름하니 답하면서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시선을 위로 올린다.

시원한 밤하늘이었으나 뭐랄까.

오늘은 특이하게도 산골짜기에 별 하나 뜨지 않은 것이.

내게 변명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것만 같아 고개를 다시 내렸다.

“아쉬워?”

“그치, 아쉽지. 배우가 되면 학교에서 자주 못 볼 거 아니야.”

“흐음.”

“왜? 서예린이랑 뭔 얘기했는데.”

이제야 좀 물어봐도 될 분위기였기에 조심스럽게 묻자, 유아린은 삐죽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쓰레기.”

“……소고기 사줬으니까 덜 쓰레기 아니야?”

나름 변명을 해보자.

“착한 쓰레기.”

소고기 사주면 착한 사람 맞긴 하지. 정작 내 지갑에서 오늘 돈 나간 건 없지만 말이다.

“나쁜 남자가 될 거라며.”

“왜 흑역사를 꺼내 드십니까.”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으나 유아린의 표정은 진지했다.

“네가 진짜 나쁜 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예린이도 아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잖아.”

“…….”

“그래서 넌, 착한 쓰레기야.”

뭔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유아린.

반대로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유아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부정했는데. 정작 인정하고 나니까 이제는 좋아하면 안 됐다고 몇 번이나 후회하고 있어.”

“…….”

“근데도 계속 좋아하는 걸 보면. 아, 내가 진짜 좋아하나 봐.”

헤실헤실 웃던 유아린이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내밀었다.

“예린이가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알고 싶어.”

“그럼, 자.”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가리키는 유아린.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나는 주변을 힐끔 둘러본 후.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키스는 실로 달콤했고, 끈적였으며 또한 농밀했다.

그래, 달콤한 초코우유와 같은 키스였다.

내가 천천히 입을 떼자, 유아린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쭉 내민다.

“한 번 더.”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거야?”

“방에서 하면 이거보다 더할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네.”

다시금 입술을 맞춘다.

이번엔 좀 더 길고, 찐한 키스가 이어졌고 슬슬 멀리서 버스 소리가 들렸기에 우리는 천천히 입을 뗐다.

“남 빌려주기 진짜 더럽게 아깝네.”

입술을 한 번 혀로 훑은 유아린은 앙큼한 미소를 짓더니 나를 꼭 안아주었다.

“다 네 잘못이야.”

탓을 해오는 그녀를 나 역시 안아준다.

딱히 작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정작 안으니까 다소 아담하게 느껴졌다.

“네가 얼마나 착한 쓰레기인지 아니까…… 자꾸 남 도와주게 되는 거잖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설명부터 해봐.”

내 품에 꽉 안긴 채로 유아린은 방금 전 서예린이랑 했던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는.

서예린의 고민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새벽.

카지노 안은 촬영팀으로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칩을 제외한 내부 기물들을 전부 사용할 수 있게 허가까지 내려준 덕분에 조감독은 콧김을 뿜으며 흥분한 상태였다.

“키야아, 대박이야. 분위기가 확실히 살잖아.”

“그러게요.”

조감독의 말에 주변 스태프들 역시 동의했다.

인위적으로 지어진 세트장은 감히 풍길 수 없는 묘한 분위기.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눈물이 공존하던 장소.

혼탁한 무게감.

조감독이 딱 원하던 장소였다.

“덕분에 세트장 지을 필요도 없어서 제작비도 세이브 됐는데 거기에 추가로 제작비 후원까지 해주셨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예린이 있는 곳은 배우 무리.

몇몇 배우들은 여기 와봤다면서 자기들끼리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었는데.

친해져야 연기를 하는 게 수월하다고 해서 일단 같이 다니고는 있었지만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긴장했어요?”

차승호 배우가 웃으며 다가온다.

다른 남배우들도 은근 서예린 주변을 맴돌면서 걱정했으나 차승호의 등장만으로 한 걸음씩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근데 표정이 안 좋아요.”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봐요.”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었다.

특히나 연기를 업으로 삼는 차승호에게는 더욱 숨길 수 없는 거짓말.

