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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형을 만난 이후 유아린이 뭔가 달라졌다.

이찬송 부장이 징계위원회가 잡혔다던가, 야간근무에 알바들은 빼야한다는 지시 덕분에 다시 원래 시간대로 돌아왔다던가.

혹은 내가 골드원 모기업의 회장의 막내아들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닌가.

오히려 따로 물려받는 거 없이, 다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니까 그새 비웃음의 박수까지 쳐댔다.

뭐였지.

골드원 직원들은 외제 차 끌고 다니는데 정작 김우진은 걸어 다닌다였나.

깔깔거리면서 놀려대는 게 진짜 너무 짜증 나서 꿀밤 한 대 먹였다가 반격기를 처맞고 지금 밖으로 나왔다.

퇴근하는 건 아니었고.

잠깐 쉬는 시간이었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서예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번에 이찬송 부장 건도 있고.

유아린은 같이 일하면서도 내가 눈치채지 못해줬다. 그런 의미에서 서예린한테도 한번 물어볼 생각이었다.

‘애가 도배하는 거랑 사진 보내는 거 보면 이상하기도 하고.

특히나 최근에 사진을 보내는 빈도가 너무 많아졌기에 괜히 걱정됐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특히나 골드원 빵집 대한당 미녀 알바라면서 SNS에 사진이 계속해서 나돌고 있는 중이라니 아마 매일같이 사람들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중일 거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아주 뿌리를 뽑으라고 말해둬야겠어.

큰형이 아직 호텔에 남아있으니까 찬스로 좀 쓰면 되겠지.

처음에는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랬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까 반대로 내가 큰형을 도와주는 거였다.

회사에 있는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들을 잡아주는 거니까.

‘형 좋은 일 하고 싶진 않은데.

대한당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눈에 확 띄는 서예린. 대한당 복장인지 하얀 와이셔츠와 갈색 앞치마, 빵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은 남녀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한 번은 다시 돌아보게 만들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확실히.

얼굴 하나만큼은 정말 국보급이라고 생각하면서 빵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에이, 어때서 그래?”

말하기 무섭게 바로 작업이 걸리고 있는 서예린. 골드원은 카지노라는 특성상 건달들이 손님으로 자주 오는데 딱 봐도 그런 느낌의 손님이었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도깨비 모양의 문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으며.

다른 알바들은 건달의 눈치를 보면서도 쫄아서 제대로 끼어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냥 가고 싶네.

알바나 직원이 그런 거면 바로 부회장 카드 꺼내 들면서 꺼지라고 하겠지만 저쪽은 고객.

게다가 딱 봐도 무슨 불방망이파 같은 겁나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것 같다.

서예린 지킨답시고 내가 찍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에휴.

막상 또 예전에 선배들한테 시달리던 서예린이 떠오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노래방에서는 한강과 동기들한테, 곱창집에서는 3학년 선배들한테 휘둘리면서 힘들어했는데.

건달을 어떻게 서예린이 스스로 뿌리치겠는가.

호텔 측 가드들을 부를 시간을 벌 생각으로 끼어들려고 했는데.

“만지지 마세요, 손님.”

짓고 있는 화사한 미소와는 다르게 가시 돋친 말투에 포근하던 빵집 분위기가 달라진다.

“뭐?”

서예린 손목을 잡고 있는 건달. 그녀는 그걸 보더니 빵집에 있는 CCTV를 반대 손으로 가리킨다.

“이거 다 찍히고 있어요. 손님, 괜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얼굴값 한다 이거지? 어차피 딱 봐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헤픈 년이……!”

미쳤구나.

아무리 건달이고 못 배워먹었다지만 무슨 말을 저렇게 하나 싶었다.

근데.

척.

바로 반대 손으로 중지를 내미는 서예린. 쟤가 욕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떡 하고 입을 벌렸고.

건달은 씩씩거리면서 당장이라도 서예린을 한 대 때리려고 했으나.

“신고받고 왔습니다!”

어느새 달려온 가드들.

뭔가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서예린 관련해서 몇 번인가 호출됐던 모양이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 손님이야! 손님한테 씨발 이러는 게 맞아? 어? 맞냐고! 너희 장사 이딴 식으로 할 거야? 내가 여기서 얼마를 썼는지 알아?”

카지노에서 돈 꼴아 박으셨다는 얘기를 꽤나 당당하게 하는구나. 가드들에게 끌려가는 건달을 멍하니 눈으로 쫓고 있자니.

“어? 우지나!”

방금 전의 싸늘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다가온 서예린.

“무슨 일이야? 빵 사러 왔어? 아님 나 보러 온 거야?”

“……너 보러 온 거 맞긴 한데.”

시선을 느껴서 멋쩍게 알바들 쪽을 쳐다보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기엔 좀 그런 내용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미안한데 나 잠깐만 쉬고 와도 괜찮을까?”

오히려 서예린이 평소랑 다를 정도로 눈치 빠르게 다른 알바들에게 부탁했다. 방금 그런 일도 있었으니 서예린이 쉰다는 것에 토 달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결국 밖으로 나와서 근처 벤치.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서 건네자 녀석은 방긋 웃으면서 꼴깍꼴깍 마셔댄다.

그리고 하는 말.

“나 제로밖에 안 마셔!”

“다 마시고 뭔…….”

“제로 마시면서 관리해야지. 다음엔 제로로 뽑아줘.”

얘도 관리라는 걸 했구나.

하긴 저런 외모가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겠지.

“무슨 할 말?”

“음.”

원래 할 말이 있긴 했는데.