“예린 씨, 어제…… 우진 씨? 그분 때문에 그래요?”

서예린은 입을 다물었다.

왜 김우진 얘기가 나오냐고 오히려 따지듯 묻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화풀이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차승호는 멈추지 않았다.

“예린 씨,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사귀던 여자가 있는데…… 배우 일 때문에 헤어졌죠.”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효과가 있었는지 방금까지 폭발할 것 같던 서예린은 차승호의 경험담에 흥미를 가졌다.

“근데 그걸 후회하진 않아요.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체감했거든요.”

“체…감이요?”

“네, 예린 씨. 처음부터 명품을 쓴 사람들은 뭐가 명품인지 몰라요. 안 써본 사람이 써본 다음에야 느끼는 거죠.”

“…….”

“예린 씨도 이제부터 알 거예요. 이쪽 일을 하면서, 이쪽 사람들이랑 만나면서 얘기하다 보면.”

“…….”

“이런 게 명품이구나. 그걸 체감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지금 우진이를 무시하는 거냐고 당장이라도 화를 내려 했으나.

“아, 진짜!”

입구 쪽에서 들려온 소란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 버렸고.

말할 타이밍을 놓친 서예린은 주먹을 꽉 쥐며 입구를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엔.

“들어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영업하는 거 아니고 촬영 중이라고요.”

“도박하려는 거 아니고, 누구 좀 보러 온 거예요.”

스태프에게 막혀서 못 들어오고 있는 김우진이 있었다.

“……우진아?”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으로 슬리퍼를 찍찍 끌고 온 김우진의 모습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냐면 여긴 A동이니까.

숙소인 C동에서나 볼 법한 모습인데 A동과 C동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어쨌든.

서예린은 바로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제, 제 친구예요!”

김우진을 끌어내려는 스태프를 말리는 서예린. 하지만 서예린이 신원을 보장해 줬다고 해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배우님 지인분이요? 근데 여기 아무나 데려오시면 안 돼요.”

“아, 그게…….”

서예린이 달리는 걸 보고 뒤따라온 조감독.

멀뚱히 서 있는 김우진을 보니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예린 씨가 데려왔어? 여기 대여한 거라서 촬영 관련자 아니면 출입 못 해.”

다른 배우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오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예린 씨가 촬영이 처음이라서 그러셨나 봐요.”

그나마 차승호가 나서면서 얼추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내가 못 올 곳에 온 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리는 김우진을 보면서 조감독과 차승호 배우는 한숨을 내쉰다.

서예린을 봐서라도 참아줘야 했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학생,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여기 일하는 곳이야. 학생도 여기서 알바하면 이 정도는 알지 않아?”

“친구 촬영하는 거 보고 싶었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특히 여기 감독님이 어렵게 빌리신 장소라서 더 그래요, 우진 씨.”

“…….”

“게다가 우리 그때 말했잖아요. 나름 이해해 준 것 같았는데.”

고깃집에서 말했던 걸 언급하면서 따지고 드는 차승호.

“제, 제가 말할게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그나마 서예린이 중간에 끼어들었기에 조감독과 차승호도 더 이상 말을 하진 못했다.

“우진아, 여기 어쩌려고 왔어!”

“너 보러 왔지.”

심드렁한 대꾸였음에도 서예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뻔한 걸 억지로 내렸다.

“이, 일단 나가자. 여기 있으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그렇게 김우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예린 씨, 이쪽으로 와요.”

배우들 쪽으로 향하던 차승호가 서예린을 불러 세웠다.

“우리랑 같이 대본도 좀 맞춰보고 해야죠. 우진 씨는 혼자 가실 수 있잖아.”

“그래요, 얼른 와요.”

“괜히 촬영 중에 얼타면 안 되잖아요.”

“아…….”

당황한 서예린의 발걸음이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 일단 데려다주고 올게요. 죄송해요.”

그럼에도 김우진이 여기 찾아온 이유를 듣고 싶었기에 일단 같이 밖으로 가는 와중.

카지노 입구로 걸어 들어오는 정장을 입은 세 사람.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는 이들은 웃으면서 카지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고.