방금 서예린을 보니까 쏙 들어갔다. 혼자서 건달도 능숙하게 상대하고 있는데 성희롱 같은 거 당하면 바로 따지고 들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좀 달라졌다? 예전에는 방금 같은 상황에서 제대로 말도 못 했잖아.”

기특하다며 말하자 서예린은 엄지를 척 치켜들며 답했다.

“요즘 대세는 자기 혼자 할 거 하는 주인공이거든.”

“애니 작작 봐라.”

“히, 그것도 있고. 언제까지 네가 지켜주기만 할 수는 없잖아.”

“…….”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서예린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녀석은 뿌듯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네가 걱정 안 할 사람이 되고 싶었어. 응, 그렇게 되고 싶어서 용기를 냈던 거 같아.”

아까 엄지를 들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살짝 어깨가 떨리는 걸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쨌든 무서운 건 당연히 무서운 거겠지.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과 남들한테 싫은 소리 못 하던 게 늘었다고 보면 되겠지.

“고생하네.”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나름의 위로를 건네자 서예린은 뭐가 좋은지 씨익 웃으면서 남은 콜라를 마저 비운다.

그럼 위로는 됐고.

어깨를 두드리던 손을 그대로 옮겨서 녀석의 양쪽 볼을 집게 손으로 낚아챈다.

양 볼에 밀려 삐죽 튀어나온 입.

의문을 담아 나를 보는 서예린에게 짜증을 가득 실어서 말했다.

“내가 사진 그만 보내랬지.”

“흐히히! 꼴려서 힘들어?”

이년이.

“후우, 그만 보내라. 알았지? 요즘 뭐 스트레스받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러지?”

손을 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자 서예린은 양손으로 말랑한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면서 답했다.

“그럼 오늘 나랑 같이 놀자. 어때?”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싫어.”

어제 큰형이 했던 얘기도 있고 지금 여자랑 둘이 놀거나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 왜엥! 같이 놀면 사진 같은 거 절대 안 보낼게! 어때?”

“나는 그냥 차단하면 그만인데?”

당당하게 말하자 서예린은 입술을 삐죽인다.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섹프잖아.”

“…….”

할 말이 없다.

“처녀를 가져가 놓고 이렇게 군다 이거지?”

“제발 말 좀!”

손으로 녀석의 입을 막으며 주변에 누가 있는 둘러봤으나 다행히 없었다.

예전에 경험이 있었던지라 녀석이 핥기 전에 빠르게 빼자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왔다.

“만약 네가 나랑 놀면 내가 도와줄게.”

또 무슨 소리인가.

“뭐라는 거야. 뭘 도와줘.”

내가 짜증 내며 묻자 서예린은 뭔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내 귓가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네가, 왜 이서나 아린이랑 사귀지 않고 있는 건지. 정리하는 걸 도와줄게.”

“……?!”

나도 모르게 놀라서 서예린을 쳐다보자 녀석은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알았지? 내가 톡 보낼 테니까 부르면 바로 답해야 돼? 아랏지?”

“하아.”

“아니면 퇴근할 때 데리러 올래? 그게 좋겠다.”

방긋 웃은 서예린은 그대로 벤치에서 일어난다. 피로감에 다 죽어가는 나를 보더니 혀를 차곤.

“힐!”

자기 가슴골에 그대로 내 얼굴을 잡아서 집어넣는 게 아닌가.

“으부붑?!”

갑자기 어두워진 시야와 몰캉하게 닿는 감촉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고.

“흐힣! 간지러!”

뭐가 재밌는지 서예린은 내 머리를 감싼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절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알아서 빠져나가야 했는데, 그러려면 서예린의 가슴을 만져야 했다.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망설임 없이 양손으로 서예린의 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쭉 밀어버렸다.

“후우!”

빠져나간 나를 보면서 서예린은 자기 가슴을 추스른다.

“브라 쓸렸잖아.”

어쩌라고.

“그럼 하지 말든가.”

“네가 죽상이니까 기분 좋아지라고 해준 거지. 어때? 기분 좀 좋아졌어?”

“……시발.”

하반신 터질 것 같은 건 둘째 치고 그냥 말캉한 가슴 한 번 만졌다고 기분이 좋아진 내 스스로가 싫었다.

‘이거 핏줄 때문에 이런 거 아냐?

큰형도 보니까 여자들한테 꽤나 휘둘렸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큰형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나라는 남자가 원래 여자의 유혹에 약하거나.

“그것보다 어땠어?”

“뭐가 어때. 네 가슴? 거기 환기 좀 시켜라 땀 냄새 난다.”

바로 한 대 얻어맞았다.

“그거 말고! 좀 커지지 않았어?”

“……잉?”

“이 정도면 지난번에 보여줬던 코스프레 가능하지 않을까?”

젖소 코스프레 말하는 건가?

그녀의 말에 멍하니 가슴을 보자 확실히, 예전보다 좀 커진 것 같았다.

“뽕 넣었냐?”

“뭐래! 매일 마사지하면서 키운 거야!”

알았으니까 흔들지 마, 만지고 싶어지니까.

“어쨌든 나 5시에 퇴근이니까 데리러 와야 해? 알았지?”

슬슬 쉬는 시간이 끝나갔기에 서예린은 절대 잊지 말라면서 내게 말했고.

“알았어, 이 자식아.”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봐! 섹x!”

“…….”

진짜 미친 건가.

내가 멍하니 녀석을 쳐다보자 서예린은 어색하게 뺨을 긁적이며 변명했다.

“나,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감탄사를 내뱉는다고 들었는데? 이게 섹x지 이런 식으로…….”

“아니니까 그냥 가.”

“섹x!”

아니라고.