조감독은 그들을 보는 순간 바로 냉큼 달려갔다.

“아이고!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골드원 호텔의 대표이사와 전무들.

카지노에서 촬영 허가를 내려주신 감사한 분들이었기에 냉큼 조감독이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데리고 그들을 마중 나갔으나.

대표이사와 전무들은 그런 조감독을 지나치며 김우진의 앞에 섰고.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그대로 고개를 숙이면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이고, 그러시지 말라니까.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그러는 거 싫어해요.”

괜히 뻘줌해서는 손사래 치며 얼른 일으키는 김우진.

“피곤해 보이시네. 재운이 형 때문에 고생 좀 하셨죠?”

골드원 호텔 모기업의 부회장을 아무렇지 않게 이름으로 부르는 모습에서부터 이미 주변 사람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부회장 김재운의 이름이 나오자 긴장한 이사들.

부회장 김재운이 이찬송 부장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비자금 조성까지 닿은 탓에 이렇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휴!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그런 큰일을 놓치고 있어 정말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하실 건 없어요. 저야 그냥 한량인데 뭐.”

김우진의 시선이 뒤따라온 조감독에게로 향하며 교활하니 미소를 짓는다.

“어떠세요? 여기 괜찮아요? 예린이가 촬영에 낀다고 해서 제가 여기 이사님들한테 부탁 좀 드렸습니다.”

“아, 아…….”

“별로신가?”

머쓱함에 어깨를 으쓱이자 조감독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작비도 아끼고! 지원도 받고!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뭐가 감사해요. 저한테 고기도 사주셨는데. 저는 갈게요. 있어 봤자 눈치만 보시겠어.”

슬리퍼를 찍찍 끌며 카지노 밖으로 걸어가는 김우진.

조감독 뒤에 같이 서 있던 배우들을 지나는 와중, 차승호의 앞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사는 세계가 좀.”

“…….”

“다르긴 합디다.”

방긋 웃으며 차승호를 지나치는 김우진.

떠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조감독을 보고 다른 스태프들 역시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차승호와 다른 배우들 역시, 흐름에 편승해서 고개를 숙이는 와중.

“뭐해.”

김우진은 몸을 틀고 손을 슬쩍 뻗었다.

“나 배웅 안 해줘?”

멍하니 서 있는 서예린을 부르며.


바람이 차다.

“어우, 씨. 새벽이라 더럽게 춥네.”

괜히 낙차를 주겠다고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왔는데 괜히 그랬단 생각이 무럭무럭 솟는다.

그냥 따듯한 게 최곤데.

“우진아.”

양손으로 몸을 비비면서 추워하고 있자니 뒤따라온 서예린이 멍한 눈으로 나를 부른다.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그, 내가 골드원 모회사 회장 아들이라는 건 알지?”

“그걸 어떻게 알아.”

최이서랑 유아린이 오윤지 관련해서 얘기할 때 말한 줄 알았는데.

그것만 쏙 빼놓고 어떻게 잘 말한 모양이다.

요령 좋은 것들.

“몰라도 돼. 중요한 건 아니고. 실은 이번 것도 허세 좀 부린 거야.”

“이게 허세야?”

“허세야. 이번에 여기 약점 잡은 게 하나 있거든? 그래서 골드원이 우리 눈치를 좀 봐야 하는데 숟가락 좀 얹었지.”

“……그게 카지노 빌려주는 거야?”

“그거랑 제작지원금 조금?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우, 더럽게 춥네.

나도 모르게 말을 빨리하게 된다.

“무서웠다며.”

“……!”

나는 유아린에게 듣게 된 서예린의 진심에 대해서 언급했다.

“내가 널 잊는 게, 무서웠다며.”

굳이 다시 말해주자 서예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보통은 반대 아닌가? 내가 무서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원래 배우가 되면서 큰물에서 놀게 되면 일반인 때 만났던 인연은 좀 옅어지고 그런 거 아닌가?

“그럼 아린이랑 데이트 하지 말든가!”

빼액 외친 서예린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어휴, 왜 우냐. 이런 날씨에 울면 눈물 언다.”

가까이 가서 눈물을 닦아주자 그건 또 별말 없이 받아들인다.

“나도 서운했어.”

눈물을 닦아주며 나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래, 멀어질 것 같더라.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사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거든.”

“…….”

“근데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다니까. 뭔가 웃기기도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기도 했어.”

울먹거리고 있는 서예린의 모습이 좀 귀엽게 느껴졌기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배우가 되면 나는 회장 아들인 김우진으로 네 곁에 있을 거야.”

“…….”

“그게 아니어도. 나는 학생 김우진으로 네 곁에 있을 거고.”

“…….”

그것도 아니라면.

“익명69와 관리자로, 우리는 계속 이어져 있겠지.”

“아…….”

“그니까 걱정하지 마.”

입을 벌린 채로 나를 쳐다보는 서예린.

그런 그녀에게 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감추려 괜히 말을 늘어놓는다.

“그, 알거든?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새끼가 이런 말 하는 거 엿 같은 거? 나도 내가 쓰레기인 거 알아. 근데 네가 지난번에 이런 내 진심을 알아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지, 지금 당장에 내 진심은 이거야. 응, 어떻게든 너를 놓지는 않을 거라는-.”

입술이 막혔다.

나에게 달려든 서예린의 무게를 겨우 견뎌서 넘어지진 않았지만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아푸, 웁?! 잠까안!”

일단 좀 진정시키려고 밀어내는데 얘가 이렇게 힘이 좋았나 싶다.

추위 탓인지 입술은 차갑고 딱딱했으나, 그 탓에 혀의 온기와 숨결은 훨씬 따스하게 느껴졌다.

“자, 잠깐만!”

겨우 떼어냈으나 이미 서예린은 무언가 스위치가 들어간 듯 멈추지 않았다.

머리로 아예 내 명치에 박치기를 날리더니 뒤에 있던 벤치에 나를 앉혀 버렸다.

언제 여기까지 밀렸나 순간 놀랐으나.

서예린의 입맞춤이 다시금 폭력적으로 나를 유린해 왔다.

하웁.

츄룹.

하압.

야릇한 침과 숨소리가 공존하면서, 어느새 내 손은 서예린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녀의 손은 내 하반신에 가 있었다.

“예린 씨, 어디…….”

그때 하도 돌아오지 않으니 서예린을 찾으러 온 차승호.

다급하게 서예린의 고개를 옆으로 치우며 화답한다.

“그, 금방 갈 겁- 하웁!”

분명 차승호가 뒤에 있다는 걸 알면서.

아니, 알고 있기에.

오히려 서예린은 더욱 탐욕스럽게 키스를 이어간다. 내 허리가 뒤로 젖혀져 아예 그녀에게 깔린 자세로 말이다.

차승호는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다 못 본 척하듯 몸을 휙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가, 가써어! 가따고오오!”

밀어내려 하니까 입술을 깨물고 놓아주지 않는 탓에 발음이 새버렸다.

그런 내 말을 듣더니 서예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벌써 쌌어?”

“……그거 말고. 차승호 갔다고.”

“아, 그거.”

내 하반신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아쉬워하는 서예린.

다시 키스하려고 했기에 나는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는다.

“너 찾잖아! 빨리 가라고!”

“……가기 싫어.”

“개소리야. 네가 하겠다고 한 거잖아.”

“너랑 있을래. 너 쪼그라든 거 다시 펴줄 거야.”

“……추워서 그런 거임.”

“히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맑게 웃은 서예린이 내 귓불을 살짝 깨물곤 작게 속삭여왔다.

“끝나고 존나 따먹을 거니까, 씻고 준비하고 있어.”

“……도대체 그런 천박한 말은 어디서 배우니?”

“관리자님이 추천해 주신 품번에서 봤는데욥!”

“EBS-123?”

“아아! 가기 싫어! 섹x 하고 싶다아!”

“얼른 가라.”

“섹x 하고 싶다아! 우진이 물고 빨고 하고 싶다아앙!”

“가시라고요!”

마지막으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뺨에 키스한 서예린이 깡충깡충 신을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